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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여행지 청송 구경 #4~6

#4 세계에서 가장 큰 동양화, 청량대운도


오직 작품 한 점만을 위해 만든 미술관이 있다. 가로 46m, 세로 6.7m에 달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실경산수화가 자리한 곳, 청송의 청량대운도 전시관이다. ‘청량대운도淸凉大雲圖’는 지난해 4월 별세한 청송 출신 야송 이원좌 화백이 혼신의 힘을 다해 그려낸 필생의 역작. 경북의 명산으로 꼽히는 봉화 청량산의 풍광을 담은 작품인데, 실제로 전시관에 들어서면 벽면 전체를 뒤덮은 그림 크기와 세밀하면서도 호쾌한 거장의 필치에 압도당하고 만다. 오지 중 오지로 꼽히던 청송군, 그 안에서도 북동쪽 귀퉁이에 숨은 작은 미술관에 14만 명의 내·외국인 방문객이 다녀간 이유를 작품 앞에 선 순간 온몸으로 깨닫게 된다.

야송 선생이 이 담대한 작업을 기획한 건 우연히 예술의전당을 찾은 1980년대 후반의 일이다. 당시 서울에 거주하며 작품 활동에 열중하던 그는 예술의전당의 거대한 벽면을 보며 단 한 점의 그림으로 그 공간을 채우는 상상을 했다고 한다. 1989년부터 마치 성지순례하듯 청량산을 오르내리며 골짜기와 봉우리, 석벽 등을 세세히 스케치했고, 충분히 준비가 끝난 뒤엔 전국을 돌며 대작을 그릴 수 있는 거대한 공간을 찾았다. 그리고 1992년, 간신히 봉화의 낡은 미곡 창고를 빌려 그림을 완성하기까지 총 6개월이 걸렸다. 그동안 야송은 매일 창고에 촛불을 밝혀 정화수를 떠놓고 기도한 뒤, 거의 먹지도 자지도 않으며 온종일 작업에 매달렸다. 전지 4백 매 분량으로 완성한 그림은 1994년 서울 정도 6백 주년을 기념하는 전시를 통해 세상에 온전한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꿈꾼 그대로, 첫 전시 공간은 예술의전당이었다.

오늘날 이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청량대운도 전시관은 야송 선생이 관장으로 있던 군립청송야송미술관 바로 옆에 위치한다. 2005년 한 폐교를 개조해 미술관을 건립한 뒤, 2013년 미술관 부지 안에 ‘청량대운도’만을 위한 전시관을 따로 지은 것. “너무 커서 걸 곳이 없다”는 이유로 20여 년간 수장고에 잠들어 있던 ‘청량대운도’는 그제야 제자리를 찾았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신선처럼 흰 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야송 선생이 작품과 함께 관람객을 맞이했지만, 더 이상 그 모습을 기대할 순 없을 터. 대신 그가 70년이 넘는 세월을 고스란히 바쳐 이뤄낸 독창적 한국화의 세계가 전시관 구석구석에 가득하다. 청량산과 주왕산을 비롯한 한국 명산들의 수려한 풍광이 거장의 눈과 손을 거쳐 우리에게 깊은 여운을 남긴다.


야송의 작품 세계
보통 한국화라 하면 전통적 느낌이 강한데, 야송 선생의 그림은 보기에 한결 편하고, 자신만의 확실한 화풍이 있어요. 농담의 대비가 극명하고, 붓 선이 힘차면서도 세심한 것이 특징이에요. 원래는 홍익대학교 서양화과에 입학했다가 동양화과로 전과했고, 이후 한국화를 널리 알리는 데 평생을 바쳐왔죠. ‘청량대운도’를 기획한 데도 그런 뜻이 있었어요. 사람들이 한국화를 보며 감동받을 만한 이벤트를 구상하던 차였거든요.

