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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예술 작가 이미주 다만 오래도록 아름답기를
일상 물건에 오래전부터 꾸어온 꿈의 모호한 느낌을 더해 감각적으로 배치한 정물화. 평면을 넘어 입체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이미주 작가의 작업은 신선하고 즐겁다.

전시 가 열리는 이목갤러리. 이미주 작가 뒤의 그림은 부산 작업실 책상 위 풍경을 그린 작품이다. 다양한 시점으로 입체를 납작하게 누른 듯한 화법이 경쾌하다. 
“예쁘고 아름다운 것을 만들고 싶어서 산업디자인을 공부하고, 디자이너가 되었어요. 회사에서 공기청정기 같은 물건을 디자인하던 어느 날, 곰곰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디자인을 계속해야 할 당위성을 찾지 못하겠더라고요. 튼튼하고 아름다운 사물이 이미 너무나 많은데, 내 디자인은 그저 사람들에게 새로운 물건을 소비하도록 하기 위한 수단이 아닐까? 디자이너로 남기 위해 디자인을 계속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오래도록 아름다울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요.” 

그 말처럼 참 예쁜 그림. 이미주 작가는 형태를 기하학적으로 단순화한 인물과 정물, 동물과 식물 등을 한 화면에 배치한다. 온갖 요소가 혼재하지만 조화롭고, 다채로운 색을 사용하지만 분위기는 편안하게 가라앉아 있다. 귀엽지만 무표정한 인물, 익숙하지만 어딘가 기묘한 물건…. 그의 그림을 글로 설명하려면 ‘하지만’이라는 접속부사를 계속 쓰게 된다. 동서양의 화법인 투시법과 역원근법이 무람없이 섞이기도 한다. 예쁜 것을 그려서 예쁜 그림이 아니라, 온갖 이질적이고 상반되는 요소를 감각적으로 배치해 만들어낸 예쁜 그림. 평면을 넘어 도예와 설치 등 입체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이미주 작가의 작업이 늘 신선하고 재미있는 이유다. 

이미주 작가는 스스로 작업 과정을 더욱 다양화하고, 흥미롭게 만들기 위해 평면과 입체를 오가며 작업한다.
잃어버린 재미를 찾아서 
스스로 디자인을 계속할 당위성을 찾지 못한 이미주 작가는 회사를 그만두고 그림과 도예를 공부하기 위해 스페인으로 유학을 떠났다. 생각과 다른 유학 생활. 사람들과 대화하며 친밀함을 공유하는 걸 좋아하던 그에게 낯선 언어는 보이지 않는 벽이었다. 방에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갔고, 말로 표현하지 못한 수많은 감정을 그림으로 그렸다. “어린 시절 이후 오랜만에 그림 그리기의 즐거움을 느꼈죠. 디자이너로서 늘 그림을 그렸지만, 내 이야기가 아니라 무언가를 설명하기 위한 그림이었으니까요. 혼자 그림 그리는 일이 자각몽 같다고 생각했어요. 꿈이라는 사실을 알고 꾸는 꿈. 그림 안에서는 내가 주인이자 감독이니까 무엇이든 가져와서 내 마음대로 배치할 수 있잖아요. 한국에서 가져간 색연필로 그렇게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죠.” 

방구석에서 혼자 그린 그림이 화상의 눈에 띄어 갤러리에서 전시를 열었고, 낯선 눈으로 바라본 바르셀로나 풍경에 관객의 반응이 무척 좋았다. 하고 싶은 대로 그린 그림으로 돈을 버니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없었다. “그리는 일을 하면서 계속 살아도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는인물이든 정물이든 풍경이든 그때그때 그리고 싶은 것을 일단 그리고, 색상과 여백을 고려해 좋아하는 것을 하나하나 채워 넣는다. 이때 가장 중요한 건 조화와 균형. 이미주 작가에게 그림을 그리는 건 한 화면에서 가장 아름다운 조화를 찾는 과정이다. 

