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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선화 생명과 평화의 길 상임이사,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마른 땅을 벗기면 젖은 흙이 나온다
창덕궁 옆 원서동에 있는 문화 사랑방 ‘싸롱 마고’에 가는 날, 복이 있는 사람은 이곳에서 사단법인 ‘생명과 평화의 길’ 나선화 상임이사를 만날 수 있다. 상냥하고 친절한 언니 같은 그는 ‘소통과 교접을 주관하는 마고할미’를 자처한다. 그는 마고할미가 되기 위해 35년 동안 근무하던 직장에 사표를 냈다.


1 원서동 창덕궁 옆에 있는 ‘싸롱 마고’는 원불교 서울교구(교구장 이선종 교무)에서 장소를 제공해주었다. 원불교 서울교구에서 운영하는 은덕문화원이 6월 개원하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서로 공유하게 될 것 같다. 원불교 서울교구에서 사진을 촬영했다.
2 제자가 가져온 들풀을 기왓장에 옮겨 심은 화분이 ‘싸롱 마고’에 놓여 있다.
3 ‘싸롱 마고’에 앉아 있는 나선화 상임이사.

예순을 앞두고 시작한 인생 2막
나선화 상임이사는 이화여대 사학과에서 고고미술사를 전공하고 이화여대박물관에서 일을 시작했다. 꼬박 35년 동안 박물관에 재직했다. 그가 재직하는 동안 박물관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박물관 소장품 전산화 작업을 마쳤고, 박물관 건물을 신축했고, 귀한 유물들을 기증받았다. 도자 전문 박물관이라는 ‘고유의 빛깔’도 가질 수 있었다. 학예연구실장으로 근무하던 그가 사표를 제출하자 이해하지 못하는 지인들이 있었다.

대개 은퇴를 준비하는 나이에 인생 2막을 시작하시니 참 용감하시네요. “정년까지 가지 않는다고 해서 큰일이 나지는 않아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30년 전과는 모든 것이 달라져서 스스로의 선택으로 방향을 잡아야 하지 않을까요? 과학의 발달로 인간의 수명이 길어졌으니 제 인생도 3모작을 해보는 게 좋겠다, 생각했어요. 또 나이가 들면 체력이나 사고의 폭이 바뀌잖아요. 지금까지 제 인생의 1모작이 박물관인이었다면, 2모작은 동방문예부흥이라는 새로운 인류문명을 위한 시스템에 대해서 일을 하는 것이죠. 학교생활과 동방문예부흥이라는 선택 사항 중에서 동방문예부흥을 선택했을 뿐입니다. 저는 이 일이 더 재미있고 의미 있다고 생각한 거죠. 앞으로 30년 동안 이 일을 하다가 아흔이 되면 다른 30년을 이어갈 새로운 일을 찾을 거예요.

”아주 바쁘신 것처럼 보이는데 어떤 일을 하시는지요? “학교에서 나오기 전까지는 박물관 큐레이터로 전시를 기획하고 우리 역사 유적을 조사·연구·발굴하고, 강의하고, 책을 출판하는 일을 했어요. 지금도 그와 관련된 전문 영역의 일은 계속하고 있어요. 박물관 전시 기획자로서의 일, 우리 전통문화재를 보존·관리하는 방안을 탐색하고 실천하는 일, 문화재청 문화재위원으로 발굴 현장을 다니며 보존과 개발에 대해 논의하는 일 등이지요. 또 문화공간 건축학회 부회장도 맡고 있어서 우리나라 문화 공간의 건축을 어떻게 만들어가야 할지에 대해 사용자로서의 경험을 나누며 ….”진짜 많이 하시네요.(웃음) “그런 일을 모두 ‘내가 우주의 주인’이라는 그런 철학으로 해요.”

‘내가 우주의 주인’이라니요? “저는 모든 인간이 ‘우주의 주인’이라고 생각해요. (자기 자신의 주인이) 자기가 아니면 누가 주인이겠어요? 내가 주인인 이 우주를 어떻게 평화롭고 아름답게 만들 것이냐를 생각하지요. 이렇게 생각하면 단순히 내 생명, 내 몸을 편하게 하기 위해서 남의 것을 빼앗고, 다른 생명을 억압하는 일은 하지 않게 되지요. 집도 내가 주인일 때 아름답고 평화롭고 안락하게 가꾸잖아요? 내가 그 집의 주인이 아니라면 집이 썩더라도 안 고치죠. 스스로 이 우주의 주인이라고 생각하면 지구나 우주를 아름답고 평화롭게 가꾸는 데 노력하게 됩니다. (모든 생명이) 여기에 왜 존재하겠어요? 주인이니까 그런 것 아니겠어요?”

