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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작당_포토 에세이 노르스름한 푸르러 옴
한옥의 아침으로 간밤의 안부가 도착한다. 잠결에 쿵 하고 뭔가 떨어지는 소리를 들은 것 같더니 마당으로 모과가 한 놈 뒹굴었구나. 어쩐지 머리맡이 선득하더니 샘바닥 얕게 돋은 이끼 위로 서릿발이 섰구나. 댓돌에 벗어둔 신발은 그대로 가지런한가. 행여 나보다 먼저 아침을 맞은 이의 기척이 있거든 안녕히 주무셨느냐 다가가 물어볼 참, 간밤의 안부는 오늘의 안심일는지. 2023년 ‘행복작당’이 열리는 사흘 아침을 북촌 한옥에서 맞았다. 방은 노르스름해지고 바깥은 푸르러 온다. 둘이 서로에게 번진다.

이불을 개고 베개를 매만지며 내가 내게 간밤의 안부를 묻는다.
시리재 마당이 온통 푸르러온다. 가을 아침의 맵싸한 공기가 마당에 가득하다.
한옥에서, 실내와 실외의 구분은 엄격한 분리이기보다 조용한 분별이다. 한옥의 아침은 알람이라는 신호이기보다 공기의 기척이다. 한옥의 다양한 건축재는 모으고 합쳐져 효과를 내기보다 다만 고스란히 성품을 드러낸다. 나무는 나무대로, 종이는 종이대로, 흙과 돌은 흙과 돌대로 나란하다. 아침이 밤을 물리듯이, 마당이 날씨를 받듯이, 창살이 그림자를 눕히듯이 한옥의 아침은 서로가 서로를 들이고 내미느라 조용히 분주하다.


자명서실의 모과나무가 간밤에 모과 하나를 떨어뜨렸다. 오늘은 모과의 아침이다.
이부자리 갠 자리로 볕이 눕는다. 창살의 그림자는 리듬이 되어준다.
노스텔지어 블루재 담장 밖으로 향나무 가지 하나가 내려와 있다. 아침의 그림자놀이는 아주 잠깐이다.
마당에 나와보는 일로, 마당에 한번 나가보는 일로 한옥에서의 아침은 마침내 완성된다. 눈이 안 떠지든, 조금 얇게 입었든, 무슨 준비랄 것도 없이 하루와 맞닥뜨린다. 골목으로 지붕으로 기둥과 창으로 온 빛이 똑같이 내게로도 온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규칙은 느슨하다지만 길들인 습관은 간결하기만 하니 빗자루를 들어본다. 여기저기 만져보고 쓸어보고 대문도 열어본다. 언제나 그렇듯, 아침은 나보다 항상 먼저 시작되어 있다.


창호의 빛이 먹의 농담을 재현한다. 점점 진해지고, 점점 연해지며 오늘의 날씨를 알린다.
무무헌 대문을 열어본다. 감나무가 먼저 지나는 이웃에게 인사를 건넨다.
마당을 쓸고, 기단을 쓸고, 댓돌을 쓴다. 빗자루는 버리지 않고 쓸어 담는다.
행복작당 기간 동안 한옥의 새벽 풍경을 담기 위해 이르게 집을 나섰을 장우철 작가. 그는 2002년부터 15년간 〈지큐 코리아〉의 피처 에디터로 활동했다. 여전히 글을 쓰고 사진을 찍는다. 〈여기와 거기〉 〈좋아서, 웃었다〉 〈a boy cuts a flower: 소년전홍〉세 권을 책을 쓰고, 다수의 사진전을 열었다.

글과 사진 장우철 작가 | 담당 김혜원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3년 1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