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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 김수정 사라지고 잊히는 것에 대하여
둘리 아빠 김수정을 기억하는 이에게 만화도 그림책도 아닌 그의 소설은 낯설다. 두툼한 책 세 권을 채운 글자들도 낯설고, 만화와 수채화의 중간 단계 같은 삽화들도 낯설다. 2009년 마지막 둘리 시리즈와 함께 사라졌다가 일흔 살 나이에 돌연 소설을 들고 나타난 만화가 김수정. 지난 10년간 그에겐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의구심 끝에 <모두 어디로 갔을까?>를 읽어 내렸을 때 비로소 작가 김수정의 ‘이야기’가 보였다.

오랜 침묵을 깨고 10년 만에 만화가 아닌 소설로 돌아온 김수정 작가. 많은 이가 그의 행보를 의아해했지만, 사실 첫 소설 <모두 어디로 갔을까?>는 김수정의 세계가 확장되어가는 하나의 과정일 뿐이다. 그는 숲과 자연에 대해, 아이의 세계와 어른의 시선에 대해 무수히 많은 이야기를 그 안에 심어두었다.
TV 만화영화를 보기 위해 주말 아침마다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던 때가 있었다. 뜻 모를 마법 주문을 주절주절 읊고, 주제가를 따라 부르고, 만화 잡지 <보물섬>을 읽는 재미로 피아노 학원에 다니던 시절. 내게도 있고 내 친구들에게도 있던 그 시절이 불쑥불쑥 튀어 오를 때마다 우리는 스스로가 얼마나 자라 그 만화 속 어른의 모습이 됐는지 곱씹는다. 그때는 그토록 얄밉던 누군가를 어느샌가 이해하게 된 나 자신과 맞닥뜨리기도 한다. 결국 어린이용 캐릭터가 투영하는 삶이란 비단 아이만의 것이 아니다. 한때 주인공이었지만 지금은 주인공의 아버지가 되었거나, 과거엔 기억하던 마법 주문을 조금씩 잊고 살게 됐을 뿐. 모두가 그 빛나는 시절을 서랍 맨 아래 칸에 넣어둔 채 종종 꺼내 추억하거나, 아예 자물쇠를 걸어 굳게 잠근다.

좋은 캐릭터는 불멸한다는 진실을 우리는 이미 둘리를 통해 안다. 최근만 해도 펭수의 ‘남극 유치원 선배’란 이유로 아이들 입에 새롭게 오르내렸는데, 기존 캐릭터에 힘이 없었다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실제로 지금의 펭수에 비견할 만한 인기를 과거 둘리도 누렸다. 한 시대를 풍미한 스타였다가 잠시 잊히기도 했고, 지금처럼 다시 주목받은 시기도 여러 번이다. 둘리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은 TV 애니메이션 <뉴 아기공룡 둘리>. 1983년 <보물섬>에 등장해 무려 26년이란 긴 세월을 버텨낸 이 ‘초능력 아기 공룡’은 애니메이션이 종영한 2009년을 끝으로 자취를 감췄다. ‘둘리 아빠’ 김수정 작가 역시 마찬가지였다. 보통 만화 한 편이 끝나면 만화가는 새로운 작품이나 캐릭터를 들고 나타나기 마련인데, 그는 어떤 후속작도 없었으며 어디서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리고 2019년 12월, 긴 침묵을 깨고 세 권짜리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모두의 예상과 달리 만화도 그림책도 아니었다. 그가 10년 만에 내민 복귀작은 어린이 판타지 소설 <모두 어디로 갔을까?>. 숲에서 길을 잃은 아이들이 하루 동안 성장해가는 이야기다.

만화가가 아닌 소설가 김수정이 낸 첫 어린이 소설 <모두 어디로 갔을까?>. 그가 구상한 요정 시리즈 연작 중 첫 번째인 바람의 요정 이야기를 그렸다.

