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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 해리 칼리오 멸종한 새 도도의 귀환
1980년 즈음, 핀란드에 살던 소년이 있었다. 아홉 살쯤 되었을까? 루이스 캐럴의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읽던 소년은 앨리스에게 ‘빙빙’ 돌기만 하면 되는 경기인 코커스 경기를 가르쳐준 도도가 실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도도는 왜 멸종했을까? 궁금해하던 소년은 성장해 사진작가가 되었고, 도도를 직접 만들어 그들의 낙원이었던 모리셔스 섬에서 촬영하는 데뷔 작업을 통해 세계 사진계의 주목을 받게 된다. 이 소년의 이름은 해리 칼리오다.
해리 칼리오Harri Kallio의 도도새 사진을 접한 건 6월 30일까지 열리는 ‘2007 그린아트페스티벌’의 메인 전시 <…움직이다>전을 통해서다. 무리 지어 서 있거나 홀로 고요하게 서 있는 도도의 모습이 마치 숲에서 촬영한 다큐멘터리 사진처럼 보이건만, 그가 손수 만들어 연출하고 촬영한 ‘가짜’라고 한다. 전시 작품들은 그의 프로젝트 ‘도도와 모리셔스 섬, 상상의 만남The Dodo and Mauritius Island, Imaginary Encounters’의 일부다.핀란드 출신의 그는 헬싱키 아트&디자인대학교 대학원에서 사진을 전공하던 2000년 도도에 관한 자료를 채집하는 것으로 작업에 들어갔다. 6개월간의 자료 조사와 정리, 실제 크기의 도도새 조형造形 작업을 마친 그는 아프리카 인도양 남서부에 있는 섬, 모리셔스로 들어갔다. 그때가 2001년. 이어 2002년과 2004년에도 모리셔스 섬으로 들어가 촬영을 했다. 계획하고 있는 한 번의 촬영이 더해지면 이 프로젝트는 종료된다.

<…움직이다>전의 개막식과 세미나 ‘해리 칼리오의 생생 사진 + 에코토피아를 위한 사진가의 역할’에 참석하기 위해 입국한 그를 코엑스 광장에서 만났다.

코엑스 광장에 전시되어 있는 작품들을 본 소감이 궁금하네요. 너무 아름답고 좋다. 실외에서 전시하는 것은 이번에 처음인데, 많은 사람들이 갤러리로 가지 않고 그냥 지나가면서 감상할 수 있어 더 좋은 것 같다.

한국 사람들에게 도도새를 소개해주시면 좋겠어요. 도도는 서양 사람들에게 멸종된 종 가운데 가장 유명한 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도 등장하는데, 그 동화가 유명하긴 하지만 도도가 실존했던 새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도 많다.

동화 한 편의 위력 그가 자란 뒤 다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읽을 기회가 있었다. 다시 읽으니 재밌었고, 도도를 재현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새들이 살던 섬에서 재현해 사진을 촬영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작업을 시작했다.도도는 수천 년 전부터 모리셔스 섬 전역에서 서식했다. 먹이가 풍부하고 천적이 없었기에 날개 쓸 일이 없었던 이 새는 16세기 초 신대륙을 찾던 네덜란드인이 모리셔스 섬을 발견하고 16세기 말엽 포르투갈의 식민지가 되면서 위기에 봉착한다. 외부에서 온 대상에 대한 경계심이 없었던 도도는 퇴화된 날개를 달고 뒤뚱거리며 사람들에게로 거리낌 없이 다가갔다. 선원들은 자신들에게 다가오는 이 새들을 닥치는 대로 포획했고, 데리고 온 가축들을 섬에 풀어놓았다. 인간은 도도를 먹었고, 동물들은 그 알을 먹었다. 인간이 도착하면서 섬의 환경과 생태계는 급격하게 바뀌었다. 나무를 베고 새들의 서식처를 파괴했다. 인간을 피해 달아나지 못했고,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지 못했던 도도는 1662~1693년이라는 짧은 시간 사이 종적을 감추었다. 1693년 생물학자들이 도도를 연구하기 위해 섬에 들어갔을 때에는 새를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고기 맛이 좋았다면 가축으로 진화할 수 있었겠지만 그렇지도 못했다. 포르투갈어인 ‘도도’라는 이름의 뜻은 ‘바보’.

