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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ural Style] 강은숙 독자의 정원 예찬 정원이 내게 준 선물
작년 여름 양지의 아름다운 정원을 방문하는 <행복> 오픈 하우스에서 강은숙 독자를 처음 만났다. 예쁜 정원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가고, 정원만큼이나 삶도 아름답게 가꾸는 강은숙 씨를 올여름에는 평창동 그의 집 마당에서 만났다. 영국식 전원풍으로 가꾼 그의 정원 속으로 들어가보자.
가지치기용 장대를 휘두르며 살구를 땄다. 나무 덤불 사이사이 콕콕 박혀 있는 것들을 찾으려 몸을 웅크리고 구부리며 무려 10kg가량 살구를 수확했다. 나의 마당에서 말이다. 깨끗이 씻은 살구에 살구 양의 3/4 정도 설탕을 넣고 푹 졸이면 당도가 적당한 맛있는 잼을 만들 수 있다. 조금씩 나누어 푹 졸인 후 더 예쁜 색깔을 얻기 위해 용기째 얼음물에 담가 식히는 일도 빠뜨리지 않았다. 방산시장에서 사 온 자그마한 용기 1백 개에 완성된 살구잼을 퍼 담고 뚜껑에는 ‘handmade’라 프린트한 앙증맞은 스티커 라벨을 붙였다. 비닐봉투에 하나씩 담아 초록색 체크무늬 리본으로 포장하면서 친구와 이웃들에게 나누어줄 생각을 하니 가슴이 콩닥콩닥 뛰며 기쁘기 그지없다.

오랫동안 이 집에 살았지만 올해처럼 살구가 많이 열리긴 처음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정원에 꽃을 가꾸기 시작하면서 정성껏 뿌려주던 비료가 살구나무로 옮아간 것이지 싶다. 꽃이 살구나무에게 든든한 기둥이 되어줘 고맙다고, 그러니 함께 먹자고 제 것을 조금씩 나누어준 까닭일까?
사실 20년 동안 이 집에 살면서도 정원을 가꾸기 시작한 것은 불과 5년 전, 두 아이가 유학길에 오르면서부터다. 그전에는 꽃을 심으려는 생각을 전혀 못했을 뿐 아니라 그런 공간조차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이들이 떠나고 난 집에서 나는 내게 주어진 빈 시간을 무엇으로 채울 수 있을지 찾아보게 되었다. 그러던 중 수년 전 미국에 머물 때 동네 교회에서 운영하는 외국인을 위한 영어교실에서 만난 자원봉사자 할머니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어느 날인가 할머니 선생님 한 분이 바구니 가득 장미를 담아 오셔서는 마당에서 방금 잘라 온 것이니 원하는 만큼 가져가라 하셨고, 한번은 집으로 초대해 마당에 핀 꽃을 마음껏 잘라 가라고 하셨다. 비록 작은 꽃 몇 송이지만 직접 손으로 가꾼 아름다움을 함께 나누시던 할머니의 행복한 모습처럼 나도 그런 삶에 가까이 가고 싶다는 소망이 생겨났다. 마음 상태에 따라 사물이 달라 보이듯 늘 대하던 우리 집 마당이 새롭게만 보였다. 기막힌 공간이 내 앞에 펼쳐져 있는 것이 아닌가. 내가 꽃을 심을 수 있는 땅, 내 집에 그런 고마운 땅이 있었던 것이다.

(왼쪽) 평창동 높은 산기슭에 자리 잡은 강은숙 씨 집. 20년 넘게 살아온 이 집이 꽃대궐이 된 건 불과 5년여 전. 정원에는 여름날의 평화가 깃들어 있다.


(왼쪽) 가톨릭 세례명에서 따와 지은 이 정원의 이름은 ‘클라라 가든’. 혼자만의 개원식을 치르며 문패처럼 정원 입구에 건 ‘클라라 가든’ 사인.
(오른쪽) 이 귀여운 소녀는 강은숙 씨의 마스코트로 ‘소녀 클라라’라고 부르며, 대문에서 정원으로 오르는 계단 입구에 세워놓았다. 일본 도쿄 빈티지 숍에서 눈에 띄어 비행기에 태워 데려온 소중한 아이다.


