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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아티스트 헤더림 “나와 AI는 공동 작업자인가?”
지난 호에 이어 10월호 표지를 만든 헤더림. 예술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라는 금기를 깨고, AI와 공존 또는 동반 성장을 택한 젊은 아티스트 이야기다.

AI 아티스트 헤더림은 카이스트 공과대학에서 Human-Computer Interaction을 공부하고, 이미지 생성 모델에 대한 인공지능 연구, 다양한 기술과 예술을 접목한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어반브레이크의 The Canvas of AI 공동 디렉팅, 인공지능을 활용한 애니메이션 작업 등 다양한 전시 활동을 통해 대중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려 한다. 세계적 인공지능 학회 NeurIPS, ICML에서도 이미지 생성 모델에 대한 워크숍 페이퍼를 발표했다.
테크네techne. 예술의 기원을 찾아가던 이들이 많이 부여잡는 단어다. 쾌락을 위한 기술, 즉 모방을 통해 쾌락을 얻는 테크네가 예술이라는 생각은 고대 그리스부터 존재해왔다. 최근 두 세기 동안 인류는 테크네의 잦은 출현을 목도 중이다. 1826년 사진기의 발명이 그러했고, 1960년대 비디오아트의 등장이 그러했으며, 1990년대 컴퓨터와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인터랙티브 아트가 그러했다. 모두 모방을 통해 쾌락을 얻는 예술이었다. 그리고 요즘 급부상한 AI 아트. 미드저니, 달리, 스테이블 디퓨전 등 신통방통한 이미지 생성 프로그램을 통하면 삼척동자라도(단서가 있다. 좀 똘똘해야 한다!) 텍스트나 기존 이미지를 입력해 쉽게 그림을 만드는 세상이 됐다(방점을 찍을 부분은 ‘그리지 않고 만드는’ 미술이다).

생성형 AI와 사람이 함께 그림을 만드는 세상이 도래한 직후 “사람은 예술가고, AI는 그저 도구인가” “사람과 AI는 공동 작업자인가” “생성형 AI가 예술가의 밥줄을 위협할까”라는 질문도 함께 출몰했다. AI 소프트웨어가 창작물을 수집하지 못하도록 막는 옵트아웃 운동이 예술가들 사이에 들불처럼 번지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그건 한물간 논의가 됐다. AI와 예술가는 공존과 동반 성장을 꾀하고 있다. 그리고 인공지능과의 합작이 예술 행위에 득이 될 것임을 확신하는 이들은 반드시 이런 단서 조항을 내건다. ‘인공지능이 만드는 결과물은 고윳값이라기보다 평균값에 가깝다. 사고의 깊이, 상상력의 넓이는 인간 예술가만 지닐 수 있다.’

지난 호부터 <행복>은 생성형 AI를 활용한 이미지로 표지를 만들고 있다. 그 작업을 도맡은 AI아티스트 헤더림. 그와 나눈 짧고 굵직한 대화다.


헤더림, ‘Garden: P’, 2023.
‘이미지 생성 모델을 활용한 스페큘레이티브 아트Speculative Art’가 주요 작업이라 들었다. 이름부터 난해한데 스페큘레이티브 아트가 뭔가?
누구나 이런 질문을 품고 살 것이다. ‘빠르게 발전하는 세상에서 미래의 일상은 어떤 모습이고, 어떤 일이 벌어질까?’ 스페큘레이티브 아트는 끊임없이 ‘만약에?’라는 질문을 던지는 예술 분야다. 미래의 시나리오나 새로운 관점으로 세계를 탐구하는 예술 형태라 보면 된다. 사회적 통찰과 변화를 일으키기 위한 도구로서 성격도 강하다.

헤더림은 카이스트에서 Human-Computer Interaction을 공부했다. 그렇다면 이 전공과 지금 하고 있는 스페큘레이티브 아트는 어떻게 연결되나?
나는 ‘균형’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기술이 극단으로 치닫는 것도, 반대로 인간이 극단적으로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것도 문제 있다고 본다. 그런 이유로 카이스트에서 그 균형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스페큘레이티브 아트는 그 균형의 추가 한쪽으로 기울 때를 자유롭게 상상하는 영역이다. 나는 엉뚱한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다. ‘기술이 극단적으로 발전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분명 윤리 문제나 환경문제가 발생할 텐데 이렇게 가는 게 맞을까?’ 같은 생각이다. 스페큘레이티브 아트를 통해서 그런 문제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관람객에게 던지려고 한다.

설명을 듣고 들어도 우리는 아직 AI 아티스트가 어떻게 작업하는지 알지 못한다. 이번 표지 작품을 예로 들어 설명해달라.
<행복> 10월호의 특집 테마 ‘영국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이번 표지의 전체 콘셉트도 ‘영국’으로 잡았다. 우선 내가 즐겨 쓰는 이미지 생성 프로그램 ‘미드저니’에 내가 만들고 싶은 풍경의 전체 구도를 묘사했다. 그다음 영국 국기처럼 빨강, 파랑, 하양이라는 세 가지 색 키워드를 넣었다. 어쩐지 표지에서 초현실적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나? 그런 분위기에 해당하는 형용사를 입력했기 때문이다.

AI 아트를 표지에서 처음 접한 독자들의 소감을 대신 전하자면 “흥미롭다” “새롭다” “어딘지 박제된 생물체나 공간을 보는 것처럼 무섭다” “반전이 없어 보인다” 같은 것이었다. 이에 대한 헤더림의 변을 듣고 싶다.
아무래도 인간이 아닌 AI가 만들다 보니 부자연스럽고 차갑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런데 AI 아트가 ‘인간이 만든 수많은 데이터셋을 인공지능이 해석하고 인공지능의 시선으로 만든 결과물’이라는 것에, 그 이질적인 부분에 집중한다면 좀 다르게 작품을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왜 인공지능이 이 단어를 이렇게 해석했고, 그 과정에서 우리의 데이터셋이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쳤는지, 어떤 부분을 묘사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지’처럼 다른 시선으로 작품을 감상하는 거다.

AI 아트에서 작가와 AI의 역할 배분은 어느 정도라 생각하나?
결국 내가 특정 텍스트 인풋(프롬프트)을 입력해도 그것에 대한 결과물을 온전히 만들어내는 것은 인공지능이다. 그 과정에서 나는 인공지능이 내 의도를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인풋을 다듬어간다. 그래서 사전에 매우 다양한 테스트를 해봐야 한다. ‘프롬프트 구조를 이렇게 짜면 이렇게 이해하는구나’ ‘이 키워드는 예상외로 이렇게 해석을 하네’처럼. 아직까지는 인간의 인풋을 어떻게 해석해서 어떤 식으로 결과물을 생성했는지에 대한 피드백을 인공지능이 주지 않는다. 그래서 이런 부분에서 작가의 의도를 전달하는 역량이 중요하다.

어반브레이크의 The Canvas of AI 공동 디렉팅도 했고, 인공지능을 활용한 다양한 전시 활동도 하고 있다. 인공지능을 통한 다양한 해석과 내러티브를 사람들에게 전파하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이미지 생성 모델을 이용해서 시각적으로 훌륭한 결과물을 만드는 것에 그치고 싶지 않은 거다. 좀 더 서사가 있는 작업을 하고 싶다. 서사를 바탕으로 할 때 내가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좀 더 몰입감을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도 도움이 되는 공공 예술 측면에서 이런 내러티브가 있는 작업을 해보고 싶다. 그 메시지가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보탬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글 최혜경 기자 | 사진 이창화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3년 10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