도도의 어떤 점을 흥미롭게 여겼는지요? 도도라는 캐릭터 자체에 흥미와 매력을 느낀다. 모리셔스 섬이라는 작은 섬에서만 살던 도도가 갑자기 사라진 게 굉장히 신기했다. 그리고 인간이 지구 환경에 끼치는 영향을 살펴볼 수 있는 점도 흥미로웠다. 도도가 멸종된 것은 인간이 (섬에 등장하고) 도도를 포획하고 살상했기 때문이다.


‘Riviere des Anguilles #3’, Mauritius, 2001ⓒHarri Kallio.이 작품의 영문제목은 ‘되돌리고 싶은 순간Could Turn back Time'이다.

멸종한 새를 직접 복원하다
세계 사진계가 해리 칼리오의 작업을 주목하게 된 것은 그의 작가적 관점이 독특하기 때문이다. 그는 도도 작업을 통해 인류와 자연의 관계를 새로운 시점에서 펼쳐 보인다. 인간의 등장과 함께 멸종한 도도의 상징성을 통해 지구 역사에서 인간이 했던 역할을 은유적으로 드러낸다.도도에 관한 그의 작업에는 신화적인 측면의 도도, 미술사적인 측면의 도도, 생물학적인 측면의 도도가 함께 담겨 있다고 한다. 왕성한 번식력을 자랑했던 종이 급작스럽게 멸종한 사례는 도도 외에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조사와 재현을 통해 예술작품으로 구현할 수 있는 소재는 많지 않다. 그는 이 작업을 통해 ‘도도는 멸종했지만 서구인들의 기억 속에 여전히 살아 있다’는 메시지를 드러내고자 한다.

