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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작가 강원국 ‘평범한’ 사람의 남다른 글쓰기
“앵무새 부리 속에 혓바닥을 보았느냐?/ 누가 길들이면 따라 하는 목소리/ 그 목소리 아닌 말을 단 한 번 하고 싶은/ 분홍빛 조붓한 작은 혀를 보았느냐?”_ 김명수, ‘앵무새의 혀’ 우리는 자기 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누군가의 말을 따라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자기 글을 쓰고 있다고 믿지만, 누군가의 글을 베껴 쓰고 있는 것은 아닌가? 누군가 잘 길들인 탓에 ‘그 목소리 아닌 말’을 할 생각을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최근 ‘남의 말’과 ‘남의 글’을 쓰던 투명 인간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고 한다. 50여 년 대로를 활보했으나 아무도 알아본 적이 없다고 한다. 또렷한 목소리를 지니고 있었으나 아무도 듣지 못했다고 한다. 많은 글을 발표했지만 이름만은 투명 잉크로 적어야 했다고 한다. 쓰면 모습이 사라져버리는 도깨비감투를 두 개나 쓰고 있었다고 한다. 감투를 벗으니 남다른 신언서판이 드러났다고 한다. 그가 이제 광장에서 말하면 사람들이 모여들고, 책을 펴내면 장안의 지가가 오른다고 한다. ‘제 목소리로 말하고’ ‘제 생각으로 글 쓰는 즐거움’을 이야기하는 그이, 강원국 작가를 만났다.

2014년 <대통령의 글쓰기>를 펴낸 이후 지역과 단체를 불문하고 국내외에서 글쓰기 강연을 한 것이 1천 회가 넘었다. 하루 평균 2.5회. "글 쓸 시간이 어디 있냐"고 묻자 "틈틈이 쓴다"고 답하는 강원국 작가.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수시로 메모하며 습관처럼 매일매일 글을 쓴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의 말과 글을 쓰고 다듬는 연설비서관을 지낸 강원국 작가는 <대통령의 글쓰기>와 <회장님의 글쓰기>에 이어 최근 <강원국의 글쓰기>를 펴냈다. 앞의 두 권이 ‘대통령’과 ‘회장’이라는 감투를 쓰고 있던 시절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면, 뒤의 것은 자신의 민얼굴을 당당히 드러낸 저술이다. “반갑습니다. 방송 출연도 재미있게 보고, <대통령의 글쓰기>도 일찍이 사서 읽은 독자 중 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살다가 많은 사람 앞에 서게 되셨습니다. 대중의 시선이 부담스럽지는 않으신가요?” “즐기면서 살려고 합니다.” 예전 같으면 어림없는 일이라며 직장 다닐 때의 일을 소개한다. “사람들 앞에서 연설할 기회가 있었어요. 앞에 나가서 ‘3분 스피치’ 를 하면 승진시켜주겠다고 했는데도 포기했지요. 대중 앞에 서는 게 두려워서 말이에요.” 3분 스피치도 못해서 벌벌 떨던 숫기 없던 그이는 지금 하루에도 평균 두세 곳에서 강연을 하는 인기 강사가 되었다. 기업과 학교, 도서관 등의 초청으로 2014년부터 무려 1천 회 이상, 최소 10만여명의 청중을 만나고 있다는 것이다.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 JTBC <말하는 대로>, O tvN <어쩌다 어른> 등 TV 프로그램에도 여러 차례 출연하여 많은 사람에게 알려졌다.

