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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홍천 석천학당 고전에서 찾는 '흥'나는 법칙
돌처럼 샘처럼, 그저 그렇게 살자는 이름의 학당이 있다. 서울에서 두 시간 정도 떨어진 이곳에는 한 달에 한 번씩, 1백60여 명의 학생이 모여 동양철학 책을 편다. 단순히 공자 왈 맹자 왈 하는 게 아니다. 박재희 훈장의 고전 교육에는 언제나 새롭고 즐겁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 담겨 있다.

층고가 높은 2층 규모의 석천학당 건물. 한때는 궁궐을 든든히 지켰을 육중한 문을 가져다 대문으로 삼았다. 그 밖에도 골동 가게에서 찾은 여러 사물이 한데 모여 이곳만의 기운을 자아낸다.

학당 안에는 태풍으로 인해 산에서 마을로 밀려 내려온 거대한 돌과 워커힐 호텔 가야금홀 공연장에서 쓰던 북이 놓여 있다. 야닉 선생과 박재희 훈장의 열린 사고로 가능한 인테리어이다.

낡지 않는 비결: 세상을 재해석하다
박재희 훈장은 어려서부터 할아버지에게 한학을 배웠고 자연스럽게 성균관대학교 동양철학과에 진학하며 한평생 고전의 지혜를 연구했다. 그 후 EBS <손자병법> 특강을 진행하며 ‘국민 훈장’이란 타이틀로 알려졌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 포스코전략대학 석좌교수를 거쳐 지금은 석천石川학당을 이끌고 있다. “누군가는 제가 비주류의 길만 걸어왔다고 볼 수도 있어요. 남들이 잘 가지 않는 학과를 택했고, 대학 졸업 후 중국 유학도 다녀왔지만 대학 정규직 교수로 평생 일하지는 못했잖아요. 하지만 낭랑자객처럼 기업과 국가기관부터 시골 마을회관까지 돌아다니며 다양한 계층, 직종의 사람을 만나고 그들의 고민을 듣던 시간이 제 자산으로 남아서 고전을 지금 시대에 맞춰 재해석할 수 있게 하는 거라 생각해요.”

세상의 시선이 어떠한들 내가 즐거우면 주류가 된다는 박재희 훈장. 그가 전하는 인문학 공부의 목적은 개인이 지닌 경계를 부수는 데 있다. 석천학당의 학생들은 옳고 그름을 나누는 틀을 없애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게 된다. 박재희 훈장은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도 고전을 전할 방법을 마련했다. 앞으로 진행할 ‘어린이 까치 서당’의 대상은 초등학생. 도포와 갓을 갖춰 입고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고전을 성독聲讀한 아이들은 자존감이 높아질 뿐만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성을 깨우치게 된다. 첫 번째 기수의 수업을 진행해봤더니 하루 만에 훌쩍 성숙해져 돌아온 아이의 모습에 학부모의 반응도 무척 좋았다고. “계속해서 많은 사람이 석천학당에 와서 공부하 고, 다음 세대로도 이어졌으면 해요. 버려진 재료로 지은 공간에서 우리만의 방식으로 고전 철학을 소화하다 보면 내 삶도 세상과의 관계도 고여 있지 않고 계속해서 흐르게 될 거예요. 이곳은 앞으로도 결코 시대에 뒤처지거나 낡지 않을 겁니다.”


석천학당 1층의 모습. 정규 수업이 열리는 날에는 이곳이 1백 60여 명이 앉을 수 있는 교실이 된다.
2층 벽에 걸린 사진가 준초이의 반가사유상 작품. 작품에 표구를 맞춘 것처럼 건물 여백에 딱 들어맞는다.
이상한 나라의 고전 학당
석천학당의 시초는 27년 전 마포 평생학습관에서 진행한 <명심보감> 강의. 그 후로는 건국대학교 법학관을 빌려서 모이기도 했고, 코로나19가 퍼지며 갈 곳이 없어지자 장락산 들판에 둘러앉아 수업하기도 했다. 그러다 2년 전, 박재희 훈장은 머릿속에 있던 청사진을 실현하기로 결심한다.

“2015년에 바닥 공사를 하고 잠시 멈춰 있었는데, 코로나19가 시작되며 당장 수업할 곳이 없게 되었어요. 에잇 인생 뭐 있나, 그동안 모아둔 돈 쏟아 부어서 학생들 마음 편히 모일 수 있는 공간이나 만들자 싶더라고요. 절친한 예술가 야닉yanik 황산 선생이 설계도도 없이 이렇게 저렇게 짓자고 구상해주었고, 저도 함께 공사를 했습니다.”

배움을 향한 순수한 열정으로, 한 번 시작하면 오래도록 이어지는 석천학당의 인연.
그렇게 완성한 학당 건물은 처음 보면 조금 이상하다 느낄 만큼 생소한 모습이다. 절집의 기둥, 각종 동물 석상, 거대한 북, 앤티크 촛대와 전봇대, 새빨간 캐비닛 등 저마다 사연이 있는 요소들이 만나 시공을 초월한 감각을 전하기 때문이다.

