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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고 연주자·창작자 박다울 예술가는 굴복하지 않아
“니들 늙어봤니? 난 젊어봤다!” 신구 할아버지의 호통이 이 글을 읽는 동안만은 무효하기를. 늙어본 적 없는, 젊디젊은 창작자 박다울, 그를 창간 34주년 중심 인터뷰로 만났다. 음악 경연 프로그램 <슈퍼밴드>에 출연해 공연 도중 거문고 줄을 끊어버린 그. 먹구름 속에서 경經이 울리듯 내리꽂히는 그 까닭 속으로 빠져들었다.


“남들은 알지만 나는 죽을 때까지 모르는 거, 그게 ‘행복’인 것 같은데…”

보석상의 딸에 매혹된 직공이 있었고, 딸을 주십사 청했다. 보석상은 금강석을 깎아보라 명했으나, 금강석이 결코 길들여지지 않는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었다. 얼마나 악랄한 거절인가? 손에 닿을 듯 희망적이면서도 가장 절망적인 거절. 많은 시간이 흐르고 직공은 금강석을 깎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굴복하자 굴복시킬 방법이 보였다. 금강석은 금강석만이 깎을 수 있다는 사실을.

거문고 연주자 박다울. <슈퍼밴드>라는 TV 음악 경연 프로그램에 나와 거문고를 타악기처럼 두드리고, 첼로처럼 활로 보잉 하고, 전자음악도 자유자재로 시도하고, 급기야는 목공용 칼로 거문고 줄을 끊어버렸다. 백악지장百樂之丈, 곧 ‘백가지 악기 중 으뜸’이라는, 상류사회 지식층의 ‘교양 필수 악기’이던 그 고매한 악기를 들고 그는 가장 대중적 미디어 앞에 섰다. 수숫대처럼 치솟은 머리칼, 트레이닝복을 걸친 촌동네 노총각의 외양으로. 자꾸만 추파를 던지며 발목을 잡는 그 열기에, 풋기에 정신이 휘청할 지경이었다. 이미 호사가들의 세 치 혀 위에서 그의 무대는 “저세상 포스”로 불리고 있었다.

서른 살의 창작자 박다울을 만났다. <슈퍼밴드> 경연이 최고조로 내달리던 8월 한복판. 정수리를 깨부수듯 꽂히는 태양 빛을 함께 맞았고, 그와 대화하며 보석상의 악랄한 금강석을 떠올렸다. 그는 서울대학교 국악과라는 자랑할 만한 학벌을 지녔고, 오경자·정대석·천재현에게 사사한, 말하자면 ‘정통파’다. 동아콩쿠르·세종콩쿠르 수상으로 일찌감치 연주 실력을 검증받았으며, 연주자에 머물지 않고 창작 실험들로 주목받아왔다. 올해 초 산조대전에서 자신의 이름을 건 ‘박다울류 거문고 산조’를 발표했다(신쾌동류, 한갑득류처럼 자신의 해석을 담은 연주를 완성했다는 공인 같은 것). ‘거문고 주법에 관한 깊은 연구로 현대적 선율을 빚어내는 연주자’라는 면류관을 쓴 그가 ‘글로벌 K-밴드 결성 프로젝트’란 레테르를 내건 TV 경연에 나갔다. 왜?


공연 도중 줄을 끊어버렸다
바라보기만 하는 세계치고 난해하지 않은 세계가 있을까. 게다가 음악이라는 심연을 바라보고, 요체를 캐내고, 이를 글로 설명하는 일은 더욱 그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글로 적는다. 먼저 프로듀서 윤상이 “박자 탈 때 접신된 줄 알았다”며 극찬한 오디션용 연주곡 ‘거문장난감’. 그가 거문고를 ‘음악 장난감’처럼 다룬 자작곡이다. 루프 스테이션이라는 기기로 거문고 음을 겹겹이 쌓아 컴퓨터에 저장한 그 소리를 무대에서 실시간으로 변주한다. 타현악기(현악기이자 타악기) 거문고를 손가락으로 재우치고, 주먹으로 두들기고, 첼로 연주하듯 거문고 현을 탄다.

