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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성·윤석원 2인전 〈어저께의 나머지에 오늘을 붙여〉
Coming Soon! 9월 14일부터 갤러리 지우헌에서 박현성, 윤석원 작가의 2인전이 열린다. 천을 말고, 늘어뜨리고, 위태롭게 지탱한 박현성의 설치. 빛이 번지고, 반사되고, 바랜 듯한 윤석원의 회화.이 둘을 묶는 공통분모는 단 하나, ‘관계’란다. 전시 오픈 전에는 그 뜻을 당최 알아챌 수 없어서, 이메일로 두 작가의 다이얼로그를 시도했다. 한 사람은 부산 대연동, 한 사람은 서울 신당동에 산다.

이번 전시에서 새롭게 변주해 선보이는 박현성 작가의 ‘마지막 포옹’, 천 염색 및 혼합재료, 2022. 흰 천을 검은 물감으로 적시고, 꼬고, 늘어뜨린 이 매듭은 사실 아주 가볍다. 관계처럼.
박현성(b.1991)은 독일 뮌헨 쿤스트아카데미에서 페터 코글러 교수에게 사사해 마이스터슐러를 마치고 귀국한 신예다. NEUSTART KULTUR 프리랜서 순수 미술 작가 지원 장학금(2022), Stiftung Kunstfonds Kickstarter 졸업생 지원 장학금, 바이에른주 프로젝트 지원 장학금과 뮌헨 GEDOK예술협회 신진 작가 데뷔상, 뮌헨 문화부 선정 작가, 예술가 도시 칼베 Wintercampus 레지던시 선정 작가 등의 수상 이력이 있다. <IRGENDWELLE(어떤 물결)>(2022, Kobeia 갤러리, 뮌헨), (2020, GEDOK협회 갤러리, 뮌헨) 등 5회의 개인전을 개최했으며, 네덜란드·영국 등에서 31회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윤석원 작가의 회화는 일상의 기록 같다가도, 삶과 동떨어진 기억의 박제 같아 보인다. ‘Light and Matter_Time 004’, oil on canvas, 100×100cm, 2023. 아래 그림은 윤석원 작가가 이번 전시작 중 자선작으로 꼽은 ‘The Day’, oil on canvas, 50×50cm, 2023.
윤석원(b.1983)은 건국대학교에서 커뮤니케이션디자인을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현대미술 석사과정을 마쳤다. 갤러리 바톤,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우민아트센터, 챕터투에서 개인전을 개최했고, 성남큐브미술관, 청주시립미술관, 단원미술관, 신미술관, 미메시스 아트뮤지엄 등에서 열린 단체전에 참여했다. 제37회 중앙미술대전(2015) 선정 작가로 선발되고 18회 단원미술제(2016)에서 단원미술상을 수상하며 주목을 받았다.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청주시립미술관, 단원미술관, 한국삼공, 이스라엘 티로시델레온 컬렉션,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스페이스K, 챕터투 등 국내외 기관에 소장되어 있다.
박현성(이하 박) 생의 주기를 마치고 죽어가는 마른 식물, 구호품·중립 지역 표시·야전병원처럼 전쟁 중 기록된 비전투 활동, 근현대 미술가나 동시대 미술가의 초상 등 윤석원 작가님은 아주 광범위한 대상을 그리잖아요. 그 대상을 선택한 순간의 감정이 어떤 것인지 궁금해요.

윤석원(이하 윤) 대상 자체보다 대상이 처한 상황, 그리고 그 배경을 바라보는 시선이 더 중요해요. 모두가 보기에 아름다운 풍경보다 어딘가 맘이 쓰이는 장면에 눈이 갈 때가 많고, (나만 알고 있는 것 같은) 그런 장면을 근사하고 힘차게 그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그림으로 그려요.

그래서인지 윤 작가님의 작업은 순간 포착적이면서도 묵직한 기록을 남기는 것 같아요. 사진 같아 보이는데, 포착하는 순간에 작가의 시선을 정성스럽게 담아 넣기 때문이겠죠. 작고 사소한 것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는데, 그 시선이 날카로우면서도 강렬해서 더 인상적이었어요.

박현성 작가님의 작업을 처음 보고 ‘검은 다이아몬드’ 같다고 생각했어요. ‘Tough’ ‘Strong’보다 ‘Sharp’ ‘Neat’ ‘Straight’에 가깝다고 느꼈고요. 그동안 스스로에게 던져온 수많은 질문에 대한 답을 솔직하게, 군더더기 없이 내놓은 결과겠죠. 흑연을 높은 열과 압력으로 가공해 만들어낸 검은 다이아몬드 같은, 송곳 끝 같은 결과물.


윤석원 작가가 이번 전시작 중 가장 인상 깊은 작품으로 추천한 박현성 작가의 ‘우연의 무게’, 천 염색 및 혼합재료, 2020.
어디서도 쉽게 들을 수 없는 이야기예요! 2인전을 제안받았을 때 작가님과 제가 다루는 매체는 다르지만 결이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관계’에서 피어나는 감정에 대한 작업을 주로 하는데, 윤석원 작가님 작품에서도 그런 게 읽혔거든요. 먼저 제 이야길 하면요, 저는 시시각각 변화하는 감정에 확대경을 대고 관찰하고 기록해요. 거기서 파생하는 관계를 시각화해요. 주체는 ‘나’로 고정되어 있지만 객체는 제한이 없죠. 우리는 모두 타자가 될 수 없고, 타자 또한 내가 될 수 없는 외로운 존재, 서로의 거리가 제로가 될 수 없는 존재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거리를 좁히려 발버둥치고요. 관계라는 바다에서 유영하며 살아가야 하니까요. 관계는 그래서 아름답고 고통스럽죠. 저는 그 관계 속 가장 깊게 숨은 것을 관찰하고 드러내 보이려 해요.

