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해주세요.
본문 바로가기
작가 시오노 나나미 <로마인 이야기>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지난해 일본에서 발간된 시오노 나나미 선생의 <로마인 이야기> 15권이 올해 초 국내에서도 출간돼 화제로 떠올랐다. 그리고 지난 11월 5일 일본 정부는 15년 동안 한결같은 자세로 작업에 매진한 시오노 선생에게 ‘문화공로자’ 상을 수여함으로써 그 공적을 치하했다. 1992년부터 15년 동안 매년 한 권씩 집필하는 초인적인 작업을 해낸 선생은 어떤 사람일까? 로마 제국의 이야기를 긍정의 관점으로 재조명할 수 있었던 저력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시오노 선생에 대해 알고 싶은 것이 많았다. 그리고 인터뷰를 통해 선생에 대해 알게 된 것도 같다. 안다는 것은 상대를 이해하고 마음의 문을 여는 것임에 대해서도.
“로마가 그렇게 부정적인 면만 있는 나라였다면 10년 이상 지속되었을 리 없고, 세계의 리더로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없었을 겁니다. 글을 다 쓰고 난 뒤 저는 왜 로마의 위상이 전 세계적으로 높은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축구장, 경기장의 모양은 콜로세움 형태입니다. 재료야 당연히 옛날 것과 지금 것이 다르겠지만 모양으로 본다면 우리는 로마 사람들의 흉내를 내고 있는 거잖습니까? 달리 표현하면 이는 로마의 영향이 지금까지 계속된다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지은 책 <로마인 이야기>
시오노 나나미 선생은 그의 나이 쉰다섯 살에 <로마인 이야기>를 쓰기 시작해 예순아홉 살에 집필을 끝냈다. 선생은 15년 동안 이 작업에 집중하느라 여름휴가를 한 번도 가지 못했다. 올해 초 한국어판 <로마인 이야기>가 나왔을 때 선생은 국내 언론사와 가진 인터뷰 자리를 통해 “15년 동안 가지 못했던 여름휴가를 떠나고 싶다”는 계획을 밝힌 적이 있다.
시오노 선생은 15년 만에 맞이하는 여름휴가를 남부 이탈리아에서 보냈다. 아말피, 카프리 섬 등에서 2주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머물다 돌아왔다. 이전까지 더러 여행을 다니기도 하였으나 그 여행들이 업무상 가보고 싶은 곳에 다녀왔던 것이라면 이번에는 순전히 ‘정말 예쁘고 멋진 곳이라 꼭 한 번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곳을 여행지로 정했다. 11월 9일 도쿄 임페리얼 호텔에서 만난 선생은 “시오노 나나미입니다”라는 자애로운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15년 동안 한 가지 주제에 집중해서 일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고 여겨지는데요. 선생님께서 그 일을 할 수 있었던 동력은 어디에 있을까요?”
“쓰고 싶다는 제 마음 하나, 그것뿐입니다.”
“무엇을 위해 <로마인 이야기>를 쓰셨는지요?”
“전 세계적으로 로마 역사에 대해 약간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스 문명, 기독교 문화에 대해서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지요. 저는 그 생각에 대해 ‘과연 맞는 것일까’ 하는 의문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집필하는 것으로 의문을 풀어나갔습니다.”
“로마사 전체를 다룬다는 것도 대단하지만 기존의 관점과 달리한 시각으로 집필한다는 점도 쉽지 않은 일 같습니다. 이 작품이 선생님께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의미를 생각해서 집필을 시작한 것이 아니었고, 집필을 끝낸 지금도 그것에 대해 별로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의미라는 건, 아마도 독자들이 정하는 것이고 비평가들이 읽고 판단하는 부분이 아닐까요?”
“선생님의 인생에서 지난 15년은 어떤 시간이었나요?”
“한마디로 말하자면 그 15년은 제가 활용할 수 있었던 아주 유익한 시간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로마인 이야기> 15권에 실려 있는 ‘저자의 말’ 끝에 보면 “나는 나 자신이 로마인을 알고 싶다는 생각에서 <로마인 이야기>를 썼다. 다 쓰고 난 지금은 진심으로 ‘로마인을 알겠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독자들도 다 읽고 나서 ‘알겠다’고 생각해준다면, 나에게 그보다 더 큰 기쁨은 없을 것이다. 책이란 저자가 쓰고 출판사가 만들고 그것을 독자가 읽어야만 비로소 성립되는 매체지만, 이 3자를 연결하는 붉은 선이 바로 ‘마음을 공유하는’ 것이니까”라고 쓰여 있다.

