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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과 나라, 물 부족 국가의 어린이와 현대인을 살리는 물 동화약품, 부채표 활명수
속이 더부룩하다 싶을 때 으레 찾게 되는 ‘까스활명수’. 오늘날 소비자 인지도 99%에 달하는 이 명약은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 마셔봤을 국민 소화제다. 무려 1백20년이 넘는 오랜 세월 동안 한국인의 건강을 지켜온 ‘생명을 살리는 물’. 나아가 국가와 민족, 아프리카 아이들과 현대 문화에도 숨결을 불어넣어온 활명수의 숨은 가치를 조명한다. 우리나라 사람에게 가장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소화제, 까스활명수의 현재와 과거.


동화약품의 부채표 로고는 1백21년 동안 시대 흐름에 맞춰 조금씩 변화해왔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손기정 선수를 축하하는 내용의 광고. 일제강점기이던 당시 이 소식은 조선인에게 희망의 메시지였다.
국민의 생명을 살리다 
기록에 따르면, 마땅한 치료제가 없고 약이 귀하던 시절, 우리 조상은 급체와 토사곽란(갑자기 토하고 설사하며 오한과 발열,어지럼증 등을 동반하는 위장병)으로도 목숨을 잃곤 했다고 한다. 우리의 고유한 음식 특징과 민족의 급한 성향상 위장 장애는 옛 조상들도 흔하게 겪은 고통. 그러니 활명수活命水는 이름 그대로 생명을 살리는 물과 다름없었다.고종이 대한제국 황제로 즉위하던 1897년, 궁중선전관(임금을 측근에서 보필하는 무관) 노천 민병호 선생이 한의학과 서양의학에 대한 지식을 토대로 궁중의 비방에 양약의 편리함과 이점을 더해 만든게 바로 대한민국 최초의 국산약인 활명수.소화불량, 식욕 감퇴, 위부 팽만감, 과식, 식체, 구역, 구토 등에 효능을 발휘하니, 소화계의 만병통치약으로 통했다.달여 먹는 탕약이 전부이던 시기에 복용하기 간편하면서 효과가 탁월한 활명수의 탄생은 그야말로 혁신이었다. 이보다 효과적인 상비약은 없었기에 선풍적 인기를 끈 건 당연한 일. 당시에는 밥값보다도 비싼 고가의 귀한 약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가정에서 꼭 구비해놓는 생명의 묘약이었다. 이토록 인기가 많다 보니 유사 제품이 범람하는 건 당연한 수순일 터. 1910년, 상표 보호에 선구적으로 대응하고자 부채표와 활명수를 특허국 상표로 등록했다. 유사품을 방지하기 위한 이러한 전략은 지금이야 일반적인 일이지만, 당시로서는 대단히 앞서가는 행동이었다.

일제강점기, 은포 민강 선생은 동화약방 사무실을 상하이 임시정부의 비밀 기관이던 ‘서울연통부’로 사용하며 주요 임무를 수행했다. 현 서울시 중구 동화약품 창업지에 서 있는 ‘서울연통부 기념비’가 이를 증명한다.

초대 사장 민강.

5대 사장 윤창식.


국가와 민족을 위기에서 구하다
일제강점기 동안활명수는 나라의 독립에 한몫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활명수를 만든 노천 민병호 선생의 아들인 은포 민강 선생은 동화약방(현 동화약품)의 초대사장으로, 경영자이면서 독립투사였다. 약을 파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나라와 민족을 위한 일에도 관심을 쏟은 것. 암흑의 시대, 그는 민족의 미래를 위해 교육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고 믿어, 1909년 청년들을 중심으로 대동청년당을 결성해 적극적으로 독립운동에 나섰으며, 소의학교(현 동성중ㆍ고교), 조선약학교(현 서울대 약대) 설립에도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나아가 활명수를 판매해 독립운동 자금을 대며 나라를 구하기 위해 힘썼다. 이후의 사장들도 애국자이긴 마찬가지. 동화약품 5대 사장인윤창식 선생은 민족의 경제적 자립을 목표로 조직한 조선산직장려계의 총무로 활동하며, 옥고를 치른 후에도 민족 구휼 사업과 항일 단체인 신간회를 지원함으로써 나라의 독립과 어려운 이웃을 위한 헌신을 이어갔다. 가송 윤광열 회장 또한 보성전문학교(현 고려대학교) 재학 시절, 일제 학도병으로 강제 징집되었다가 탈출해 상하이의 주호지대 광복군에 편입, 5대중대장을 맡으며 독립운동에 참여했다.활명수의 가치와 철학을 잇다 약을 구하기 힘들어 사람들이목숨을 잃던 시대에 생명을 살리는 물 역할을 해온 활명수의 가치와 철학을 잇고자 현재 동화약품은 전 세계 물 부족 국가 어린이들을 돕기 위한 ‘생명을 살리는 물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2013년 1백16주년 기념판을 선보인 것을 시작으로, 매년 다방면의 예술가와 콘텐츠,브랜드 등과 협업해 활명수 기념판을 제작해왔다.그 판매 수익금은 물 부족 국가의 식수 정화, 우물 설치, 위생 교육 등을 지원하기 위해 기부하고 있다. 2013년과 2014년에는 유니세프 한국위원회,2015년부터는 초록우산어린이재단에 기부했으며, 지난해에는 대한적십자사에 활명수 1백20주년 기념판 판매 수익금을 기부해 인도네시아 자바섬의 식수 시설 건립과 위생 인식 제고 사업을 지원했다. 활명수는 물론 동화약품이 지닌 가치를 통해 나눔을 실천하는 매우 유의미한 행보다.