제 작품 속 관계란 이런 거죠. ‘지금 당장 함께 있지 않아도 서로를 존재하게 만드는 관계’. 많은 이가 아늑한 자기 방에서 여행을 꿈꾸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다른 음식 이야길 하잖아요. 손안에, 눈앞에 없는 무언가를 또 갈망하죠. 욕망이 만들어내는 대비의 관계는 서로를 이끌어내고 순환하는 방식으로 대상을 존재하게 하죠. 제 작품 속에는 그런 관계가 존재해요. 안과 밖(‘잠수함’ 연작, ‘판문점 풍경’), 산 것과 죽은 것, 예전 사람과 현재 사람(‘사람과 사람들’ 연작). 그런데 그렇게 대비적인 요소가 한 화면에 병치되는 게 아니라 서로 다른 캔버스에, 한 시리즈의 작품 속에, 또는 긴 작업 여정에 담기죠.

작가님은 관계의 양상이 어떤 시대, 특정 상황을 만나 제한되는 순간을 기록하는 것 같아요. 그 관계성에 주목하는 것 같고, 그런 작가의 시선을 통해 위로를 건네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이번 전시작 중 ‘Window’가 특히 인상적이었어요. 처음엔 햇빛에 반사된 바다 풍경을 그린 그림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1927년에 지은 병원 건물 창문의 은박 발포 포장지 틈으로 강한 빛이 들어온 풍경이라는 걸 작가님 설명을 듣고 알았죠. 윤석원 작가님은 관찰하는 사람으로서 군더더기 없이 객관적 사실만 제게 전달했지만, 관객이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을 남겨뒀다고 해야 할까요, 그래서인지 그 속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떠올려볼 수 있었죠.


한동안 생을 마친 마른 식물을 그리던 윤석원 작가는 이후 인위적으로 식재한 관엽수를 그렸다. 식물 사이 빛줄기를 따라가는 눈길은 여전히 아름답고 쓸쓸하다. 윤석원, ‘Light and Matter_Space 004’, oil on canvas, 90.9×72.7cm, 2023.
저는 이번 박현성 작가님 전시작 중 ‘우연의 무게 2020’이 참 좋았어요. 작가님의 설치 작품은 짝을 이루거나 호응을 이루는데(많은 작품의 제목이 ‘우리가 나눈 주름’ ‘마지막 포옹’ ‘약점을 다듬다’ ‘닿지 않은’처럼 두 대상이나 상태의 관계성을 담고 있고, 힘의 팽팽한 역학 관계를 보여줘요), 이 작품은 막대 하나가 바닥과 천장에 의지해 서 있더군요. 어딘가 홀로 있는 듯 보이는데, 상대 없이 혼자 서 있는 게 대견스럽습니다. 분명 어떤 상대와의 관계가 있었을 텐데 그 이후에 홀로 저리 서 있는 게 과연 우연으로 생긴 일일까 많은 궁금증과 생각을 불러일으켰죠.

놀랍도록 세밀한 해석에 감사할 따름이에요. 독일에서 귀국을 결정한 후 많은 것과의 이별이라는 주제로 작업했어요. 마지막이라는 극적 상황은 모든 감각을 총동원해 그 시간과 체온까지 기억하게 만들죠. 하얀 천을 검은 물감으로 적셔 번지게 하고, 천을 말고, 늘어뜨리고, 캔버스 프레임 안과 밖을 뜨개질하듯 엮고… 그렇게 만든 작품이 ‘마지막 포옹’이에요. 이번 전시에서는 ‘마지막 포옹(The last hug)’과 ‘우연의 무게(Weight of the coincidence)’를 변주한 신작을 새롭게 선보일 거예요. 무거워 보이는 이 거대한 매듭은 사실 아주 가벼워요. 가볍기에, 비워냈기에 더 꽉 매듭지어질 수 있죠. 관계성에서 피할 수 없는 무게라는 담론을 이별이라는 주제를 통해 나타냈어요. 윤석원 작가님은 작업의 스펙트럼이 워낙 넓은데, 특별히 이번 전시작 중 한 작품만 꼽아주신다면요?

‘The Day/그날’요. 젊은 시절 동료들과 함께한 술자리 장면과 연결된 그림이에요. 물론 지금은 흩어져 다들 각자 생활을 꾸려가는 터라 자주 보지 못하고, 연락이 끊긴 이도 있어요. 정확한 날짜도 기억나지 않지만 그날의 공기와 얼굴 표정은 생생합니다. 관계는 언제든 사라질 수 있지만 함께 나누던 이야기와 그날의 기억을 오늘에 붙여 살아가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바로 <어저께의 나머지에 오늘을 붙여> 말이죠.

글 최혜경 기자 | 인물 사진 이우경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3년 9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