“선생님께서는 ‘로마를 안다’고 하셨는데, ‘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요?”
“역사는 과거의 사람들이 구축해온 ‘작품’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리고 그 ‘작품’은 저희가 현재 부딪치고 있는 문제에 대한 해결점을 찾기 위한 참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그냥 똑같은 상태로 되풀이되거나 반복되지 않습니다. ‘역사를 안다’는 것은 옛날과 현대를 하나로 이어주는 정신적인 부분, 즉 뿌리로 돌아가 다시 한번 고려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사회는 모든 면에서 복잡해집니다. 복잡해지면 사람들은 본질적인 부분을 보지 않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혼란에 빠지게 되지요. 그런 문제, 그런 혼란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은 뿌리, 즉 원점으로 되돌아가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로마사를 긍정적인 관점으로 서술하기 위해서는 역사를 보는 관점 자체가 바뀌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역사라는 것은 형태로 남아 있는 것, 예를 들어 이집트의 피라미드나 그리스의 신전 등과 같은 유적들처럼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것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법이라든가, 세금 관련 시스템이라든가, 인프라를 구성하는 사고방식 등 그 당시의 마음이나 생각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저의 경우, 실제 이것들이 당시 민중에게 얼마나 많은 도움이 되었는지에 관심을 두었습니다. 로마는 사람들의 생활이 더 좋아지도록 개선하고, 문제에 평화롭게 대처하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런 면에 의식적이고 적극적으로 포커스를 맞추고 집필했습니다.”

“곧 한국에서는 차기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열립니다. 시오노 선생님께서는 대통령 후보를 선택할 때 어떤 기준에 따라 정하는지요?”
“대통령 후보들은 완전히 최상위에 있는 사람들이지요. 그런 사람들에게는 두 가지의 상반된 자질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첫째는 국가 통치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과 그런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의 유무입니다. 두 번째는 첫째 기준과 상반되는 것일 수 있는데요,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느냐 하는 점입니다. 사람이란 ‘나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자기 능력을 초월할 수 있거든요. 이것은 학교 성적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학교 성적에는 객관적 기준이 정해져 있지만 인간의 능력에는 객관적인 기준이 없고 또 어느 누구도 기준을 정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능력은) 본인조차 모르는 부분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대통령에게는 (사람들이 대통령을 보면서)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과 자신감을 갖게 하는 능력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역사학자들이 드러난 것을 재조합해 로마제국을 보여주는 일을 했다면 시오노 선생은 드러난 것과 드러나지 않은 것을 지혜롭게 결합해 보여주는 일을 했다. 한 국가가 1천2백 년 동안 지속될 수 있었던 저력을 긍정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고찰했다. <로마인 이야기>를 쓸 때 선생은 6개월은 공부하고, 3개월은 쓰고, 1개월은 탈고하는 데 쓴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글을 쓰기 위한 공부는 라틴어 원서에서 출발해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관련 서적을 읽고, 마지막으로 라틴어 원서를 다시 읽는 식이었다고 한다. 필요하면 여행을 떠나기도 했을 것이다. 알파에서 시작해 알파에서 다시 시작하는 과정은 곧 로마로 향하는 다양한 길들을 열어놓는 일이 아닐까. <로마인 이야기>를 읽으며 시오노 선생과 그의 세계를 사랑하고 신뢰하게 되는 것은 아마도 장인의 혼과 정성이 문장으로 드러나기 때문일 것이다.

마음만 있으면 누구에게라도 배울 수 있다
우리는 인터뷰를 시작하면서 최근 선생이 받은 상을 소재로 대화를 나누었다. 일본 정부에서 문화예술 분야와 이공계 과학 분야의 공로자들에게 수여하는 ‘문화공로자’ 상은 정재계를 제외한 순수 학문 분야의 원로들을 대상으로 하며 비록 소액이지만 일정한 연금 혜택이 부상으로 주어진다고 한다. 상에 대해 설명하던 시오노 선생이 한국에도 이런 제도가 있는지를 물으며 관심을 보인다. “없는 것 같다”고 대답하자 “한국에도 생겼으면 정말 좋겠다”고 말한다. 일본 문화가 세계적으로 주목받을 수 있는 요건 중에는 해외에 거주하며 작품 활동을 펼치는 노작가도 세심하게 보살피는 마음이 포함되어 있을 듯하다. 시오노 선생은 이탈리아 로마에서 반은 일본인이고 반은 이탈리아인인 아들과 함께 산다.