소통하면 평화는 저절로 이뤄진다
그가 상임위원으로 있는 사단법인 ‘생명과 평화의 길’은 김지하 시인이 이사장으로 있는 단체다. 그리고 ‘싸롱 마고’는 이 단체에서 운영하는 문화사랑방이다. 그는 김 시인을 7년 전쯤 만났다. 그의 역사철학관을 들은 한 지인이 김 시인을 만나보라 권유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생명과 평화의 길’이라는 이름은 ‘모든 생명체가 서로의 관계 속에 있고, 그 관계를 인식하는 상황에서는 저절로 평화가 이뤄진다. 동방의 고대 시스템에 생명과 평화를 지키는 길이 있다’라는 뜻이 함축되어 있다. ‘싸롱 마고’에서는 매달 둘째, 넷째 주 월~목요일에 방담 형식의 발제와 토론이 진행되는데, 동방의 고대 문명에 관한 흥미로운 주제들이 펼쳐진다. 그는 이곳에서 자신을 소개할 때 “마고할미입니다” 라고 한다.

마고할미는 어떤 분인가요? “신화 인물이라 기록이 많지 않아요.서양 그림에서 마고할미는 한쪽 다리가 남자고, 다른 한쪽 다리는 여성으로 표현돼 있어요. 고대 문헌 <부도지> 기록을 보면, 1만4천 년 전 인류 최초의 문명이던 마고성은 남녀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여성성 중심의 시스템이었어요. 마고할미의 여성성은 일종의 모성이라고 생각하면 되죠. 어머니는 여러 자녀의 특성을 알아서 골고루 분배하며 어느 하나만 특별히 보호하며 키우지는 않잖아요. 아이들을 고루 잘 먹이고 잘 자라게 하는 그런 모성성으로 공동체를 순환시키면서 평화 공존하는 이상적인 시스템이었어요.”

마고할미의 모성을 보여주시는 건가요? “마고할미의 역할 가운데 개체와 개체, 동네와 동네, 분야와 분야, 장르와 장르를 소통시키는 것이 있어요. 저는 이 역할을 소중히 여기고, 싸롱 마고에서 하고픈 것도 소통의 마당을 만드는 거예요. 소통의 장을 마련하고 소통을 주관하는 것이죠.”

소통이 뭔가요? “서로 간의 벽을 헐어내는 일이죠.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는 선입견이 담장이 될 수도 있고, 서로 다른 개성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기도 해요. 소통은 서로 정보를 교환하고 문물을 교환하는 겁니다. 아시아 문명과 태평양 문명이 융합되어 다가오는 신문명을 예견하며, 미술과 철학이 만나고 전통과 현대가 만나 역동성이 있는 새 문화를 창출해나가게 하는 게 마고할미의 역할 중 하나인데, 그것을 지금 하고 싶은 것이죠. 소통은 평화의 바탕이라고 할 수 있어요. 잘 알고 지내고 소통이 되면 적이 될 수 없잖아요. 잘 모를 때 적이 되고, 싸움이 나지요. 소통이 되면 평화는 그대로 존재하게 돼요. 다툼이 있다 하더라도 금방 해결되고요.”

무관심한 것도 겉으로는 평화롭게 보일 수 있지 않을까요? “무관심은 평화가 아니지요. 관심이 없는 것은 상대방이 죽어도 몰라라 하는 것이에요. 소통이라는 것은 서로 상대방의 모든 것을 이해하는 관계에 있는 거죠. 저 사람이 어떻게 사는지, 아프지는 않은지 살피고 아플 때는 얼른 약이라도 가져다줄 수 있는 게 소통 아닐까요? 무관심은 단절입니다. 최근 미국에서 일어난 조승희 사건도 결국 그런 것 아니겠어요. 그 사람이 아픈데, 얼마나 아픈지 몰랐던 거죠. 그래서 그 사람은 더 정적으로 되고, 생명이 생명을 손상시켜 결국엔 평화가 깨진 것이죠.”