1910년부터 지금까지 활명수의 변천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광고 캠페인 비주얼. 

2017년에는 힙합 서바이벌 프로그램 <쇼미더머니 6>와 협업해 활명수의 브랜드 가치를 힙합 음악에 트렌디하게 녹여냈다. 1백20주년 기념판.

2016년에는 <언프리티 랩스타 3>와 협업해 뮤직비디오 <미인>을 선보였다.

전 국민에게 친근한 캐릭터 카카오 프렌즈와 협업한 1백19주년 기념판. 

끊임없이 진화하다 

민강 초대 사장이 별세한 이후,1937년 보당 윤창식 선생이 인수하면서 동화약방은 오늘날의 동화약품으로 모습을 갖췄다. 윤창식선생 역시 독립운동가로서, 옳은 것에 대한 신념이 뚜렷하던 인물. 그는 ‘좋은 약이 아니면 만들지 말라’는 기업가 정신으로 민강 사장의 부재 동안 잠시 위기를 맞은 동화약품을 다시 궤도에 올려놓았다. 이후 활명수는 1967년 가송 윤광열 회장 때 비약적 성장을 이루었다. 콜라 같은 탄산음료가 국내에서 유행하던 시기, 활명수에 탄산가스를 첨가해 속 시원한 청량감을 보강한 까스활명수를 탄생시킨 것. 바야흐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한 셈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보존제 무첨가, 성분 보강 등 제품의 진화를 추구하며 현대 한국인의 생활 방식에 맞춘 변화로 한결같이 사랑받고 있다. 활명수는일반 의약품인 ‘활명수’ ‘까스활명수-큐’ ‘미인활명수’ ‘꼬마활명수’와 의약외품 ‘까스활’ ‘미인활’ 총 여섯 종류 제품으로 만날 수 있다. 지금도 활명수는 2018년 갤럽 소비자 조사 소화제 부문 인지도 99%, 선호도 1위를 당당히 기록하며 국민소화제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2018년 패션 브랜드 게스와 협업해 큰 사랑과 관심을 받은 ‘게스활명수’ 프로젝트. 부채표 로고와 게스 고유의 삼각 로고를 스트리트 감성으로 재치 있게 융화한 패션 제품을 선보여 화제를 모았다.

시대를 반영하고 미래를 꿈꾸다 
동화약품은 변화와 혁신을 이끄는 유연성 있는 기업으로 통한다. 최근에는 과감한 협업을 통해 젊은 세대와의 소통을 추구하고 있다. 2018년에는 패션 브랜드 게스와 협업해 부채표 로고와 게스 고유의 삼각 로고를 스트리트 감성으로 재치 있게 융화한 패션 제품 ‘게스활명수’를 선보여 화제를 모았다. 제약업계와 패션업계가 최초로 협업한 프로젝트로 큰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 지난해에는 힙합 서바이벌프로그램 <쇼미더머니 6>와 협업해 뮤직비디오을 선보이기도 했다. 또한 활명수의 사회적 가치를 이야기할 때 신진 작가 발굴과 전통문화 계승을 위해 제정한 ‘가송예술상’도 빼놓을 수 없다. 동화약품은 부채표 가송재단과 함께 우리나라 미술계를 지원해오고 있는 것. 부채 전시회 <여름생색>전을 개최해 전통문화의 의미를 정립하고, 동시대 예술계의 젊은 인재를 양성하는 데도 일조하고 있다. 이처럼 1백21년 동안 국민의 건강을 넘어 역사와 문화계, 전 세계 물 부족 국가의 어린이까지, 미래를 위한 생명의 씨앗을 틔워온 동화약품. “약을 만든다는 것은 단순한 기업 활동이 아니라 인간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신성하고도 아름다운 행위라는 정신을 잊지 않고, 대한민국 최초의 제약 기업이자 국내 최장수 기업으로서 자부심을 바탕으로 새로운 1백 년을 열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윤도준 회장의 바람이 이루어지리라 기대한다.

부채표 활명수 변천사


1940년대, 초창기 활명수 모습. 약이 흔하지 않던 시절 만병통치약으로 여겼다.



1962년, 당시 활명수는 값비싼 귀한 약으로 온 가족이 조금씩 덜어 마시곤 했다. 



1967년, 오늘날과 같은 크기로 줄어든 활명수. 조금 더 대중화된 셈이다.



1971년, 콜라가 유행하던 시기에 탄산수를 첨가한 까스활명수 탄생. 제2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1992년, 소화기관용 일반 의약품으로 분류된 까스활명수-큐.



2006년 이후, 현재까지 이어지는 까스활명수-큐의 모습. 


현재 만날 수 있는 활명수 6종

왼쪽부터 일반 의약품 활명수와 탄산을 첨가한 까스활명수-큐, 오매 1200mg을 함유한 미인활명수, 과일 향을 첨가하고 스틱형으로 포장해 어린이가 맛있고 편리하게 복용할 수 있는 꼬마활명수, 편의점과 대형 마트에서 구입할 수 있는 의약외품 까스활과 미인활.

글 강옥진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8년 9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