딸에게, 아빠가 건네는 이야기
“사실 내 마지막 둘리 프로젝트는 <뉴 아기공룡 둘리>가 아니었어요. 그 시리즈의 방영이 끝난 뒤 2013년 개봉을 목표로 새 극장용 애니메이션을 준비하기 시작했으니까요. 그런데 한참 작업하던 도중 제작사에 문제가 생겼고, 결과적으로는 제작 자체가 무산돼버렸어요. 프리 프로덕션이 끝나면 사실상 전체 작업의 50%는 끝났다고 봐야 하거든요. 그런 상태에서 갑자기 주저앉았으니 힘이 빠질 수 밖에요.” 그간 만화가로 살며 무수히 겪은 일이지만, 그렇기에 누적된 상처는 한층 더 깊었다. 그는 그 무렵부터 ‘한국에서 다시 애니메이션을 만들긴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돌이켜보면 만화가로서 그의 생은 늘 둘리와 함께였다. 그러니 둘리 아빠가 둘리를 그린 마지막 순간, 우리가 더는 둘리 모습을 볼 수 없게 된 순간, 그의 작가 인생도 분명 달라졌을 터이다. 결국 2012년, 김수정 작가 가족은 고향을 떠나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 밴쿠버에 새로운 터를 잡았다.

그는 초록빛 도시로 소문난 밴쿠버에서도 유독 농밀한 숲을 품은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 캠퍼스 안에 아파트를 구했다. 늘씬하게 쭉쭉 뻗은 전나무 군락이 베란다 창 너머로 손에 닿을 듯 가까웠고, 종종 야생 너구리나 늑대가 숲길에서 태연자약하게 산보를 즐겼다. 달라진 환경, 달라진 세계. 갑작스레 사방을 감싼 자연과 가장 예민하게 소통한 건 당시 초등학교 2학년이던 늦둥이 딸이었다. “어느 날 부턴가 집 앞 나무가 하나둘씩 잘려나가기 시작했는데, 그걸 본 딸이 묻더라고요. 왜 나무를 자르냐고, 그럼 어디로 가냐고. 딸이 그 나무를 좋아했거든요. 늘 마주하고 소통하던 존재가 사라지니 마음이 흔들리는 것 같았어요. 그때 딸이 말한 한마디 한마디가 이 동화 같은 이야기의 시작이었죠.” 어느새 그의 얼굴에 번지는 미소. 이역만리 서울 땅에서도 딸만 생각하면 저리 웃음부터 나는데, 그 딸아이를 그린 이야기엔 얼마나 정성을 쏟아부었겠나. 끝내 아빠의 마음을 다 헤아릴 길은 없을 테지만, 나는 무언가 엄마와는 다른 애정의 촉감을 그 표정에서 느꼈다. 마치 굳은살이 두툼한 손가락 끝이나 까끌까끌한 턱의 면도 자국 같은 부정父情. <모두 어디로 갔을까?>의 전권 서두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딸에게, 아빠가….”

사실 이 책을 처음부터 소설로 기획한 건 아니다. 그저 ‘아빠’가 아홉 살 딸의 감성을 잊지 않으려 매일 조금씩 남긴 기록이 어느새 그림책 형태로 ‘작가’의 머릿속에 자리 잡았을 뿐이다. “만화로는 너무 오래 걸릴 것 같아 그림책을 택한 건데, 막상 글을 쓰다 보니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점점 글이 그림보다 우선순위에 놓이게 됐죠.” 그의 그림 동화가 소설로 바뀐 이유는 책장을 몇 장만 넘겨보면 금세 알 수 있다. 한 문장 한 문장이 마치 만화 컷처럼 이야기 속 풍경을 꺼내 이미지로 펼쳐 보이기 때문이다. 세라(막내딸 시하의 영어 이름이다)가 숲을 가로질러 학교로 향할 때, 친구들과 길을 잃고 정신없이 헤맬 때, 삽화 한 점 없이도 그 숲길이 눈앞에 생생히 그려진다. “만화가는 그림을 그릴 때 실질적 텍스트만 있으면 돼요. 상황 설명이나 다른 모든 건 그림이 대신하니까요. 그런데 이걸 글로 쓰다 보니 상황 자체를 묘사하게 되더라고요. 자꾸만 글이 길어지는 거죠.” 글 작업 4년에 그림 작업 1년 반, 출판이 여의치않아 기다린 시간까지 보태면 장장 7년 가까운 세월을 쏟아부은 책. 그 책을 연신 쓸어내리며 45년 경력의 만화가는 “내가 그림을 이렇게 못 그리는 줄 처음 알았다”며 허허 웃었다. 도무지 믿기 어려우면서도 진심 같던 이 말은, 그가 얼마나 큰 부담을 안고 삽화에 도전했는지 깨닫게 했다. 전문 작가가 아니니 글은 좀 부족해도 그러려니 하지만 그림이 부족한 건 말이 안 되지 않나, 한국 만화의 거장이 품은 염려가 자못 이해되기도 했다. “뭣보다 나이는 못속여요. 체력 문제를 떠나 이미 내가 해온 작업 자체가 구닥다리가 됐다는 거죠. 나는 몰라도 지금 세대는 분명 그걸 알 테고요. 그렇다고 지금껏 해온 것을 전부 버릴 수는 없잖아요. 고민이 참 많았어요. 아마 새로운 걸 시도하는 작가라면 누구나 느끼는 부분일 거예요.” 오히려 글쓰기보다 어려웠던 삽화 작업까지 마치고 책을 내놓으니 시간은 어느덧 훌쩍 흘러 있었다. 초등학교 2학년이던 딸아이는 이제 고등학교 2학년이 됐다.