소통을 잘 하시겠지요? “제 개인적인 이야기를 한다면, 우리 이화여대박물관에서 제 2년 후배하고 30여 년을 거의 같이 있었어요. 그런데 단 한 번도 둘이 다투지 않았어요. 그것은 저의 소통력 때문이 아니고 그 사람의 폭넓은 이해력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저에게는 이것이 최고의 자랑이에요.”어떻게 그럴 수 있지요? “일을 위해 티격태격한 적은 있어도 그것이 싸움이나 갈등으로 되지 않았어요. 서로가 서로를 침해하는 결과로 나타난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그것은 그 사람의 가치관과 저의 가치관이 거의 같은 것이었고, 가치를 공유했고, 모든 정보를 소통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평화가 되었던 것이죠. 사람들이 제게 ‘너는 어떻게 했는데?’라고 물을 때, 저는 이렇게 얘기해요.”

이름을 ‘싸롱 마고’라고 한 것에는 의미가 있나요? “2~3세기의 고대 그리스 문명을 다시 부활시킨 16세기의 서양 르네상스가 인류의 물질문명을 풍요롭게 해주었습니다. 그때 다양한 분야의 많은 사람들이 얘기를 나누면서 사상과 전문지식을 공유했던 곳이 살롱이에요. 그런데 (서양 르네상스) 역시 물질문명의 풍요로움과 함께 정신문명을 황폐하게 하는 세상을 오게 했고, 폐단도 많이 생겼어요.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새로운 시스템을 개발해야 하는데, ‘어떤 시스템이 좋을까’ 하고 찾아보니 동아시아의 고대 시스템이 이상적이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어요. 동아시아의 고대 시스템이 정신문명을 윤택하게 하는 것이었다고 시인 김지하 선생님과 영적으로 뛰어난 연구자들이 얘기하고 있어요. 20세기 산업사회의 폐단이 이끈 절벽 위에서 동방 르네상스를 통해 생명의 돌파구를 찾자는 얘기예요. 우리의 동양 문명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시스템이 인류문명을 풍요롭게 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어요. 그래서 영적인 개발도 필요하고, 쉼을 통해 각성도 필요한 것이고요.”말씀이 좀 어렵네요. “그래서 미니 아카데미를 열고 우리 동양 고대 전통에 대해 얘기하고, 실행해 보자는 것이죠. 한국 전통에 어떤 미래적인 가치가 있는지, 일반인과 전문가가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미래 가치를 개발하자는 거예요. 고대 네트워크를 보며 우리 민족의 네트워크가 얼마나 광범위했는지, 여러 나라와 어떻게 평화 공존했는지를 배우고 그것을 통해 새로운 미래를 설계하고 구축하자는 거예요.”

동방 르네상스, 미래 문명의 돌파구
땅속에서 꺼낸 과거 유물을 살피는 고고미술사학자. 유물을 대하는 일이 신비롭고 흥미롭다는 점을 영화 <백 투 더 퓨처>를 통해 맛보았지만, 나선화 상임이사의 이야기를 들으니 더욱 신비롭게 느껴진다. 그는 ‘어느 학과를 선택할까요’ 하며 손가락을 꼽아보는 방식으로 대학 전공을 선택했다고 한다. ‘사학과가 답사를 다닌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어 ‘유적 답사 다니며 재밌게 놀아야지’ 라고 생각했고, 실제 열심히 답사 다니고 학교생활도 즐겁게 잘했다. 이화여대박물관에 근무하는 35년 동안에는 전국 방방곡곡 안 다닌 데가 없고, 고구려·발해 및 아시아 유적지를 답사 다니며 우리 문명의 시원을 찾아 헤맸다.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그가 가장 많이 한 것은 ‘여기저기 탐색하는 일’.

살아오는 동안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분은 누구인가요? “우리 선생님인 것 같아요. 지금 구순이신 진홍섭 선생님이요. 절대로 권위적이지 않고, 인간의 제도가 만든 자리를 탐하지 않고, 그런 자리에 나서려 하지 않으셨어요. 아주 학같이 고고하고 항상 공명정대하셨죠. 그리고 우리 고모부가 계세요. 그분은 역사 전공자도 아니고 그저 기업인이었는데, 고구려·발해의 역사 유적지에 관심이 많으셔서 우리 학자들이 답사할 수 있도록 10년간 후원해주셨어요. 고모부 후원으로 고려학술문화재단의 교수들과 함께 고구려·발해 유적을 매년 두 차례씩 다녔어요. 그리고 가장 많은 시간을 같이한 박물관의 동료들, 새로운 문명을 향한 길을 안내한 김지하 선생님 등입니다.”

