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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과 함께 떠나는 건축 여행> 저자 이용재 씨와 딸 자녀의 눈을 밝혀주는 인문학 데이트
건축 평론가 이용재 씨는 7년째 일요일마다 딸과 데이트를 한다. 자세히 들어보면 그리 달콤한 데이트는 아니다. 전국의 문화 유적지부터 현대 건축물을 탐방하는 것이다. 그러나 ‘건축 강의’가 아니다. 문화, 역사, 철학을 두루 거쳐 ‘착하게 살라’는 이야기를 조곤조곤 나눈다. 헤이리의 북하우스로 나들이 나온 이들 부녀를 만나보았다.
지난 12월 둘째 주 일요일, 건축 평론가 이용재 씨와 딸 화영 양이 찾아간 곳은 파주 헤이리의 ‘북하우스’였다. 동행이 익숙한 듯 부녀는 각자의 동선을 즐겼다. 아빠는 재빠르게 곳곳을 돌며 공간을 사진에 담고, 딸은 윌리엄 모리스 갤러리에서 작품을 감상한 뒤 카페에 앉아 예쁜 케이크를 접사 촬영한다. 그러다가 만난다.
“딸, 여기 봐봐. 건물 안에 쭉 걸어갈 수 있는 길이 났지? 이걸 ‘프로미나드’라고 해.”
“그게 뭔데?”
“건물 내부의 산책로라는 뜻이야. 가령 여기는 1층부터 꼭대기까지 경사면을 따라 걸으면서 선반에 꽂힌 책을 볼 수 있게 되어 있잖아.”

아빠는 말하고 딸은 듣는다. 부녀의 건축 여행은 표면상으로는 주말 나들이, 주최측(아빠)의 본의는 인문학 교육이었다. 딸 화영 양이 초등학교 4학년일 때부터 시작해 현재 고등학교 1학년이 될 때까지 이어오고 있으니, 벌써 7년째다. 어떤 계기로 건축 답사를 시작했는지 궁금하다. “딸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성적이 뒤에서 두 번째더라고요. 제가 직접 영어, 수학을 가르쳐봤는데 애가 도통 공부에 관심이 없어요. 그래서 결심했지요. ‘인문학 공부를 시키고 선비를 만들어야겠다’라고. 그때부터 문화재 답사를 시작했습니다.”
이용재 씨는 여태까지의 여행을 담은 기행문을 묶어 책을 냈다. 작년에 출간된 <딸과 떠나는 건축 여행>(멘토 프레스) 1권이 1만 부 넘게 팔렸다. 인문학 서적으로는 놀랄 만한 기록이다. 지난여름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가 ‘이달의 읽을 만한 책’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여세를 몰아 후속편이 계속 나오고 있다. 이 시리즈가 총 다섯 권이 될지, 열 권이 될지는 저자도 아직 모르겠다고.

잠시 책을 들추어 보자. 부녀는 1960~1970년대 스타 건축가 고 김수근 선생의 ‘워커힐 힐탑바’부터 3년 전 지어진 건축가 최문규 씨의 ‘쌈지길’까지 두루 보러 다녔다. 이처럼 무심코 지나치던 건물에 부녀는 말을 건다. 건축물에 얽힌 야사와 정사를 들춰내고, 보이지 않는 건축 관계자들과 대화하고, 때론 고전을 종횡무진하며 발췌한다. 건축에 문외한인 사람도 손에 책을 쥐면 끝까지 후루룩 읽게 된다. 한 꼭지 읽을 때마다 ‘캬~’ 하게 된다. 글이 얼큰하니 맛있다. 월간 <디자인> 김신 편집장의 표현처럼 그는 ‘쉽고 단호하고 눈치 안 보는 문체’로 건축을 말한다. 영양도 풍부하다. 건축 용어 및 인물에 대한 주석이 꼼꼼하게 달렸다.