“‘거문장난감’은 원래 수림문화재단의 <두 개의 방> 공연을 위한 창작곡이에요. 말 그대로 장난감이라는 콘셉트죠. 거문고를 처음 배울 땐 둥당 둥당 두들기고 치잖아요. 갖고 노는 거죠. 모든 소리로 음악을 만들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았어요. 음 하나만 놓을 때는 음악이 아닌데 루프로 켜켜이 쌓으면, 박자에 맞게 치면 음악이 돼요. ‘거문장난감’은 음악은 무언가, 그리고 거문고의 대중화라는 화두와 연결돼요. 그건 이따 설명할게요.” 이립而立을 갓 지난 박다울에게서 무거운 비밀을 집어삼킨 노인이 보인다. 이건 뭔가?

학창 시절 콩쿠르에 나갈 때마다 “몸을 좀 덜 쓰면 좋겠다”라는 지적을 받았다. “의도한 게 아니고 음악에 몸을 맡기는 건데 뭐가 문제?”라던 그는 지금 ‘소리를 시각화’하는 무대를 연출 중이다. 플라워 패턴 트랙 슈트는 오니츠카 타이거.
거문고의 대중화?
그가 <슈퍼밴드>에서 프런트맨(말하자면 프로듀서)으로 연출한 ‘굿보이’는 어떤가. GD와 태양의 ‘굿보이’를 재해석한 무대로, 기타 두 대와 거문고로 4분을 꽉 채운다. 두 대의 기타를 넘나드는 손가락이, 거문고 술대가 검보다 빠르게 보는 이를 제압한다. 그는 공연 후반부에 “일부러” 거문고 줄을 끊어버린다. 이후 거문고는 현악기에서 타악기로 바뀌면서 기타 솔로를 받치는 보조자로 변한다. 클라이맥스에 줄을 끊는 그를 두고 “창의적 퍼포먼스형 연주가”라는 평가가 나왔다. 상찬과 폄훼 사이를 줄타기하는 이야기다. “제 유튜브 채널 ‘거문고의 대중화’에 올린 영상 제목이 ‘거문고는 타악기가 아니다’예요. 평소 생각의 흐름과 <슈퍼밴드> 무대가 다르지 않아요. 거문고를 타악기처럼 쓰는 걸 보고 대중은 새로움을 말하지만 사실 거문고로 창작하는 이에겐 새롭지도, 막 대단하지도 않은 거죠. 저는 그게 좀 아쉬워요. 거문고는 늘 주체가 되지 못하고, 소비적으로 사용돼요. 거문고로 음악을 주도하고 싶다는 생각을 담은 역설이죠. 거문고 연주자들게도 ‘타악기로 쓸 거면 이 정도는 해. 줄 달지 말고.’ 이런 어쭙잖은 이야기를 던지는 거고.”

그 단단한 언어들 앞에서 나는 이야기 하나를 떠올렸다. 자신의 음악을 가장 잘 알던(지음智音) 종자기가 세상을 뜨자 악기 줄을 끊고 연주를 멈춘 백아의 절현絶絃처럼 그는 ‘이 음악이 세상과 소통하지 않으니 줄을 끊겠다’는 뜻을 담은 것인가. 아니, 속현續絃(줄을 잇다)처럼 ‘이 음악을 알아주는 이가 나타났을 때 끊긴 인연을 잇겠다’는 포부를 지뢰처럼 매설한 것인가. “치기와 열기로 무장한 젊은 음악가의 일회성 퍼포먼스”라 까부수기엔 그 행위에 담긴 의미가 막중했구나.

“‘거문고의 대중화’ 이야기를 다시 할게요. 유튜브 채널 ‘거문고의 대중화’에선 거문고로의 진입장벽을 없애려고 커버곡도, 퍼포먼스도 올려요. 연주자 박다울이 아니고 거문고를 알리는 박다울 모드로 들어가보자 했죠. 그런데요, 사실 거문고는 대중적 악기가 아니에요. 그걸로 대중적 음악을 한다, 어불성설이죠. 거문고로 대중적 음악을 하는 순간 대체재가 생겨나잖아요. ‘거문고로 할 거 베이스로, 피아노로 하니까 더 좋던데’ 단박에 이런 말이 튀어나와요. 사실 창작자로서 제가 원하는 음악은 나만 할 수 있는 것, 대체재가 없는 음악이죠. 그건 그 영역대로 가고요. 음악적인 거 말고도 거문고를 최대한 미디어에 노출시키자는 생각으로 <슈퍼밴드>에 나가고, 유튜브도 건드려요. 이 두 가지가 한 길로 갈 수 없으니 두 갈래 길로 동시에 가자, 한 거죠.”