“어느 날부턴가 집 앞 나무가 하나둘씩 잘려나가기 시작했는 데, 그걸 본 딸이 묻더라고요. 왜 나무를 자르냐고, 그럼 어디로 가냐고. 딸이 그 나무를 좋아했거든요. 늘 마주하고 소통하던 존재가 사라지니 마음이 흔들리는 것 같았어요. 그때 딸이 말한 한마디 한마디가 이 동화 같은 이야기의 시작이었죠.”

현재 김수정 작가가 가족과 함께 사는 집은 캐나다 밴쿠버에 있지만, 그곳에선 주로 작품 구상을 하고 본격적인 글과 그림 작업은 서울의 작업실에서 진행한다. 생애 첫 소설을 준비하며, 그는 그렇게 서울과 밴쿠버를 끊임없이 오갔다.

이미 불멸의 캐릭터가 된 둘리와 그의 친구들.

<모두 어디로 갔을까?>의 주인공인 세라는 작가의 막내딸 시하의 아홉 살 때 모습을 고스란히 투영한 캐릭터다. 극중 세라의 친구들도 모두 실제 친구들이다.
거기에 나무가 있었다
그렇다면 나무가 사라진 자리는 어떻게 됐을까? 감수성이 남다르던 아홉 살 여자아이가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본 그곳. 그 빽빽하던 나무들의 무덤에는 곧장 아파트가 들어섰다고 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아파트가 그 옆에 들어섰고, 나무는 계속해서 잘려나갔단다. 1백 년 전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이 세워지기 전에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지켜온 숲이 앞으로 1백 년 뒤 어떤 모습으로 남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 숲은 소설 속 대부분의 사건에 주요 배경으로 묘사됐고, 김수정 작가는 이렇게 썼다.

“1916년에 처음 문을 연 후, 거의 1백 년이 흐르는 동안, 학교 모습도 바뀌고 숲의 모습도 바뀌었어요. 1백 년이 흐르는 동안 이곳은 인구 5천 명이 넘는 작은 마을로 탄생했죠. 그뿐 아니라 앞으로 인구 만 명을 목표로 자립 도시로 키운다는 말도 있어요. 그러려면 숲은 지금보다 더 줄어들거예요. 어쨌거나 사람들이 몰려들자 요정들은 물론 이 숲에서 오랫동안 살아왔던 동물들의 수난도 같이 시작되었어요. 요정들은 숲 밖으로 쫓겨나 죽기도 하고, 떠나기도하고… 갈 곳마저 없어 버티고 있던 요정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정체성을 잃고 자신이 누군지도 모른 채 동물의 모습으로 살아갔대요.” “그게 지금 우리 아이들이 사라진 것과 무슨 관계가 있나요?” “아까 아이들이 있는 숲 보셨죠? 지금의 이 숲과 다르죠? 할머니는 ‘1백 년이 되기 전에 과거로 돌아가서 이 숲을 옛날 모습으로 돌려놓아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어요. 그러지 않으면 다시 1백 년 후에는 이 숲마저 사라진다고요.”(<모두 어디로 갔을까?> 중 사라진 아이들의 부모들이 모여 대화하는 장면이다.) 실제로 캐나다에서 접한 대륙의 숲과 자연은 그의 작품 세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어지간히 놀기 좋아하는 사람이면 견뎌내지 못할” 그 고요하고 한갓진 동네에서 그는 매일 운동하고 글을 쓰고 카페에 앉아 작품 구상에 몰두하는 일과를 반복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이야깃거리인 작가의 삶. 그 시선에 가장 자주 담긴 건 아이들이었다. “그곳에선 아이들의 일상이 무척 자유롭더라고요. 일단 중학생 때까지는 부모가 거의 공부를 시키지 않아요. 워낙 주변에 숲도 풍성하고 자연적 놀이 공간이 많으니 학교에서 돌아오면 자기들끼리 놀러 다니느라 바쁘죠.” 그 자유로운 소년소녀들의 일상을 보며 김수정 작가는 한국 아이들을 떠올렸다. 고향인 진주 바닥을 온통 헤집고 뛰어다니던 자신의 어린 시절도 떠올렸다. 친구들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다가, 뒤늦게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날이 어두워져 있고, 더듬더듬 집에 가는 길을 찾다가 같은 다리를 몇 번씩 왔다 갔다 한 기억. 어쩌면 그런 서툴고 때론 낭패스럽던 경험들이 아이와 어른을 함께 성장시키는 건 아닐까.

