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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춘화 정원 디자이너 정원의 주인공은 살아 있는 식물입니다
‘가든 디자이너’라는 직업조차 생소하던 때 국내 정원 디자이너 1세대로 지금까지 활발하게 활동 중인 아이디얼가든의 임춘화 대표를 만났다.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광을 풍부하게 받아들이는 그의 정원은 사계절의 얼굴을 보고 싶은 아름다운 식물로 가득하다.

임춘화 대표는 국내 정원 디자인의 선구자로서 디자인 스쿨을 통해 후배 정원 디자이너를 꾸준히 양성하고 있다.

카페 그린 망고 내부에서 창을 통해 보이는 정원 풍경. 그 중심에는 박장근 조각가의 'Human Blossom'이란 조각상이 서 있다.
삶의 구김새를 다려주는 정원
성은 수풀 림林이요, 이름은 봄 춘春, 꽃 화花니 법학을 전공한 임춘화 대표가 나이 마흔 무렵에 정원을 열렬히 사랑한 것은 아마 운명이었으리라. 2001년 가족과 떠난 영국행은 그의 인생 방향을 바꾼 극적 변곡점이 되었다. “마당이며 길, 베란다 등 생활 곳곳을 싱그러운 꽃과 수풀로 채운 영국의 정원 문화는 기분 좋은 활력과 깊은 감동을 주었어요. 가장 놀란 것은 내 정원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내가 주인이 된 느낌을 받는다는 사실이었어요.” 스스로 하찮게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대접받는 기분이 들게 하는 정원은 어떤 모습일까?

2016년 임춘화 대표가 조성한 영국식 정원인 양평에 위치한 카페 그린 망고가 바로 그러하다. 기하학 도형과 선을 대칭적으로 배치한 포멀 가든을 중심으로 각각의 구역은 테마별로 컬러 포인트를 주었다. 붉은색과 오렌지색·노란색 꽃을 피우는 식물로 조성한 레드 가든, 흰색 수국과 흰색 계열의 그라스를 심은 화이트 가든이 바로 그것이다. 포멀 가든의 양옆에는 네잎 클로버 모양으로 식재했는데, 튤립, 알리움, 엔젤로니아 등 매년 일년초를 다르게 심어 사계절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화려한 초화류는 꽃이 지고 나면 황량해지지 않을까 걱정할 수도 있지만, 정형성을 담은 포멀 가든은 겨울에도 눈이 살포시 내린 그 흔적만으로도 서정적 경관을 선사한다. “정원이란 옷의 구김을 펴주는 다리미라고 생각해요.” 그의 말처럼 정원에 들어서는 사람마다 얼굴 표정이 환하게 변한다. 일상에 구김 하나 없는 순간이 있다면 바로 이곳에 머무를 때가 아닐까.

“공간 디자인의 중심은 다름 아닌 식물이에요. 시설물이나 조형물에 힘이 들어가면 식물이 주인공이 되지 못해요. 정원의 생명력을 잃게 되는 것이죠.” _임춘화

정원 디자인은 식물에서 출발한다
임 대표는 그저 정원을 거닐고 즐기는 것에 그치지 않고 영국 리즈 메트로폴리탄대와 영국왕립원예협회(RHS) 할로카 가든Harlow Carr Garden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정원 디자인 집중 코스 과정을 이수하며 본격적으로 공부했다. “대학생 시절 연애하는 듯한 설레는 기분을 느꼈어요.” 온통 암호처럼 어려운 정원 용어도, 밤샘 과제도 전혀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귀국한 뒤 경기도 연천 허브빌리지에서 식재 디자인을 맡아 4년간 근무한 것이 가장 값진 경험이었다. “교과서에서 배운 것을 제 뜻대로 실험해볼 수 있었어요. 식물에 대한 자신감을 얻었죠.” 물론 처음에는 여러 가지 난관을 겪었다. 영국에서 배운 대로 초화 설계를 해놓고 보니 국내시장에서는 파는 꽃이 없었다. “그때 제가 아는 지식으로 설계하는 건 쓸모가 없다는 걸 깨달았죠.” 실제 만들 수 없는 정원을 도면에 그려놨으니 실현될리가 만무했다. 그 후로 영국에서 씨앗을 가져와 심기도하고, 국내시장에서 파는 꽃도 옮겨 심으면서 지속적으로 실험해보았다. 실제로 심어보니 월동이 안 되는 것도 있는가 하면, 반은 장마 때 물러서 죽고, 나머지 반은 겨울엔 얼어 죽었다. 그렇게 몸으로 부딪쳐가며 햇빛, 온도, 물, 토양 등 정원의 환경과 식물 관계, 그리고 양지식물, 음지식물, 가뭄에 잘 견디는 식물 등 다양한 식물의 생리에 맞는 식재 디자인을 터득해갔다.