(위쪽) 건축 평론가 이용재 씨 부녀를 헤이리 북하우스에서 만났다. 그는 이 건물이 “비탈진 언덕 지형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주위 풍경을 돋보이게 만든다”고 평가했다. 이날은 마침 딸 화영 양의 생일이었다. 아빠는 여기서 윌리엄 모리스 작품집을 구입해 딸에게 선물로 건넸다. 물론 자세한 설명과 함께.

“마음으로 느끼는 방법을 배워요” 딸은 지난 몇 년간 두꺼운 책 몇 권 분량을, 그것도 ‘저자 직강’으로 들었으니 대단히 똑똑해졌을 것 같다. 화영 양에게 물어보았다. “건축 많이 배웠어요?” 대답이 없다. 질문을 수정한다. “아빠한테 뭘 배웠나요?” 화영 양의 대답. “마음으로 느끼는 방법이오.” “가령…?” “MIT 학생들이라면 이 건물의 자재는 뭐고, 공간의 기능은 어떻고 등으로 비판, 분석할 텐데, 저는 이걸 봤을 때 느낌은 어떻고, 지금 우리에게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 아빠랑 이야기해요.”
그래서인지 화영 양은 자기 견해를 표현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 가령 한길사 북하우스 근처에 있는 생김새 독특한 어느 건물을 이리저리 바라보더니 딸은 “저 건물 이상해!”라고 말한다. 그럼 아빠의 설명이 이어진다. “들어가봐야 알지.” 이용재 씨는 “얼굴만 보고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 되듯이, 건축도 외관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겉보기에 멋져도 물 새는 건물이 많단다”라고 부연한다.

이용재 씨가 딸이 4학년일 때부터 여행을 시작한 데는 이유가 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는 어리버리한데, 4학년이 되면 부모의 이야기에 제법 반박도 할 줄 알고, 사춘기 초입이라 2차 성징 초기 단계에 나타나는 변화를 겪기 때문이다. 이때부터는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는 지적 능력이 갖추어지면서도 머리가 ‘말랑말랑’해서 공부하기 좋다. 그래서 요즘에는 다 큰 딸과 다니면서도 글을 쓸 때는 ‘정신적으로 초등학교 4학년’인 아이들을 고려해 문장을 풀어간다. “우리나라의 모든 4학년 아이들과 함께 견학을 다니는 셈이지요.”
그런데 얼마 전부터 딸은 “나에게도 할 일이 있다”며 아빠를 따라나서지 않으려 한다. 부모로부터 독립적으로 생활하려는 청소년기임을 아빠도 이해한다. 그러나 이용재 씨는 딸이 ‘반항’하면 ‘일당 3만 원’을 준다. 용돈을 주면 딸은 잘 따라오는 편이다. 그저 달콤한 미끼로 회유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인세 중 10%는 함께 대화한 딸의 몫이니, 여행을 나설 때마다 딸에게 원고료를 우선 지급한다는 공적인 이유도 있다.

용돈을 모아 딸은 혼자 해외여행을 갔다. 지금까지 도쿄만 세 번 다녀왔고 곧 유럽 여행을 갈 계획이다. 정보 수집력이 무척 뛰어나서 누가 도와주지 않아도 혼자 잘 돌아다닌단다. 옆에서 아빠가 푸념을 한다. “48년 동안 아빠는 외국에 한 번도 못 나갔다!” 선비가 돈을 벌기란 애초에 불가능했다. 건축계 잡지 편집자로 활동하다가 IMF 외환 위기 때 전 재산을 잃고, 감옥에도 다녀오고, 건축 현장 감리도 해보았으나 현실과 조금도 타협하고 싶지 않아 죄 그만두었다. 결국 택시 기사가 되어 주중에는 택시 운전을 하고, 주말에는 가족과 문화재 답사를 다니는 길을 택했다. 앞으로 책이 잘 팔리면 ‘해외편’ 시리즈를 구상해, 그 김에 외국에 나가볼 작정이다.

