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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HHH FRIENDS 푸하하하프렌즈 언제나 철없이, 여전히 진지하게
유쾌하고 발랄하지만 그 이면의 진지한 태도가 더 진짜인 건축가, 푸하하하프렌즈가 10주년을 맞았다. 그간의 사무실 이야기를 쓴 책 <우리는 언제나 과정 속에 있다>를 출간하고, 오랫동안 지냈던 마포구를 떠나 종로로 사무실을 옮기기까지. 여러모로 의미 있는 한해였을 2023년의 마지막 달, 세 소장 윤한진, 한승재, 한양규를 만났다.

푸하하하프렌즈 사무실에서 만난 한승재, 한양규, 윤한진 소장.
푸하하하프렌즈 2013년 윤한진, 한승재, 한양규, 세 명의 대표 건축사가 공동 설립한 건축사사무소다. 2024년 현재 총 열세 명의 동료가 함께하고 있다. 늘 낙천적이고 유머러스한 태도로 작업하지만, 이들의 건축은 사뭇 진지한 고민을 담고 있다.
푸하하하프렌즈는 고뇌하는 지성인이 건축가의 상징이던 건축계에 2013년 혜성처럼 등장했다. 이름처럼 작업 과정과 결과물, 표현 방식 모두 유쾌했으며, 무엇보다 위트가 있었다. 그들은 주택부터 상업 시설, 사옥과 전시 디자인까지 경계 없이 작업하며 도시에 새로운 풍경을 입혔고, 2019년에는 젊은건축가상을 받았다.

이들의 작업은 언뜻 신내림 같은 직관으로 완성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조금 더 들여다보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수많은 심상을 발견할 수 있다. 도시에 대한 세심한 관찰, 이미 들어선 수많은 건축에 대한 불만(이걸 왜 이렇게 지어?), ‘그럼에도 건축이 무엇을 해낼 수 있다’는 판단과 이어지는 고민, 땅과 나누는 집요한 대화…. 건축주가 푸하하하 감옥에 빠졌다며 다시 한번 설계를 의뢰하고(‘빈 모서리 집’ 일화), 그들이 제안한 디자인에 공감하게 되는 이유는 어쩌면 작업보다 먼저 태도를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건축가와 건축주가 함께 고군분투하는, 그래서 과정마저 아름다운 건축을 쌓아온 푸하하하프렌즈가 2023년 10주년을 맞았다. 설계사무소에서 10년은 꽤 의미 있는 숫자다. 그간 살아남기에 급급했다면 이제는 지속 가능한 미래를 그려낼 줄 알아야 하고, ‘젊은’이라는 꼬리표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떼어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들이 걸어온 10년, 앞으로 그려갈 시간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다.



고안된 장식들(2023) 1980년대 주택가 풍경을 여전히 간직한 녹번동의 작은 대지에서 집의 원형을 고민한 프로젝트다. 거실-방-화장실로 이어지는 세속적이고 틀에 박힌 구조에서 벗어나 집에 대해 문득문득 떠오르는 이미지, 빛에 대한 생각의 편린을 모아 건축화의 가능성을 모색했다. ⓒ노경
“사실 저는 항상 날을 갈고 있어요. 프로젝트가 들어왔을 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다음번에는 뭘 해볼지 미리 생각하고 준비해요.” -한승재

세 분은 설계사무소에서 동료로 만나 2013년 푸하하하프렌즈를 개소했습니다. 어떤 계기로 함께 독립하게 되었나요?
윤한진: 각자 회사에서 느끼던 불안감이 있었어요. 저는 이 생활이 너무 편해서 그대로 안주해버릴 것 같은 불안감이 있었고요.

한승재: 저는 조직 생활이 맞지 않았어요. 설계 회사에서는 사원이 할 수 있는 일이 제한적인데, 그 기다림을 견디기가 어려웠고, 더 중요한 일을 하고 싶었어요. 딱히 같이하게 된 이유는 없었어요. 오히려 ‘좋은 설계사무소 차려야지’라는 생각이었다면 경력이 많은 선배를 구했을 거예요. 그런데 그러지 않은 게 잘한 결정 같아요. 같이 노는 것처럼 일해서 지금까지 올 수 있었거든요.


10주년을 맞았습니다. 사무소의 변화를 체감하나요?
윤한진: 우리는 그대로인데, 밖에서 보는 시선이 달라졌어요. “이제 푸하하하는 젊은 건축가가 아닌 것 같다”는 말도 많이 들어요. 칭찬이라면 칭찬이지만 ‘더 이상 우리가 하는 건축이 철없어 보이지 않나? 재미없는 일만 하고 있나?’ 싶어서 속상하더라고요. 천진난만함을 잃지 않고 싶어요. 설계할 때도 ‘이건 이래야지’보다는 철없는 생각을 해보려 합니다.