몇 마리를 만들었나요? 1m 크기의 수컷 한 마리와 암컷 한 마리를 만들었다.
도도를 만든 과정이 궁금하네요. 얼굴은 실리콘으로, 뼈는 알루미늄 같은 철재로 만들었다. 눈은 유리로 만들고 염색한 백조 털을 붙여 몸통의 털을 만들었다. 그리고 꼬리 부분은 타조 털로, 날개 부분은 닭 날개를 이용해 보정해가며 만들었다.
제법 큰 편인데, 어떻게 모리셔스 섬으로 가져갔나요? 철골 구조물로 접을 수 있게 만들었기 때문에 접어서 배낭에 넣고 다녔다.
여러 마리의 도도가 등장하는 사진의 경우 어떻게 작업한 건가요? 암컷 한 마리와 수컷 한 마리만 만들었기 때문에 수를 늘렸다. 모리셔스 섬에서 촬영할 때에는 스튜디오용 대형 카메라(4인치)를 들고 갔고, 수를 늘릴 때에는 포토샵을 이용했다.
배경이 그림처럼 보이더군요. 사진이다.(웃음) 풍경이 그림처럼 보이는 것은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룰란트 사베리Roelandt Savery의 그림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룰란트 사베리는 도도를 그렸던 분으로 나의 작업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자료 조사와 도도 만들기를 비롯해 모리셔스 섬으로 가 3백여 년 전 생태를 유지하고 있는 곳에서 촬영하기까지, 그 가운데 흥미로웠던 점은 무엇인가요? 도도를 조각과 사진으로 창조하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과정 전체가 굉장히 흥미롭고 즐거웠다.
작업 과정에서 기뻤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자료 수집 과정에서 아주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중에서 옥스퍼드대학교에서 자료를 찾을 때 만났던 자연사박물관 디렉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는 내가 도도의 표본을 촬영하고 만질 수 있게 해주었다. 직접 만지는 것은 책으로 볼 때와 정말 다르다. 감명을 받았다.
가장 힘들었던 작업 과정은 무엇이었나요? 도도를 조각으로 만드는 과정이었다. 두 번째로 힘들었던 것은 모리셔스 섬이 관광 개발로 너무 많이 변한 것이었다. 한 달 동안 가이드와 함께 섬을 돌아다녔지만 도도가 살았던 3백여 년 전의 환경을 찾는 일은 하늘의 별 따기만큼 힘들었다. 왜냐하면 온갖 종류의 식물이 수입되어 새롭게 자라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진에는 도도가 살았던 때의 느낌이 담겨 있는 것 같아요. 어떻게 촬영했나요? 군데군데 (옛 생태가) 남아 있는 곳(섬 전체의 약 1%)이 있어서 거기서 촬영했다.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처음 모리셔스 섬에 도착해 도도를 내려놓았을 때가 기억에 남는다. 15시간을 비행해 도착한 뒤 배낭에서 도도를 꺼내 그곳의 땅 위에 놓으니 (새의) 소속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정말 여기에 살았다는 것을 느끼니까 긴장되는 한편, 내가 제대로 된 프로젝트를 했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수가 많은 종은 항상 멸망했다 그는 20대 중반에 대학에 진학했다. 어릴 때부터 예술가가 되고 싶었다는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사진 현상소에서 일했다. 핀란드는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대학으로 직행하는 우리와는 많이 다른 모양이다. 그는 ‘사진을 좋아하는 의사’였던 부친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사진을 좋아했다. 의족이나 의수를 만드는 부친의 작업을 가까이에서 보았던 것이 지금의 조각 작업으로 연결된 것인 듯도 싶다. 1998년부터 2년간 옥스퍼드 브룩스대학교 아트스쿨에서 출판과 음악을 공부했고, 1999년부터 2002년까지 핀란드 헬싱키의 아트&디자인대학교에서 사진을 전공했다. 그리고 2001년에 미국 뉴욕으로 이주해 지금까지 이곳에서 살고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대학교에 진학하기 전까지 무엇을 했는지요? 포토 랩에서 일했다. 사진을 현상하고 인화하며 돈을 벌었다. 어릴 때부터 사진을 좋아했고, 예술가가 되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사진으로 가게 된 것 같다.
현장에서 일을 하다가 대학에 간 이유는요? 대학교에 가면 교육을 받을 수 있고, 또 혼자서 일할 때보다는 많은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사진을 전공으로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도도 프로젝트 때문이다. 도도를 그림으로 그렸을 때와 사진으로 찍었을 때의 차이는 매우 크다. 느낌이 확연히 다르다. 사진이라는 매체는 우리가 탐험하거나 확인할 수 없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

어릴 때부터 예술가가 되겠다고 생각한 특별한 계기가 있는지요? 그저 어릴 때부터 예술가가 내게 맞는다고 느꼈고 예술가가 되고 싶었다. 예술가는 독립적인 존재로 자기가 원하는 세계를 구현하는 사람이 아닐까?
영향받은 작가가 있는지요? 생태학적인 것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생태적인 성향을 가진)다른 작가들도 좋아한다. 상상의 동물을 만들어 사진을 찍는 스페인의 사진작가 호안 폰트큐베르타 Joan Fontcuberta는 항상 심각한 문제도 아주 재밌게 이야기하고 생각할 수있게 해주어서 좋아한다. 그리고 생태학자인 스티븐 제이 굴드 Stephen Jay Gould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치는 활동을 해왔다.
많은 사람들이 인류, 나아가 지구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습니다. 인류도 과거의 많은 종처럼 멸종하게 될까요? 지금까지 지구상의 생물 95%가 멸종했다고 한다. 인간도 결국에는 그렇게 되지 않을까 염려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인간이 지구를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지구가 인간을 필요로 하는 점이다. 하지만 인간은 아직까지는 핵을 개발하는 등 지구 환경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활동을 해왔다.
인간의 활동이 지구 환경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음을 어떻게 알 수 있는지요? 스티븐 호킹의 우주론에 따라 지구 밖에서 지구를 바라보면 인간이 지구의 얼마나 많은 부분을 장악하고 자연을 착취하고 변화시켰는지를 확연하게 볼 수 있다.