국악에 청맹과니인 우리가 <슈퍼밴드>를 본 후 ‘거문고 6현, 가야금 12현’ 정도는 알게 됐으니 거문고의 대중화를 이룩한 것일까. “거문고와 대중성이라니. 하, 진짜 답도 안 보이는 얘기예요, 이건. 근데 제가 좋아하는 만화엔 그런 장면이 늘 있어요. 안 될 게 분명한데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누군가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순수하게, 진지하게 던져내는. 저도 후회 없이 던져내자, 무엇 때문에 실패할지는 생각하지 말자, 실패하면 또 던져내자, 하는 중이죠. 근데 정말 말도 안 되는 얘기야, 이건.” 거문고는 창작자 박다울에게 희망적이면서도 가장 절망적인 거절을 보내는, 금강석이다. 길들여지지 않고, 무엇으로도 깎을 수 없는 악랄한 존재. 그는 금강석은 금강석만이 굴복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만의 금강석을 알아챘을까?

초등학교 1학년생 박다울을 거문고로 이끈 어머니 김현주 씨. 박다울 씨 세 형제는 모두 국악을 전공했다. 아들이 입은 스웨터와 팬츠는 코스, 스니커즈는 리복 슈즈, 엄마가 입은 원피스와 슈즈는 코스.
울지 말고 일어나, 개굴개굴
이미 장르를 넘나들며 거문고의 외연을 확장하는 아티스트는 많았다. 1백여 년 전 거문고와 민속음악을 교합하려다 “어찌 감히 거문고로!”라는 호통에 놀란 음악가들이 있었다. 현대에 들어서 거문고 팩토리, 블랙스트링의 허윤정, 잠비나이의 심은용 등 이 완고한 악기를 완전히 새롭게 다룬 이들도 있었다. 그들과 박다울이 좀 다른 지점은 연주자, 연출자, 창작자, 기획자의 면모를 ‘짬뽕’해 거문고를 대한다는 거다.

기왕 ‘대중적으로’ 풀기로 했으니, 다시 <슈퍼밴드> 이야기다. 그는 ‘개구리 왕눈이’에 영감받은 ‘청개구리’를 작사·작곡·편곡하고, 프런트맨이 되어 첼로·클래식 기타·건반을 이끈다. 음향을 위해 거문고를 덮은 수건에는 청개구리 그림이라는 디테일이 있고(어머니 지인이 그렸다), 공연 마무리는 직접 녹음한 빗소리가 맡는다. 그의 창작력, 기획력, 연출력이 발현되는 무대다. 그는 이미 국악 무대에서 그 역량을 입증했다. 서울문화재단 최초예술지원작 기획·연주, 무용작 거문고 작곡·연주, <소리를 보듬다> 거문고 작곡·연주, 김주리밴드 해금콘서트 거문고 편곡·연주, <생황방앗간> 거문고 작곡·연주, “때가 때이니만큼 비주얼적으로 눈뽕을 때려보자”라며 기획한 온라인 공연 <거문고는 타악기가 아니다>…. 올가을 전통문화진흥재단에서 여는 <동화음악회>에서는 일찌감치 음악 감독으로 섭외되었다.

“그게 모드만 다른 거지, 한 갈래에서 시작돼요. ‘이쯤에서 어떤 세기로 갔으면, 음정이 어땠으면 좋겠다’ 그게 깊어지면 연주자 모드이고, ‘무슨 의상 입고 어떤 배경이 들어가면 좋겠다’ 그게 깊어지면 연출가 모드죠. ‘어떻게 하면 더 많이 보게 할 수 있을까’ 그게 깊어지면 기획자고요.” 이쯤에서 <두 개의 방>에서 그가 연주한 ‘칠채뽀시래기’ 그리고 박다울류 거문고 산조를 찾아듣길 권한다. 신은 몰아주기를 즐기신다는 것, 깨달을 수 있을 터다.