북촌 이목갤러리에서 진행 중인 개인전 에서 이미주 작가는 그림을 처음 시작하게 해준 도구이자 가장 편안한 재료인 색연필로 그린 그림을 선보인다. 전시 제목은 정물화 연작에서 따온 것. <행복> 8월호 표지 작품 ‘Draw Lucid Things 03’ 역시 그중 하나다. ‘lucid’는 ‘선명한’이라는 본래 의미와 이미주 작가가 자신의 작업을 설명하는 ‘자각몽(lucid dream)’을 동시에 의미한다. 전시 제목에 덧붙인 ‘선명한 것을 불충분하게 그리기’라는 문구의 의미를 묻자 “눈에 보이는 걸 그린 그림이지만,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리지는 않았으니까요”라고 답한다. 그는 작업실에 놓인 일상의 물건들을 조화롭게 배치한 정물화에 한 겹의 이야기를 더했다. 

“이상한 꿈을 자주 꾸는 편이에요. 머리가 여러 개 달린 존레넌John Lennon이 등장하기도 하고, 앞에서 볼 땐 멀쩡한데 옆에서 보면 납작한 사람들의 세계를 거닐기도 해요. 일어나자마자 기억나는 대로 꿈 내용을 메모하지요. 분명 최선을 다해 자세히 묘사했는데, 나중에 읽어보면 너무 이상한 거예요. 그런 모호한 문장에서 받은 느낌을 눈에 보이는 대상을 그린 그림에 섞어서 작품을 완성하곤 합니다. 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더하지만, 다 그리고 나면 그런 과정이 그림에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한 점의 기하학적 정물화로 완성되는 게 무척 재미있어요.” 

괌 이나라한Inarajan 해변 전신주에 그린 벽화. 그림과 주변 지형의 선을 재치 있게 일치시켰다. 
입체를 평면으로, 다시 평면을 입체로 
이미주 작가는 자신의 작품처럼, 작업하는 과정 역시 언제나 신선하고 즐겁기를 바란다. 평면으로 시작한 그의 작업이 도자기와 입체를 오가는 것 역시 작업의 재미를 유지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 “정규 예술 교육을 받지 않은, 근본이 없는 작가라 그런가 봐요.(웃음) 전업 작가로서 지속적으로 작업할 수 있는 환경을 스스로 구축하는 게 목표입니다. 그림 그리다가 스트레스를 받고 지치면 스스로에게 흥미를 유지할 수 있는 새로운 작업을 계속 제안하는 거죠. ‘미주야, 다음엔 흙으로 뭐 만들어볼까?’ ‘그림에 있는 것들을 입체로 옮겨보면 어때?’ 이런 식으로 말이에요.” 

‘Collecting and Assembling-Memory Theater’, 가변 설치, 합판에 페인트, 2018 
최근 이미주 작가는 그림에 평면으로 배치한 요소들을 하나하나 오려내듯 공간에 패널로 세운 설치 작업에 몰두해있다. 앞에서 바라보는 그림을 공간에 설치하면 사람들은 그 사이에서 작품을 감상한다. 앞에서는 평면처럼 보이지만, 다른 방향에서 보면 동그라미ㆍ세모ㆍ네모 등 기하학적 입체로 보이는 작업도 시도한다. 입체를 평면으로 만드는 그림처럼 평면을 다시 입체로 만드는, 공간 전체를 캔버스 삼아 그린 그림! 짧은 시간 소비하고 버리는 것이 아닌, 오래도록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길 바라는 그의 소망처럼 평면이든 입체든 이미주 작가의 작품은 언제나 밝고 화사하다. “물론 작업할 때 늘 기분이 좋지는 않죠. 하지만 슬프고 괴로운 감정을 그림에 직접적으로 표현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림에 몰두하면 그런 감정이 소진되는 걸 느끼거든요. 그때 기분이야 어떻든 작업의 결과로 조화롭고 아름다운 무언가를 완성할 수 있다는 사실이 무척 만족스러워요. 그림을 그리는 행위 자체가 위로가 되는 것처럼 내 그림이 다른 사람을 위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미주 작가는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과를 졸업하고 바르셀로나 예술대학교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공부했습니다. 바르셀로나 머트 갤러리와 미부아트센터, 봉산문화회관, 부산시민회관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다수의 단체전에 참가했습니다. 고향인 부산에 작업실을 마련하고 평면과 입체를 자유롭게 오가는 이미주 작가의 전시 가 8월 17일까지 이목갤러리에서 열립니다.

글 정규영 기자 | 사진 김정한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9년 8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