“선생님께서는 원고지에 글을 쓴다고 들었습니다. 인터넷은 하시는지요?”
“안 합니다(웃음). 휴대폰도 안 갖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인터넷은 검색을 하는 경우에는 아주 좋은 창구 역할을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수단일 뿐입니다. 구체적이고 깊이 있는 조사를 하려면 인터넷만으로는 조금 힘듭니다. 관심 있는 곳에는 직접 찾아가서 걸어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역사를 공부할 때에는 자료가 필요하고, 또 볼 수 있는 자료들은 이미 공개되어 있어요. 저든 누구든 똑같은 자료를 읽을 수밖에 없습니다. 더 많이 읽고 싶어도 그 이상의 것이 없기 때문에 한계가 있습니다. 그 자료를 바탕으로 어떻게 더 깊이 파고들고, 이해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지요. 그렇게 하는 데 컴퓨터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이해를 높이고 깊이를 더하는 데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자기가 살아온 경험, 생각 그리고 거기서 도출되는 사고방식, 사람을 보는 통찰력 등입니다. 이것은 개개인의 자질이라고도 할 수 있지요. 저는 저의 모든 인격을 총동원해서 깊이 파고드는 작업을 해왔습니다.”
“이해를 높이고 깊이를 더하기 위해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하셨나요?”
“저는 자기가 배우고자 하는 마음만 있으면 어떤 사람에게도 배울 수 있다는 말을 항상 합니다. 사회적으로 지위가 높은 사람, 권위 있는 사람, 위인들이 항상 올바른 것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지위나 권력, 권위로 사람을 보거나 차별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역사를 집필한다고 해서 역사만 공부해서는 안 됩니다. 영화를 보고, 오페라도 감상하고, 다른 소설들도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당연히 멋을 부리고, 가끔은 뽐내는 것도 필요합니다. 미술품에 대한 센스, 음악에 대한 마음가짐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자세로 생활합니다. 저는 자아나 자존심이 상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진 적이 없으며 항상 받아들이는 자세를 갖습니다. 정신적으로 아주 많이 오픈한 상태라고 할까요?”

“선생님께서 영향 받은 사람들은 누구일지 궁금합니다.”
“부모님을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저의 경우 이혼을 했는데요, 당연히 제 남편의 영향도 많이 받았습니다. 사람의 이름을 들면 20~30명까지 나올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정도로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 받았다는 이야기는 반대로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저에게는 (한 사람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받는 것보다는)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 받은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한 사람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받게 되면 거기에 좀 얽매이게 됩니다. 얽매이지 않기 위해서는 한 사람이 아니라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서 조금씩 영향 받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니 ‘영향 받는 것도 본인의 선택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가요?”
“그런 마음가짐이 중요한 것 아닐까요? 다행히도 제 독자들이 일본에도 많이 있습니다만, 제 책을 읽은 독자들이 모두 똑같은 크기의 영향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크게 영향 받은 사람도 있고 별로 영향 받지 않은 분도 있을 겁니다. 받아들이는 수신자의 상황이나 조건에 따라 다르니까요. 그래서 저는 받는 사람의 마음가짐이 제일 중요하지 않을까, 그렇게 봅니다. 항상 좋은 영향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자기 안에 조성되어 있으면, 그리고 자기 자신을 오픈한 상태로 마음을 열어놓으면 좋은 영향을 많이 받을 수 있지요. 그래서 나이에 상관없이 감수성을 유지하는 게 아주 중요합니다.”
대개 다른 사람이나 책, 영화 등에서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 끼치는 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는다. 남의 생각을 좌지우지 않으려 하기에 말에는 여백의 공간이 넓다. 시오노 선생도 그런 인품의 소유자인 것 같다. 짧은 질문 하나에도 전후좌우 맥락을 총체적으로 살펴 답변한다. <로마인 이야기>를 쓸 때처럼 듣는 사람이 어느 한 면에 경도되지 않도록 배려하고 맥을 정확하게 짚어가며 이야기를 들려준다.

좋은 자질을 잘 활용하고 쓰는 것이 중요하다
시오노 선생은 1937년 도쿄에서 태어나 가큐슈인學習院 대학 철학과를 졸업한 뒤 이듬해인 1964년 이탈리아로 건너갔다. 이후 40여 년간 고대 로마와 르네상스의 역사 현장에서 발품을 팔아 수확한 것들을 작품으로 발표해오고 있다.
스물아홉 살에 작가로 데뷔한 선생은 특별한 계기 없이 작가가 되었다. “글을 써보라”는 주위 사람들의 말을 듣고 집필을 시작한 터라 글쓰기 공부를 따로 한 적도 없었다. 데뷔하면서 글쓰기 공부도 함께 한 셈인데, 출판사 편집자들의 지도와 교육에서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자신의 미래를 알지 못했다고 한다. 무얼 하게 될지 알 수 없었던 30대, 선생은 청바지와 티셔츠를 입고 지중해 주변을 계속 걸어다니고 여행을 다녔다. 두 번째 작품을 집필하고 있었던 그는 그 시절에 대해 “돈이 없던 대신 시간이 많았던 시절”이라고 회고한다.

