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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제안 사적 페르소나와 미감으로 완성한 장소 미지의
지난 11월 문을 연 ‘미지의’. 이름처럼 낯선 이곳에서 우리는 보지 못하던 풍경, 처음 만나는 작품, 맛보지 않은 음식을 경험하며 잊고 있던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미지의 이상국 대표는 이곳 루프톱을 비롯해 모든 정원을 직접 기획하고 손수 돌과 나무를 골라 완성했다.
인간이 태어나 자연으로 돌아가기까지 긴 세월의 흔적을 표현한 정원 ‘애추’. 애추는 경사진 산기슭에 바위가 쌓이며 생긴 지형을 의미한다.

울산역에서 차를 타고 15분, 홀로 난 산길을 달리다 보면 깊은 숲속, 저수지 사이로 ‘미지의’가 모습을 드러낸다. 음료와 디저트를 판매하고, 작품을 둘러보며 산책할 정원도 있으니 흔히 이야기하는 복합 문화 공간이 이곳을 설명하기에 가장 적절한 단어겠지만, 그 단어만으로 이곳을 온전히 표현하기에는 어딘가 아쉽다. 

미지의를 설립한 이상국 대표는 도시에서 직장 생활을 하며 살았다. 그러나 어린 시절 시골에서 살던 기억과 그때의 자연을 좇아 다시 이곳에 돌아왔다. 농장을 운영하며 생활한 지 37년, 노후를 보낼 집을 짓기로 결심하고 2년 동안 땅을 찾았고, 이 부지를 발견한 후 다른 이들도 함께 누렸으면 하는 생각에 지금의 미지의로 방향을 바꾸었다.

“정신없이 살다가도 산으로, 들로 떠나 자연 속에 있을 때는 한 발짝 멈추게 돼요. 그렇게 사유하는 시간이 제 삶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 경험을 다른 이들과도 나누고 싶었지요. 남녀노소 누구나 조용히 평화롭게 머무르다 갈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다 직접 만들게 됐습니다.” 그렇게 마음에 품은 공간이 지금의 모습으로 완성되기까지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아트숍 초입의 풍경. 입장을 돕는 안내소와 아트숍은 길 건너편에 따로 공간을 두어 분리했다. ⓒ김승렬
미지의에 입장한 손님을 처음 맞이하는 콘시어지. 왼쪽 손상우 작가의 벤치, 김지선 작가의 천장 오브제. 이재하 작가와 이우재 작가의 콜라보로 만들어진 콘시어지 데스크는 모두 각자의 미지를 주제로 작업한 작품이다. 바깥으로는 이상국 대표가 조성한 정원이 내다보인다. ⓒ김승렬
“현대와 과거, 자연이 어우러진 건물을 짓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 직선은 배제하고, 곡선을 강조한 건축물을 제안했죠. 또 건축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건물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브랜딩이 필요하다고 해서 쿨데삭 김성렵 대표를 소개받았어요. 제가 만들고 싶은 공간을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흔한 베이커리 카페가 아닌, 지금의 ‘미지의’라는 콘셉트가 완성되었습니다.” 

특히 정원은 돌 하나, 나무 하나까지 이상국 대표가 직접 고르고 심으며 정성을 쏟았다. “살아오면서 경험한 자연을 그대로 담으려고 했어요. 벤치 같은 인위적 요소 없이 돌과 나무, 물로만 구성했고, 그마저도 시간의 흐름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순수한 자연의 상태로 조성했습니다.”

정원에는 자연도 담았지만, 그의 인생도 담겼다. “꽃이 처음부터 만개하지 않는 것처럼 자연을 단지 아름다운 순간만이 아니라 그것이 탄생하기까지 거쳤을 시간과 스토리를 함께 담고자 했습니다. 거기에 제가 인생의 시기별로 느끼던 기억과 감정을 되새기며 자연의 풍경으로 구현했고요.” 이를테면 하얀 자작나무가 있는 ‘백야’는 회상과 사색이 뒤섞여 쉬이 잠들지 못하는 노인의 밤, 그 새하얀 머릿속을 표현했다. 폭포 정원 ‘비연’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10대의 역동적인 기운을 담았다. 그렇게 인간과 자연이 녹아든 열 개의 정원이 탄생했다. “이러한 풍경을 매개로 이곳을 찾는 분들도 잊고 있던 기억을 돌아보는 시간을 보내기를 바랐어요.”


최일준 작가가 ‘연화’를 주제로 작업한 핸드레일. 금속 분말 안료로 손수 그림을 그렸다. ⓒ김승렬
‘심연’을 표현한 윤태성 작가의 유리 베이스. 오브제와 2층 공간 출입을 제한하는 역할을 동시에 한다. ⓒ김승렬

본격적인 미지의는 입장 QR코드를 찍고 철문을 넘어 정원에 들어서면서부터 시작된다. “콘시어지에 들어서는 순간, 사회의 흔적을 잊고 자연 속으로 빨려 들어오는 듯한 경험을 주고 싶었어요. 산책로를 닮은 구불구불한 건물을 걷고, 통창으로 보이는 정원을 감상하며 자연이 몸에 충분히 배어든 후 카페와 다이닝 공간에 도달합니다.” 

