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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정재은 소복소복召福召福
‘집사람’으로, ‘대사 부인’으로 살다 늦깎이 작가로 성장 가도에 선 화가 정재은. 위에서, 옆에서, 앞에서 각각 뜯어봐야 그 모습을 드러내는 인생처럼, 찬찬히 뜯어봐야 제맛을 드러내는 민화를 그린다.

빛이 들어오는 양에 크게 구애받지 않아 그림 그리는 데 최적인 북향 아파트를 작업실 겸 집으로 삼았다. 

정재은 작가는 이화여자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했습니다. 2016년과 2017년 대갈현대민화공모전에서 장려상과 우수상을 수상했습니다. (프랑스 옹플뢰르), <작지만 큰 기쁨>(최정아갤러리), <좌도우서 기획전>(단원미술관), <책에서 피어난 그림, 책거리전>(국립중앙도서관), <Minwha_Chaekgeori de la beaute des livres>(프랑스 파리문화원), <소복소복>(최정아갤러리) 등의 전시를 열었습니다.

공중목욕탕 거울에 자신을 비춰보는 것만큼이나 불편한 진실은 낡아가는 내 안의 나를 바라보는 것이다. 아침이면 어김없이 밥을 하고 남편과 아이를 챙기는 것, 그것이 마치 이번 생에 꼭 풀고 가야 하는 무엇인 것처럼 살다가 문득, 내안의 어떤 훼손 또는 공백이라고 부를 만한 것을 발견한다. 내 이름이 뭐였지?

화가 정재은. 이화여대 서양화과를 나왔으나 그림 그리는 꿈을 접은 채 결혼하고, 아이 낳고, 가끔은 부부 싸움으로 기운도 빼며 ‘집사람’으로 살았다. 그의 남편은 한국계로 미 외교 분야 최고위직에 오른 성 김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다. 그리고 그는 30년 가까이 외교관 남편을 내조하는 건전 모범 주부로, 자식 일에 노심초사하는 모정 각별한 엄마로 살았다. 궂은일만 도맡는 대사 부인이라고 ‘무수리’란 별명을 들어가며 살다 40대 후반에 붓을 다시 잡았다. 당시 남편은 주한 미국 대사 임기를 끝내고 미국으로 돌아갔고, 둘째 딸의 입시를 위해 모녀만 서울에 남은 참이었다. “뭘 좀 배우고 싶어서 예술의전당 한국화 수업을 듣다 <행복이 가득한 집>이 나유미 선생님과 연 민화 강좌에 등록했어요. 서양화를 전공했지만 회귀 본능인지 점점 시선이 안으로 향하더라고요. 무엇보다 순지나 옻지의 강인함(캔버스와 달리 물에 빨아도 그대로인), 배합 비율이 안 맞으면 종이에 붙지도 않는 그 예민하고 까다로운 분채 물감이 제겐 매력적이었어요. 분채 물감을 잘 달래 묵직한 색감이 순지에서 ‘피어나도록’ 하는 작업도 좋았고요”

아이를 학교에 보낸 후 아무런 요구도, 책임감도, 자부심도, 변변한 작업대도 없이 식탁에서 무언가 끼적였다. 그렇게 자기 안으로 잠겨 들어갈 시간을 가지게 된 그는 ‘다시 그릴 수 있게’ 됐다. 그룹전에 작은 작품을 한 점 내고, 공모전에 출품하고, 그러다 상을 받고, 또 다른 그룹전에 낸 ‘일월오봉도’ 덕분에 영화미술 작업에도 참여했다(벌킨상을 수상한 류성희 미술감독이 제안해 영화 <나랏말싸미> 속 송강호 뒤에 걸린 ‘일월오봉도’와 교태전의 모란 병풍을 여러 점 그렸다). 그 후 눈에 띄는 그룹전을 여럿 치렀고, 쉰두 살이 된 2021년 첫 개인전 <소복소복>을 열었다. 그사이엔 당시 필리핀 대사이던 남편과 두 딸을 마닐라에 두고 서울 낙원동 작업실로 독립도 감행했다.