“선생님께서는 ‘천재는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태어나는 것’이라는 말에 동의하시나요?”
“아무래도 타고나는 자질을 가진 사람들은 있겠지요.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5%도 되지 않을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좋은 자질을 갖고 있습니다. 설사 그것이 5%밖에 되지 않는다 해도 그 좋은 자질을 얼마나 잘 쓰고 활용하고 펼쳐나가느냐가 중요하지 않을까요? 그러니까,저는 제 자신이 천재라고 생각한 적은 전혀 없습니다.”

“가능성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집니다. 선생님께도 시련이 있었을 텐데, 시련을 어떻게 돌파하셨는지요?”
“당연히 저도 보통 사람들처럼 시련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 시련을 돌파해가는 데 필요한 에너지는 자기 안에 있습니다. ‘이것을 하고 싶은가, 하고 싶지 않은가’ 하는 자기 마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남이 하라고 시켜서 하는 것’이거나 ‘이걸 하면 돈을 잘 벌 것 같다’는 등의 생각은 전혀 상관없다고 생각해요. 제일 중요한 것은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마음의 있고 없음입니다.”
시오노 선생은 결혼을 하고 아들을 키우는 전업주부의 입장에서 글을 썼을 때 하루 종일 일에 몰두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집필 시간을 정해 매일 다섯 시간씩 일에 집중했다고 한다. 일을 더 하고 싶어도 육아와 가사 때문에 시간을 더 가질 수 없었던 과거의 습관은 아들이 장성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집필하고 공부하는 시간을 다섯 시간 이상 갖지 않는 것에는 이유가 있는지요?”
“아들을 키우면서 집필하던 당시에는 더 하고 싶어도 그 이상의 시간을 낼 수 없었어요. 그게 지금까지 이어진 것인데 저는 그게 효율적인 것 같습니다. 지금도 매일 꾸준히 규칙적으로 집필합니다. 그리고 집필이든 공부든 일정한 시간으로 구분 지어 몇 시간 동안 집중하되, 다른 시간에는 아이쇼핑도 즐깁니다. 다른 평범한 여성들이 지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지내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패션 감각도 뛰어난 것 같습니다. 여행도 많이 다니시고, 영화도 많이 보시고…. 모든 것을 고루고루 즐기시네요.”
“자신이 매력적인 사람이 아닌 이상 매력적인 남자를 찾을 수도 없고, 매력적인 책도 쓸 수 없습니다. 저는 제가 직접 다 코디해서 입습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 가장 잘 아는 것은 본인이 아닐까요?”

