구렁이 담 넘듯, 여자 나이 마흔이 다가오고 있었다. 16년 간 <지금은 라디오 시대> 등의 방송 작가로 치열하게 달려오던 오경아 씨는 어느 날 ‘일시 정지’ 버튼을 건드리고 말았다. 정지 화면에서 “두 딸의 작은 실수를 참지 못하고, 소소한 것을 용서할 수 없어 괴롭고, 불쑥 찾아오는 조급증으로 심장이 불안하게 뜀뛰는”(<소박한 정원>(서문 중) 자신을 발견했다. 피폐한 얼굴이었다.
그 즈음 작은 마당이 딸린 아리따운 집으로 이사 가게 되었다. 일산 장항동의 ‘임거당’은 송판을 이용해 한국 전통 가옥을 응용한 독특한 구조로 지은 집으로 입주 당시 건축계의 이목을 모으기도 했다. 집이 예뻐서 집 안에서만 지낼 줄 알았던 오경아 씨는 웬걸, 정원에서 시간을 보내게 되었단다. “그저 편안했어요. 작은 정원에서 ‘지극한 고요함과 평화로움’을 경험했습니다.” 이 고적한 감동은 참 강력했다. 영어 회화도 힘든 아줌마가 ‘가든 디자인’을 공부하고자 두 딸을 데리고 정원의 메카 영국으로 떠나기로 결심했으니 말이다. 벌써 3년 전의 일이다.
오경아 씨는 정원 선진국에서 피부로 배운 문화부터 정원에서 홀로 피워낸 성찰 등을 담아 책 <소박한 정원>을 썼다. 까다롭다는 식물 학명 외우랴, 두 딸 학교 보내랴 힘들었을 텐데 거기다 우등생 성적표를 받은 것도 모자라 어느 틈에 책까지 썼을까? 방학을 틈타 잠시 귀국한 그에게 물었다. “스스로 정리도 할 겸 하루하루 일기 쓰듯 기록했지요.” 전지가위와 삽을 들고 큐 가든Kew Garden, 인게이트스톤 홀Ingatestone Hall 등 영국의 대표적인 정원을 누빈 정원사로서의 삶을 꼼꼼하게 옮겼다. 무엇보다 그가 만나 귀 기울인 영국 정원사들의 뼈 있는 말 한마디가 구구절절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시간의 예술, 가든 디자인
정원에 대해 공부하겠다고 결심한 오경아 씨는 무작정 인터넷으로 ‘가드닝’을 검색하다가 ‘랜드스케입 앤드 가든 디자인Landscape & Garden Design’(이하 가든 디자인)을 발견했다. 우리나라에 없는 전공 과목이어서 생소했지만 일단 도전했다. “가드닝은 식물 관리, 재배 등 원예학에 가깝고, 가든 디자인은 건축학에 가까워요. 야외 건축 디자인이라고 보면 됩니다.” 멋모르고 시작했는데 공부가 점입가경이었단다. 가든 디자인은 원예, 건축, 디자인에 다리를 하나씩 걸친 학문인데 셋 모두에 연고가 없었던지라 공부 분량이 어마어마했다. 그러나 일주일간 고작 네 시간 자며 숙제하고 시험 준비를 해도 재미있어서 멈출 수가 없었다. 다행히 두 딸 수빈이와 형빈이는 한국에서보다 더 바쁜 엄마의 보살핌 없이도 영국에서 금세 적응했다.
“정원은 공간뿐 아니라 시간과의 싸움이더군요. 그래서 ‘시간의 예술’이라 합니다. 교수들은 ‘5년 후 없앨 디자인을 해서는 안 된다. 늘 시간을 고려한 디자인을 구상하라’고 강조하지요.” ‘정원사’라 하면 시골 농부같이 수더분한 아저씨를 상상했는데, 그가 실제로 만나보니 그렇지 않았다. 노련한 정원사들은 식물 하나에 대해 물으면 원산지, 번식법 등 백과사전 같은 지식은 물론 인생의 혜안까지 들려주었다.
정원 일을 하는 매 순간이 깨달음의 연속이었다. “정원사 공부란 식물을 이해하는 과정이었어요. 가령 우리가 물맛을 따지듯 식물도 종에 따라 ‘흙 맛’을 따져요. 그래서 정원사란 식물을 ‘기르는 사람’이 아니라 식물이 ‘자라도록 도와주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지요.”
