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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가 알렉상드로 뱅자맹 나베 꽃으로 피어난 색의 향연
프랑스 미술가 알렉상드르 뱅자맹 나베의 작품은 자유로운 선과 색감에서 출발한다. 스케치북 속 작은 그림이 공간을 만들고, 공간이 또다시 거대한 그림으로 바뀌는 세계. 최근 반클리프 아펠과 협업한 프로젝트는 그런 그의 세계를 한층 깊고 선명하게 확장시켰다. 지금 그가 담아내는 것은 봄의 서정이지만, 그의 예술은 이미 무성한 여름으로 나아가고 있다.

알렉상드르 뱅자맹 나베는 프랑스 국립 산업디자인학교를 졸업한 뒤 일러스트와 디자인, 건축 등 서로 다른 분야를 넘나들며 폭넓은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2017년 반클리프 아펠이 후원한 ‘그랑프리 디자인 퍼레이드 툴롱’을 수상했고, 최근에도 활발한 협업 활동을 진행 중입니다.
희고 단아한 정사각 프레임 너머 무르익은 꽃의 정원이 있다. 크고 작은 화병 속에 자유로이 흩뿌려진 꽃들이 저마다 화사한 빛깔로 존재감을 드러낸다. 종이에 채색한 그림을 오려 붙인 꽃, 보석과 금속을 정교하게 세공해 만든 꽃이다. 프랑스의 하이 주얼리&워치 메종 반클리프 아펠의 부티크 윈도를 장식한 플라워 디자인은 그야말로 특별했다. 진짜 꽃은 단 한 송이도 없지만, 프레임 안에선 미려한 생명의 열기가 봄과 함께 움텄다. 이 프로젝트를 함께 한 예술가는 알렉상드르 뱅자맹 나베Alexandre Benjamin Navet. 그는 2018년 파리 장식미술관의 ‘뉴스 갤러리’를 오픈할 당시 건물 인테리어 작업에 대한 전권을 위임받은 최초의 아티스트이기도 하다.

자신의 파리 스튜디오에서 반클리프 아펠과 협업을 위한 오리지널 디자인을 작업 중인 알렉상드르 뱅자맹 나베. 반클리프 아펠의 독창적 윈도 디스플레이는 이렇게 탄생했다.


알렉상드르 뱅자맹 나베가 반클리프 아펠과 처음 만난 건 3년 전 그랑프리 디자인 퍼레이드 툴롱의 수상자로 선정되면서부터다. 2011년 프랑스 국립 산업디자인학교를 졸업한 그는 그간 예술과 일러스트, 디자인과 건축의 경계를 넘나들며 폭넓은 작품 스타일을 선보여왔다. 그의 작업은 보통 오일 파스텔과 연필, 수채화 물감으로 선과 면을 그리는 데서 시작하지만, 실제 그 결과가 늘 드로잉이나 일러스트레이션으로 귀결되는 건 아니다. 때로는 하나의 물리적 공간 안에 오브제와 드로잉을 자유롭게 배열해, 보는 이로 하여금 마치 작품 속에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도록 연출한다. 그런 그가 최근 몇 년간 집중해 온 소재는 화병. 이를테면 지난해 말 파리의 갤러리 데루용Galerie Derouillon에서 열린 전은 그의 화병 드로잉이 어떻게 확장되어 공간 전체를 작품으로 만드는지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색색의 화병과 가구가 놓인 공간을 드로잉으로 표현하고, 실제 화병과 가구에 같은 드로잉을 더해 그림 속 공간을 갤러리 공간으로 구현한 것. 이는 프랑스 가구 디자이너 프레데리크 펠랑크 Frédéric Pellenq와 협업한 프로젝트이자, 두 사람이 디자이너와 예술가로서 그해 여름부터 나눈 대화에서 영감을 얻은 결과물이다.

알렉상드르 뱅자맹 나베가 반클리프 아펠과의 협업 프로젝트를 위해 완성한 드로잉 작품. 선명한 색감이 강렬한 에너지를 뿜어낸다.
“최근 제가 화병에 사로잡혀 있어요. 그것이 무대 위의 배우이자 극단의 연출 요소 같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사람들은 종종 제 화병에 꽃이 없다는 점을 지적하곤 하죠. 그래서 메종이 제게 색의 에너지를 위한 넓은 공간을 보여주며 꽃을 그리도록 권유했을 때 무척 흥미롭게 느꼈습니다.” 꽃 없는 꽃병을 그려온 예술가와 반클리프 아펠이 가장 사랑하는 플라워 테마의 만남. 이때 예술가가 찾아낸 둘 사이의 공통점이 바로 ‘드로잉에 대한 열정’이었다. 그는 이 공통점을 협업의 출발점으로 삼았고, 다양한 자료와 사진·그림을 수집 연구하며 처
음으로 ‘꽃병’이 아닌 ‘꽃’의 세계를 담아내기 시작했다. 이번 <행복> 표지를 자신의 파리 스튜디오에서 반클리프 아펠과 협업을 위한 오리지널 디자인을 작업 중인 알렉상드르 뱅자맹 나베. 반클리프 아펠의 독창적 윈도 디스플레이는 이렇게 탄생했다.

장식한 드로잉 작품도 이러한 과정 속에서 탄생한 것. 그가 종이 위에 파스텔로 그린 생생한 색감의 튤립은 작가가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반클리프 아펠을 위해 창조한 첫번째 ‘비주얼’ 중 하나다. “저는 우리가 하나의 정확한 주제에 대해 새로운 영감을 발견하는 것이 항상 놀라워요. 꽃은 정말로 영감을 주는 존재인 것 같아요.” 그는 종이에 즉흥적으로 꽃과 줄기를 그린 뒤 자르고 다시 이어 붙여 윈도 디스플레이를 완성했다. ‘꽃과 봄을 닮은 색감’을 만들어내기 위해 어느 봄날에 마주한 눈부신 장면을 떠올리기도 했다. 아침 이슬이 내린 정원에서 이제 갓 피어난 꽃송이를 발견한 순간, 마치 마법 가루처럼 공간을 부유하던 그날의 아름다운 빛과 색감을. “색은 제 작품에 관한 확실한 안내자입니다. 저에겐 유독 선호하는 몇 가지 색이 있지만, 작품을 위해 특별히 색을 고르거나 사용하는 규칙은 없어요. 그저 실험하는 것을 좋아하죠. 반클리프 아펠과 함께한 이번 협업 덕분에 제 팔레트와 어휘가 깊이
확장됐습니다.”

반클리프 아펠의 부티크 윈도는 알렉상드르 뱅자맹 나베와 프리볼Frivole 컬렉션의 만남으로 채워졌다.
그의 오일 파스텔은 꽃이 풍성하게 핀 정원으로, 공간을 가득 채운 꽃다발로 다시 태어났다. 비단 윈도 디스플레이만이 아니라, 부티크 내부 혹은 외부에 사용할 다양한 장식 역시 이러한 동화적 상상력에서 비롯했다. 그는 지금도 반클리프 아펠과 협업 프로젝트를 계속 진행하는 중이다. 벽이나 아치 구조물 등 공간 자체가 될 건축 작품을 제작하는 한편, 각 부티크의 개성에 맞는 세부 장식도 더할 계획이다. “저는 방문객이 펼쳐놓은 스케치북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길 기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꿈같은 드로잉의 세계를 현실로 구현했다는 점이 이번 협업 프로젝트의 진정한 성과라고 생각하죠. 저는 정말 공간과 예술적인 대화를 나누고 싶거든요.”

글 류현경 기자 | 취재 협조 반클리프 아펠(1668-1906)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0년 7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