건축은 인문학이다 용돈을 주면서까지 부지런히 딸을 이끌고 건축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뭘까? “딸에게 인문학을 가르치려고요. 그리고 인문학은 스무 살이 넘으면 입력하기 힘들거든요.” 그렇다면 책을 읽히면 될 텐데, 왜 건축 답사를 통해 인문학을 가르치는가?
“건축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인문학입니다. 건축가는 법원, 병원, 주택, 감옥, 혹은 피카소의 집 등 모든 용도의 공간을 설계해야 하잖아요. 따라서 건축가는 학문적인 수준이 아주 높아야 합니다. 사람의 모든 직업 및 인생에 통달해야 합니다. 한마디로 모르는 게 없어야 하지요. 그래서 건축물 하나에는 역사, 예술, 문화 및 건축가의 철학이 담깁니다. 그게 바로 인문학이지요.”
이용재 씨가 답사지를 고르는 기준은 한 가지다. 인문학적으로 지어진 건축을 찾아 떠난다. “인문학적 건축은 자연 속에 들어가서 자연을 완성합니다. 소쇄원을 예로 들면, 그 건축물은 자연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자연을 돋보이게 만듭니다.” 더불어 사는 길을 모색하는 것, 이것이 인문학의 정신이다. 인문학은 머나먼 관념 덩어리가 아니다. 가령 이런 것이다. 당신에게 떡이 다섯 개 있다.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은 무엇일까? 지식에 기대자면 가장 허기질 때 먹는 것이다. 그러나 인문학적 관점으로 답을 찾으면 이렇다. ‘나누어 먹으면 제일 맛있다.’
“돈 세는 법은 언제라도 가르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돈 쓰는 법은 어릴 때 배우지 않으면 갖추기 어렵습니다. 좋은 일에 쓰려면 덕을 갖추어야지요.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학교에서는 지식을 전하는 데 급급해 덕을 가르치지 못합니다.” 이용재 씨는 아빠가 인문학 교육을 맡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어머니는 자식의 30년을 보살피고, 아버지는 300년을 돌본다고 하지요. 원래 엄마와 아빠의 역할이 다릅니다. 엄마는 현실적인 부분에 강하기 때문에 가계를 꾸려나갑니다. 아빠는 세상의 이치를 담은 말씀이 자녀, 그리고 후세까지 전해지도록 해야 합니다.”

아버지들, 혼자 등산 좀 다니지 마세요! 이용재 씨는 말한다. “제발 주말에 아이들 데리고 놀이 공원에 가지 마세요. 모처럼 부모와 아이가 함께 지낼 수 있는 주말만큼은 문화재나 사찰을 보러 다니세요. 그 시간이 아이 인생에서 가장 큰 공부가 된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부모들은 이용재 씨만큼 건축 지식은 물론이고 인문학에도 밝지 못하다. 그럴 때 문화재를 보러 가서 어떻게 하면 될까?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함께 답사를 가는 것 자체가 공부입니다. 잘 축조된 공간을 경험하고 가족과의 안온한 분위기를 느끼는 순간이 절로 아이 가슴에 새겨집니다.”
이 대목에서 이용재 씨는 대뜸 “아빠들, 혼자 등산 좀 다니지 마세요!”라고 일갈한다. “불혹을 넘어설 즈음 아빠들은 외롭다며 자기 자신을 관조한다고 등산을 자주 가는데, 그러니까 집에서 ‘왕따’ 당하는 겁니다. ‘가장의 위기’ 운운하지 말고 가장 대접을 받으려면 자녀 교육을 맡으세요.” 그러나 아버지가 도통 인문학이랑 거리가 멀다면 어떻게 하나? “아빠도 공부를 시작해야지요. 다시 시작하는 모습을 보이면, 설사 아빠가 아이에게 한 수 가르쳐줄 만큼은 못 되어도 자녀들이 그 자세를 보고 배웁니다.” 무엇보다 부모가 거짓말하지 않고, 남을 해하지 않고 정직하게 살아가는 모습 자체가 자녀에겐 큰 공부다.
이용재 씨는 주말 여행 때 외에도 평일에 틈틈이 딸에게 휴대폰 문자 메시지로 사자성어 한 구절을 보낸다. 딸은 문자 메시지를 받고 외워야 한다. 사자성어를 강조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가 기계적으로 암기했던 사자성어 구절구절이 요즘 그에게 큰 깨달음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좀 더 어릴 적에 이 진의眞意를 알았더라면!’ 하는 생각에 딸에게 문자 메시지를 날린다.

