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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해원 아트 프로젝트 해와 달, 사람과 자연으로 빚은 쉼
산맥과 바다에 감싸인 고요한 공간이 예술을 통해 비로소 완전해졌다. 이제 막 작업이 끝난 설해원 클럽하우스의 대형 벽화 앞에서 이 공간에 우주와 자연, 그리고 쉼을 불어넣은 아티스트 두 명을 만났다. 영국에서 온 현대미술 작가 신타 탄트라와 금박 예술 장인 루카시 코르나츠키다.

아트 프로젝트를 위해 설해원을 찾은 신타 탄트라(왼쪽)와 루카시 코르나츠키. 벽화 제목은 ‘떠오르는 핑크 문’.
완만한 능선처럼 시야를 가로지르는 벽면 위, 거대한 금빛 구체가 떠올랐다. 해와 달이 포개지듯 서로 밀어내듯 기묘한 시간의 자취 너머, 우주와 자연의 여러 요소가 기하학 패턴과 온화한 색채로 어우러진다. 여기는 설악산과 동해 바다를 품은 휴양 리조트 설해원의 클럽하우스 안. ‘떠오르는 핑크 문(Pink Moon Rising)’이란 제목의 이 벽화는 현대미술기획사무소 숨 프로젝트의 이지윤 대표가 총괄 기획하고, 인도네시아계 영국 작가 신타 탄트라Sinta Tantra가 완성한 설해원 아트 프로젝트의 결과물이다.

벽화 맞은편에 배치한 회화 시리즈 ‘우주-핑크, 블루, 블랙, 골드’는 탄트라가 벽화 작업의 요소를 회화적으로 확장한 작품들이다. 사진 김경범

그간 젊고 미래지향적인 패턴 작업을 통해 폭넓은 공공 미술 프로젝트를 진행해온 탄트라는 무엇보다 설해원이 자리한 강원도 양양의 자연경관에 큰 매력을 느꼈다. 그는 작품을 구상하기 전 일대의 산과 지형을 충분히 조사했고, 설해원이 추구해온 쉼의 가치에 대해서도 깊이 탐구했다. “주변 산맥이 설해원의 풍경에서 무척 중요한 요소였기에 그 전경을 담은 풍경화를 선보이고 싶었어요. 그간의 벽화 작업에서는 주로 중앙에 강렬하게 집중하는 에너지를 표현했다면, 이번에는 자연의 여러 요소와 아이디어를 지평선 형태로 결합했죠.” 평소 핑크 문의 아름다움에 경외심을 느껴온 그는 설해원에 도착한 첫날, 이와 무척 흡사한 분홍빛 노을을 “운명처럼” 마주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자연의 숭고함과 웅장함, 또 핑크문처럼 특별한 무언가를 목격했을 때의 감동을 작품에 담고자 했다. 실제로 벽화 오른쪽 상단의 분홍빛 원은 핑크 문을 연상시키며, 구름을 모티프로 한 사각 형상들은 강원도의 산·언덕·숲·물 등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벽화 작업에 한창인 두 예술가. 코르나츠키는 최근 탄트라의 작업에서 금박 작업을 도맡고 있다.

아트 프로젝트를 마무리한 설해원 클럽하우스 레스토랑. 사진 김경범

물론 그 무엇보다 강렬하게 시선을 사로잡는 건 중심부에 우뚝 솟은 금빛 원. 이 거대하고 섬세한 금박 작업은 예술품 복원가이자 금박 예술 장인인 루카시 코르나츠키Lukasz Kornacki와 협업했기에 가능했다. 이번 협업을 위해 생애 처음으로 한국을 찾은 코르나츠키는 좋은 동료이자 조력자로서 프로젝트의 마지막 순간까지 탄트라와 함께했다. “이탈리아에서 수입한 최상급 23캐럿 금을 사용했는데, 워낙 얇기도 하고 붙이는 데 약간의 유분이 필요해 매번 브러시로 제 볼을 쓸어가며 작업했어요. 매우 섬세한 작업이라 빛과 공기의 흐름까지 고려해야 했죠.” 한편, 벽화 맞은편에 자리한 회화 시리즈 역시 탄트라의 신작이다. 이름하여 ‘우주-핑크, 블루, 블랙, 골드(A Cosmos – Pink, Blue, Black and Gold)’. 벽화 작업에서 모티프를 얻어 그 요소를 확장한 여섯 점의 회화 작품이다. “여러 에너지를 실험해보고 싶었어요. ‘에너지’ 측면에서 벽화는 금에 초점을 맞추었지만, 회화 작품의 경우 좀 더 동적 에너지인 월식의 내러티브를 담고 있습니다.” 그는 클럽하우스 레스토랑이라는 공간의 역할에 맞게 방문객의 눈높이와 동선을 고려했고, 큰 창 너머 보이는 일출과 일몰, 일조량까지 계산해 작품을 배치했다.

탄트라가 강조한 이번 프로젝트의 핵심은 비움과 채움의 조화다. “사실 서양에서는 비워야 하는 공간까지 가득 채우길 바라고, 이런 채움을 미학으로 보는 경향이 있죠. 하지만 저는 음과 양이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공간이 존재하고 보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비움과 채움, 우주와 자연 사이에서 그가 찾아낸 조화는 결국 공간과 예술, 인간의 관계로 이어진다. 해가 뜨고 진 자리에 달이 차오르듯 에너지는 끊임없이 순환한다. 그리하여 방문객이 저마다의 자연을 보고, 느끼고, 온전히 휴식하며 공간과 교감하는 순간 그의 작품은 비로소 완성될 터이다.

글 류현경 |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1년 9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