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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연출가 강신재 한국 공예 전시 미장센을 만드는 크리에이터
밀라노 디자인 위크 한국 공예 전시, 문화역서울284 공예 기획전 그리고 2023년 11월 진주전통공예비엔날레까지 호평이 이어진 굵직한 공예 전시를 연거푸 맡아온 강신재 디자이너. 그는 스스로를 공예로 풍경을 만드는 ‘미장센 크리에이터’로 칭한다.

그간 수집해온 다양한 한국 공예 작품들을 모아 놓은 강신재 디자이너의 작업실.
기술에 의해 움직이는 시대, 공예는 우리의 뿌리를 상기시키고 인간의 손이 지니고 있는 시대를 초월한 예술성을 연결시킨다. 이러한 공예 전시는 전통과 현대를 잇는 동시대 공예의 가치와 함께 창의성과 문화적 풍부함으로 미래를 연결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공간 디자이너로 보이드플래닝VOID Planning 사무소를 이끌며 우리나라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주목받던 강신재 소장은 지금 우리 공예 전시의 최전방을 이끄는 예술감독으로 수년간 큰 활약을 보여왔다.

그가 공예 전시 디자인을 처음 맡은 것은 2012년 공예트렌드페어 당시 전주시의 공예 브랜드 ‘전주 온’ 부스. 이후 그는 2016년 프랑스 공예 아트 비엔날레 헤벨라시옹에서 한·불 수교 1백30주년을 기념한 한국관 전시와 2017년 밀라노 트리엔날레에서 열린 <한국 공예의 법고창신>, 2020년 공예트렌드페어 주제관, 2021년 국립국악원 70주년 기념 〈K-마에스트로〉, 그리고 2022년 밀라노 디자인 위크 KCDF의 한국공예전과 문화역서울284 공예 기획전, 최근 진주전통공예비엔날레까지 그야말로 공예 전시만을 위해 숨 가쁘게 달려왔다.

“공간 디자이너로 25년을 살았고 이제는 공예 전시 예술감독이자 기획자로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제가 영화광이라서 저의 하는 일을 영화감독과 비교하곤 합니다. 영화감독은 촬영, 미술, 음악, 조명 등 영화에 필요한 모든 분야를 섭렵하고 상황을 아우르고 포용하는 소성적 사고를 통해 한 장면의 완성된 신, 즉 미장센을 만들어내는 사람입니다. 요즘 저를 공예 전문 예술감독이라고 많이들 부르는데, 저는 공예 전시 미장센 크리에이터라고 불리고 싶습니다. 쉽게 풀어 얘기하자면 공예로 풍경을 만드는 사람인 거죠.”


1백 년이 넘은 차량정비고 내부 전시장 전면에 태양계를 상징하는 거대한 빛의 벽을 만들고, 가운데에 태양을 상징하는 빨간 원을 배치했다.
그렇다면 공예 전시 미장센 크리에이터의 가장 큰 덕목은 무엇일까 물었다. 그는 “모름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우리 전통 공예의 모든 것을 깊이 알 수는 없으니 우선 모름을 인정하면 그에 대해 더 파고들게 돼 있고, 그 모름의 실체를 깨달아 알게 됐을 때 큰 희열이 있음을, 그리고 그 파고듦의 시간, 사유의 흔적이 결국 올곧이 쌓이고 쌓여 아름다고 힘 있는 전시 풍경을 기획하고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는 걸 몸소 경험해왔다. 그리고 이는 곧 안목으로 이어진다.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는 모든 반응에 안목이 필요합니다. 보는 사람의 안목에 따라 느끼고 해석하는 것이 다 다르죠. 안목이 탁월한 사람은 사물을 보는 그 찰나의 순간 자신의 머릿속에 차곡히 쌓아둔 다른 안목의 소재와 연결해 새롭게 발견하는 자신만의 또 다른 텍스처를 만들어냅니다. 그 순간 만들어지는 감각은 가슴 뛰는 감동이 되고, 새로운 기획에서 심도 있는 통찰의 표현으로 나타나요. 내가 바라보는 대상의 보이는 것 이상의 본질적 아름다움을 알아차리는 특별한 안목이 기획자에게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전통 공예가 ‘전통’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며, 문화적 계승과 복원 및 아카이브의 체계화와 함께 탁월한 디자이너와 협업해 현대화에 집중하는 전시가 많아져야 한다고 했다. 미장센 크리에이터로 그의 철학을 반영한 최근 전시 세 개를 그의 관점으로 다시 되돌아보았다.


진주 소목장 여섯 명과 현대 디자이너 및 작가 여섯 명이 협업한 목가구 전시.
공예와 빛이 자아내는 아름다운 풍경.
진주전통공예비엔날레 주제관(2023)
“예술감독이 따로 계셨고 이미 전시 주제도 다 결정된 상태에서 뒤늦게 총연출이라는 직책으로 참여하게 된 전시였습니다. 전시 장소인 진주역 차량정비고를 처음 방문했을 때 역사와 전쟁의 시간을 오롯이 감내해낸 1백 년이라는 시간의 흉터가 그대로 남아 있는 모습에 압도됐죠. 전시 주제가 ‘오늘의 공예, 내일의 전통’이었는데, 주제에 담긴 시간성을 간과하지 않으면서 이곳에도 생태학적 세계관을 어떻게 녹여낼 수 있을 것인가를 많이 고민했습니다. 전시장 전면에 태양계를 상징하는 거대한 빛의 벽을 만들고, 가운데에 빨간 원으로 태양을 만들었습니다. 천천히 돌아가는 백색 원 여섯 개는 태양계에 속한 행성들의 자전을 표현한 것이고, 시간차의 움직임으로 서로 교차하는 원들이 만들어내는 신은 마치 우주를 유영하는 것 같은 몽환적 느낌마저 들게 했습니다.