‘골프를 끊는 유일한 방법, 정원 일에 빠지는 것’
정원 일이 얼마나 중독성 있고 몰입하기 좋은지, 영국인들은 ‘가드닝이 골프를 끊는 유일한 방법’이라 말한다. 대형 슈퍼마켓보다 ‘가든 센터’(정원 용품 백화점)가 더 많은 영국에서 공부하고 일하는 동안 오경아 씨는 이 말의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다. 동시에 원론적인 고민도 커갔다. ‘꽃나무를 사랑한다면 산과 들에 가서 보면 되지, 왜 굳이 정원을 만들고 싶은 걸까? 가든 디자인의 최전선에서 공부하고 있지만, 혹시 가장 훌륭한 디자인은 다듬을 필요 없는 자연 그대로가 아닐까?’ 담당 교수와 선배들과 고민을 나눈 끝에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정원은 어찌 보면 결코 자연스럽지 않은 공간입니다. 인간의 기준으로 미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기 위해 손수 지은 공간이니까요. 그렇다면 정원을 굳이 ‘자연스러움’과 연결시키려 한 제 고민이 잘못되었겠지요. 정원은 사람의 공간입니다. 정원사는 땅에 식물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지요. 다만 인간의 예술 중 참 괜찮은 분야라는 확신이 듭니다. 자연을 파괴하는 게 아니라 보탬이 되는 예술이기 때문이지요.”
책 제목인 ‘소박한 정원’은 정원의 디자인이 단출하다는 뜻이 아니다. 식물과 조응했을 때의 감동이 소박하게 시작해 서서히 번져간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는 인간의 감정이다. 정작 식물로서는 올해 꽃을 피운 뒤 씨를 남겨 이듬해 또 꽃 피우는 과정이 전혀 소박하지 않다. 한 세계가 피어나는 과정은 치열하고 어마어마한 일 아닌가 .
3년 뒤 가든 디자인 석사 과정을 마친 뒤 한국에 돌아오면 하고 싶은 일이 많다. “클라이언트에게 의뢰받아서 가든 디자인을 전문적으로 하고 싶어요. 대단위 아파트 프로젝트에도 관심이 많아요. 삭막하지 않게 디자인하고 싶어요. 기회가 되면 우리나라에 유일무이하게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어 많은 사람들이 관람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 즈음 작은 마당이 딸린 아리따운 집으로 이사 가게 되었다. 일산 장항동의 ‘임거당’은 송판을 이용해 한국 전통 가옥을 응용한 독특한 구조로 지은 집으로 입주 당시 건축계의 이목을 모으기도 했다. 집이 예뻐서 집 안에서만 지낼 줄 알았던 오경아 씨는 웬걸, 정원에서 시간을 보내게 되었단다. “그저 편안했어요. 작은 정원에서 ‘지극한 고요함과 평화로움’을 경험했습니다.” 이 고적한 감동은 참 강력했다. 영어 회화도 힘든 아줌마가 ‘가든 디자인’을 공부하고자 두 딸을 데리고 정원의 메카 영국으로 떠나기로 결심했으니 말이다. 벌써 3년 전의 일이다.
오경아 씨는 정원 선진국에서 피부로 배운 문화부터 정원에서 홀로 피워낸 성찰 등을 담아 책 <소박한 정원>을 썼다. 까다롭다는 식물 학명 외우랴, 두 딸 학교 보내랴 힘들었을 텐데 거기다 우등생 성적표를 받은 것도 모자라 어느 틈에 책까지 썼을까? 방학을 틈타 잠시 귀국한 그에게 물었다. “스스로 정리도 할 겸 하루하루 일기 쓰듯 기록했지요.” 전지가위와 삽을 들고 큐 가든Kew Garden, 인게이트스톤 홀Ingatestone Hall 등 영국의 대표적인 정원을 누빈 정원사로서의 삶을 꼼꼼하게 옮겼다. 무엇보다 그가 만나 귀 기울인 영국 정원사들의 뼈 있는 말 한마디가 구구절절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시간의 예술, 가든 디자인
정원에 대해 공부하겠다고 결심한 오경아 씨는 무작정 인터넷으로 ‘가드닝’을 검색하다가 ‘랜드스케입 앤드 가든 디자인Landscape & Garden Design’(이하 가든 디자인)을 발견했다. 우리나라에 없는 전공 과목이어서 생소했지만 일단 도전했다. “가드닝은 식물 관리, 재배 등 원예학에 가깝고, 가든 디자인은 건축학에 가까워요. 야외 건축 디자인이라고 보면 됩니다.” 멋모르고 시작했는데 공부가 점입가경이었단다. 가든 디자인은 원예, 건축, 디자인에 다리를 하나씩 걸친 학문인데 셋 모두에 연고가 없었던지라 공부 분량이 어마어마했다. 그러나 일주일간 고작 네 시간 자며 숙제하고 시험 준비를 해도 재미있어서 멈출 수가 없었다. 다행히 두 딸 수빈이와 형빈이는 한국에서보다 더 바쁜 엄마의 보살핌 없이도 영국에서 금세 적응했다.