투명 인간의 삶이 변한 것은 <대통령의 글쓰기>를 펴낸 다음부터다. 이 책은 그이가 김대중, 노무현 두 전 대통령의 연설비서관으로 일하면서 경험한 글쓰기를 담은 책이다. 2014년에 출간한 책은 그다지 주목을 끌지 못하다가 2016년 말 갑자기 폭발적 관심을 받았다. 권력을 사유화한 대통령과 민간인 비선 실세가 벌인 사상 초유의 국정 농단에 분노한 국민이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뛰쳐나온 바로 그해 겨울이었다. 대통령의 연설문이 외부로 유출되고, 그걸 고쳐주는 게 취미였다는 사람이 밝혀지자 온 국민이 허탈해했다. 그이가 펴낸 <대통령의 글쓰기>가 사람들 눈에 들어왔다. 자기 생각을 말과 글로 표현하지 못하는 지도자에 대한 실망이, 탁월한 말글살이로 사람들을 설득하고 토론을 유도해내던 김대중과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이는 국정 농단의 주역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라도 해야 하느냐며 ‘웃픈’ 현실을 토로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1백90여 쇄를 찍었다는 베스트셀러 <대통령의 글쓰기>는 그렇게 그이의 삶을 바꾸어놓았다.

눈치는 나의 힘
“국내는 물론 해외까지, 지역과 단체를 불문하고 강연 요청이 오면 찾아갑니다.” 강연료도 물어보지 않고 간단다. 가끔 통장을 보고 후회하는 경우도 있다고 웃으면서 덧붙인다. “전국구로 오가며 대중 앞에 서는 것, 굉장히 에너지가 많이 드는 일일 텐데요?” “강연을 하면 오히려 에너지를 얻습니다. 어디를 가든 잘 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심지어 전날 술 한잔 걸쳤어도 강단에 서면 정신이 맑아지면서 ‘강연 해장’이 된다고 한다.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었습니다. <대통령의 글쓰기>를 펴내자 LG 전자에 있는 선배로부터 강연 요청이 왔어요. 헤맸지요. 강연이 끝나자 그 선배가 말하더군요. ‘너는 글은 읽을 만한데 말은 아닌 것 같다’ 고 말이죠.” 그 뒤로 지금까지도 LG전자에서는 일절 강연 요청이 오지 않고 있단다. 인기 강사가 된 지금 삼성전자에서는 수십 번이나 초청했는데도 말이다.

“읽고 듣기만 하면서 사는 것은 평생 남의 눈치만 보는 것과 같습니다. 자기 삶의 주인이 되려면 쓰고 말해야 합니다. 나는 모든 사람이 독자이자, 필자이자, 강사이길 바랍니다. 지금까지는 소수만 말을 하고 써왔지만, 이제는 모두가 말도 하고, 일도 하고, 글도 썼으면 합니다.”

강원국 작가가 청중을 사로잡는 인기 비결은 무엇일까? 나는 유튜브에서 그이의 동영상을 찾아본 적이 있다. 처음 대중 앞에 나선 것은 한겨레신문사에서 운영하는 팟캐스트 ‘파파이스’에 출연했을 때라고 한다. 무려 1백50만 명의 시청자를 거느렸다는 그 프로그램 덕을 톡톡히 보았단다. 그이가 “국정 농단을 한 사람들에게는 사식을, 파파이스 김어준 진행자에게는 고기라도 사주어야 하나?” 하고 방백을 한다. 내가 김어준의 어법을 빌려 말하자면 “그건 내가 알 바 아니다.” 멍석은 그들이 깔아주었지만 시청자의 눈과 귀를 사로잡은 것은 강원국 작가의 독특한 매력 덕분일 것이다. 그이는 달변이라기보다는 눌변에 가깝다. 대중을 장악하는 카리스마도, 세련된 어투도 그이의 몫이 아니다. 그저 동네 이웃이 평상에서 이야기하듯 솔직하고 푸근하다. 현학적이거나 위압적이지도 않고 듣는 이를 무장해제시키는 편안함이 있다. 그런가 하면 의외의 반전과 유머 감각이 튀어나온다. 그러나 저이의 가장 큰 인기 비결은 ‘겸손’인 듯하다. 단상에 올라가도 스스로 높아지지 않는다. 늘 자신을 낮추고 사람들을 높여준다. 교언영색과는 다르다. 자신을 낮추지만 결국 할 말은 다 하고, 심지어 은근히 자기 자랑까지 하지만 밉지가 않다.