지구 생태와 환경에도 관심이 많으신데, 어떤 사람을 친환경적이라 할 수 있을까요? 인간과 나머지 세계에 대해 균형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인간과 나머지 세계에 대한 균형적인 역할이 뭔가요? (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는) 쉬운 일로는 자동차를 타지 않고 버스를 타는 것, 아이를 한 명만 낳는 것. 그런데 사람들은 잘 실천하지 않는다. 정말 간단한데. 지구 역사를 보면 어떤 특별한 종의 수가 많아지면 그 종은 항상 멸망했다. 지금 지구상에는 인간이 제일 많다. 거기에 대해 예술가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예술가들은 다른 방식으로 그것에 대한 답을 찾는다.
핀란드에서 뉴욕으로 이주한 것은 무엇 때문인지요? 아내가 반은 핀란드 사람이고 반은 미국 사람이기도 하고, 세계적으로 활동하기에는 뉴욕이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뉴욕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예술시장이면서 (젊은 작가 지망생들에게) 많은 기회가 주어지고 많은 갤러리가 있어서 너무나 가고 싶어 했던 곳이다. 뉴욕은 엄청나게 다양한 민족과 언어가 존재하는 데여서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어떤 언어를 쓰는지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을 만큼 자유롭고 여유 있는 곳이라 너무 좋다. 이제는 집 같고 고향 같다.
이주하면서 가장 고민했던 것은요? 오직 부모님뿐이었다. 지금도 1년에 두 번 정도 찾아뵙고 부모님도 뉴욕으로 오신다.
지금의 삶이 행복한가요? 매우 행복하다. 나는 작업만 할 수 있는 전업 작가가 되기를 원했고 지금은 전업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전업 작가로 활동하기 전에는 책을 제본하는 일, 웹 디자이너, 사진 에디터 등 다른 일도 해야 했지만 지금은 내가 하고 싶은 것만 작업할 수 있고, 여행 다니면서 일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새로운 걸 기대할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하다.

행복이란 being a nice 2년 전 촉망받는 별로 떠오른 그는 지금 두 가지 작업을 더 하고 있다. 현대 사진계를 움직이는 주요 출판사인 ‘아파추어AP’ 재단의 지원으로 나비와 나방의 얼굴을 촬영하는 ‘인시목鱗翅目의 초상Lepidoptera Portraits’과 맨눈으로는 보기 어려운 생물체 속에 존재하는 거대한 공간의 미묘한 움직임을 미니어처로 만들어 촬영해 변화무쌍한 생물 세계의 광대함을 보여주는 ‘내면 풍경Innerscapes’을 함께 진행하고 있다. 나비와 나방의 초상을 연속적으로 보여주는 ‘인시목의 초상’은 동물의 행동에 인간적 감정을 투사해 해석하는 의인화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작업. 사진을 통해 곤충의 초상이나 동작에 (인간처럼) 감정적 표현이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그리고 특수 제작한 마이크로카메라를 이용해 원자 같은 미시적 상태의 초미립자 존재 안에 있는 광대한 공간을 보여주는 ‘내면 풍경’은 크고 작은 것의 기준이 무엇인지를 되묻는다. 더불어 이들에게 가해지는 외부의 순간적인 간섭이 불러오는 (예측할 수 없는) 변형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의 홈페이지(www.harrikallio.com)에 접속하면 지금까지 촬영한 일부 작품들을 볼 수 있다.

김선래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7년 7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