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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정구호 & 패션 디자이너 민주 킴 도전 의식이 이끌어온 길
최근 패션업계를 뜨겁게 달군 민주 킴. 글로벌 패션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전 세계적 팬층을 확보한 그는 현재 가장 핫한 패션 디자이너다. 그에게 오늘의 영광이 있기까지 수많은 조력자가 있었겠지만, 패션의 길에 들어선 순간부터 선망해온 정구호 스승은 그에게 험난한 길을 인도하는 등불 같았다.


패션 디자이너를 넘어 영화 의상 감독, 무대감독 등 다방면에서 창작 활동을 해온 정구호. 지금으로부터 14년 전 어느 날, 그가 자신의 브랜드 구호의 새 컬렉션을 선보이는 쇼의 백스테이지에는 패션 꿈나무 민주 킴(김민주)이 있었다. 당시 슈퍼모델 혜박에게 옷을 입혀주고 쇼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발로 뛰던 민주 킴은 성실하게 꿈을 키워나갔고, 마침내 ‘넥스트 인 패션’이라는 넷플릭스의 글로벌 패션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세계적 주목을 받는 ‘스타 디자이너’로 성장했다. 민주 킴은 존경하는 선배로 주저 없이 정구호 스승을 꼽았고, 스승은 제자의 지목에 만사를 제쳐두고 인터뷰에 응했다. “이렇게라도 제자를 도울 수 있다면”이라는 마음 하나로. 전 세계인이 주목하는 방송 촬영 중에도 신중한 모습을 보일지언정 자신의 중심을 잃지 않은 민주 킴. 그러던 그가 큰 스승과 마주한 날은 여느 때와 달리 제법 긴장한 모습을 보였다. “저 원래 이보다 말 더 잘하는데, 오늘은 정말 떨리네요!” 이 자리가 자신에게는 큰 상을 수상한 것과 다름없노라 의미를 둔 민주 킴, 그런 후배를 응원하면서 더 큰 꿈을 꾸도록 인도하는 선배 정구호. 두 사람에게 이 특별한 인터뷰 시간은 각자의 가슴속에 어떠한 형태로든 파장을 일으킨 듯 보였다.



정구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뉴욕 파슨스 디자인 스쿨에서 커뮤니케이션 디자을 전공한 후, 1997년 패션 브랜드 구호KUHO를 론칭했다. 이후 제일모직 여성사업 부 전무를 거쳐 서울패션위크 총감독을 맡았으며, 영화부터 무용·오페라 등의 의상 과 무대 그리고 가구까지 디자인하는 전방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약하고 있다.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걸 알리는 것도 중요하다
정구호(이하 정) ‘넥스트 인 패션’ 수상 소식을 듣고 주말 내내 전체 방송을 정주행했어. 민주가 지난 2013년 ‘H&M 디자인 어워드’에서 대상을 받은 게 패션계 일부에 국한한 일이었다면, 이번 ‘넥스트 인 패션’ 우승은 패션계를 넘어 전 세계 대중에게 이름을 알리는 기회라는 점에서 차원이 다르지. 정말 잘했어! 축하해!

민주 킴(이하 킴) 선생님이 “10년 안에 샷을 날려야 한다”고 하신 말씀을 기억해요. 그래서 ‘넥스트 인 패션’ 제의가 들어왔을 때, 한 번 더 성장하려면 이걸 꼭 해야겠다는 도전 의식 이 생겼지요. 결과가 이만큼 좋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고, 그저 선생님의 그 말씀 때문에 무조건 도전했어요.

패션 디자이너는 스타가 되어야 해. 옷만 잘 만든다고 되는 게 아니라 그걸 알리는 것도 중요하지. 나도 브랜드 구호를 론칭한 1990년대에는 “저 이런 거 해요” 홍보하고, 관심을 받는 방법을 찾는 게 일이었어. 그때는 지금처럼 SNS도 없고, 해외로 나가는 기회도 없었지. 하지만 이제는 시대가 달라졌어. 내가 서른여섯에 시작했는데, 민주는 이제 서른다섯이지? 잘할 거야. 한국을 발판으로 ‘오리진’을 지키면서 세계로 뻗어나가고, 멋진 스타가 되면 좋겠어.


도전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요, 성장할 수 있는 기회다
늘 궁금했어요. 선생님은 어떻게 패션 디자인을 하시다가 영화 <스캔들>의 미술감독을 하시고, 현대무용의 의상과 무대감독, 또 오페라 <동백꽃 아가씨> 연출까지… 그 다양한 일을 하실 수 있었는지요.

과감하게 도전에 임하고, 책임감으로 최선을 다해온 결과 같아. 한 프로젝트가 끝나면 그걸 바탕으로 또 다른 분야의 제안을 받고, 또 도전하는 식이었지. 민주 킴도 서바이벌 프로그램 참가는 정말 큰 도전인 셈이잖아. 아, 그 창작의 고통! 방송을 보는데 다 느껴지더라.

