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를 위해 자신이 디자인한 파빌리언, 사운드 오브 아키텍처를 걷고 있는 건축가 리카르도 블루머.
프리즈와 키아프, 서울패션위크 등 수많은 행사로 내내 들뜬 분위기이던 지난 9월, 서울을 들썩이게 한 이벤트 중에는 2023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도 있었다.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는 서울의 도심 곳곳을 무대로 전 세계 도시와 교류하고,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의 더 나은 미래에 대해 아이디어를 모으는 자리다. 올해 4회째를 맞이한 이번 비엔날레가 더욱 의미 있는 것은 행사를 치르는 메인 장소가 열린송현녹지광장(이하 송현광장)이었기 때문.
송현광장 부지는 오랫동안 도시의 외딴섬이었다. 여러 번 주인이 바뀌었고, 높은 담에 가로막힌 채 방치되었다. 그러다 지난 2022년 10월, 1백10년 만에 열린송현녹지광장이라는 이름으로 시민에게 돌아왔다(이 또한 이건희 기증관을 짓기 전 2년 동안으로 한시적이다). 이렇게 도심 한복판에 역사적으로 많은 의미를 품은 장소가 비엔날레의 주요 전시장이 되어 시민에게 완전히 문을 열어젖힌 것. 그 자체로도 ‘땅의 도시, 땅의 건축’이라는 이번 비엔날레 주제와 아름답게 부합하는 사건이다.
그가 가르치는 USI 학생들과 함께 만든 작품 ‘월Wall’. 비눗방울로 금방 터져버리는 얇은 벽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며, 경계로서 벽의 의미를 탐색한다. 2018 베니스 비엔날레에 초청되었다.
송현광장에서는 주제관인 하늘소와 땅소를 비롯해 여러 이벤트가 열리는데, 그중에서도 현장 프로젝트 ‘체험적 노드: 수집된 감각’은 이 장소를 더욱 내밀하게 들여다본다. 건축가 김사라가 큐레이터를 맡아 전 세계에서 여섯 명의 작가를 초청하고, 작가들은 각자의 디자인 언어로 송현광장의 장소성을 인식하는 파빌리언을 디자인했다.
그중 건축가 리카르도 블루머Riccardo Blumer가 작업한 파빌리언 사운드 오브 아키텍처Sound of Architecture는 광장의 가장 중심에서 사람들을 맞이한다. 한 사람이 지나가기에 적당한 크기의 틀을 줄지어 세워 길을 만들고, 머리 위로는 모듈마다 하나씩 조형물을 설치했다. 광장 한가운데 알록달록한 색이 자리해 있어 눈에 띄기도 하고, 주변을 오가다 보면 꽤 많은 사람이 파빌리언 앞에 줄을 서 있는 광경이 심심찮게 보인다. 그야말로 ‘체험적 노드’가 된 것.
공기로 채운 다양한 디자인의 조형물을 도시의 여러 장소에 팝업처럼 설치하고, 그것으로 인해 달라지는 장소성과 관계를 탐구하는 ‘공기 기념물(2018)’ 프로젝트.
리카르도 블루머는 스위스의 건축가이자 스위스 3대 건축학교인 멘드리시오 건축대학(USI Mendrisio)에서 건축을 가르치는 교수다. 그는 건축가이지만 건물만 짓는 것이 아니라 설치물과 가구 디자인, 때로는 행위 예술까지 다방면으로 활동한다. “벽이나 천장처럼 딱딱하게 만져지는 것이 아니라 빛이나 공기처럼 실재하지만 쉽게 느끼지 못하는 것을 공간을 통해 경험하는 것, 그리고 그 체험을 통해 우리가 건축을 대하는 자세까지 일깨우는 것에 흥미를 느끼고 작업합니다.”
그중에서도 그가 특히 관심을 두는 것은 소리다. “처음 건축이 등장한 것은 생존 때문이었지만, 인류가 실질적으로 건축이라는 개념을 이야기한 것은 공동체가 생긴 시점부터예요. 사람이 모여 노래하거나 춤을 추며 사회적으로 교류하는 장소에서 가장 중요한 테마는 소리였죠. 이처럼 건축은 소리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왔는데, 지금은 거의 잊혔어요. 그 중요성을 인식시키고 활용하는 작업을 합니다. 특히 송현광장은 아직 날것 그대로의 장소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소리 같은 감각으로 장소성을 체험하는 것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브뤼셀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공기 구조물을 주제로 작업한 졸업반 학생들의 공간 모형.
건축가 김사라가 그를 선정한 데에도 이러한 관심사와 작업이 바탕이 됐다. “리카르도 블루머 교수는 휴먼 스케일의 작품을 만들고, 소리나 빛 같은 비물질적 요소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점에서 ‘송현광장’을 감각하게 한다는 파빌리언의 목적에 잘 부합했습니다.”
그들의 설명대로 소리는 파빌리언의 핵심 요소다. 조형물은 크기가 같은 틀 안에 있지만 모두 형상이 다른데, 공통점은 위쪽에서 소리가 흘러나온다는 것. 사람들은 조형물 아래를 걷다가 소리가 나는 위쪽으로 자연스레 고개를 돌리고, 조형물의 구멍을 통해 쏟아지는 빛을 바라보며, 공명하는 소리를 듣는다. 이 세 가지 방식으로 송현광장을 공감각적으로 경험한다.
리카르도 블루머는 단순히 공간을 만드는 것에서 더 나아가 공간의 요소를 탐구하거나 그 아름다움에 기술적으로 접근해 규칙을 연구하고, 이를 퍼포먼스나 설치 작업으로 선보인다.
리카르도 블루머가 디자인한 알리아스Alias의 라레게라Laleggera 체어.
“제가 의도한 대로 사람들이 이용하는 모습을 보니 재미있고, 신기하기도 하고, 멋졌어요. 건축이라는 것은 설명서 없이 작동하면 성공한 작업이니까요.”
더불어 사람들이 이 파빌리언을 어떻게 체험하기를 바랐느냐는 질문에 건축가는 “파빌리언을 들어올 때와 나갈 때 조금은 다른 사람이 되면 좋겠다”는 답을 남겼다. 그가 바란 대로 사람들은 파빌리언을 걸은 기억과 감각이 합쳐져 송현광장을 전과 다르게 감각하게 되었을 것이다. 건축도 마찬가지다. “공간은 그 속에서 우리의 행위를 얼려놓은 것과도 같아요. 사람들이 좁게 난 길을 따라 걷고, 위를 쳐다보고 귀를 기울이는, 본능처럼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모든 행위가 모여 비로소 저의 건축이 완성됩니다.”
사진 제공 리카르도 블루머
- 건축가 리카르도 블루머의 사운드 오브 아키텍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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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세 개의 모듈을 걷고, 소리가 흘러나오는 위를 쳐다보고, 구멍을 통해 쏟아져 들어오는 빛을 바라본다. 건축가 리카르도 블루머는 이 모든 행위가 이뤄지는 시간과 공간이 합쳐져 하나의 건축이 된다고 말한다.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3년 10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