‘모란(Peonies)’, 옻지, 분채, 봉채, 먹, 119×35cm, 2021
“필리핀은 봉쇄가 너무 심하고, 그림을 그리지 못하니 속이 상해서 위장약을 달고 살았어요. 어느 날 두 딸을 앉혀놓고 ‘엄마가 여기서 스톱! 하면 후회할 것 같은데’ 했더니 ‘무조건 가라’ 하더라고요. 남편에겐 ‘나는 간다’ 통보했죠. 남편은 응원해줬고요. 낡은 북향 아파트에 세 들어 살면서도, 월세와 생활비는 스스로 해결할 요량으로 하루에 아르바이트를 네 개씩 하면서도, 근거 없는 불화설 때문에 가족에게 미안해하면서도 그릴 수 있다는 게 좋았어요. 7월 6일 입국한 날짜도 기억나는데, 2주 자가 격리 기간도 그림만 그릴 수 있어 좋더라고요.” 혹여 마음이 흐트러질까 소파 하나두지 않고, 오랜 시간 무릎 꿇은 은수자隱修者처럼 낡은 아파트에서 줄기차게 그림을, 아니 자신을 찾아가는 그. 단돈 몇 푼을 잃어버린 것은 금세 알아채면서도 본질적인 것을 잃어가는 데는 무감하던 우리에게, 내게 그 용감한 일탈이 무언가 속삭인다.

‘신 일월오봉도’, 옻지, 분채, 봉채, 먹, 46×38cm, 2018
이런 꿈, 우리도 꿀 만하지 않은가
‘안으로 열하고 겉으로 서늘옵게’. 내게 그의 그림은 이렇다. 형태나 구도는 전통 민화를 따랐으나 전반적으로 색은 채도가 낮고, 회색·청회색도 간간이 보인다. 꼭 들어가는 이끼 부분을 걷어내고 흑연으로 나뭇잎을 그린 모란도, 처음 보는 색지 위에 금은색 분채로 그린 일월오봉도(그가 원하는 색으로 종이를 물들여 쓴다)도 있다. 그를 앞에서 견인한 최정아갤러리 대표도, 첫 번째 개인전을 본 평론가들도 “정재은 작가만 풀어낼 수 있는 색”이라 평했다. 1월호 표지 작품 ‘책거리’를 볼까. 도상은 민화에서 많이 보아온 익숙한 형태인데, 색은 서늘하고, 톡 따낸 수박 한 조각이 소실점처럼 시선을 끌어모은다. 호랑이 털이 치날리는 터럭으로 겨누듯 화폭 주변을 엄호한다. “본래 민화가 그렇잖아요. 시점도 여럿이고, 틀에 얽매이 지도 않고, 풍자와 해학도 대단하죠. 시댁에 대한 원망을 담아 수박에 칼 꽂은 그림도, 지배층을 풍자하듯 까치 앞에서 옹동그린 호랑이 그림도 있잖아요. 현대미술처럼 난독증을 일으키지도 않고, 무엇을 소망하는지 당당히 드러내는 민화가 좋아요.”

‘책거리’, 옻지, 분채, 봉채, 먹, 57×27cm, 2021
‘정재은표 민화’는 쫀쫀하면서도 그윽한, 아귀가 딱 들어맞는 그림이다. 식자공이 활자를 뽑아서 만든 책처럼 한 획 한 획 공들인 티가 완연하다. 그의 말대로 “점이 쌓여 선이 되듯 시간을, 우연을, 운명을” 소복소복 쌓은 그림. “전시에 온 전문가들이 필력에 감탄하더라고요. 그동안 이걸 어떻게 참고 살았을까 싶을 정도로 에너지와 열정이 필력으로 분출하는 거죠. 재능도 있지, 열정도 있지, 그러니까 마구 달릴 수 밖에 없겠죠.” 그의 첫 개인전을 연 최정아갤러리 대표도 혀를 내두를 정도다. “한 2년만 나로 살아보자, 이런 각오로 가족까지 떨어뜨려놓고 왔는데, 시간이 이렇게 흘렀네요. 그림 그리면서 갱년기도 잘 넘어간 것 같고, 엠티 네스트도 잘 극복한 것 같고. 무엇보다 어디에 닿을지 모르지만 죽을 때까지 쉼 없이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는 게 정말 기뻐요. 90세 할아버지가 60대 때 영어를 안 배워둔 걸 후회하셨다잖아요.” 첫 개인전 제목은 소복소복召福召福. 뜻으로 풀자면 복을 불러내는 그림이요, 글자대로 말하자면 복이 무장무장 쌓이는 그림이다. 그림이야말로 그에게 복을 구하는 기도 아니었을까. 풍설의 시새움을 다 견뎌내고 개벽의 입김을 내뿜는 그의 그림 속 호랑이처럼, 우리도 이런 꿈 한번 꾸어보면 어떤가. 그처럼 우리도 꿀 만하지 않은가.

글 최혜경 기자 | 사진 이경옥 기자 | 취재 협조 최정아갤러리(0507-1429-5585)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2년 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