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해주세요.
본문 바로가기
건축가 유이화의 시호재 시간을 향해 쏘는 화살
분지 속에 파묻혀 팔공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의 흐름을 바라보는 집, 시호재. ‘바람과 빛줄기와 비와 냄새를 소재로 연주하는 교향곡’을 떠올리며 설계했다는 건축가 유이화의 생각은 어떻게 구현되었나.

유려하게 흐르는 지붕선을 통해 건축이 주변 산세의 흐름에 추임새를 넣는다. 자연이 주인이 되고, 건축은 그렇게 자연에 스며드는 조연이 되기를 바랐다.
건물 두 채가 태극 문양처럼 서로 맞물리다 어긋나고 다시 맞물리는 구조다. 왼쪽 건물이 갤러리 동, 오른쪽 건물이 카페와 게스트하우스 동이다.
“집이 주연일 필요는 없잖아요”
갤러리와 카페가 울타리 안에 있고, 세컨드 하우스도 반은 공적 공간으로 쓰지만, 그래도 이곳의 용도는 ‘집’이다. “집을 통해 제 작품을 만들려고 묘기를 부리고 싶지는 않아요. ‘건축주가 살면서 점점 좋아할 집을 만들겠다’라는 생각이 늘 프런트라인에 있어요. 살면서 그들이 채워갈 여지를 건축에 꼭 두는 이유이고요. 다만 아파트에서 살아온 건축주에게 아파트 생활이 주지 못하는 ‘어트랙션’을 줘야겠다고 생각했죠. 그걸 위해 바람길이 됐든, 빛이 됐든, 정원이 됐든 자연을 최대한 안으로 끌어왔어요. 시호재 계단실 위에 천창을 뚫은 것도 그렇고요. 하늘을 바라보며 계단을 오른다면 그것만으로도 즐거우니까요. ‘유 소장, 지금 비가 오는데, 눈이 오는데 너무 좋아’라는 전화를 받으면 그날 참 행복하죠.” 서두에 썼듯 이 집 주인이 달을 보게 됐을 거라는 내 추측의 근거가 바로 이것이다.


건축주 부부가 머무는 세컨드 하우스. 안뜰을 충실하게 즐기길 바라며 앞뒤로 통창을 냈고, 차를 좋아하는 건축주를 위해 티 스페이스도 만들었다.
예술에 대한 식견을 바탕으로 공예품과 현대 회화를 수집하며, 아티스트를 후원하는 일에 열심인 건축주는 갤러리와 함께 카페를 두어 방문객이 자연스럽게 예술과 만나게 했다.

어트랙션을 위해 유이화 소장은 오래 협업해온 더가든 김봉찬 대표에게 가드닝 존을 일임했다. “예전부터 있던 것 같은 정원”이라는 단서 하나만 건넸다. 이에 김봉찬 대표는 대지 한가운데 안뜰에 이 지역 식생에 맞춰 키가 크지 않은 관목류와 초화류를 심고 작은 수공간을 두었다. 식물처럼 땅을 거스르지 않고 대지 위에 그저 몸채를 얹은 듯한 모양새의 집, 그리고 안뜰이 만들어졌다.

“건축주에게 100% 공감을 끌어내는 건 불가능해요. 제가 건축사무소를 개소한 지 22년 차인데도 생각지 못한 부분에서 문제가 생기기도 하죠. 다 체크했다고 생각했는데도요. 시호재 욕실에서 손빨래를 할 거라는 생각을 못 한 것처럼요. 몇십 년 전부터 내외의 빨래는 안주인이 직접 하셨대요. 그런 집 욕실에 턱을 깊게 두지 않았으니 물이 넘치죠. 뒤늦게 턱을 만들어드렸어요. 건축가에게 집 짓기는 정말 건축주의 라이프스타일과 함께 가는 여정 같아요.” 불필요한 감정이라곤 1mg도 묻어 있지 않은 말로 이 집의 건축을 설명하던 그가 욕실 턱 이야기를 하면서 웃었다. 보는 이도 덩달아 웃을 정도로 환하게.



유이화는 현재 ITM유이화건축사사무소 대표, 이타미준 건축문화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이타미준건축연구소 서울 지사를 설립한 2002년부터 이타미 준(유동룡)이 타계한 2011년까지 건축 작업을 함께한 바 있다. 독일 디자인어워드(2019), iF 디자인 어워드(2018, 2016), 한국건축문화대상(2004), JDC 어워드(2004) 등 다수의 건축상 수상 경력이 있다. 호텔, 리조트, 주거, 문화 및 업무 시설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건축가로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www.itmarch.com


자료 제공 ITM유이화건축사사무소

글 최혜경 기자 | 사진 김용관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4년 4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