“꽃을 심자. 꽃이 피면 이 마당의 꽃으로 집 안 곳곳을 장식하고, 친구 집을 방문할 때에도 꽃다발을 만들어 선물하고, 만발한 꽃 가까이에서 사랑하는 이웃과 촛불을 밝히고 바비큐 파티와 와인 파티를 열어야지.”
이렇게 해서 정원 가꾸기가 시작되었다. 나의 가톨릭 세례명인 ‘클라라’에서 이름을 따서 ‘Clara Garden’이란 예쁜 팻말을 공방에서 맞춤 제작해 정원 입구에 걸면서 혼자서 개원식도 치렀다. 그날 이후 나는 형형색색 꽃으로 만발한 아름다운 정원을 머릿속에 꿈꾸며 끊임없이 꽃을 사다 심었고, 주위에서도 많이 얻었다. 그 후 어디를 가든 꽃만이 나의 관심사가 되었다. 꽃 가꾸기 초년병 시절엔 봄기운이 움틀거리면 꽃시장으로 달려가 기웃기웃! 겨우내 온실에 있다 새 주인을 만나려 얼굴 내미는 예쁜 꽃을 보면 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성급하게 사다 심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예기치 못한 꽃샘추위가 심술을 부려 그 어린 것들을 얼어 죽게 만들었다.

이런 경험을 했는데도 두세 해 동안은 참지 못하고 같은 실수를 되풀이했다. 이제는 많이 느긋해져 식목일을 훌쩍 넘기고야 어슬렁거리며 꽃시장에 나간다. 처음엔 동네 근처 구파발 화훼단지와 서오릉 화훼단지를 다니다 점차 입소문과 귀동냥으로 양재동, 과천, 성남, 일산, 양지 등지를 헤매고 다녔다. 좀 더 저렴하고 다양하고 새로운 종류가 없을까 하는 기대로 마음 맞는 동네 꽃 친구들과 카풀을 해서 다녔다. 마음 좋은 농장 주인을 만나 덤으로 얻은 것이 산 것보다 많을 때도 있어 입이 귀에 걸리도록 즐거워했다. 꽃이 곱게 핀 정원을 보면 무작정 대문을 두드려 집주인과 꽃 얘기를 나누다 금세 친구가 되어 꽃을 주고받기도 하고, 길가에 핀 주인 없는 꽃을 보면 뿌리째 파 오기도 하는 등 용감한 행동도 서슴지 않았다. 잘 가꾼 정원이 있다는 얘기를 들으면 먼 곳까지 달려가 감탄하고 행복해했다. 피어나는 꽃으로 날마다 정원의 표정이 달라지는 봄날이면 다음 날 만날 꽃에 대한 기대와 설렘 때문에 빨리 아침을 맞을 양으로 밤마다 서둘러 잠을 청하고, 새벽부터 꽃향기를 맡으며 정원 일에 매달려 더욱 꽃에 매료되어갔다.

(왼쪽) 강은숙 씨는 야외 테이블에 앉아 커피 한 잔 마시며 가드닝 잡지를 즐겨 읽는다. 오래된 하얀 의자를 사서 2천 원짜리 스프레이 페인트로 칠을 했다.
(오른쪽) 클라라 가든 곳곳에는 앙증맞고 위트 있는 장식품이 많다. 그의 마음을 적은 팻말 ‘나의 정원은 나의 천국’


코티지풍 정원에 잘 어울리는 낡은 철제 벤치는 버려진 것을 가져와 흰 칠을 한 것. 소박한 멋이 느껴진다.