“남들은 제게 겸손하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게 눈칩니다.” ‘겸손’이라는 동전의 뒷면이 ‘눈치’라니? 전주에서 태어난 강원국 작가는 집안 형편상 학창 시절 내내 남의 집살이를 전전해야 했단다. 이모네, 고모네, 외삼촌 댁을 옮겨 다녔다. 친척들 덕도 보았다. 이모부는 군산대 교수를 역임한 허소라 시인이었다. 그는 시인의 서재를 방으로 썼다. 전주에서 제일 큰 ‘홍지서림’이 고모네 집이었다. 서점이 그의 서재였다. 글쓰기와 말하기의 밑거름이 되었을 것이다. 초등학교 때 돌아가셨다는 어머님이 음택에서 펼친 맹모삼천지교가 아닐까? 친척들이 허물없이 대해주어도 내 집과 같았을까? “어느 틈엔가 눈치를 보는 게 몸에 배었어요. 대통령과 회장의 글을 쓰게 된 것도 눈치 덕분이라 생각해요. 강한 자아가 있으면 못 했을겁니다.” 그이를 통해 눈치의 순기능을 깨달았다. 눈치를 보면서 상대방을 헤아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람에 관심이 생기고, 남의 이야기에 귀 를 기울이는 버릇이 생겼다는 것이 다. 그러고 보니 요즘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갑질 문화를 선도(?)하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자라면서 눈치 볼 일이 없던 것처럼 보인다. 늘 금지옥엽으로 떠받드니 유아독존이 된 게 아닐까? 눈치가 겸손의 바탕이 되었다는 그이의 말은, 그러나 모두에게 해당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지주보다 마름이 더 무섭다”고 하지 않던가? 눈치 보던 사람이 갑의 위치에 있으면 눈총을 쏘는 사람이 되기도 하는 법이다. “아내가 인터넷에서 제 이름을 검색해보았답니다. 그런데 어쩌면 악성 댓글이 하나도 없냐는 거예요. 내가 만만해 보여서 그렇다는 겁니다.”

자기를 스스로 높이는 자는 낮아지며, 낮추는 자는 높아지는 이치의 산증인이 여기 있었다. 산정의 둥치가 커다란 나무는 태풍에 쓰러지지만, 땅바닥에 누워 자라는 눈주목은 자신을 한껏 낮춰 쓰러지지 않는다. 고산이라는 거인의 어깨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면서 말이다. 강원국 작가에게 내면화되어 사람마다 다르게 변질되지않는 눈치를 ‘인품’이라 불러도 좋을 듯하다. “이번에 펴내신 <강원국의 글쓰기>를 <행복> 독자에게 간단히 소개해주신다면요?” “제가 28년간 글을 쓰면서 터득한 나름대로의 노하우 마흔 가지를 담았습니다. 사람들이 왜 글쓰기를 두려워할까? 어휘, 주제, 구조, 퇴고 등 글쓰기에 재능이 없던 제가 겪으면서 하나씩 해결하고자 노력한 경험을 해법으로 제시해보았습니다.” 그의 이번 책에는 막막한 글쓰기의 시작을 어떻게 할지, 남과 다른 글은 어디에서 오는지, 주제를 벗어나 산으로 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마무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자기만의 글쓰기 환경을 간직하는 방법까지 꼼꼼히 정리되어 있다. 하지만 ‘재능이 없다는’ 저자의 겸손을 액면 그대로 믿거나 섣불리 자신과 동일시하는 건 금물이다. 재능이 없다는 사람이 직장에서 글쓰기에 두각을 나타내고, 회장과 대통령의 연설문까지 썼으니 ‘재능이 남다른’ 사람일수도 있다. 대개 전교 1등 하던 친구들이 “난 공부 안 하고 놀기만 했어”라고 말하는 것을 상기하자. 저 책을 읽고 단숨에 글쓰기가 늘지 않는다고 실망하지 말고, 저자의 글쓰기 비법에 비추어 자신만의 해법을 모색해볼 일이다.

