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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문정희 본질적으로 시인은 여자다
인생에 한 번쯤 ‘사랑의 눈사태’를 꿈꾸는 자의 유명한 주술, “발이 아니라 운명이 묶였으면”(‘한계령을 위한 연가’)의 시인 문정희. 그가 눈앞에 있다. 검은색 롱 카디건에 붉은 스카프를 두른 시인의 자태와 형형한 눈빛은 존재 자체로 주변 온도를 데워놓는다. 1969년 스물두 살에 등단한 그는 최근 열네 번째 시집 <작가의 사랑>을 펴냈다. 여러모로 드물고 귀한 시집이 우리에게 당도했다. 시인이 될 수는 있어도 시인으로 살기는 척박한 현실에서 등단 이후 50년간 독보적 위상을 지켜온 사람. 그는 남성 중심의 언어로 짜인 가부장제 사회에서 삭제당한 여성의 존엄과 목소리를 살려내는 시업詩業에 일생을 투신했고, 이번 시집은 그 절정을 꽃피웠다. 유일한 무기는 모국어, 창작의 동력은 자유와 사랑이다. 그래서일까? 시인은 고단한 전사의 표정이 아니라 영원한 ‘사랑의 영매靈媒’가 된 기세로 시종 뜨거운 언어를 부렸다.

“나는 어디 가서 스카프 하나 허투루 두르지 않았어요!” 작가로서 더 멋지고 더 세련되고 싶다고, 언제나 최상이고 싶다고 말하는 문정희 시인은 젊은 시인의 좋은 시를 읽으면 온몸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막강한 ‘질투’를 느낀다고 했다.
“어린 문재文才로서 문학적 재주를 인정받았고, 그게 자부심으로 작용했어. 그러나 그건 젖은 속옷 같은 거였죠. 결국은 벗어야 할 옷이었어요. 주위의 엄청난 견제와 적대를 받았고, 나자신조차 자기기만에 빠져 약간 눈을 감아버렸죠. 등단 후에 악전고투가 시됐는데 저는 단순화했어요. 어린 시절 화려한 문학적 이력의 좋은 점만 취했고요. 예술가들이 자기 재능에 대한 의심 때문에 고민하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의심하지 않기로 했죠. 내 손에 엄청나게 좋은 불칼이 들려 있다, 이렇게 요약하고 불을 내거나 방어하거나 찌르자. 정신의 잉크가 마르지 않도록 끊임없이 읽고 썼습니다.” 젖은 속옷은 벗고 불칼을 든 채 오직 씀으로써 존재하기. 50년간 시인으로 살아온 내적 동력을 묻자 내놓은 명쾌한 대답이다. 문정희는 진명여고 재학 중 미당 서정주가 발탁해 여고생 최초로 시집 <꽃숨>을 발간하는 등 세간의 주목을 한 몸에 받으며 문단에 등장했다. 이후 시집 <오라, 거짓 사랑아> <양귀비꽃 머리에 꽂고> 등을 발표하며 모험적이면서도 관능적인 어조로 생명과 사랑, 자유와 고독을 노래했다. 최근 펴낸 <작가의 사랑>에는 60편의 시가 실렸는데 세계 시민이 되지 못한 여성의 서사가 주를 이룬다. 최초의 공쿠르상 후보였으나 여자라는 이유로 탈락하자 심사위원을 전원 여성으로 꾸린 페미나상을 제정한 안나 드 노아유Anna de Noailles, 독재자 앞에서 차도르를 찢어버린 전설적 기자 오리아나 팔라치Oriana Fallaci, 간첩이라는 오명을 쓰고 처형당한 김수임, 가정 폭력을 견디다 못해 남편을 살해한 무명씨 아내, 한국 최초의 여성 소설가이자 다섯 개 국어를 구사했으나 데이트 폭력을 당해 문학적 죽음을 선고받고 쓸쓸히 죽어간 김명순…. 이 땅의 불평등한 구조와 미개한 폭력으로 희생당한 이들의 눈물과 비명을 시인이 한 명 한 명 곡진한 언어로 살려냈다.