그는 2010년 정원 디자인에 전반적 개론서인 <행복한 놀이, 정원 디자인>을 펴낸 이후로 8년 만에 <정원의 식재 디자인>이란 책을 발간했다. 탄탄한 이론과 생생하게 체득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체계적 실용서로, 그 어떤 아름다운 조형적 요소보다 식물 자체의 생명력이 곧 정원의 중심이라는 생각으로 쓴 책이다. 어떤 식물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가 정원 디자인의 정체성을 결정한다는 것. “공간 디자인의 중심은 다름 아닌 식물이에요. 시설물이나 조형물에 힘이 들어가면 식물이 주인공이 되지 못해요. 정원의 생명력을 잃게 되는 것이죠.”

포멀 가든과 입구 사이 산책로에는 로맨틱한 장미 아치를 설치했다.

키 큰 관목으로 우거진 푸른 지붕 정자의 뒤쪽.

흰무늬억새, 플록스, 여름 수국으로 몽환적 분위기를 연출한 화이트 가든에는 둥근 쉼터와 벤치를 마련했다.

정원사에게 물었습니다

초보 가드너에게 조언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즐거움을 쉽게 얻으려고만 하지 않는다면 좋겠어요. 보통 다채로운 초화를 심은 영국식 정원을 제안하면 “관리하기 어렵잖아요”라는 반응이 가장 먼저 나오더군요. 정말 정원을 사랑한다면 지나가다 잡초가 보이면 저절로 뽑게 되지요. ‘관리’라는 생각이 들지 않아요. 늘 예쁜 정원이 눈앞에 존재하면 좋겠다는 건 이상적인 이야기예요. 정말 정원을 사랑한다면, 늘 관심을 갖고 살피며 공을 들여야죠. 정원을 보는 즐거움만 아니라, 정원을 돌보는 즐거움도 경험해보기를 바랍니다.

정원을 알고 싶은 사람을 위해 어떤 클래스를 하나요?
제가 운영하는 정원 아카데미는 대부분 초심자를 대상으로 합니다. 크게 정원 디자인 전문가가 되고자 하는 분을 위한 30주 코스의 정원 디자인 전문가 과정, 내 집 정원을 직접 디자인하고자 하는 분을 위한 10주 코스의 주택 정원 셀프 디자인 과정, 식재 스타일별 디자인을 집중해서 배우고 싶은 분을 위한 10주 코스의 식재 디자인 과정 총 세 가지로 나뉩니다. 정원 종류와 스타일부터 정원의 구성 요소, 디자인 원칙, 도면 드로잉 기초 등 필요한 요점 중심으로 커리큘럼을 구성했습니다.

클래스를 수강하는 학생에게 조언하고 싶은 말은?
배우자마자 전문가가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좋겠어요. 정원을 만드는 기초 지식을 배운 것뿐이죠. 직접 씨앗을 흙에 심어 싹을 틔우고 어떻게 꽃을 피우는지 늘 식물을 관찰해야 합니다. "이걸 배워서 돈을 벌 수 있나요?"라고 묻는다면 딱히 할 말이 없어요. 일단 배우는 건 고민하지 말라고 해요. 공부하고 경험을 쌓아야 자신감이 생기기 때문이죠. 훗날 정원 디자이너를 직업으로 삼지 않더라도 결코 쓸모없는 지식은 아닙니다.

글 이승민 기자 | 사진 이창화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9년 10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