강원국 작가가 지난 28년간 기업에서, 청와대에서 글을 쓰며 터득한 노하우 마흔 가지를 조목조목 정리한 <강원국의 글쓰기>. 작가는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보다 많이 팔리는 게 목표"라며 파안대소한다.
말하기와 쓰기의 새로운 세상
강원국 작가는 ‘남의 글’이 쓰기 싫어서 ‘내 글’을 쓴다고 했지만, 정작 ‘내 글’보다 ‘글쓰기 방법론’을 강조하는 게 이상했다. 왜 자신의 글을 쓰는 게 아니라 타인에게 글쓰기를 강조하는 것일까? 나는 곧 반성했다. ‘글쓰기 방법론’이야말로 그이의 ‘내 글’이자 굉장히 중요한 ‘자신의 과업’인 걸 깨달았다. “‘글쓰기 전도사’라 칭해도 좋을 만큼 수많은 강연을 통해 쓰기와 말하기를 강조하는 까닭이 궁금합니다.” “신영복 선생님은 ‘말하고 쓰는 삶 속에 내가 있다’고 말씀하셨지만, 우린 학교에서 ‘읽기’와 ‘듣기’만 배우고 교육이 끝났습니다.” 나의 학창 시절도 그랬다. 우리는 한때 ‘말하기’를 억압당했다. ‘떠든 사람’을 칠판에 적었다. “말 많으면 공산당이다” “어른 말에 토달지 마라”는 말이 일상적으로 통용되었다. ‘앵무새의 혀’를 보며 안타까워하던 김명수 시인은 다른 시 ‘하급반 교과서’에서 이렇게 표현한 바 있다. “아이들이 큰 소리로 책을 읽는다./ 나는 물끄러미 그 소리를 듣고 있다./ 한 아이가 소리내어 책을 읽으면/ 딴 아이도 따라서 책을 읽는다./ 청아한 목소리로 꾸밈없는 목소리로/ “아니다, 아니다!” 하고 읽으니/ “아니다, 아니다!” 따라서 읽는다./ “그렇다, 그렇다!” 하고 읽으니/ “그렇다, 그렇다!” 따라서 읽는다./ 외우기도 좋아라, 하급반 교과서/ 활자도 커다랗고 읽기에도 좋아라./ 목소리도 하나도 흐트러지지 않고/ 한 아이가 읽는 대로 따라 읽는다.// 이 봄날 쓸쓸한 우리들의 책 읽기여/ 우리나라 아이들의 목청들이여.”

