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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와 환경을 이야기하는 예술가 5인 지구에 무해한 예술 - 1
예술의 책무 중 하나는 지평을 열어젖히고, 아이러니를 파헤치는 것에 있다. 다섯 명의 예술가, 우리가 딛고 선 지구의 위기를 이야기한다. 때론 논쟁적으로, 때론 유쾌하게, 때론 첨예하게.

죽어가는 산호를 크리스마스트리처럼 표현한 ‘Blood Red Coral’. ©Mark Dion & Tanya Bonakdar Gallery

바라캇 컨템포러리에서 11월 7일까지 열리는 전시 풍경.

드로잉 ‘The Shrimp’. ©Mark Dion & Barakat Contemporary
환경·물질·인간의 관계성을 이야기하는 설치 미술가 마크 디온
인간이 자연에 저지르는 일은 되돌아옵니다

30년간 설치 미술가이자 생태 미술가로 활동한 미국의 마크 디온Mark Dion은 팬데믹 상황에서도 한국의 바라캇 컨템포러리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가구와 소품 등이 오래전 해양 연구소를 갤러리로 옮겨놓은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개인전의 주제는 ‘한국의 해양 생물과 기이한 이야기(The Sea Life of South Korea and Other Curious Tales)’다. “숲, 해변, 습지에 둘러싸여 자랐어요. 어릴 때는 들판이나 숲과 농장이 불도저에 의해 무너지고, 그곳이 쇼핑센터와 주택으로 바뀌는 과정이 그저 조형적으로 느껴졌어요. 하지만 성장하면서 그 이면에 경제적·세계적 관점의 무모한 파괴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환경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죠.” 한국의 남해와 서해에서 수집한 해양 플라스틱으로 구성한 설치미술 작품, 자연과 인간 문화의 관계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담은 조각과 드로잉 등을 전시한 공간은 관객 스스로 환경문제에 대한 의미를 찾게 하는 너른 바다와 같다.


“해양 쓰레기를 생물이 흡수하면 먹이사슬을 따라 우리가 먹는 바로 그 물고기에 도달하니 내게도 직접 전달되죠. 그러니 바다를 구하는 건 우리 자신을 구하는 거예요. 이렇게 전적으로 우리 이익에 초점을 맞춘 이기적 사고방식일지라도 우리는 야생 환경과 생물을 소중하게 여겨야 하며, 우리 삶의 본질에 환경을 파괴할 권리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해요.” 마크 디온은 저널리즘, 정보 매체가 메시지 전달에 집중하는 것에 반해, 예술의 커뮤니케이션 형식은 관객에게 스스로 사고하는 기회를 준다고 생각한다. 예술이 환경문제를 일깨울 수 있다고 믿는 이유다. “내 전시회는 생태 문제를 중심으로 하는 게 분명하죠. 하지만 독단적으로 논제를 제시하진 않아요. 일부 작품, 특히 큰 드로잉은 정보의 모순된 형태와 내용을 제시할 뿐입니다. 그러니 관객은 능동적 의미 구성자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스스로 환경에 대한 의미를 구성해보기를 바랍니다.”

김민정 취재 협조 및 자료 제공 바라캇 컨템포러리(02-730-1948)

물야나의 ‘심연 속으로’. 10월 17일까지 문화제조창에서 열리는 청주공예비엔날레에서 전시 중이다. 물야나는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도 한국 관객을 만났다.
코바늘 손뜨개로 바닷속 풍경 만드는 섬유 공예가 물야나
치유의 뜨개질

푸른 산호 사이에서 물고기를 잡겠다고 물갈퀴를 내젓는 인도네시아 반둥의 한 소년이 있다. 온몸이 녹아들 정도로 따뜻하게 일렁이는 바다, 소년 옆에서 헤엄치는 모구스·비올라·핑칸·조조 같은 해양 몬스터들. 사실 이건 인도네시아 예술가 물야나Mulyana가 창조한 상상의 세계다. 한 번도 잠수해본 적 없으나 오로지 상상력 하나만으로 광대한 바닷속 풍경을 코바늘 손뜨개질(크로셰 니팅)하고, 공간 속에 설치한다. “2008년, 인도네시아 국립교육대학교(UPI) 미술교육과에 들어가 처음 뜨개질로 모구스라는 몬스터를 만들었어요. 모구스 캐릭터가 대신 하는 제 이야기를 블로그에 올렸는데, 모구스는 저를 세상으로부터 은폐해주는 페르소나였죠. 또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하게 부추기는 존재였어요. 뜨개질이 제 삶의 치료제가 된 거죠.”