꽃을 사랑하고 열심히 가꾸면서 얻은 가장 큰 기쁨은 선한 분들과 인연이다. 산책길에 알게 된 이웃 동네 요한 님은 파종을 잘하시는데, 모종이 생기면 일일이 이름표를 붙여 “클라라 님, 대문 앞에 두고 갑니다” 하고 바람같이 사라지신다. 또 천진 님은 귀한 모종을 어렵게 얻을 때마다 ‘혹시 죽을 수도 있으니 나누어 길러보자’며 내가 부담을 갖지 않도록 배려하여 모종을 나누어주시고, 미국의 타샤 튜더 할머니를 방불케 하는 홍천 숲 속의 멋쟁이 미세스 김 님은 지천으로 피어 있는 물망초와 희귀 야생화를 매년 감상할 수 있도록 나를 불러주신다. 어디 그뿐인가. 곰살맞은 내 아들은 아르바이트해 번 돈을 ‘봄이 왔어요. 어머니, 우리 집을 예쁘게 꾸며주세요’라고 적힌 카드와 함께 화장대에 슬쩍 올려놓아 가슴 뭉클하게 만들기도 했다.
정원을 가꾸기 시작해 5년여의 시간이 흐른 지금, 얼굴은 까맣게 그을렀고 남들 앞에 깔끔한 손을 드러내긴 어렵지만 우리 집 거실엔 흰 백합이 눈부신 자태를 뽐내며 은은한 향을 풍기고, 화장실엔 분홍빛 인동이 한아름 놓여 있다. 또 내가 빚은 삼해주가 익을 무렵이면 나의 정원은 지인들의 아지트가 된다. 아름다움은 결코 거저 얻어지지 않음을 온몸과 마음으로 느끼며, 오늘도 내 정원을 바라보며 이웃과 함께 나눌 수 있는 공간이 있음에 감사한다.

1 정원 가꿀 때 꼭 필요한 도구들. 물뿌리개는 물줄기가 굵은 것부터 가는 것까지 다양하게 갖추어야 식물의 성질에 따라 알맞은 양의 물을 뿌려줄 수 있다. 손바닥 부분이 고무로 처리된 장갑과 비닐 장화, 모종삽, 가위 등도 역시 필수품. 
2 마당에서 수확한 살구로 만든 잼. 자그마한 용기에 포장해 친구나 이웃에게 선물하는 기쁨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3 정원에서 잘라 온 야생화를 섞어 풍성하게 꽂으니 적막하던 주방에 빛이 감돈다. 숍에서 구입한 꽃에선 느낄 수 없는 찬란함이다.


강은숙 씨의 ‘즐겨 찾기’

한국종자나눔회
(cafe.daum.net/seedshare)_이런저런 꽃시장을 다니다 얼마 전에 ‘다음’ 카페인 이곳을 알게 되었다. 진정 꽃을 사랑하고 이해하며 한마음으로 나누는 모임이다. 전국에 걸쳐 지부가 있어서 예쁜 정원 방문, 모종 나눔 행사, 희귀 씨앗 공동구매, 군부대 꽃 심어주기, 기차역사에 꽃밭 만들기 등등 참으로 꽃같이 아름다운 마음으로 우리 주변을 아름답게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
심학산_꽃을 구경하러 가끔 발걸음하는 곳. 파주시에서는 작년부터 파주출판단지 인근 심학산 자락의 들과 마을 전체에 야생화를 심어 보기 드문 장관을 만들어내 많은 이를 행복하게 해주고 있다. 야생화이기 때문에 들꽃축제가 열리는 기간만 꽃을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이렇게 우리 사회에도 자연친화적 삶을 갈망하는 사람이 점점 늘어가고 있음은 다행스러운 일인 것 같다.

성격이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강은숙 님은 정원만큼이나 자신의 일상도 아름답게 가꾸며 삽니다. 손으로 만드는 일을 좋아하고, 소박하되 멋을 놓치지 않으며, 이웃을 위해 꾸준히 봉사하고, 지구의 건강을 해치지 않도록 검소하고 절제있게 생활하는 ‘그린 스타일’의 대표 주자랍니다. 강은숙 독자의 ‘별스럽지 않은’ 일상 속에 깃든 소박한 행복을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강은숙, 구선숙 kss@design.co.kr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8년 8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