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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 쓰는 즐거움 조각가 성동훈 씨의 금강저수지 옆 보금자리
청명한 소리를 내는 2천여 개의 풍경이 매달린 조각품 ‘소리나무’의 작가 성동훈. 자연이 주는 감동을 전하는 그가 아내와 두 아이를 위해 손수 지었다는 집은 작은 조각공원을 닮았다. 예술가로서의 삶과 네 가족의 단란한 행복이 무럭무럭 자라는 아름다운 집을 만나본다.

(왼쪽) 성동훈·김지영 씨 부부가 24시간 머무는 스튜디오 겸 주택. 뉴욕에서 큐레이터로 활동하던 아내 김지영 씨는 이곳에 오면서 다시 붓을 잡을 수 있게 되었다. 작업에 몰두하면서도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어 좋다.
(오른쪽) 2007년 세계도자비엔날레 출품작 ‘소리나무’.

유유히 흐르는 금강호수, 구불구불 이어지는 비포장도로, 나지막한 산과 집터가 옹기종기 모인 마을…. 경기도 안성시 금강면은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시골 마을의 모습을 하고 있다. 호수가 끝나는 지점, 한겨울의 앙상한 나뭇가지와 정돈되지 않은 풀숲 때문인지 조금은 쓸쓸한 기운마저 느껴지는 인적 드문 곳에 조각가 성동훈 씨 가족이 산다. 성동훈 씨는 12년 전 잔잔한 호수와 소박한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이곳을 집터로 점찍었다. 대자연의 경이로움이 느껴지는 절경은 아니지만 담담하게 자리한 호수 끝자락의 평화가 마음에 들었다. 논과 밭, 그리고 개울물 흐르는 전원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게 된 두 아이를 위해서도, 예술가 부부의 창조적인 작업을 위한 감성을 깨우기에도 더없이 좋은 환경이었다. 성동훈 씨의 집은 일명 스튜디오형 주택.

조각가인 남편과 화가인 아내가 하루 종일 작업에 매진할 수 있는 작업실과 두 아이와 부부의 생활 공간을 겸한 집이다. 건축에 대한 전문 지식은 없었지만 집을 짓는 데 사용하는 철, 돌, 흙, 나무는 늘 그가 접해온 재료였다. 조각 작품을 다루듯 익숙한 솜씨로 뼈대를 세우고, 벽을 올리고, 지붕을 얹었다. 쓱쓱 그린 스케치가 설계 도면이 되었고, 집을 짓는 모든 과정을 작품을 만들듯 하나하나 손수 완성해나갔다. 디자인이 잘빠진 매끈한 집은 아니지만 정제되지 않은 자연과 하나의 풍경을 이루는 투박하고 정겨운 집이 완성되었다.

집은 뒤편의 낮은 산을 배경으로 가로로 긴 형태로 세워져 있다. 멀리서 보면 커다란 직사각형 박스에 작은 박스가 돌출되어 있는 것 같다. 마을을 향해 열려 있는 구조로 집 앞쪽으로는 조각공원을 축소해놓은 것 같은 재미있는 마당이 자리한다. 도시에서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겠지만 마당 한구석에는 닭장도 있고 진돗개도 세 마리나 키운다. 그의 전공을 발휘하여 못 쓰게 된 고철과 나무판으로 닭장도 만들고 개집도 만들어주었다. 자연을 마주하고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앞마당은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정서 교육의 현장이자 성동훈 씨의 또 하나의 작업실인 셈이다. 이렇게 전원에서의 삶은 늘 분주하고 새롭다.

(왼쪽) 여행을 다니며 모아온 각종 기념품과 엽서로 장식한 통로. 
(오른쪽) 종일 틀어박혀 책 읽기 좋은 다락방.

조각가 남편과 화가 아내의 공간
1995년에 지어 조금씩 보수를 해나간 집은 지난해의 본격적인 리모델링 후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침목과 철판으로 구조를 만든 1층은 남편이 사용하는 대형 작업실과 손님을 맞는 응접실, 다락방, 아내를 위한 작업실, 간단한 핑커푸드를 만들 만한 간이 부엌이 자리해 있다. 그중에서도 부부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은 부엌 위쪽에 만든 작은 다락방. 뉴욕을 여행하다가 한눈에 반한 작은 다락방 구조를 재현한 것인데, 부부 모두에게 가장 애착이 가는 장소다. 나무로 수납장을 짜 넣어 다락방을 오르는 계단을 만들었는데, 그 뒤편으로 생긴 공간은 자연스럽게 아내의 작업실이 되었다. 개성 있는 구조의 1층과는 다르게 2층은 말 그대로 편안한 생활에 초점을 맞췄다. 좁은 계단을 따라 2층에 오르면 아이들 공부방과 침실, 거실과 부엌을 갖춘 생활 공간이 나온다. 1층과는 완전히 독립하여 생활할 수 있는 아늑한 공간이다. 이 집에 놓인 모든 가구는 조각가 남편이 뚝딱뚝딱 만들고 화가 아내가 아름다운 옷을 입혀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가구다. 탁자 위에 놓인 테이블클로스도, 그 위에 놓인 스탠드도 어느 것 하나 기성 제품이 없다. 집 안에는 세계 여러 나라를 다니며 모은 앤티크 소품과 사진들이 가득하다. 1년에 3~4개월은 해외에서 작업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많은 나라를 여행하게 된다고 한다. 이 부부는 미국, 독일, 인도 등 세계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화가와 조각가를 만나 함께 공동 작품을 제작해왔다.