원 중앙의 모양이 각기 다른 돌들은 진주의 여러 지역에서 수집한 돌이고 각 행성의 땅, 흙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전통 공예라는 단어를 흔히 사용하는데, 전국의 공예 비엔날레 중 전통 공예를 표명하는 도시는 진주가 유일합니다. 진주가 소목이 유명한 도시여서 소목장 여섯 명과 디자이너 여섯 명이 협업한 가구를 전시하기는 했지만, 그 외 나머지 공예품은 모두 현대 공예였습니다. 앞으로 진주전통공예비엔날레는 한국의 전통 공예, 즉 선자장, 한지장, 소반장, 갓일장, 탕건장, 누비장, 채상장, 칠장, 자개장, 사기장, 우산장, 자수장 등 다양한 전통 공예의 문화적 계승과 복원 및 아카이브의 체계화와 함께 탁월한 디자이너와 협업해 현대화에 집중하는 전시가 되면 좋겠다는 바람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유리공예 작가 서른아홉 명의 작품을 한자리에 모은 전시관. 유려함으로 큰 호응을 받았다.
<다시, 자연으로 보내는 편지>는 자연과 시간 그리고 미래를 고찰하는 의미로 기획한 전시다. 문화역서울284 중앙홀에 나무와 돌로 만든 의자 그리고 영상이 어우러진 장성 작가의 작품을 배치했다.
문화역서울284
<다시, 자연으로 보내는 편지>(2022)
“제가 기획하는 모든 전시의 맥락을 생태학적 세계관으로 풀어가자는 생각의 연장선상에 있는 전시였습니다. 밀라노 디자인 위크 전시가 원초적인 땅의 기초로 돌아가자는 기본적 각성이었다면, 문화역서울284 전시는 좀 더 깊은 생태학적 전환에 대한 각성을 이끌어내기 위한 시도였으며, 일곱 개 공간으로 테마를 나누어 제목을 정하고 각 테마별로 인간이 자연에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전개했습니다. 1백 년 전만 해도 인간이 사는 땅은 전체 지구 면적의 15%에 불과했는데, 현재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땅은 23%에 불과합니다. 결국 동식물의 땅 60%를 인간이 다 빼앗아버렸다는 얘기인 거죠.

그 결과 동물에게만 있던 바이러스가 인간을 공격하고 결국 코로나19 같은 감염병이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역설적이기는 하지만 ‘코로나19는 지구가 자기를 지키기 위한 백신이다’라고 얘기할 수도 있는 상황이 된 거죠. 오래전부터 생태학자, 신학자, 심지어 그레타 툰베리 같은 어린 소녀까지도 지구의 기후변화 위기를 끊임없이 경고해왔지만 사람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요즘 나날이 기후변화의 결과와 징후를 피부로 느끼고 있습니다. 이 전시에서는 이러한 ‘기후’ ‘자연’ ‘지속 가능성’에 관한 메시지들의 메타포적 표현을 통해 관객과 소통하려고 했습니다.”


태양을 상징하는 정우원 작가의 금속 키네틱 인스톨레이션.
밀라노 중심부 펠트리넬리 재단(Fondazione Feltrinelli) 공간에 ‘땅’ ‘하늘’ ‘태양’을 가져와 펼쳐낸 전시.
땅의 기초, 그 소박한 아름다움으로 돌아가려는 자연스러운, 자연에 가까운 우리 공예를 한국적 미학의 그릇에 담아 보여주고자 했다.
밀라노 디자인 위크 KCDF
<다시, 땅의 기초로부터>(2022)
“이때가 인간이 유구한 세월 동안 산업혁명이라는 대의명분으로 바벨탑처럼 쌓아온 삶의 가치 기준 체계가 무기력하게 무너지던 팬데믹 기간이었기 때문에 뭔가 기초,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의식 있는 문화 예술계 종사자라면 누구나 우리가 직면한 지구의 위기가 문화 예술적 환경에서 어떻게 다뤄지고 있으며, 또한 어떠한 생태학적 담론이 형성되고 있는지 귀를 기울여야 할 책임이 있다는 생각이 강했습니다. 그리고 많이 늦은 감이 없잖아 있지만 이제부터라도 내가 만드는 전시의 맥락을 생태학적 세계관으로 바라보자고 다짐했습니다. 그래서 전시 타이틀을 <다시, 땅의 기초로부터>로 정했고 전시 공간에 ‘땅’ ‘하늘’ ‘태양’을 상징하는 거대한 오브제를 설치해 초자연적이고 원초적인 대지를 표현했어요. 실제로 전시장 안에 10×14m 면적의 거대한 땅을 밀라노 외곽 지역에서 흙을 공수해와서 만들었고, 그 위에 공예품을 연출했습니다.

우리가 얻는 공예의 재료가 모두 땅의 소산물이기에 작가가 고뇌한 흔적이 시간의 켜로 담긴 공예품을 다시 땅에 돌려준다는 개념인데, 이는 기독교와 불교 및 다른 모든 종교에서 땅에서 얻은 소산물 중 가장 좋은 것을 신께 올리는, 어찌 보면 제사와 같은 맥락입니다. 두 번째로 중요하게 생각하고 준비한 것은 이탈리아의 유명 건축가, 디자이너와 한국 전통 장인의 협업입니다. 멤피스 멤버이기도 한 미켈레 데 루키와 박강용 옻칠장, 마리오 트리마르키와 이형근 유기장, 프란체스코 파친과 허성자 완초장의 협업은 의미 있는 작업이었고, 결과물의 퀄리티도 높아서 관객들에게 호평을 받아 매우 보람 있는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글 강보라 | 사진 이기태(인물)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4년 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