“거문고는 소중한 제 밥줄이기도 해요. 언제일지 모르지만 제 연주도, 창작도 성장이 멈출 테죠. 그때 나는 거문고에서 탈출해 무엇을 할 것인가, 고민도 해요. 아직까진 재미있어요. 제가 하고 싶은 음악이요? 포장하고 덧붙이는 ‘음악 거짓말’ 대신 내 안에서 의심 없이, 머리를 거치지 않고 직관적으로 흘러나오는 음악이요. 몸의 감각이 최대화한 음악이죠. 근데 이렇게 되려면 연주 전생각의 감각이 무르익어야 해요. 이건 연주할 때도, 창작할 때도 똑같아요.” 이쯤에서 “거문고 주법의 한계를 확장하기 위해 ‘깊게 고민’하고, 솔로 악기로서의 한계를 확장하기 위해 ‘넓게 고민’ 한다”라는 그의 선언성 소개글이 떠오른다.

누구나 나이 들며 깨닫는 것 하나가 있다. 대가란 원래 가장 비싼 것을 요구한다는 사실. 승리는 환멸의 다른 이름이고, 목표는 인생의 함정인지도, 실패는 어쩌면 자유로움인지도 모른다. 자신이라는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이루고 싶은 인생의 목표, 과연 그런 것이 존재할까? 존재하지 않더라도 세상의 천재, 예술가는 굴복하지 않는다. 박다울은, 예술가다.


의상 협조 | 닥터마틴, 리복 슈즈, 오니츠카 타이거, 코스

더 궁금한 분을 위해 덧붙이는 설명
<행복>의 오랜 독자인 박다울의 어머니 김현주 씨. 그 덕분에 한창 <슈퍼밴드> 경연 중임에도 인터뷰가 이루어졌다. 방송 작가로 일하면서도 어릴 적 고향 남원에서 익힌 판소리, 설장구, 가야금을 잊지 못한 김현주 씨. 첫째 아들 박다울이 초등학교 1학년 때 아들 둘을 더 데리고 국악 학원에 등록했다. ‘엄마가 그랬듯 살다가 인생이 힘들어 자기만의 동굴을 찾아들 때 그 안에 음악이라는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에서였다. 김현주 씨가 판소리를 하는 동안 아들들은 장구를 치는 식으로 국악을 접했다. 취미로 시작한 큰아들 다울은 서울대 국악과에서 거문고를, 둘째 아들 찬울은 서울대 국악과에서 대금을, 막내아들 산울은 서울예대에서 피리를 전공했다. 박다울은 고등학교 시절까지 거문고뿐만 아니라 가야금 산조, 피리 산조, 반주 장구, 타악, 판소리까지 두루, 깊이 배웠다. <슈퍼밴드> 무대에서 ‘악기를 가지고 노는’ 박다울은 절로 나온 게 아니다. “세 아들이 가난한 예술가로 살 결심만 한다면 고생을 좀 해도 나쁘지 않겠다, 셋이 의지하며 걷는 길이니 더 좋겠다 생각해요. 저는 다울이가 경계 없이, 두려움 없이 제 음악을 했으면 좋겠어요. 황병기 선생님도 ‘미궁’을 만들고 ‘뭐 이런 음악이 다 있냐?’는 소리를 들었듯이 다울이도 당대에 욕을 먹어도 무한대로 제 뜻을 펼쳐봤으면 좋겠어요. 물론 모든 걸 책임지고 갈 수 있을 만큼 그릇을 만들면서 말이죠.” 김현주 씨는 방송 작가 일을 그만두고 국악 체험 공방 ‘국악사랑’의 운영자로 살았고, 북촌에 새로운 공간을 준비 중이다.

글 최혜경 기자 | 사진 김상곤 | 스타일링 박명선 | 메이크업 성지안 | 헤어 최서형 | 붓터치 강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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