군립청송야송미술관 미리 보기
‘청량대운도’ 외에도 야송 선생의 작품 3백여 점을 기증받아 건립한 미술관입니다. 2층 전시실에 가면 그중 일부를 감상할 수 있고요. 1층에선 비정기적으로 기획전이 열리는데, 한국화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고자 한 야송 선생의 취지에 맞게 주로 한국화 전시를 진행해왔죠. 주변의 문화 예술 공간과 연계한 스탬프 투어도 운영할 계획이에요. 지금은 야송 선생의 추모전을 준비하고 있어요. 대학교에 입학하기 전, 그러니까 중학교와 고등학교 때 그린 스케치를 비롯해 초창기 작품 위주로 전시할 예정입니다.

청량대운도 감상 팁
워낙 작품이 크다 보니 1층에서는 ‘청량대운도’를 한눈에 담기가 어려워요. 2층에서 바라보면 좀 더 안정적으로 작품 감상에 몰두할 수 있죠. 실제로 야송 선생도 봉화의 가장 높은 봉우리에서 청량산을 내려다보며 스케치한 작품이거든요. 그래서 작가의 시선, 관점과 비슷한 느낌으로 청량산의 산세를 파노라마처럼 훑을 수 있어요. 사진을 찍으려면 2층으로 올라가는 양쪽 계단 중간이 좋은 포인트이고요. 작품 왼쪽에 야송 선생이 손과 얼굴, 발을 이용해 찍은 낙관과 작품 제작 과정을 직접 기록한 글도 있으니 놓치지 마세요. _이은도(군립청송야송미술관 관장)


#5 민간의 음식을 담던 소박한 그릇, 청송백자

에피그램이 셀렉트한 청송백자 미니 달항아리와 주병, 선문 접시와 물잔, 유채 반상기는 모두 올모스트홈 스테이 갤러리 숍에서 구매할 수 있다.

청송백자전수원은 도자공이 일하던 사기움을 재현했다. 사진은 도자기를 성형하는 물레를 돌리는 공간.

주왕산에서 나는 도석을 빻은 가루를 물에 담근 후 침전물을 개어 그릇 빚는 재료로 사용한다.

마지막 남은 사기대장 고만경 옹에게 청송백자를 전수받은 윤한성 청송백자전수관장.
미색 기벽器壁에 옅은 파란 줄 하나. 청송백자엔 마음을 끄는 담백함이 있다. 음식을 담았을 땐 자신을 낮추고 담긴 것을 돋보이게 할 줄 알며, 얇고 가벼워 어떤 부엌에서나 쓰임이 좋다. 둥글둥글 성격 좋은 이 그릇의 겸허함은 5백 년을 이어 내려온 우리의 유산이다. 청송백자는 황해도 해주, 함경도 회령, 강원도 양구 백자와 함께 조선 4대 지방요(도자기를 굽던 가마 또는 도자기)로 손꼽혔다. 주왕산에서 캔 도석을 빻아 만들어 견고하고 빛깔 또한 고왔기 때문. 이런 특별함에도 청송백자는 양반가 밥상에서 으스대지 않고 민간의 식탁에서 밥과 장 담는 데 더 많이 쓰였다. 그러다 1958년을 기점으로 그 맥이 끊겼다. 사기를 찾던 이들이 대량생산한 양은그릇을 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청송백자는 40여 년 후 부활했다. 마지막 사기대장 고만경 옹과 그의 제자 윤한성이 2009년 청송백자 복원을 위한 공간을 연 것이다.