2010년부터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물야나는 이후 음악을 좋아하는 보라색 괴물 비올라, 정원 가꾸기를 좋아하는 녹색 괴물 조조, 장신구를 좋아하는 핑크 괴물 핑칸 등으로 상상 속 몬스터를 늘려갔다. “사실 개인적 삶의 치유를 위해 만든 우화 같은 풍경을 두고 사람들이 ‘해양 환경 보호’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라고 했을 때 처음엔 동의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모구스가 매개가 되어 사람들이 바다를 들여다보게 된다면 OK! ‘해양 환경보호를 주제로 활동하는 섬유 예술가’라는 설명도 OK! 심해의 수호자인 슈퍼 히어로 아쿠아맨 같잖아요. 저는 예술이 나 아닌 다른 존재를 위해 기도하는 예배소가 돼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2021 청주공예비엔날레에서 선보인 ‘심연 속으로’에서는 가짜 고래 골격을 중앙에 배치하고, 지구온난화로 죽은 산호를 묘사하기 위해 하얀 산호를 설치했다. 그는 족자카르타에 ‘모구스 랩’을 두고 뜨개질 커뮤니티 세 곳, 편물공 서른 명과 공동 작업을 하고 있다. “팬데믹 상황에도 지역 여성들이 제 작품을 위해 생산적 활동을 한다는 게 기쁩니다.” 말 그대로 그의 뜨개질은 ‘공생의 도구’(이번 청주공예비엔날레의 주제이기도 하다)에 다름 아니다.

최혜경 기자 사진 이우경 기자 취재 협조 청주공예비엔날레(070-7777-7636)


바다 쓰레기에 필요를 찾아주는 이혜선 작가의 작품. 주로 부표를 금속 재료와 조합해 조명등을 만든다. 10월 17일까지 청주공예비엔날레에서 만날 수 있다.
바다 쓰레기로 조명 만드는 금속 공예가 이혜선
재주도 좋은 바다 쓰레기

바다가 험하게 기침하는 날이면 울컥울컥 토해내는 바다 쓰레기가 지천이었다. 부표, 소쿠리, 통발 같은 플라스틱 쓰레기가 풍랑에 실려 방파제 근처에 운집했다. 2016년 ‘재주도좋아’라는 단체가 기획전 <바다로부터>를 열었다. 비치코머(바다 쓰레기를 수집하는 사람)가 수집한 바다 쓰레기를 서울의 공예가들에게 보내 작품을 만들게 한 프로젝트였다. 금속 공예가 이혜선은 제주 자구리 해안에 사는 비치코머가 보낸 플라스틱 쓰레기로 ‘손 등대’란 작품을 만들었다. “바다를 항해하는 배에 필요한 조력자가 등대인데, 용도를 잃고 버려졌죠. 필요한 존재였으나 폐기된 쓰레기 같은 처지죠. 쓰레기가 다시 필요한 존재가 된다면? 그래, 바다 쓰레기로 손안의 등대, ‘손 등대’를 만들어보자! 이게 시작이었어요.” 금속만으로 기하학적 형태의 공예 작품을 만들던 그가 플라스틱 바다 쓰레기(주로 부표)에 적동, 황동, 백동 같은 금속을 조합해 조명을 만들게 된 계기다. 줄곧 이어진 조명 작업을 위해 요즘도 그는 제주로, 동해로 나간다.


“처음 바다 쓰레기를 보내준 비치코머가 ‘이미 반은 완성된 예술품’이라고 적어 보냈는데 그 말이 정확해요. 바람 맞고 바닷물에 잠겨 빛은 바래고 표면은 거칠죠. 같은 부표라도 만든 회사마다 색도 모양도 다 다르고, 어떤 환경에서 지냈느냐에 따라 뉘앙스도 달라요. 그래서 일부러 새것처럼 보이게 다듬지도, 색을 칠하지도 않아요. 이미 살아온 시간만큼 완성된 예술품이니까요. ‘이들이 다시 버려지지 않고 계속 제 삶을 살면 좋겠다, 꼭 쓰임이 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에 조명이라는 기능을 계속 넣고요. 조명 작품에 사용하느라 잘라낸 자투리는 다시 모빌을 만들어요. 저라도 그들을 다시 저버리지 않고 싶거든요.” 바다로 고기잡이 떠난 이들이 행여 집을 못 찾을까 매운 해풍 속에서도 불을 밝히는 등대처럼, 선박의 항해를 돕기 위해 수면 위에 둥실 떠서 항로를 표시하는 부표처럼 바다 쓰레기로 만든 그의 손 등대는 누군가의 밤길을 밝힐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선순환 아닌가.

최혜경 기자 사진 이우경 기자 취재 협조 청주공예비엔날레(070-7777-7636)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1년 10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