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쨍그랑 행복 벙어리 저금통을 통해 세상을 보는 박석우 씨
문방구나 구멍가게에서는 돼지 저금통 수십 개를 다발로 묶어 문 밖에 걸어놓곤 한다. 그렇다면 왜 가게에서는 한 번에 다 팔리지도 않을 그 많은 돼지 저금통을 쌓아놓는 것일까? 돼지 저금통을 수집하는 박석우 씨는 답을 알지 모른다. 돼지 저금통이라는 프리즘으로 세상을 읽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먼지가 부옇게 앉은 빨간 돼지 저금통이 가게 문 앞에 매달린 풍경은 참 익숙하지요. 어쩜 동네마다 그렇게 똑같은 광경이 연출되는지 궁금해 주인들에게 물어보았어요. ‘남들이 하니까’ ‘가게가 비좁아서’라는 대답도 있었지만, ‘복 들어오라고 걸었다’는 말이 가장 설득력 있습니다. 재고가 남지 않을 수량을 훨씬 초과해 돼지 저금통을 들여놓는 것은, 그것이 돈을 부른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돼지 저금통에 동전을 모으는 동안, 중산고등학교에서 미술을 가르치는 박석우 씨는 동전이 아닌 돼지 저금통을 수집했다. 지난 7년 동안 수집한 돼지 저금통이 줄잡아 3백 개가 넘는다. 그가 돼지 저금통을 모으게 된 것은 흔히 ‘이발소 그림’으로 불리는 대중 미술(키치화)을 연구하면서부터다. 그는 책 <이발소 그림>(동연)을 쓰면서 본격적인 탐구에 들어갔는데, 이때 이발소 그림의 단골 소재인 돼지 그림을 눈여겨봤다. “1960~70년대만 해도 ‘가화만사성’이라는 문구가 적힌 돼지 그림이 으레 가게나 거실, 사무실에 걸려 있었습니다. 한 번에 열 마리쯤 새끼를 낳는 번식력 강한 동물은 집안 살림에 큰 보탬이 되었으니, 돼지와 우리 민족은 친분이 두터웠죠. 그래서 재물이나 다산에 대한 염원을 복스러운 인상의 돼지 그림에 담았어요. 이윽고 저금통의 형상으로 이어졌고요. 흔하고 값싼 돼지 저금통을 모으며 점차 여기에 투영된 우리의 욕망을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돼지 저금통 운명의 변천사
박석우 씨는 우리나라 돼지 저금통은 탄생 이래 지금까지 많은 우여곡절을 겪어왔다고 말한다. “조선시대에도 동전과 비슷한 엽전을 사용했지만 저금통이라는 용품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개화 후 처음 들여온 외래 돼지 저금통은 나무나 석고로 만든 조잡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돼지 저금통을 만들게 된 시기는 근대 화폐의 역사와 관련이 깊다. 해방 후 1946년 지폐 위주의 화폐가 제작됐고, 10원짜리 주화는 1966년부터 만들어졌다. 동전이 유통되면서 비로소 저금통이 존재할 여건이 조성된 셈이다. 1백 원짜리 주화가 생긴 1970년대부터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실용적인 목적으로 돼지 저금통을 만들었다. “초기 돼지 저금통은 돼지 그림과 유사한 ‘어미 돼지와 새끼 돼지들’ 형상이었어요. 화목한 가족의 모습을 닮았지요. 기복을 염원하며 수요가 늘었습니다.” 이에 따라 플라스틱 제품이 대량생산되었다. 새마을 운동이 무르익으며 어린이들에게 저축 습관을 가르치기 위해 돼지 저금통은 가정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았다. 그는 동양에서 붉은색이 행운을 부르고 잡귀를 물리치는 효험이 있다고 믿어왔기에 비현실적인 붉은 돼지가 ‘장기 집권’했다고 말한다.

한 가정의 인기를 독차지하던 돼지 저금통은 1990년대를 정점으로 지위가 바뀌기 시작한다. 그간 유용했던 동전이 사양길로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시내버스나 지하철, 슈퍼 등에서 카드를 이용하면서 1원, 5원, 10원짜리 소액 동전은 쓰일 곳이 사라지고 1백 원이나 5백 원짜리 동전만 살아남았다. 그리고 돼지 저금통은 은행이나 회사의 금통 디자인은 ‘투명 돼지 저금통’이다. 1993년 문민 정부가 들어서며 검은 돈의 흐름을 차단하는 금융 실명제가 실시되자, 저금통 안에 든 돈이 보이는 디자인으로 제작된 것이다. 최근 돼지 저금통이 일시적으로 소생하게 된 것은 방송의 힘 덕분이다.

2004년 방영된 드라마 <파리의 연인>에서 재벌 남자 주인공이 소시민인 여자 주인공에게 거대한 돼지 저금통을 선물했는데, 그해 크리스마스 무렵 거리에서 대형 돼지 저금통을 안은 연인이 자주 눈에 띄었다. 돼지 저금통이 젊은 층의 대중문화 안으로 들어오자 제품의 색상이나 디자인도 다양해졌다.

‘땡그랑’ 소리가 주었던 포만감
“올해 정해년은 6백 년 만에 맞는 황금 돼지해입니다.” 어느 역술가의 발언이 삽시간에 번졌다. 이에 발맞춰 연초부터 가판에 나온 돼지 저금통은 모조리 황금색이었다. 사실 6백 년 만의 황금 돼지해가 아니라, 60년 만의 붉은 돼지해가 맞다며 한국역술가협회에서 수 차례 정정 보도를 했음에도 황금 돼지 저금통은 여전히 잘 팔리고 있다.

“살림에 보탬이 되도록 저금통을 사용하던 원래 의미가 퇴색된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중간 과정은 사라지고, ‘부자 되기’라는 최종 바람만 남은 셈이죠. 최근의 물가 상승세나 금리를 고려할 때 실상 돼지 저금통에 동전을 채워 넣는 것은 우매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커다란 ‘황금 돼지’를 들이는 것은 인생 역전을 향한 부푼 욕망을 대변합니다. 로또처럼요.” 박석우 씨는 우리 세태와 대비되는 돼지 저금통 하나를 소개한다. 바로 독일인들이 사랑하는 송편 크기의 도자기 돼지 저금통이다. “이 작은 저금통에 동전을 모으면 얼마나 모이겠어요. 동전을 모으는 데 쓰는 것이 아니라, 교육적 목적으로 활용합니다. 부모 또는 이웃 어른이 어린이들에게 1페니를 넣은 저금통을 선물하면, 아이들은 이것을 평생 지니고 살아간다죠. 최소 화폐 단위인 1페니로부터 절약이 시작된다는 교훈을 전하는 교육 철학을 엿볼 수 있습니다.” 배를 가르면 더 이상 쓸 수 없는 플라스틱 제품이 대부분인 우리나라와 달리, 친환경 철학이 지배적인 유럽에서는 대부분 세라믹 제품을 만든다는 점도 주목할 일이다. “기억하시나요? 조그만 돼지 저금통에 코 묻은 동전을 넣을 때 나던 땡그랑 소리가 마냥 행복했던 시절을요. 작은 것에도 감사하던 마음을 토대로 지금의 풍요를 이루었던 것을 생각하면, ‘땡그랑’ 소리를 잊고 사는 요즘 풍토가 아쉽습니다.”

나도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7년 8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