그가 “한국 아이들에게 여름방학을 돌려줘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캐나다에선 여름방학이 석달 가까이 돼요. 날 좋을 때 많이 놀고 여행하라는 거죠. 서울엔 숲이 많지 않지만, 하다 못해 서울숲에라도 가서 자꾸만 뒹굴어야 해요. 그러는 동안 자연을 느끼고 생각하며 자유로움을 배우니까요.” 김수정 작가는 캐나다 아이들이 대자연 속에서 어떻게 뛰놀며 성장해가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자신이 사는 동네, 익숙한 풍경이며 공간만이 아니라 딸의 친구들과 그들이 함께 겪은 에피소드까지 그대로 소설 세계에 끌고 들어왔다. “그냥 막연하게 머릿속으로만 생각하다 보면 캐릭터가 들쭉날쭉해져요. 실재하지 않으니까 작가가 자꾸만 뭔가를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는 거예요. 그런데 주변 인물 중 한 명을 가상해놓고 쓰면 캐릭터의 성격이 일관성 있게 그려지죠. 그게 내가 생각하는 ‘근거와 진실성’이에요.”


아이는 아이의 시선으로,
어른은 어른의 시선으로
딸에게 주는 선물처럼 시작한 만화가의 그림 동화는 그렇게 갈지자로 퍼져 7년에 걸친 소설가의 장기 프로젝트로 마무리됐다. 딸아이가 커가듯 작품도 커졌고, 이야기가 지닌 세계관도 함께 커졌다. “어차피 아이들은 계속 자라니까 크면서 언제든 책을 읽을 수 있잖아요. 그래서 일단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그 엄마들까지 대략이나마 독자층을 정해놓고 썼어요. 솔직히 아이들보다는 엄마들이 먼저 이 책을 읽으면 좋겠고요.” 만화든 소설이든 그의 작품 속 어른들은 모두 지극히 어른 같다. 어린이용 만화영화라고 해서 어른 캐릭터를 과장하거나 아이 눈높이에 맞춰 그리진 않는다. 그렇기에 아이는 아이의 시선으로, 어른은 어른의 시선으로 각자 공감하는 캐릭터가 생긴다. 이건 만화가 김수정의 방식이다. “이를테면 둘리 시리즈 속 고길동 캐릭터에는 지금도 변함없는 한국 아버지 모습이 투영돼 있어요. 둘리 캐릭터에는 여전히 천진난만한 아이 모습이 담겨있고요. 그런 면들 덕분에 세월이 이만큼 지났어도 각 세대에서 꾸준히 공감할 수 있는 게 아닐까요?” 그의 작업에서 여전히 중요한 건 근거와 진실성, 세상을 보는 아이와 어른의 시선이다.

소설가로 돌아온 김수정 작가는 이제 막 고개 하나를 넘었다. 그러니까 적어도 이번 신작이 그의 마지막 소설은 아니란 뜻이다. “<모두 어디로 갔을까?>는 내 요정 시리즈 연작 중 첫 번째 작품이에요. 앞으로 두 작품이 더 남았고, 각각 바다의 요정과 죽음의 요정에 대한 얘기죠. 형식은 아직 정해놓지 않았어요. 첫 번째가 그랬듯 우선 글을 쓰면서 고민하고 또 고치고, 그러다 보면 알맞은 형태가 나타나지 않겠어요?” 올해로 일흔한 살이 된 이 백전노장은 도무지 도전을 두려워하는 법이 없다. 시행착오를 줄이거나 더 쉬운 길을 고르려 애쓰지도 않는다. 그가 이 척박한 환경에서 어떻게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고, 둘리를 한국의 대표 캐릭터로 키워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는 한국 만화계에 한 획을 그은 거장이자, 이제 막 집필 활동을 시작한 소설가이며, 여전히 뜨겁고 진지한 창작자였다.

글 류현경 기자 | 사진 김상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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