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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화가 유미선 마음속 풍경은 시간을 거슬러
기억 속 어린 시절의 풍경과 붙잡을 수 없는 상념을 오랜 수공을 통해 완성한 자유로운 선으로 그리는 한국화가 유미선. 그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 한국화라고 이야기한다.

석채를 수십 번 덧바른 은은한 바탕 위에 색을 내는 금속을 얇게 편 박을 올린다. 한국화가 유미선은 오랜 시간 반복한 수공을 통해 서정적 작품을 완성한다.

‘산책’, 한지에 석채와 은박, 62×133cm, 2016

“정원이 아니라 마당이었어요. 강아지가 있고, 채송화랑 맨드라미, 사루비아가 피어있는. 수돗가에 물이 흐르고 햇빛이 따스하게 비추고요. 그 느낌이 너무 좋아 학교 끝나면 할머니 댁 마당에 가서 한참을 혼자 놀다 오곤 했지요.” 한국화가 유미선은 어릴 적 시간을 보내던 기억 속 꽃과 새, 풀과 나무를 그린다. 단순한 선과 면으로 구성한 그림이 단아한 듯 활기차고, 차분한 듯 유쾌하다. 은은한 배경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오돌토돌한 질감이 뚜렷하고, 드로잉처럼 자유롭게 그은 듯한 선에 조명을 비추면 빛으로 반짝인다. 색을 내는 금속을 수천수만 번 두드려 얇게 편박箔을 붙인 것이다. 유미선 작가의 그림은 그 안에 있는 꽃과 새의 이름을 따져 물을 것 없이 보는 이 각자의 기억 속 그리운 풍경을 자연스럽게 호출한다.

그림이 바로 나
가만 보면 뜬금없이 숫자도 등장하고, 아무 형상도 아닌 낙서같은 선도 있다. “풍경 속을 걷다 보면 여러 가지 생각이 흘러가잖아요. 딱히 뭐라 말하기 어려운, 붙잡을 수 없는 생각들. 그런 생각을 낙서처럼 그려 넣었어요.” 용수철 같기도 하고, 리듬체조 선수가 공중으로 돌돌 감아 올린 리본 같기도 한 선. 유미선 작가는 한국화를 전공하던 대학 시절부터 그런 ‘낙서’를 그림에 그려 넣었다. “하루는 그림을 다 완성했는데 아무래도 뭔가 비어 있는 것 같았어요. 머리를 비우고 낙서하듯 선을 마구 그려 넣었지요. 당시 지도 교수님이 그걸 보고 ‘너는 참 간도 크다’ 하시더군요.(웃음) 낙서를 통해 나 자신이 그림 속에 들어갈 수 있달까? 이제는 낙서가 없으면 내 그림 같지가 않아요.” 숫자는 그림 속 풍경을 흐르는 시간이기도 하고, 주소나 전화번호처럼 세상 모든 존재에 붙는 표식이기도 하다. 표면의 오돌토돌한 질감은 돌가루를 아교물에 개어 색을 내는 석채石彩를 장지에 수십 번 덧발라 낸 것이다. 그렇게 완성한 은은하고 깊은 바탕 위에 얇디얇은 박을 가늘게 잘라 붓으로 찍어 선을 그린다. 세 번 이상 박을 겹쳐 붙여야 선에 힘이 붙는다. 시간과 노동이 보통 필요한 작업이 아니다.

즉흥적으로 그은 선처럼 보이지만, 손바닥만 한 꽃 하나를 완성하는 데 꼬박 하루가 걸리기도 한다. 유미선 작가는 오랜 시간 수공을 반복하며 마음속 풍경과 지금의 자신 사이를 흘러온 시간을 표현한다. 지금은 온갖 꽃과 새, 나무로 화사하지만, 예전 유미선 작가의 작업은 이보다 훨씬 단순했다. 어둑한 배경 속으로 보일 듯 말 듯 한 선 하나, 나무 한 그루, 새 한 마리가 스치듯 지나갔다. 물끄러미 초기작 ‘산’ 연작을 바라보자 작가 가 혼잣말처럼 말한다. “그땐 그게 저였어요.” 전공으로 동양화를 선택했지만 덮어놓고 옛것을 따라 그리고 싶지 않았고, 새로운 것을 그리자니 도통 한국화 같지 않았다. 대학원에서 그를 가르치던 남천 송수남 화백이 어느 날 화두처럼 물었다. “한국적인 것이 과연 무엇일까?” 여백, 소박함, 밥그릇, 조용필의 노래…. 온갖 것을 떠올리고 고민했지만 어떤 것도 명쾌하지 않았다. 방황의 시간이 길어졌다. 동문 모임에 나가면 이미 성공한 작가로 널리 인정받는 후배들의 자신감이 부러웠다. 좌절하는 한편으로, 이름도 없고 잃을 것도 없으니 한국화라는 틀에 매일 것 없이 하고 싶은 것 마음껏 해보자 생각했다. 