'글쓰기용 안경'을 손에 든 강원국 작가. 평소에 사용하지 않는 안경이지만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이 완전군장하듯' 안경을 쓰면 왠지 글 쓰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고.그는 자신이 안경을 쓰는 것처럼 자기만의 '글쓰기 전 의식'을 만들라고 권한다. 글쓰기 싫어하는 두뇌가 글 쓰는 습관을 들일 수 있도록.
한 아이가 읽으면 모든 아이가 따라 읽는 모습은 얼마나 일사불란한가? 따라 읽기를 멈추고 자기 목소리를 내거나 남다른 질문을 던지는 아이는 불온하다는 낙인이 찍혔다. 잘 따라 읽고, 전체의 대강을 잘 추리고, 말 잘 듣는 아이들은 모범생이 되어 사회에 배출되었다. 상명하복의 위계질서에 순응해 자기 생각 없이 일했다. 나는 최근에 천문학적인 세금 낭비와 환경 재앙을 초래한 어느 전직 대통령의 사업을 추진한 공무원을 인터뷰한 글을 읽고 깜짝 놀랐다. “똑같은 사업을 추진한다 해도 다시 할 거요. 공무원이란 원래 그런 거요.” 그렇게 대답하고 있었다. 열심히 따라 읽었을 하급반 교과서의 위력을 거기서 보았다. 저이는 잘 읽고, 잘 듣는 걸 배운 사람들이 사회에서 이룬 공도 크다고 말한다. 산업화 시대에 압축 성장을 가능하게 한 저력이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따라 하기가 아니라 처음 하기가 필요한 시대가 왔다고 말한다. 나아가 우리 사회의 정의를 바로세우기 위해서라도 말과 글이 살아나야 한다고 말한다. 부정, 부패, 비리, 농단은 말 없는 사회를 좋아하고, 말과 글이 죽은 사회는 그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놀이터라고 말한다. “읽고 듣기만 하면서 사는 것은 평생 남의 눈치만 보며 사는 것과 같습니다. 자기 삶의 주인이 되려면 쓰고 말해야 합니다. 이제는 자기 생각을 드러내야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자기표현을 하지 못하면 불행합니다.” “강의를 주로 듣는 분들은 어떤 사람인가요?” “주부와 어르신이 많이 오십니다. 남편과 자식의 눈치를 보고 살던 주부도 이제는 자기 말을 하고, 쓰고 싶은 욕구가 생겼습니다. 어르신들도 자기가 살아온 이야기를 남기고 싶어합니다. 광화문의 촛불 집회 이후 사람들의 말문이 트였습니다. 나는 모든 사람이 독자이자, 필자이자, 강사이길 바랍니다. 지금까지는 소수만 말을 하고 써왔지만, 이제는 모두가 말도 하고, 일도 하고, 글도 썼으면 합니다.” “<강원국의 글쓰기>를 아직 읽어보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글을 잘 쓸 수 있는 노하우를 세 가지만 소개해주신다면?” “첫째, 매일 쓰는 게 중요합니다. 하루에 세 줄이라도 꼭 씁니다. 오늘 새롭게 알게 된 것과 느낌이나 의견 등 뭐든지 꾸준히 쓰는 게 좋습니다. 둘째, 어휘력을 늘리기위해 네이버나 다음 국어사전을 찾아볼 것을 권합니다. 셋째, 글쓰기에 정답은 없습니다. 오답을 줄이면 잘 쓰게 됩니다. 이렇게 쓰면 안 되는구나, 자기만의 오답 노트를 만들어보는 것도 방법입니다.” 장차 ‘강원국의 글쓰기 학교’를 여는 게 꿈이라는 그는 ‘누가 길들이면 따라 하는 목소리’가 아닌, 자기 말을 하고 싶어 하는 ‘분홍빛 조붓한 혀’를 찾아 글쓰기의 밀실과 말하기의 광장을 분주하게 오가고 있었다.


글쓰기 전도사 강원국의 SNS에서 ‘좋아요’ 많이 받는 글 쓰는 법
1 자신의 캐릭터를 확실히 만들어라 사람들은 온라인과 SNS에서 스쳐 지나는 당신에게 큰 관심이 없다. 글 한두 편만 봐도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떠오르는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게 중요하다.
2 주제를 좁혀라 무얼, 어떻게 써야 할지 그 칼자루는 당신이 쥐고 있다. 자신의 온라인 이미지를 정하고, 웃긴 이야기든 지질한 이야기든 그에 맞는 주제에 집중해서 써라. 집중할수록 이미지가 잘 구축되고 콘텐츠를 축적할 수 있다.
3 특별한 관심 분야를 가져라 일상의 이야기를 쓰는 것도 좋지만 글쓰기가 발전하거나 그 결과를 축적하기는 어렵다. 관심 가는 분야를 하나 정해서 깊게 파고들어보자. 그런 글쓰기가 보는 사람도, 쓰는 사람도 재미있다.

글 반칠환(시인) | 사진 민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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