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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김참새 알 수 없는 위로
‘김참새’라는 독특한 이름에서 많은 사람이 밝고 유쾌한 회화적 심상을 떠올린다. 이제 겨우 개인전을 두 번 열었을 뿐인데 “알 수 없는 위로를 주는 그림”이라는 비평이 관객들의 입을 통해 확산되었다. 미술 애호가와 예술에 문외한인 사람들을 두루 끌어당기는 직관적 색채의 매력과 심상으로 작가가 예술계에 고유하게 자리매김한 흔치 않은 사례다.

작업실에 들어서는 순간 북한산과 구기동의 풍경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색색의 작업 도구와 싱그러운 식물, 빈티지 가구로 채워진 이곳에서 매일 새로운 작업을 실험한다. 김참새라는 이름은 독립적이고 통찰력 있는 성품을 지닌 친동생이 오래 전 지어준 예명이다.

김참새 작가는 프랑스 낭시 국립고등미술대학에서 파인 아트를 공부했습니다. 정준일·뜨거운 감자·마이큐 등 뮤지션 앨범의 아트 디렉팅을 했고, 현대카드·한섬, 카카오톡 등 다양한 기업과 협업을 했습니다. 두 차례 개인전을 열었으며, 올해 말 그림과 글이 담긴 에세이집을 출간합니다.


‘우는 자와 울지 않는 자’, acrylic on canvas, 144×206cm, 2019

‘Untitled’, installation, 2019
10월 31일까지 갤러리ERD에서 열리는 김참새 작가의 두 번째 개인전 는 순수 미술 영역에서의 작업을 선보인다. 평소 일기를 써 내려가듯 그림으로 기록한 일상 이야기를 페인팅, 영상, 설치, 바느질 등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며 공감각을 극대화했다.

프랑스 낭시의 국립고등미술대학을 졸업했네요.
정답 그림만 따라 그려야 하는 국내 미술대학 입시에 적응하지 못해 많이 방황했어요. 이를 안타까워하시던 화실 선생님이 프랑스에서 자유롭게 활동하는 작가의 신문 기사를 건네주셨어요. 부모님을 설득하고 프랑스어학원에서 두 달간 기초 회화만 배워 혼자 리옹으로 갔지요. 파리로 갈 형편과 상황이 되지 않아 리옹에서 작은 어학원을 다니며 밤낮으로 그림만 그렸어요. 프랑스의 국립대학은 학교에 입학 편지를 쓰고 철학 시험, 실기 시험, 면접시험을 통과해야 하는데, 도와줄 사람도 없으니 어떻게든 저 혼자 해내야 했지요. 다행히 1년도 되지 않아 바로 국립대학에 합격해서 저 자신도 놀랐어요.

밝은 색감은 프랑스에서 공부한 영향 때문인가요?
낭시 국립고등미술학교 1학년 때 교수님들이 제게 일러스트와 시각디자인을 하는 게 좋겠다고 권유했어요. 순수 미술을 하려고 프랑스에 왔기에 그런 제안을 거절했어요. 그런데 순수 미술을 전공하면서 사달이 났죠. (웃음) 밝은 색감은 아마 어머니의 영향인 것 같아요. 제가 어릴 때 어머니는 옷감으로 무엇을 만드는 걸 좋아하셨는데, 그 색감이 특별했어요. 지금도 손톱에 형광 컬러 매니큐어를 바르면서 예쁘다고 좋아하세요.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색채와 소재에 대한 영향을 어머니에게서 받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순수 미술을 전공하며 또 방황을 했다고요.
사진, 조소, 판화, 영상, 사운드와 철학까지 많은 수업과 많은 과제를 전부 흡수해야 했어요.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 ‘나는 서양학과 출신이기 때문에 이걸 페인팅으로 풀어야 해’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경계하는 게 프랑스식 예술 수업이죠. 그러다 교수님께 호되게 야단을 맞았는데, 이상하게 그날 이후로 갑자기 프랑스어를 하지 못하게 되었어요. 우울증에 빠진 거죠.


순수 미술과 일러스트를 병행하는 이유가 있나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아르바이트를 구해서 3개월간 머무는 동안 우울증이 많이 좋아졌어요. 그 이후 다시 학교로 돌아왔고 순수 미술이라는 장르가 여전히 어려웠지만, 다행히 졸업 전시에 합격했죠. 그러고 나서 한 교수님이 저를 찾아오셨어요. “너는 한국으로 돌아가서도 꼭 그림을 그리면 좋겠다. 파리로 돌아가는 기차 시간에 늦었는데도 이렇게 황급히 학교로 온 건 너에게 이 말을 해주기 위해서니, 꼭 그림을 그려라”라고 하셨죠. 순수 미술이 너무 어렵게 느껴져 졸업과 동시에 일반 회사에 취직하러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그 말씀이 계속 가슴에 남았어요.