베트남 후에시 다비엔섬 복합 문화 공간(2023) 베트남 후에시 다비엔섬에 위치한 취수장을 복합 문화 공간으로 리모델링, 증축하는 프로젝트. 2023년 6월 지명 현상설계에서 당선되었고 지금은 실시설계를 진행 중이다. 취수장은 평면이 위아래로 대칭을 이루는데, 한쪽에 커다란 지붕을 세움으로써 대칭을 깨고 산업 유산의 일부를 흡수하는 것이 콘셉트다. 베트남 자연환경과 유산을 외부의 시선으로 대하는 것이기에 작업에 임하는 태도를 특히 많이 고민했고, 조심스러운 마음가짐으로 계획했다. ⓒ푸하하하프렌즈
작업할 프로젝트를 선정하는 기준이 있나요?
한승재: 하지 않는 기준은 있어요. 하나는 우리가 누구인지 관심이 없고, 그냥 검색해서 나오니까 찾아오는 거요. 그런 분들은 저희가 하는 설계에도 관심이 없더라고요. 또 건축은 빨리 해치우고 돈 벌려는 사람이나 도구로 쓰려는 사람도 피해요.

각자 해보고 싶은 작업은 어떤 것이 있나요?
한양규: 아파트요. 다들 아파트에 살고 싶어 하지만 공간이 좋아서는 아니잖아요. 조금만 더 잘 설계해도 많은 사람이 훨씬 재밌게 지낼 수 있을 텐데 시도조차 안 하는 것 같아요.

윤한진: 저는 다가구주택. 대부분 수익을 목적으로 짓잖아요. 1층은 상가, 2층은 전셋집, 3층은 주인집, 이런 식으로 고정된 유형과 자금 순환 구조의 공식이 있는데, 이게 진짜 한국적이에요.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에 더 집중할 필요가 있지 않나 싶은 거죠. 개인적으로는 사회적 건축을 좀 더 해보고 싶어요. 개인에게만 만족을 주는 것보다 좀 더 많은 사람에게 영감을 주고 저도 자극받는 건축요.




빈 모서리 집(2023) 7년 전 푸하하하프렌즈에 낡은 주택의 리모델링을 의뢰한 건축주가 다시 한번 인근 부지에 신축을 의뢰한 프로젝트. 연희동에는 서울외국인학교가 있어 외교관, 주재원 가족 등이 머무를 넓은 집에 대한 수요가 있다. 이에 대응해 한 층에 한 세대가 거주하는 50평 규모의 집이 모인 다가구주택을 설계했다. 건축주는 기존 단독주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점이 시선을 둘 공터가 없는 것이라 했다. 건축물의 네 모서리를 비워 틈 없는 동네이지만, 멀리 시선을 둘 방법을 찾았다. ⓒ노경
프로젝트마다 소장 한 명이 PM을 맡고, 팀원 두세 명과 함께 작업합니다. 디자인에 접근하는 방식은 어떻게 다른가요?
한양규: 제가 설계한 건물이 언젠가는 팔릴 테니 클라이언트에게 완전히 맞추기보다 그 이후에도 잘 쓰이게끔 설계해요. 너무 맞춤복이면 빈티지 가게에서도 잘 팔리지 않잖아요.

한승재: 사이트에서 인상처럼 떠올린 콘셉트가 끝까지 가요. 건물은 홀로 서 있지 않고 늘 상황 속에 놓이잖아요. 하나의 아이디어로 그 수많은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해법을 찾는 거죠. 그 외에는 평소 생각하던 것에서 시작해요. 최근 설계 중인 음악학원은 뚱뚱한 형태에 알루미늄 패널로 마감했는데, ‘왜 알루미늄 패널을 저렇게밖에 못 쓰지? 건물은 왜 다 가느다랗고 모던하지? 지겹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거였어요. 알루미늄 패널은 저렴하게 지은 공공건물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마감재예요. 대충 쓰다 보니 별로라 생각하지만, 합리적이고 좋은 재료거든요. 그걸로 제대로 지어보고 싶었어요.




하이브(2021) 임대형 오피스에서 드러나는 특징을 가능성으로 해석해 새로운 시스템의 오피스로 재구축한 리모델링 프로젝트. 속껍질을 벗겨내고 단순히 새로운 껍질을 씌우기만 하는 작업은 끔찍하다고 생각했기에, 그들은 기존 구조체를 변형하거나 덧붙이는 방식으로 활용해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었다. 마감재를 고정하는 용도로 보이지 않게 존재하던 구조물을 밖으로 드러내 변화하는 사무 공간에 대응하는 것을 주된 아이디어로 작업했다. ⓒ텍스처 온 텍스처
작품을 보면 원이나 삼각형 같은 도형의 모습이 많이 드러나요. 원초적인 느낌이 든달까요.
윤한진: 일부러 형태를 드러내려는 건 아니에요. 다만 도형은 아주 순수한 형태잖아요. 뭔가 덧붙이기 싫어하고 단순하게 설계하다 보니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재료도 푸하하하프렌즈의 작업에서 눈에 띄는 특징입니다. 적절한 재료와 구법을 정하는 기준이 있나요?