고고미술사학자로 일하는 즐거움은 무엇인가요? “우리가 늘 밟고 다니는 땅속에서 인간의 어떤 숨결을 찾아낸다는 게 가장 큰 즐거움이었어요. 지금 시대에 살지 않는 사람과의 교류와 교감, 다른 사람에 비해 폭넓게 살 수 있는 것이 복된 일이라고 생각해요.”

발굴을 하면 어떤 점이 좋은가요? “발굴조사를 할 때는 자연과 호흡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요. 바람, 숲, 나무, 땅 등을 접하면 새로운 에너지로 활발해진다는 느낌이 들어요. 저는 발굴현장을 많이 다녀서인 과거와 현재의 구분이 거의 없어요. 다 똑같은 방식으로 살거든요. (현대인들도) 과거 사람과 똑같은 방법으로 땅을 파헤치면서 흔적을 찾아내는 것은 미래의 꿈이기에 흥미롭지요.”

어떨 때 행복하세요? “다른 생명력이 환하게 꽃필 때 저도 그걸 보면서 행복한 것 같아요. 그러니까 나무가 아주 싱싱하게 잘 자라 있든지, 꽃이 아주 아름답게 만발해 있든지, 함께하는 사람이 자기 창의력과 생명력을 확 뿜어내서 자유로움을 보여줄 때 행복하죠.”

최근 행복감을 느낀 적은요? “아파트를 짓겠다고 구릉을 막 깎아 내리잖아요. 그러면 그 속에서 청동기시대, 삼국시대, 고려시대 또는 조선시대의 어떤 사람들이 쓰다 남긴 질그릇이나 사금파리가 드러나요. 그럴 때 그쪽 사람하고 저하고 교감이 일어나면서 굉장히 즐겁죠. 마르지 않은 흙냄새가 나는 집터를 봤을 때, 굉장한 생명력을 느껴요. 그리고 그걸 통해 저도 생기가 돌아요.”

어떤 느낌인지요? “살아 있는 걸 느껴죠. 마른 땅에서는 죽은 것 같은 느낌이 들잖아요. 그런데 생명이 심어져 있지 않은 마른 땅의 거죽을 벗기면 축축한 땅이 나오고, 그 땅에서 옛사람들의 흔적이 드러나죠. 지금은 없는 사람이지만, 생명적인 존재를 느낍니다. 그 즐거움이 행복감이겠지요.”

땅속에 생명력이 있다고요? “젖은 땅에 있다고 봐야지요. 다른 생명력이 거기에 기생해서 살았던 흔적이잖아요. 땅의 기운과 인간의 기운이 합쳐져서 만들었던 기운을 수백 년이 지나 다시 느끼게 되니, 제가 그 세계의 기운을 공감하는 거죠.”

고구려·발해 지역 유적지 답사도 많이 하셨는데, 역사와 관련해서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점은 무엇일까요? “해방 이후 남북으로 분단되면서 북방족임에도 불구하고 아시아 북방대륙에 접근하지 못한 점이에요. 우리 문화를 구성하는 90% 이상이 아시아 북방대륙 문화의 특성이 있어요. 그런데 분단 시간이 60년에 이르자 우리 스스로 우리 민족의 구성 요소, 기원, 환경을 잊어버렸어요. 일종의 섬나라가 되어 남한에 갇혀 살면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생각하지 않았지요. 저 같은 경우 고구려·발해 유적을 답사하면서 ‘우리의 역사 영역과 정신 문화 영역이 이렇게 방대했구나, 우리는 동쪽 끝에 머물러 있는 민족이 아니구나’ 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저는 젊은이들이 서유럽보다 중앙아시아와 만주 벌판으로 답사를 다니며 우리 민족의 흔적, 역사·문화의 영역을 접하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그런 일을 하는 것도 저희 사업의 하나예요.”