“정원은 공간뿐 아니라 시간과의 싸움이더군요. 그래서 ‘시간의 예술’이라 합니다. 교수들은 ‘5년 후 없앨 디자인을 해서는 안 된다. 늘 시간을 고려한 디자인을 구상하라’고 강조하지요.” ‘정원사’라 하면 시골 농부같이 수더분한 아저씨를 상상했는데, 그가 실제로 만나보니 그렇지 않았다. 노련한 정원사들은 식물 하나에 대해 물으면 원산지, 번식법 등 백과사전 같은 지식은 물론 인생의 혜안까지 들려주었다.
정원 일을 하는 매 순간이 깨달음의 연속이었다. “정원사 공부란 식물을 이해하는 과정이었어요. 가령 우리가 물맛을 따지듯 식물도 종에 따라 ‘흙 맛’을 따져요. 그래서 정원사란 식물을 ‘기르는 사람’이 아니라 식물이 ‘자라도록 도와주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지요.”
‘골프를 끊는 유일한 방법, 정원 일에 빠지는 것’
정원 일이 얼마나 중독성 있고 몰입하기 좋은지, 영국인들은 ‘가드닝이 골프를 끊는 유일한 방법’이라 말한다. 대형 슈퍼마켓보다 ‘가든 센터’(정원 용품 백화점)가 더 많은 영국에서 공부하고 일하는 동안 오경아 씨는 이 말의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다. 동시에 원론적인 고민도 커갔다. ‘꽃나무를 사랑한다면 산과 들에 가서 보면 되지, 왜 굳이 정원을 만들고 싶은 걸까? 가든 디자인의 최전선에서 공부하고 있지만, 혹시 가장 훌륭한 디자인은 다듬을 필요 없는 자연 그대로가 아닐까?’ 담당 교수와 선배들과 고민을 나눈 끝에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정원은 어찌 보면 결코 자연스럽지 않은 공간입니다. 인간의 기준으로 미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기 위해 손수 지은 공간이니까요. 그렇다면 정원을 굳이 ‘자연스러움’과 연결시키려 한 제 고민이 잘못되었겠지요. 정원은 사람의 공간입니다. 정원사는 땅에 식물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지요. 다만 인간의 예술 중 참 괜찮은 분야라는 확신이 듭니다. 자연을 파괴하는 게 아니라 보탬이 되는 예술이기 때문이지요.”
책 제목인 ‘소박한 정원’은 정원의 디자인이 단출하다는 뜻이 아니다. 식물과 조응했을 때의 감동이 소박하게 시작해 서서히 번져간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는 인간의 감정이다. 정작 식물로서는 올해 꽃을 피운 뒤 씨를 남겨 이듬해 또 꽃 피우는 과정이 전혀 소박하지 않다. 한 세계가 피어나는 과정은 치열하고 어마어마한 일 아닌가 .
3년 뒤 가든 디자인 석사 과정을 마친 뒤 한국에 돌아오면 하고 싶은 일이 많다. “클라이언트에게 의뢰받아서 가든 디자인을 전문적으로 하고 싶어요. 대단위 아파트 프로젝트에도 관심이 많아요. 삭막하지 않게 디자인하고 싶어요. 기회가 되면 우리나라에 유일무이하게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어 많은 사람들이 관람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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