“작년에는 <국제 사막 프로젝트>를 직접 기획했어요. 정해진 시간 동안 사막 한복판에 존재하는 돌, 나뭇가지, 모래, 진흙 등의 한정적인 재료로 작품을 만들어내는 흥미로운 전시였죠. 참여 작가들은 사막 위에 정말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었어요. 말 그대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이었죠. 아무것도 없던 허허벌판에 창조적인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것은 예술가에게는 항상 설레는 일이죠. 집을 짓는 것도 어쩌면 작업의 연장선이었던 것 같아요. 어디서도 볼 수 없고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개성 강한 집이죠.”

1 기차역에서 철거한 침목과 철골을 이용해 지은 성동훈 씨의 작업실 전경. 거대한 공장을 연상시키는 작업실 앞으로 시멘트, 철골, 목재로 만든 조각물이 여기저기 놓여 있어 마치 작은 조각공원을 보는 듯 이색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2, 3 성동훈 씨에게는 버려진 철골도 작품의 재료가 된다. 철, 시멘트, 흙과 같은 재료가 그의 손을 통해 비상하는 새가 되기도 하고, 뛰어오르는 말이 되기도 한다.
4 알록달록한 꽃을 그려 넣은 뱀은 아이들을 위한 선물. 마당에서 뛰어놀다가 잠시 걸터앉을 수 있는 벤치다.
5
마당에 설치한 가로등. 익살스러운 표정이 재미있다.
6 작업실 내부 역시 제작 중인 작품들이 여기저기 놓여 있다.

조각가 성동훈은 매우 활동적이고 열정적인 작가다. 1990년 데뷔 이후 미국, 일본, 이탈리아, 독일, 인도 등 국내보다는 세계무대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국내에서는 높이 12m에 이르는 거대한 조형물 ‘소리나무’로 대중에게 이름을 알렸다. 2007년 세계도자비엔날레 초대작 ‘소리나무’는 스테인리스로 만든 거대한 나무 모양의 구조물에 도자기 풍경을 매달아 바람이 불 때마다 아름다운 소리를 내도록 한 설치미술 작품. 건물 4층 높이의 거대한 크기가 놀랍기만 한 ‘소리나무’를 제외하고라도 그는 대형 작업이 많은 편이다. 그의 거대한 작업 들을 소화하기 위해 기차역에서 철거한 침목을 쌓아 거대한 물류 창고를 연상시키는 몸집 좋은 박스형 작업실을 만들었다. 천장에는 대형 작품들을 이동하기 위한 거대한 트레일러가 매달려 있고 내부에는 온갖 공구가 즐비하다. 그는 가족과 함께 있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시간을 이곳에서 보낸다.

(왼쪽) 세상의 모든 공구와 장비가 다 모여 있는 듯 없는 것이 없다. 양 벽면을 따라 망치와 장도리 등의 장비가 키를 맞춰 걸려 있다.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 마련한 장작 벽난로도 놓여 있다. 
(오른쪽) 대형 작업이 많은 성동훈 씨에게는 작품의 위치를 바꾸거나 움직이는것 역시 매우 중요한 일. 거대한 작품을 이리저리 돌릴 수 있게 해주는 트레일러는 그에게 필수품이다. 트레일러에 매달려 있는 거대한 두상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가득 차 있는 수많은 고뇌를 표현한 작품으로 올 9월에 열리는 개인전을 통해 선보일 예정이다.

“작가들에게 작업실과 생활 공간을 어떻게 분리 할 것일까에 대한 문제는 늘 고민거리죠. 저 역시 그랬죠. 두 아이의 아빠로서의, 열정적인 예술가로서의 역할, 어느 것 하나 소홀할 수 없으니까요. 이곳으로 온 지 햇수로 12년 되었는데 너무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은 부모의 작업을 이해하고 함께 공감할 수 있고, 부모는 아이들과 함께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어요. 그림을 그리는 아내와도 서로의 작업 세계와 가치관을 공유하고 많은 의견을 나눕니다. 저에게 여행이 곧 일이고 예술인 것처럼 가족과 함께 나누는 모든 일상 역시 예술적 영감이 되는 거죠.”

한 가지 단점이 있다면 모든 가족이 좀처럼 집 밖으로 나가지 않게 되는 것이라며 빙그레 미소를 짓는다. 가족과 함께하는 전원생활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말하는 듯 보인다. 해 질 녘 저 멀리 내려다보이는 호수의 낙조를 바라보며 성동훈 씨는 오늘도 생각에 잠긴다. 올해 새롭게 준비하는 전시를 구상하기도 하고 아이들과 함께 먹을 저녁 메뉴에 대해 생각하기도 한다. 예술가로서의 열정적인 삶과 평화로운 일상이 공존하는 곳, 평화로운 자연이 사람의 온기로 더욱 따뜻해지는 곳이 바로 성동훈 씨네 가족이 사는 집이다.

(왼쪽) 2006년 10월 미국 애리조나에서 개최한 <국제 사막 프로젝트>에서 찍은 성동훈·김지영 씨 부부의 기념사진. 
(오른쪽) 몽고에서 직접 공수해 온 게르 두 채는 이곳을 찾는 손님들을 위한 특별 게스트 하우스다.

성정아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8년 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