“학당으로 들어가는 대문은 아주 오래전 환구단을 공사할 때 버려진 문이었을 거예요. 양평 고물상 창고에 오랫동안 묻혀 있다가 제 눈에 들었죠. 내부에 세운 거대한 비석은 태풍이 왔을 때 산에서 마을로 밀려 내려온 걸 끌고 와서 꽂았고요. 커다란 북들은 워커힐 호텔에서 가야금홀 공연장을 폐쇄할 때 기증받았어요. 2층에 올라가면 준초이 작가가 촬영한 반가사유상 사진이 걸려 있습니다. 그분 말씀에 자기가 작품을 걸어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 곳이 여기가 처음이래요. 일부러 공간을 마련한 것처럼 신기하게 꼭 들어맞더라고요.”


석천학당에서 5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자리한 박재희 훈장의 자그마한 오두막집. 우거진 산속에 자리하고, 뒤쪽으로는 시냇물이 흘러 무척 고요하다. 과거에는 이곳 마당에서 수업을 하기도 했다.
“이 세상 많은 것을 이해하게 됐어요. 훈장님께 배운 걸 바탕으로 내가 잘못하는 일이 있을 때 참작하죠. 요즘은 ‘공성신태功成身退, 즉 성공을 이루었으면 몸은 후퇴해야 한다’는 말을 되새기고 있어요.”_ 27년간 함께한 최장기 수강생 차정호(주부)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맛있는 것을 함께 먹고, 훈장님 말씀도 들으며 잠시 몸과 마음을 쉬고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갖습니다. 훈장님 수업은 오래 들을수록 내용이 축적되어 저절로 실천으로 옮길 수 있게 돼요.”_ 최고령 수강생 89세 홍갑표(중남미 문화원 이사장)


제주탐나라공화국의 강우현 대표가 직접 ‘석천’의 의미를 써준 현판.
즐기며 살자, 얼쑤!
매월 넷째 주 토요일에 고전 철학 오프라인 수업이 열릴 때면 학당 안에 의자가 빼곡히 놓인다. 1년에 고전 책 한 권을 정해 수업을 진행하는데, 2022년에는 <중용>을 함께 공부하고 있다. 이곳으로 오는 학생 약 1백65명은 11세부터 90세까지, 초등학생부터 기업 회장까지 다양하다. 하지만 여기서 직업, 나이, 출신 학교를 묻거나 밝히는 것은 금지. 공부하고자 하는 순수한 열정만이 중요하다. 박재희 훈장 역시 순수한 마음으로 보답한다. 그는 정규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 강사료를 받지 않는다. 1년 치 등록금 15만 원은 학당 시설을 운영하는 데 쓴다.

박재희 훈장과 석천학당의 학생들은 끈끈한 애정과 의리로 대부분 10년 이상 함께해오고 있다. 그중에는 마포 평생학습관부터 지금까지 27년 동안 함께해 온 사람도 있다. “석천학당에서는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내세가 아닌 현세에서, 미신이 아닌 철학으로, 이념이 아닌 마음으로, 자본이 아닌 사람으로, 타율이 아닌 자율로, 공부하자 공부하자 공부하자 풍류!’라는 구호를 외쳐요. 여기서 풍류는 최치원 선생의 말씀처럼 바람처럼 살자는 뜻입니다. 내 마음이 따르는 대로 나답게 즐겁게 살자는 거죠.”

2층 훈장실. 사람들이 쓰지 않는 책장과 의자 등 가구를 모아 집필 공간을 꾸렸다. 그의 베스트셀러들이 이곳에서 탄생했다.
박재희 훈장이 말하는 ‘흥본주의’의 시작이다. 그는 2016년에 뉴욕과 런던을 여행하면서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낀다. 세상에서 가장 멋있다고 알려진 도시에 왔는데, 모두가 너무 지친 모습이었던 것. 그는 전 세계 사람에게 사는 기쁨을 일깨워줄 방법을 동양 고전 속에서 찾았다. “<논어>에서 가장 수준 높은 단계의 삶을 ‘락지樂之’라 했어요. 남과 경쟁하지 않고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걸 한다면, 어느 자본가보다도 풍족한 삶을 살 수 있을 거예요.”

박재희 훈장은 앞으로 석천학당의 영역을 조금씩 넓히며 이곳을 하나의 인문학 마을로 일궈보려 한다. 고전뿐 아니라 다도, 어린이 예절, 요가 등 다양한 체험을 통해 ‘인문학적 샤워’를 할 수 있는 곳이 될 것이다. 10월 20일부터는 하나의 주제에 대해 토론하고 자신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원데이 인문클래스(매주 목요일)와, 야닉 선생이 직접 만든 커피와 빵을 먹으며 인문을 공부하는 인문커피앤브레드 원데이 클래스(매주 수요일)가 열릴 예정이다. 고전에 관심이 생겼다면, 우선 이 원데이 클래스를 통해 인생의 참 행복을 찾기 위한 여정에 첫걸음을 내디뎌보자.

석천학당
주소 강원도 홍천군서면 한서로 283
수업 문의 010-4743-5824(황성원 간사)


행복교실 
석천학당으로 떠나는 당일치기 인문 여행
노자 말씀으로 나답게 사는 길을 고민하고, 홍천 장락산을 산책한 후 학당에서 직접 볶은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도 나눕니다.

일시 10월 27일(목) 오전 10시~오후 4시
장소 석천학당(개별 집결)
참가비 11만 원
신청하러 가기 http://www.designhouse.co.kr/classtour/view/908

글 박근영 기자 | 사진 이기태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2년 10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