내 딸의 딸이 이 자취를 밟아 떠난다면 일방적으로 애정 공세를 펼치던 이용재 씨가 얼마 전 7년 만에 처음으로 딸에게 ‘데이트 신청’을 받았다. “아빠, 천안 아라리오 갤러리 가고 싶어”라는 문자 메시지가 온 것이다. 요즘 미술 작품과 미술관에 관심이 많은 딸이 TV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보고는 아라리오 갤러리에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이곳에 대해 아는 바가 없던 아빠는 데이트 전날 밤까지 치밀한 자료 검색에 돌입했다. 어찌나 기쁘고 고맙던지, 천안으로 향하던 길은 유난히 신났다.

“꿈이 있다면, 나를 이어 화영이가 자기 아들 딸과 함께, 나와 갔던 자취를 쫓아 떠나는 것입니다. 말씀을 아래로, 아래로 전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영원히 사는 길이지요.”
아빠는 딸이 착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어떻게 사는 것이 착하게 사는 것일까? “군자는 왔다 간 흔적을 남겨서는 안 됩니다. 조용히 왔다 가야 합니다. 최소한 남을 해치지 말아야지요. 쉬우면서 어려운 일입니다. 이왕 이 세상에 난 김에 인류 발전에 기여하고, 두루 유익한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딸도 아빠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 “술 좀 줄이고, 담배를 안 피웠으면 좋겠어요.” 아빠는 슬며시 웃는다. 주머니를 뒤지더니 주섬주섬 휴대폰을 꺼내 문자 메시지 하나를 보여준다. “나는 아빠가 매일 매일 힘내서 살아갔으면 좋겠어. 10월 25일 이화영.”
아, 인문학 교육도 좋지만, 아빠가 딸내미로부터 이토록 진한 사랑을 받았다면 그것으로 족하지 아니한가.

1 <딸과 함께 떠나는 건축 여행>(멘토 프레스)에 이어 지난 12월에 같은 제목의 후속 책(플러스/1만8천 원)이 나왔다. 7년 전 시작해서 요즘까지 딸과의 건축 여행이 매번 새롭게 이어지고 있으니, 앞으로 이 시리즈는 가열차게 출간될 것이다.
2 인세의 10%가량은 딸의 몫이다. 덕분에 화영 양은 갖고 싶었던 디지털 카메라를 품에 안았다.

< 건축 평론가 이용재 씨가 권하는 건축 명소 세 곳 >
우리나라 곳곳에는 훌륭한 문화재가 정말 많다. 그중 자녀 손을 잡고 반드시 가 봐야 할 건축 명소 세 곳을 소개한다. 교과서에 나올 정도로 유명하지만, 아무리 달달 외고 사진으로 보아도 소용없다. 직접 가서 거닐면서 느껴보라.

1 병산서원 우리나라 최고의 명품 건축물이다. 근처의 하회 마을에 들러보는 것도 좋겠다.
2 소쇄원 자연 속에 들어서서 자연을 완성시키는 대표적인 건축물. 소쇄원에 가면 나무와 정자를 볼 뿐 아니라 자기를 보게 된다.
3 부석사 사진 찍느라고 돌아다니지 말고, 반드시 누마루에 올라앉아서 멀리 바라보라. 가만히 앉아 있으면 하늘이, 바람이, 숲이 가슴에 스며든다. 눈감고 있어도 말이다.


나도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8년 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