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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en Campaign] 아름지기의 정자나무 가꾸기 넉넉한 정자나무 아래로
사람들이 고향을 떠날 때 마지막 인사를 나누던 곳도 정자나무 아래요, 고향을 찾을 때 가장 먼저 반겨주는 것도 정자나무였다. 이렇게 정서적 구심점이었던 고향의 나무, 정자나무의 자취를 찾아보기 힘들어진 이때, ‘문화 지킴이’를 자처한 아름지기에서 정자나무 가꾸기에 힘쓰고 있다. 다시 마을의 랜드마크이자, 쉼터, 아고라agora가 되기를 바라며.

오랜 마을에는 꼭 정자나무 한 그루가 ‘계신다’. 큰 나무 하나가 스무 사람을 품어 그 아래로 할아범도, 아범도, 새악시도 모두 모여들게 하는 정자나무. 가난하고 조촐한 마을 앞뒤를 지키던 정자나무는 사람들의 마음을 묶어주는 마을 공화국의 전당이자, 마을을 지켜주는 큰 어른이었다. 지혜의 전수 장소요, 서정의 쉼터이기도, 감정의 정거장이기도 했다. 또 오색 헝겊을 주렁주렁 매달아놓고 그 앞에 돌무덤을 쌓아 소원을 비는, 나약한 인간의 정신적 기도처였다. 온갖 풍상을 그저 주름살 안에 담은 고향 할아버지 같은, 모시적삼 실올처럼 총총히 얽힌 정을 심어주는 고향 할머니 같은 나무, 정자나무 한 그루가 그립다. 전설이나 역사적 기록을 지닌 정자나무도 전국에 여럿 흩어져 있는데 술에 취해 잠자는 주인을 구하고 죽은 의견義犬을 기리는 전북 임실의 ‘개나무’, 의병대장 곽재우 장군이 북을 매달아놓고 군사 훈련을 시켰다는 경남 의령의 ‘현고수懸鼓樹 나무’가 그 예다.

정자나무 수종으로는 느티나무가 가장 사랑받았는데 둥그스름한 생김새가 초가지붕 같아 보암직하고, 크게 잘 자라고, 병충해에 강하고, 오래 살고, 가지를 사방으로 고루 뻗으니 이만한 나무가 없을 만했다. 봄에는 느티나무 새잎으로 떡을 해 먹을 수도 있고, 넉넉한 나무 품에 앉기도 좋고, 연한 새순이나 나무에 사는 곤충 때문에 박새나 오색딱따구리도 놀러 오니 정자나무로 그만이었다.

너그러운 아우라가 깃든 정자나무가 점점 상처 입고 사라지고, 살아남더라도 텅 빈 자리로 남게 된 이 시절에, 정자나무를 가꾸기 위한 노력이 이뤄지고 있다. ‘문화 지킴이’를 표방하는 비영리 재단법인 아름지기가 2002년부터 정자나무 주변 가꾸기 사업을 펼치고 있는데, 공모를 통해 선정된 노거수老巨樹를 치료하고 그 주변 환경을 보살피고 손질하는 사업이다. 2002년의 평택시 팽성읍 원정리 느티나무, 2005년의 서울시 광진구 화양동 느티나무, 2006년의 전북 부안군 주산면 동정리 부서마을 부부느티나무, 2007년의 파주시 탄현면 헤이리 느티나무 가꾸기로 이어져 오고 있다. 이렇게 가꾼 정자나무는 자연과 마을 공동체 문화를 되살려, ‘함께하는 마을 가꾸기’로 그 폭을 넓혀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헤이리 느티나무는 문화예술인 마을의 명소가 됐고, 화양동 느티나무는 도심 주택가에 정다움을 퍼뜨렸다. 원정리 느티나무와 부서마을 부부느티나무는 철제 울타리와 담장을 걷자 주민들이 다시 찾아드는 쉼터가 되었다.

아름지기에서는 이 정자나무 가꾸기 사업을 위해 공모 형식으로 지역 주민들에게 보호해야 할 정자나무를 신청받고 있다. 또 정자나무 가꾸기로 나눔을 실천할 후원 기업도 모집하고 있다. 전문가와 지방자치단체, 기업이 함께 힘을 모아 만든 마을의 정자나무. 그 넉넉한 그늘 아래서 현대인들은 ‘두레의 마음’을 되찾게 될 것이다. 문의 재단법인 아름지기 사업팀 02-741-8378, www.arumjigi.org
 


새롭게 거듭난 정자나무
1, 3 헤이리 느티나무
헤이리가 문화예술인 마을로 조성되기 훨씬 전부터 언덕 위에서 마을을 굽어보던, 5백 살 넘은 나무다. 주변으로 잡목이 우거지고, 가슴 높이까지 썩은 상태였으며 뿌리 도 상해 생기를 잃어가고 있었다. 나무를 치료하고 어지럽게 놓인 벤치며 휴식 공간을 나무 아래 쪽으로 옮겨 사람들이 나무에 너무 가까이 몰려드는 것을 막았다. 나무가 제 모습을 되찾게 되었을 때 헤이리 사람들은 나무의 새로운 탄생을 축하하며 고유제告由祭(중대한 일을 치른 뒤에 그 내용을 적어서 사당이나 신명에게 알리는 제사)를 열었다. 사진 1 배병우, 사진 3 오종은


2 부서마을 부부느티나무 4백 년을 살면서 마을 당산목으로 사랑받아온 두 그루의 느티나무에 이 마을 사람들은 혼례식도 치러주고 ‘부부나무’라는 이름도 지어줬다. 둘레가 각각 25m인 나무의 몸피는 콘크리트 담장으로 둘러싸여 오히려 생육을 방해받고 있었다. 위태롭던 담장을 없애고 지지대를 만들어 늘어진 나뭇가지를 받쳐주고, 주민들의 바람을 담아 지형을 그대로 살린 3단의 자연석 기단을 설치하고, 평상과 제단도 마련했다. 그러고 나자 이 부부느티나무는 마을 어르신들의 사랑방이라는 제 빛을 되찾았다. 사진 오종은


4 화양동 느티나무
6백 년 전 심은 느티나무가 그 위엄찬 모습을 자랑하던 시절에는 고갯마루의 넉넉한 쉼터였겠지만, 화양동 다세대 주택들 사이에 비집고 선 21세기의 이 나무는 취객이 노상방뇨나 휘갈기는 죽은 공간이었다. 삭막한 콘크리트를 걷어내고 그곳에 돌담을 쌓고 나무 울타리를 만들자 도심 주택가에 정다운 기운이 맴돌기 시작했다. 지금은 여름밤이면 이 나무 아래 둘러앉아 별인지, 인공위성인지를 헤아리는 동네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다. 사진 오종은

5 원정리 느티나무 15m 키에 4백 살도 더 먹은 원정리 느티나무는 마을 어귀에 뿌리를 내린 데다, 나무 뒤로 충효정문이 자리해 역사적 가치가 높았다. 하지만 철제 울타리에 둘러싸여 쉽게 다가갈 수 없고 주변 시설도 많이 훼손돼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었다. 철제 울타리 대신 전통 석축과 전돌(구워 만든 건축용 재료로 예부터 무덤이나 궁전의 축조에 많이 소용되었다)로 정취를 더하고 앉아서 쉴 수 있는 공간도 마련했다. 공사 후 치른 완공식에서 온 마을 주민은 한바탕 잔치에 흥을 풀어냈다. 사진 오종은


최혜경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8년 7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