정말 힘들었어요. 그런데 돌이켜보면 전 패션을 시작한 것부터가 도전이었어요. 원래는 파인 아트를 하고 싶었는데, 사디(삼성디자인교육원)에 들어가면서 우연치 않게 패션을 시작하게 됐지요. 한번 시작하면 끝을 봐야 하는 성격이라 그저 꾸준히 했어요. 패션이 나랑 맞나 고민하면서도 일단 열심히 했고,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기더라고요.

난 지금도 늘 ‘내가 패션과 맞나’ 고민하는걸. 하하. 결과가 어떻게 될까 미리 걱정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도전을 두려워하면 안 돼. 해보기 전까지는 모르니까. 그리고 일단 도전을 하면 좋은 성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집중해야 하고.

저도 그냥 앞뒤 안 보고 해야 하니까 했어요. 프로그램에 참가한 이상 그저 할 수밖에 없었죠. 이제까지 쌓아온 게 있으니까, ‘난 할 수 있다’ 자기최면 걸고, 나를 믿고, 채찍질하면서 끝낸 것 같아요.

매번 ‘다시는 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런웨이 피날레가 끝나면 또 다음 시즌 생각하곤 하지. 우리 같은 일을 하는 사람에게 긍정적 사고방식은 정말 중요해.





민주 킴 패션 디자이너는 국내 패션 스쿨 사디SADI에서 공부한 후 벨기에 앤트워프 왕립예술학교에서 패션을 전공했다. 2013년 H&M 디자인 어워드 우승, 2014년 LVMH 프라이즈 결선 진출 후 2015년 자신의 브랜드 민주킴을 론칭. 2020년 넷플릭스 ‘넥스트 인 패션’ 우승을 차지하며 세계적 주목을 받고 있다.


‘나’라는 중심을 지키고, 자신에게 냉철한 비평가가 되어야 한다
이번에 우승을 하고 나서 기분이 어떠냐, 부담스럽지는 않냐는 질문을 많이 받아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마음이 달라진 건 없어요. 언제나 꾸준히 하는 게 답이라는 걸 일찌감치 깨달아서 그런 게 아닌가 싶어요.

평정심을 잃지 않는 것, 정말 잘하고 있는 거야. 무엇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오래 유지하는 게 중요하니까. 어차피 모든 사람의 칭찬을 받는다는 건 불가능해. 예술가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표현하면 되지만, 디자이너는 원하는 것만 할 수 없지. 디자이너라는 꼬리표를 다는 순간 세일즈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거든. 그럼에도 자기중심을 잃지 말아야 하고. 패션은 정말 어려워.

‘패션’ 하면 다들 쿨하고 에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곤 하죠. 저도 한때는 그런 스타일을 추구해봤지만 결국 나 자신으로 돌아오더라고요. 사실 해외에서 경험을 쌓으면서 자신감이 생겼어요. ‘세상에는 참 여러 가지 색이 있구나. 나도 그중에 하나가 될 수 있겠구나.’ 특별히 뛰어나다기보다 여러 가지 중에 하나로서 가치가 있다는 확신이었어요. 내가 하는 방향이 좋다는 믿음이 생기니까 기분이 좋고, 계속 잘하고 싶은 마음도 생겼어요.

남의 평가를 안 들을 순 없지만, 결국 나에게 가장 냉철한 비평을 해야 하는 건 자기 자신이야. 그러면서 스스로 발전해나가는 법이지.


창작 인생에서 잘 쉬는 것도 기술이다
아, 솔직히 매 시즌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것처럼 힘들어요. 저도 선생님처럼 오래오래 하고 싶은데.

적당히 머리를 비우는 자신만의 방법을 찾는 게 중요한 것 같아. 사람마다 다르니까. 나는 가만히 있으면 문제에 대해 자꾸 생각하게 되니까 생각을 안 하기 위해 다른 것에 몰두해. 어쩌면 다른 일을 시작한 이유도 패션을 쉬고 싶으니까, 잠시 패션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 그렇게 한 셈이지. 일례로, 해외 컬렉션 기간에 너무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는 그걸 해소하기 위해 거기서 막 요리를 한 적도 있을 정도야.

저는 쉴 땐 아무것도 안 하는데, 정말 남다르시네요! 아무리 해외에 동경하는 디자이너가 있다 해도, 내 국적의 선배 디자이너가 좋은 길을 가주고, 이러한 가능성도 있다는 걸 알려준다는 건 큰 힘이 되지요. 정말 감사해요. 저도 선생님처럼 뭔가를 시도하면 그 장르를 새롭게 바꾸고 문화를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나는 이 글로벌 시대에 시작하는 사람이 너무 부러운걸. 나의 바람은 무엇이 됐건 창작 활동을 꾸준히 하는 것이야. 그리고 후배들이 어떻게 발전해나가는지 보고 싶어. 민주는 앞으로 정말 많은 기회가 있을 거야. 그도전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기를 바라.

글 강옥진 기자 | 사진 안지섭 | 헤어와 메이크업 탁연지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0년 5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