윤한진: 대부분의 디자인은 원칙을 따르는데, 재료만은 감성적으로 정해요. 어떻게 보이는지를 결정하는 요소라 마지막까지 고민합니다. 이를테면 어라운드 사옥은 뾰족한 조형성이 강한 형태인데, 가볍고 선이 딱 떨어지는 모눈종이 같은 모습이면 좋겠더라고요. 그래서 타일을 재료로 쓰게 됐고, 집착을 거듭한 끝에 지금처럼 각이 살아 있는 모서리를 만들었죠.


집 안에 골목(2019) 연희동에 지은 다가구주택. 주변 건물이 사방을 에워싸고 있어 어느 곳에도 창문을 내기가 쉽지 않았다. 건물에 담장을 둘러 시선을 가리는 대신 천창을 설치해 햇빛이 들게 했다. 마치 동네 골목길이 집까지 이어지는 모습을 의도했으며, 집 안에 나 있는 길은 방과 방을 분리하기도, 연결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2층의 두 방은 계단으로 분리되었다가 또 다른 길이라 할 수 있는 연결 다리로 다시 이어진다. ⓒ노경
씨오엠, 원투차차차 등 여러 가구 디자이너와 협업해왔어요. 요즘에는 익숙하지만, 몇 년 전만 해도 건축가가 가구까지 작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죠. 지시하고 따르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의 작업이 동등하게 공존하는 경우는 더욱 드물었고요. 어떤 계기로 협업하게 됐나요?
윤한진: 저에게는 구조, 설비 사무소와 가구 디자이너가 크게 다르지 않아요. 엔지니어링과 디자인이라는 영역의 차이는 있겠지만, 가구 디자이너라고 더 특별하게 느끼지는 않아요. 다만 최고의 팀과 일하고 싶은 욕심은 있어요. 구조, 전기 등 협력 업체도 국내 최고의 회사와 일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여기서 ‘최고’는 제가 그리는 대로 따라만 오는 것이 아니라, 내 고민을 먼저 알아봐주고 같이 고민하는 사람이에요.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은 어디에서 발견하나요?
윤한진: 인스타그램요. 레이더를 항상 켜놓는 편이에요. 그러다가 프로젝트 하는 동안 이런 가구가 있으면 좋겠다 생각했을 때 떠오르면 연락해요.

한승재: 저는 얘가 같이 한 사람한테 연락해요.

한양규: 그다음에 제가 마지막으로….





현실처럼 비현실적인(2022) 서교동에 위치한 이 부지는 좁은 길을 마주하고 많은 간판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곳이다. 그 길의 한가운데에서 어느 한 부분을 깨끗하게 비우려는 시도가 이 건물을 탄생시켰다. 상가 1층은 복잡한 길 대신 뒤뜰의 나무를 향해 열려 있다. 그래서 거리에서는 간판이나 상가 내부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건물의 2층부터 5층까지 도로와 면한 부분은 유리창을 두는 대신 계단실과 발코니로 계획했다. 창문으로 가로막힌 실내가 아니라 내부와 외부의 중간 공간이 되는 것이다. ⓒ김경태
함께 일하기 때문에 얻는 것과 잃는 것은 무엇인가요?
한양규: 딱히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건 없지만 든든하고, 보고 있으면 편안해요. 애증 이런 건 아니고요. 존재 자체로 얻는 거죠.

윤한진: 혼자 있으면 일은 잘할 것 같거든요? 근데 진짜 일만 해서 재미없을 것 같아요.

한승재: 더는 못 하겠다 싶을 때 누군가 억지로 끌고 가주기도 하고, 다른 사람이 지쳤을 때 제가 자극제가 되기도 하고요. 원동력이 됩니다. 저에게는 건축가로서 제 모습이 곧 푸하하하프렌즈예요. 둘을 분리해서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어떤 건축가로 살고 싶나요?
한승재: 끝까지 건축하는 사람요. 짜증나는 일도 많은데 게으름 피우지 않고 계속 다른 공간을 설계하는 사람들 있잖아요. 이제는 거의 신처럼 느껴져요.

글 정경화 기자 | 사진 이경옥 기자, 김경태, 노경, 텍스처 온 텍스처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4년 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