“선생님께서는 어릴 때 부모님과 함께 영화를 보면서 자랐고, 또 한 아들의 어머니로서 아들과 함께 영화를 관람했던 경험을 갖고 계십니다. 부모와 자식이 함께 영화를 볼 때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아이들이 좋아하는 영화만 볼 것이 아니라 어른의 관점에서 ‘이 영화는 아이들이 봐도 괜찮겠다’ 하는 것을 추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조금 전 마음가짐에 대해 이야기하실 때, 감수성 유지의 중요함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부모가 아이들의 감수성을 키워줄 수 있는 방법으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우선은 부모가 의식적으로 영화, 책 등 여러 가지를 보여주는 것이 제일 중요하지 않을까요? 저는 그게 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경험을 (삶의) 바탕에 만들어주는 것이지요. 그 다음은 아이가 컸을 때 본인이 알아서 스스로 키워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에세이에도 간혹 언급되는 아드님의 근황이 궁금합니다.”
“잘 지내고 있습니다. 제 작품이 몇 권이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저에게는 아들도 작품의 하나입니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정말 한 편의 작품을 만드는 것이라고 할 수 있고, 그 이상의 것이지요. 작품을 만드는 것보다 훨씬 어렵고, 그러면서도 즐거운 작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호텔에서 인터뷰를 많이 하시는 것 같습니다. 이유가 있는지요?”
“호텔을 선호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마땅한 장소가 없어 그렇게 된 것입니다. 저는 집에서 인터뷰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그냥 순수하게 살림하고 일하는 공간으로 꾸렸고 또 사람을 맞이할 공간이 준비되어 있지 않습니다.”
“선생님께서는 ‘행복이 가득한 집’은 어떤 집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최소한의 것, 꼭 필요한 것이 있는 집입니다. 이를테면 ‘바 카운터’가 항상 필요하지는 않잖아요? 그런 것들은 호텔이 대신 제공해주니, 집에 꼭 필요한 아이템은 아닙니다. 저는 모든 것이 다 갖춰져 있는 집, 예를 들면 수영장이나 테니스장까지 갖춰져 있는 집이 ‘행복이 가득한 집’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집 안에 모든 것이 갖춰져 있으면 우선 돈이 많이 들고, 일하는 사람도 고용해야 합니다. 그 사람들의 숙소도 필요할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막대한 돈이 들 테고, 돈을 위해 죽자 살자 일을 해야 되겠지요. 저는 그렇게 살기 싫습니다. 그곳을 유지하기 위해 밤낮 없이, 그리고 개인 시간도 없이 일해야 하는 곳을 ‘행복이 가득한 집’이라고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선생님의 삶이 지향하는 가치관이나 철학은 무엇인가요?”
“절대 무리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 일이든 인간관계든 사회생활이든 결코 무리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운동으로 치면) 맨손체조 같은 것이라고 할까요(웃음).”
“요즘 한국에서는 취업난에 시달리는 젊은이들이 많습니다.”
“한국뿐 아니라 일본도 마찬가지입니다. 선진국들은 거의 비슷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어요. 시대가 많이 바뀌었기 때문에 젊은이들이 예전처럼 안정된 일자리만을 찾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한국이 선진국이 됐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래도 이건 심각한 문제입니다. 사람은 일을 하면서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을 얻고 키워가니까요. 그런데 직업이 없다는 것은 자신감을 키울 수 있는 자리 자체가 없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 젊은이들에게 힘이 될 수 있는 말씀을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이런 것도 익숙해지기 나름인 것 같습니다. 저는 젊을 때부터 지금까지 안정적으로 일을 한 적이 없습니다. 이제까지 단 한 번도 월급이라는 형태의 정기적이고 안정적인 보수를 받은 적이 없습니다. 한국에서도 작가나 영화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프리랜서지요? 이제는 프리랜서라는 말의 정의 자체가 바뀐 것 같습니다. 일반 사람들도 이 카테고리에 속하는 시대 아닙니까? 마키아벨리는 사람의 인생을 정하는 중요한 요소로 재능, 운 그리고 시대와 얼마나 잘 어울릴 수 있는가를 꼽았습니다. 재능이라는 것은 당연히 하루하루 훈련할 수 있고, 운이라는 것도 좋았다가 나빴다가 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달라진 시대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옛날식으로 사고한다면 그 자체로 불행하지 않을까요?”
<로마인 이야기>는 관점에 따라 ‘지구라는 집의 행복 지수’를 높이는 방법에 관한 책으로도 읽을 수 있다. ‘지성에서는 그리스인보다 못하고, 체력에서는 켈트인이나 게르만인보다 못하고, 기술력에서는 에트루리아인보다 뒤떨어졌던 로마인’이 거대한 제국을 조직할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우수하지 않아서였을지도 모른다. 겸손과 비움의 자세로 주변 국가들을 받아들이고 존중했기에 1천 년 이상 나라가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리스인의 지성을 공부하고, 켈트인과 게르만인의 좋은 체력을 공부하고, 에트루리아인의 기술력을 공부하고…. 그러니 시오노 선생의 말처럼 집이나 국가의 사이즈가 크다고, 모든 것을 다 갖췄다고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

< 시오노 나나미의 행복론 >
지금까지 나는 행복을 추구한 적이 없다. 하지만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했던 말 중에 좋은 말이 있어 인용해볼까 한다. “하루를 잘 활용한 후에는 편안한 잠이 기다리고 있다. 알차게 보낸 인생 다음에는 조용한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 당연히 나에게도 순간순간 행복한 시간이 여러 번 있었지만 아직 진짜 행복을 경험한 적은 없는 것 같다. 진짜 행복은 인생을 알차고 의의 깊게 보내고 난 뒤 죽었을 때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매일 매일 일을 제대로 하면서 좋은 상태로 죽는 것이 제일 큰 행복이 아닐까?

시오노 선생은 1969년 <르네상스의 여자들>을 발표하며 데뷔했다. 지중해에 매료돼 이탈리아로 건너간 그는 홀로 공부하며 많은 저작들을 완성했다. 그리고 <로마인 이야기>는 그의 인생과 정신이 담겨 있는 역작이다.


김선래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7년 1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