네 그림에 시가 있구나
“동기들과 치악산으로 캠핑을 떠난 적이 있어요. 밤에 하늘 보고 누워서 주거니 받거니 시조 한 수씩 읊곤 했지요. 낮에 산을 오를 때는 풀, 나무, 벌레, 집 등 굉장히 많은 것이 보이잖아요. 그런데 밤이 되자 그냥 어두운 종이 한 장 같은 거예요. 낮에 본 것들은 느낌으로만 남고요. 그렇게 산속에서 느낀 걸 그려보았어요.” 어두운 종이 한 장 같은 산속 풍경. 그런 그림을 보고 남천 선생은 “네 그림에 시詩가 있구나” 했다. 많은 전시와 아트 페어를 거치며 생긴 자신감만큼 차츰 선에 힘이 붙고 그림 속 꽃과 새가 분명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유미선 작가에게 한국화란 한국인으로서 자신의 정서를 가감 없이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 그는 더 이상 그림에 반영할 한국적인 것을 굳이 고민하거나 찾아 헤매지 않는다. 도곡동 2448 문파인아츠 갤러리에서 6월 19일부터 열리 는 유미선 작가 개인전의 제목은 <시간 속 풍경>이다. 6월 호 표지작인 ‘산책’ 연작을 비롯한 다양한 신작을 선보인다. 그에겐 지난 30년의 작업을 돌아보고, 나아갈 방향을 찾는 전환점으로서의 의미가 큰 전시. 앞으로 좀 더 규모가 큰 작품을 선보이고 싶다는 유미선 작가. 은박 위에 바니시 처리한 후 그 위로 배경을 입히면 작품 크기가 커져도 선이 힘을 잃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섰다. 오랜 시간이 필요한 고된 작업 과정을 모두 듣고 나서도 유미선 작가의 작품, 그 은은한 빛과 자유로운 선 앞에선 애써 힘들인 흔적을 찾기 어렵다. 그저 마음이 스르르 풀릴 뿐. “고요함이여/ 떨어지며 스치는/ 꽃잎의 소리.” 열일 곱 자 시구를 완성하기 위해 여러 날을 번민했을 옛 시인 의 하이쿠를 읽을 때처럼.

한국화가 유미선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습니다. 1997년 갤러리 동주에서 첫 전시를 연 후 공화랑, 예술의전당, 인사아트센터, 조선화랑 등에서 개인전을 치렀습니다. 2009년 춘추미술상을 수상했고, 미술은행ㆍ세종호텔ㆍ한국마사회 등에 작품이 소장되었습니다. 6월 19일부터 7월 3일까지 2448 문파인아츠 갤러리에서 개인전 <시간 속 풍경>을 개최합니다.

전시 해설과 한국화 체험
유미선 작가의 개인전 <시간 속 풍경>에 독자를 초대합니다. 전시 작품 해설과 함께 작가가 제작한 도안에 맞춰 색을 내는 금속을 얇게 펴서 화판에 붙이는 한국화의 박 기법을 체험해보세요.

일시 6월 28일(금) 오후 2시
장소 2448 문파인아츠 갤러리(서울시 강남구 논현로 24길 48, 02-554-6106~8)
참가비 2만원(정기 구독자 1만 원)
인원 6명
신청 방법 <행복> 홈페이지 ‘이벤트’ 코너에 참가 이유를 적어 신청하세요.

정규영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9년 6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