뮤지션, 패션 부티크, 미디어와 많은 협업을 했죠. 그런 일이 트위터나 인스타그램을 통해 진행된 점이 특이하네요.
학생 때는 형편이 넉넉지 않아서 늘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한국에 있던 친구가 한 가수가 앨범 아트워크를 할 사람을 트위터로 찾고 있다고 하길래, 아트워크가 무언지도 모르면서 그 가수에게 트위터로 연락을 했어요. 그 일을 계기로 정준일의 1집 아트 디렉팅을 하게 되었고, 그 후로 다른 가수들과 패션 하우스, 미디어 등의 일이 이어졌지요. 인스타그램은 미대 1학년 때 프랑스의 저희 학교에서 유행이었어요. 그때부터 제 작업이나 관심사를 이미지로 공유했는데, 그걸 보고 한국에서 작업을 요청하기도 했어요. 만나보지 않은 작가에게 왜 작업을 의뢰하냐고 물으면 ‘취향을 공감’하기 때문이라는 답을 많이 들었어요.

두 번째 개인전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
제 작업은 일러스트에 국한되지 않아요. 사진이나 드로잉만으로 보여줄 수 없는 그 안의 철학적 이야기, 터치, 질감, 시각적인 것과 부수적인 것의 결합이 예술이죠. 이번 개인전에 선보인 작품은 페인팅이 더 많아졌고, 순수 미술 쪽으로 조금 더 움직여왔다고 생각합니다. 30대 중반, 아직 경험이 부족하고 살아온 햇수도 짧은 젊은 작가이지만, 철없고 부족한 일상의 경험을 그리려고 해요. 대신 매일 다양한 표현 방식을 실험해요. 한지에 오일 파스텔을 써보기도 하고, 최근에는 먹을 가지고 다양한 시도도 해봤어요.

“특유의 밝은 컬러가 마음에 위로와 유쾌함을 준다”는 평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제 작업의 소재는 일상에서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여느 사람들처럼 어둡고 힘든 부분도 존재합니다. 반려견 바다를 보낸 후 몇 년째 눈물이 나고, 쇠사슬에 묶여 학대받던 파양견 유진이를 데려와 돌보면서 가슴이 아팠어요. 반면, 다른 개를 싫어하는 바다가 유진이와는 등을 맞대고 잠든 모습, 앞을 보지 못하는 바다가 벽에 부딪칠까 봐 유진이가 뒤에 가서 코로 받쳐주던 모습에서는 감동을 느꼈죠. 흔히 제가 밝은 컬러를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제 그림이 밝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이 많아요. 하지만 사람을 대할 때도 그런 오류가 있는 것 같아요. 그저 웃고 있으면 밝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그 안을 잘 들여다보지 않죠.

이번 개인전에서 선보인 작가의 작품에는 일상의 시선으로 바라본 시대상도 자연스레 담겨 있다. ‘우는 자와 울지 않는 자’는 작은 호랑이가 등에 층층이 올라탄 커다란 호랑이의 갑질에 가슴 아파하는 작가의 시대적 공감과 내적 목소리가 담겼다. 야행성으로 밤을 지새워야 하는 운명이지만, 작가의 종이 위에서만큼은 유난히 싱그러운 파란 옷을 입어 빛나는 부엉이(표지 작품 ‘Untitled’)는 또 어떤가. 그러한 회화적 반어법에서 자연스레 존재의 굴레에 대한 토닥임을 느끼는 건 색채의 마술인가 작가의 마법인가. 방황과 슬픔 같은 어두움에 부딪혀도 모나지 않도록 다듬어온 내면의 채도. 동양적 느낌의 종이에 서양 재료를 사용하며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살아가려는 젊은 날의 다짐. 이와 같은 철학 위의 밝은 색감, 김참새라는 고유한 영역은 이 두 좌표의 어디쯤에서 생성되어 확장되고 있다.


작가와의 만남
김참새 작가가 개인전 에서 작품을 직접 설명하고, 미니 토크도 함께합니다.

일시 10월 30일(수) 오후 2시
장소 서울시 용산구 회나무로13가길 25 갤러리ERD
참가비 2만 원(정기 구독자 1만 원)
인원 10명
신청 방법 <행복> 홈페이지 '이벤트' 코너에 참가 이유를 적어 신청하세요.

글 김민정 | 사진 이우경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9년 1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