부모와 자녀가 함께 여행하기에 좋은 곳을 추천해주신다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와 북쪽에 있는 우수리스크 일대만 해도 발해 시대의 유적이 굉장히 많아요. 천 년 전의 성터가 엊그제 비워놓은 것처럼 자연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어요. 가족끼리 이곳을 여행한다면 호연지기도 키우고, 강가에서 자연과 대화할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연해주 동쪽 끝 해안가에는 페트로프 섬이 있는데, 이곳에 가면 옥저시대부터 발해시대까지의 동해 바닷길을 접할 수 있어요. 저는 ‘나의 기원’ ‘자아의 발견’, 이런 걸 위해 실크로드와 연계되었던 다양한 문명권 여행을 다녀오는 것을 적극 권하고 싶어요. 그러면 많은 걸 보게 될 것이고, 보다 많은 걸 느끼게 될 것이고, 미래의 가장 이상적인 시스템이 무엇인가 하는 것도 일일이 설명하기 전에 깨달을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나이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신체 연령 아니겠어요.”예순이라는 나이는요? “한 단락 찍고, 이모작을 시작할 수 있는 나이.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나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환갑을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행복은요? “글쎄요, 제가 생각하는 행복은 자유로움과 편안함이라고 생각해요. 모든 생명이 다 자유롭고 편안하고 마음대로 소통하면 좋은 세상이다, 그렇게 생각해요.”
그 말씀을 ‘내가 우주의 주인’이라는 말씀과 연결해 설명해주신다면… . “내가 행복하면 다 행복해지는 거죠. 어느 풀포기 하나가 예쁘게 자기 빛깔을 발하면 그 들판이 다 예뻐져요. 내가 예뻐지면 지구도 예뻐지고 다른 사람도 모두 좋아집니다. 자기가 즐겁고 자기를 예쁘게 하는 역할만 하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구태여 남을 예쁘게 하려 고 아우성칠 것 없다고 봐요. 제가 바뀐 게 있다면, 예전에는 (학생들에게) 야단을 쳤다면 지금은 권유를 하는 것이지요.”

* 전문가와 일반인이 함께 방담 형식으로 대화하고 토론하는 ‘싸롱 마고’의 미니 아카데미는 매월 둘째·넷째 주 월~목요일, 넷째 주 금요일 저녁에 열린다. 주제는 요일마다 각기 다른데 생명관(월), 대중예술과의 만남(화), 전통문화의 미래 가치(수), 한류(목), 동방 르네상스(금) 등이 넓은 테두리. 부정기적으로 열리는 토요일 아카데미는 ‘동양 고대 문화의 네트워크’를 주제로 한다. 남아 있는 5월 주제는 연세대 사회교육원 이병숙 교수의 ‘질서는 아름다움의 시작인가?-궁중자수의 가치’(5월 23일), 서울대 윤이흠 명예교수의 ‘왜 아리랑인가? 한국인의 정체성’(5월 24일), 김지하 시인의 ‘동방문예부흥에 관하여’(5월 25일) 등이다. 참가비는 1만 원. 문의 02-747-3152, www.margot.co.kr

한국 도자 역사의 진정한 주인공은 ‘옹기’
그는 대표적인 옹기 전문가다. 그도 우리처럼 학교 교육을 통해 ‘청자, 백자가 최고’라고 배웠지만 서양 연구가들이 청자·백자가 아니라 옹기에 관심 갖는 것을 보고 관심을 갖기 시작해 깊이 연구하게 되었다. 옹기에는 한국적인 정서, 삶의 역사, 역사·예술적 가치가 담겨 있다. 우리 도자 역사는 신석기 문명부터 최근까지 만 년 동안 이어지고 있는데 그중 가장 긴 역사를 자랑하는 것이 옹기이다. 가장 큰 특징으로는 계층과 지역에 구분 없이 가장 널리 쓰인 점이 꼽힌다. 그리고 세계 도자 역사에서 볼 수 없는 ‘실외 도자기’라는 독특한 장르에 속하는 점도 독보적이다. 그는 옹기의 장점으로 ‘발효 음식을 만드는 도기’ ‘깨진 조각을 버린 땅에서 식물이 자라는 점(청자나 백자 같은 자기는 흙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물을 흡수하지 못한다)’ ‘단순한 디자인과 현대적인 색감’ 등을 꼽는다.

김선래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7년 6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