사실 도심을 벗어나 사색하고 명상하는 공간은 요즘 꽤 자주 등장한다. 그러나 이곳이 특별한 것은 이상국 대표의 존재다. 이름부터 공간, 가구 하나까지 곳곳에 그의 생각이 배어 있다. 김성렵 대표는 이상국 대표 개인의 인생을 브랜드의 “페르소나”로 제안했다. “이상국 대표님의 인생에서 좋았던 기억,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주관적 경험과 느낌을 구현한 셈입니다. 저희는 그것을 실체화하는 역할을 한 것이었고요.”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화가 ‘핑거 다이닝’이라는 콘텐츠다. 1층은 돌과 나무, 물을 주제로 만든 세트 메뉴를 맛볼 수 있는 카페이고, 2층은 바깥의 자연 풍경을 감상하며 열 개 정원의 주제에 맞춰 개발한 코스 메뉴를 체험하는 다이닝 전시 공간으로 운영하는데, 이상국 대표가 처음부터 고수한 원칙이 음식은 포크나 나이프를 쓰지 않고 손으로 먹어야 한다는 것. “포크와 나이프를 사용하면 시선이 계속 음식으로 향하고 소음이 발생해요. 평온한 분위기에 맞지 않는 것은 배제하고, 명상이라는 행위 자체에 집중하도록 했습니다.” 그렇게 지켜낸 결과, 다이닝은 미지의를 경험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 됐다.


미지의의 여정은 이곳의 문을 열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김승렬
전보경 작가가 작업한 천장의 오브제, 이재하 작가가 작업한 가구와 어우러진 카페 모습. 가구는 자연과 어울리도록 디자인해 각진 부분 없이 모서리가 모두 둥글다.

미지의의 장소성을 완성하는 마지막 요소는 바로 사람. “미지라는 개념은 하나로 정의되는 순간 사라져요. 이상국 대표가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돌, 나무, 물로 만들어진 자연이라는 미지입니다. 이를 기반으로 애추, 지의, 백야, 연화, 비연 등 정원을 위한 키워드 열 가지를 도출하고, 각각의 키워드를 자신의 작품언어로 표현해 줄 작가 열다섯 명을 선정했습니다.”

김성렵 대표는 미지의 경험을 끌어올릴 수 있는 방법으로 장소에 기반한 전시를 기획했다. 이렇게 해서 작가 15인은 자신만의 미지를 작품에 표현했고, 완성된 작품 38점은 가구와 조명, 손잡이, 핸드레일부터 식기까지 미지의의 일부가 되어 자리해 있다. 작가의 손길이 깃든 작품을 몸소 경험하는 공간에서 우리는 존중받는 기분을 한껏 느끼게 된다. 전은경 디렉터는 전시라는 콘텐츠만큼이나 이를 보여주는 이러한 방식 또한 인상적이었다고 소개한다.

“유심히 보지 않으면 모르고 지나칠 수도 있는 모습으로 스며 있다는 것이 멋졌어요. 강요하지 않고, 발견을 통해 자신만의 미지를 찾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담긴 거죠. 저는 프랜차이즈 카페 같은 무색무취 공간이 아니라, 이렇게 다른 취향과 생각으로 만든 사적 공간이 늘어나기를 바랐는데, 미지의가 바로 그런 곳이었습니다.”


브랜딩을 맡은 김성렵 대표와 브랜드 슬로건을 작업한 전은경 디렉터.
핑거 다이닝 코스 메뉴의 하나인 세컨드 플레이트. 모두 손으로 집어 먹을 수 있도록 개발했다. ⓒ김승렬
이렇게 수많은 콘텐츠로 빼곡히 채워졌지만 이상국 대표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고 말한다. “정원을 더 넓히고 서비스도 어떻게 개선할지 늘 고민하고 있어요. 콘텐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차별화해나갈 생각입니다.” 많은 사람의 진심이 가득 담긴 미지의는 아직 완결되지 않았다. 그들은 미지의만의 더 많은 스토리를 꾸준히 만들어나갈 예정이다. 미지의를 구현하는 그들의 여정 속에서 우리 또한 각자만의 미지에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서게 될 것이다. 


〈미지의〉
주소 울산시 울주군 상북면 송락골길 130
영업시간 오전 10시 30분~오후 9시(매달 둘째·넷째 주 수요일 휴무)
문의 0507-1461-2501-2, migiui.com, @migiui


미지의 크리에이터 
클라이언트
미지의(대표 이상국) | 총괄 디렉팅 김성렵, 제아: 쿨데삭 (culdesac.co.kr) | 가드닝 이상국 | 콘텐츠 전은경 | 카피라이팅 민서 | 가구 이재하, 임병호 장인 | 참여 작가 권계영, 김도헌, 김동해, 김지선, 박인형, 박혜림, 비히어나우, 손상우, 안아름, 윤태성, 엄주원, 이우재, 전보경, 정수경, 최일준 | 브랜드 매니징 손기, 김미나, 하재욱, 성소라 | 메뉴 김영빈, 강태구, 이림, 담비 | 유니폼 오유경 | 한유미 | 사운드 권월 | 편곡 정원보 | 영상 이성근, 최장호 | 사진 김승렬 | 웹사이트 개발 라웅배

건축 이기철: 아키텍케이(architect-k.com)

글 정경화 | 사진 박찬우, 김승렬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4년 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