사기공이 물레를 돌리던 ‘사기움’과 전통 도자 가마인 ‘사기굴’을 재현했고, 꺼진 가마에 불을 붙였다. 하마터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뻔한 청송백자. 이를 만드는 사람들은 그릇 자체가 지닌 겸허함을 마음에 다시 새겼다. 공예란 시대가 변해도 일상에서 쉬이 쓰일 수 있어야 하며, 많은 이의 식탁에 오를 때 비로소 예술로 기억된다. 최근 몇 년간 청송백자는 다시 민초의 밥상에 오르기 위해 숨 고르기를 했다. 전통 가마 대신 기계식 가마로 구워 거친 결을 다듬고, 불필요한 공정을 없애 가격대를 낮췄다. 어느 식탁, 어느 음식과 어울려도 어색함이 없도록 다양한 모양새까지 갖췄다. 2020년, 전수관에서 전수자 네 명이 물레를 돌린다. 청송 공예의 철학은 그들 손에 다시 맥을 이어갈 것이다.


마지막 사기대장 고만경 옹
전통 청송백자의 마지막 전수자인 고만경옹은 열다섯 살부터 도예를 시작해 13년간 사기대장으로 사셨습니다. 청송백자를 만드는 공방이 모두 문을 닫을 때도 마지막까지 가마에 불을 지핀 분이지요. 공방 문을 닫은 후 40여 년간 물레에서 발을 떼고 평범한 삶을 사셨습니다. 다시 물레 앞에 앉은 건 저와 우연히 만난 2005년의 일입니다. 이후 선생님에게 청송백자를 배웠고, 선생님의 제안으로 저의 고향이기도 한 청송에 돌아와 작업을 이어갔습니다. 고만경 옹은 2년 전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도 청송백자가 오랫동안 널리 쓰이길 바라셨지요. 그 뜻을 이어갈 작업을 안세진, 고형석, 송인진 등 전수자 네 명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청송백자전수관 미리 보기
청송군은 고만경 옹의 고증과 복원, 가마터 조사 등 면밀한 준비 과정을 거쳐 2009년 7월 옛 법수공방 자리인 청송군 부동면 법수길에 청송백자전수관을 개관했습니다. 공방에서 자기를 완성하는 날인 ‘점날’에 백자를 사기 위해 몰려든 등짐장수와 장사꾼이 머물던 주막과 추운 지방에서 추위를 견디며 작업하기 위해 땅에 구릉을 만들어 도자기를 빚던 사기움(공방), 사기굴(가마)을 그대로 재현한 공간을 만날 수 있습니다.

청송백자 체험하기
전수자의 작업 공간인 전수관에서 청송백자의 옛 모습을 둘러 직접 체험해볼 것을 권합니다. 전수관 근처에 위치한 청송백자도예촌에서 나만의 청송백자를 만들 수 있지요. 홈페이지를 통해 사전 예약하고 물레 체험, 점토로 만드는 청송백자, 핸드 페인팅까지 다양한 경험을 해보세요.

청송백자×에피그램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에피그램이 민예촌에 ‘올모 스트홈 스테이’라는 복합 공간을 만들었는데, 그 안의 갤러리 숍에서도 청송백자를 만날 수 있습니다. 청송에서 만든 먹거리와 문화 상품을 선보이는 공간이거든요. _윤한성(청송백자전수관장)


#6 시간이 익힌 청송의 먹거리

올모스트홈 스테이는 청송에서 나는 먹거리로 만든 식품을 셀렉트하거나 직접 제작해 소개한다. (왼쪽부터)청송사과식초, 올모스트홈 카페 드립백, 사과 콩포트와 블랙커런트 콩포트, 청송사과칩과 사과한과, 맥꾸룸의 맥된장과 맥간장. 

한국 맥꾸룸은 성명례 명인과 그의 딸이자 17년 차 전수자인 권혜나 씨가 운영하고 있다. 
추운 날씨와 큰 일교차를 견디느라 늦게 자라는 청송사과는 아삭아삭한 식감에 자꾸 손이 가는 단맛이 난다. 울창한 숲에서 미적거리며 내려온 달기약수도 사람에게 이롭다. 자연을 그대로 간직한 청송의 산천은 느림을 부족함이라 꾸지람하지 않는다. 제대로 익을 때까지 기다려줄 뿐. 이 고을에 사는 사람들은 느리게 얻는 먹거리의 참맛을 온몸으로 안다. 예부터 청송 사람들은 먹거리를 재촉해 만들지 않았다. 기다림으로 얻는 먹거리 중 최고라 칭할 게 있다면 아마도 장醬일 것이다. 항아리에 재료를 넣고 1년을 꼬박 익혀야 맛볼 수 있는 된장과 간장, 고추장과 청국장은 기다림의 맛을 가장 잘 표현해내는 먹거리가 아닐는지. 청송에는 그런 어머니의 장맛을 30년간 지켜온 전통 장 명인 성명례 씨가 만든 브랜드 ‘맥꾸룸’의 본진이 있다. 그해 농작물 상태와 기후의 영향이 고스란히 녹아드는 것이 장 농사라, 꾸준한 맛을 이어나가는 게 쉽지 않았다고. 그래도 명인은 긴 세월 항아리에서 발효시키는 전통 방식만 고수한다. 결국은 청송의 맑은 공기가 장맛을 잘 다스려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고운 한복을 입은 명인이 독에서 막 퍼 올린 된장을 맛보길 권했다. 짭조름한 맛이 코끝에 머무는가 싶더니 구수함이 입안 가득 퍼지다 돌연 감칠맛을 남기곤 사라진다. 청송의 자연과 시간이 익힌 맛이다.

맥꾸룸 이야기 맥꾸룸은 맥을 이어가는 꾸러미라는 뜻으로, 30년 전 제 남편이 만든 말입니다. 맥된장에는 특별한 감칠맛이 있어요. 겹된장으로 장을 담그기 때문입니다. 천일염수와 메주를 항아리에 넣고 12개월 발효시키면 간장과 된장이 만들어져요. 맥된장은 여기에 메주와 염수를 넣고 한 번 더 발효시킵니다. 겹된장은 맛있는 장을 만들 수 있는 최고의 방법입니다. 간장이라는 진액을 그대로 머금은 된장이라 질감이 촉촉하고, 감칠맛이 살아 있지요. 4천 개의 장독이 놓인 숙성소는 바닥에 자갈을 깔아 일교차가 장맛을 해치지 않도록 했고요. 그래서 전통 장맛을 균일하게 이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 밥상 위 전통 장 문화
우리 어린 시절에는 장이 밥상의 주인이었지요. 얻어먹더라도 간장, 된장 맛있는 집으로 가야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있다고 했으니까요. 지금은 밥상의 주인 대신 느리게 익힌 좋은 염분의 자리에 있다고 생각해요. 된장 한 숟갈에 물을 붓고 끓이기만 하면, 만병을 예방할 수 있는 한 상 차림을 완성할 수 있잖아요. 지난해부터는 딸이자 전수자인 혜나와 함께하고 있어요. 맥꾸룸이 여전히 판로가 탄탄한 것은 어머니의 부엌에 있던 우리 된장을 자식들이 다시 찾고 있기 때문입니다. 맥꾸룸 역시 새로운 소비자 세대에 발맞춰야지요. 포장 방식부터 공간을 보여주는 방식까지 젊은 감각을 더하고 있어요.

맥꾸룸 체험
한국의 음식 문화를 발전시키고 명맥을 잇는 일도 중요하지만, 맥꾸룸과 함께한 직원들이 오랫동안 일할 수 있는 터전을 만드는 것도 중요합니다. 3월부터 명인과 장 담그기 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인 송주헌과 숙박이 가능한 한옥을 새로 오픈할 예정이에요. 그리고 맥꾸룸의 장과 소스를 이용해 만든 요리를 판매하는 레스토랑을 열기 위한 기획을 구체화할 예정입니다. 청송을 찾는 이들이 음식을 통해 전통 장맛을 이해하고 알아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_성명례(대한민국 식품명인 제4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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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경, 박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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