이런 작품들은 근래 한국 사회를 달군 ‘미투(나도 말한다)’의 대리발화로 읽힌다. 그 때문인지 시집을 낸 후 매체와 인터뷰를 열다섯차례나 치렀고 대개 미투에 초점을 맞추어 시집을 조명하는 기사가 나갔다. 그와 같은 해석도 의미는 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여성의 이야기는 이미 이전 시집들에서 더 시끄럽게 계속 말해왔어요. 그런데 제 시에서 여성은 남성의 상대 성이 아닌, 대지모大地母적 생명의 원류입니다. 3~4년 전, 스페인에서 열린 ‘책의 밤’이란 행사에 참여했어요. 전 세계에서 1백여 명의 작가가 모인 큰 자리였죠. 오직 나만의 메시지를 전해야겠다는 생각에 이렇게 말했어요. 생명의 본질로서 여성성, 대지모가 내 시 세계다. 자궁은 여자의 몸에 있지만, 여자의 자궁이 아니라 인류의 자궁이다. 전통적으로 소외되고 학대받은 여성의 삶에서부터 생명 주체, 창조 주체로서의존엄을 노래하는 것까지가 나의 시 세계란 뜻이었죠. 한국에서 모성은 자기새끼에 대한 사랑을 희생으로 실천하는 동물적 모성이죠. 남성들이 여성 요소를 다 부정적으로 표현하다가 모성에서는 성스럽게 얘기해요. 그건 굴레를 씌워서 다루기 쉽게 하려는 의도죠. 에이드리엔 리치Adrienne Rich라는 미국 시인이 이미 잘 분석한 내용입니다. 지배 체제로 악용되거나 국한된 모성성 이외에 생명의 원천으로서 대담한 모성성. 내가 여자이고 그걸 알고 있는 시인이라는 게 여간 즐겁지 않았어요. 본질적으로 시인은 여자다.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예를 들면, 김소월도 여성성으로 시를 썼어요. 미당의 ‘귀촉도’, 만해의 ‘님의 침묵’도 여성 어조를 구사해요. 저는 인간의 생명 중에 가장 원천적이고 마르지 않는 것을 썼습니다.”

“살기 위해 버둥거리는/ 어두운 맨땅을 보았다/ 그것이 고독이라든가 슬픔이라든가/ 그런 미흡한 말로 표현된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그 맨땅에다 시 같은 것을 쓰기 시작했다/ 늙은 코미디언처럼/ 거꾸로 뒤집혀 버둥거리는/ 풍뎅이처럼 .” _<작가의 사랑> , ‘늙은 코미디언’ 중

하늘 아래 오직 내가 있다
문정희 시인은 결혼과 출산을 택하고 사회생활을 병행하면서 일찍이 여성에 대한 차별과 억압에 눈떴다. 남편이 4대 독자여서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강박 속에 집안 제사를 지내기도 했고, 겁 없이 치른 결혼 때문에 가난을 경험하기도 했다. 이 엄청난 생활 세계의 압력 속에서 “예술가로서의 혼까지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그런 혹독한 일상은 고맙게도 문학의 엄청난 자료를 제공하고 관념에 빠지지 않는 단단한 언어를 선물했다. 가령 “결혼은 전쟁보다 정교하게 여성을 파괴시킨다”(‘내가 가장 예뻤을 때’) 같은 시구가 그것이다. 서른 초반 뉴욕에서 시작한 대학원 생활은 시인으로서 그가 고통의 정점으로 기억하는 시간이다. “나라는 존재에서 언어를, 한국어를 빼버리니까 아무것도 아닌 거예요. 더구나 미국에 가면 ‘동양에서 온 장래가 촉망되는 작가’로 대우받을 줄 알았는데, 나는 마이너, 주변인, 그냥 영어 서툰 동양 여자였어요. 2년 동안 내 존재를 확인하는 일은 끔찍했지요. 슬픔, 가난, 고통, 비탄 등 모든 게 나한테 왔는데, 그때 또 내가 느낀 건 이거였어요. 젊다, 나는 뭐든지 할 수 있다.” 스승 서정주는 그에게 “하늘 아래 오직 네가 있다”는 말을 들려주곤 했다. 젊을 때는 못 알아들었다. 그저 당신이 재능을 인정해준 제자를 격려하는 말로 여겼다. 힘든 상황이 닥치자 스승의 말이 되살아났다. 세상 어디에 가도 나 같은 존재는 나밖에 없는데 우울과 비탄과 자기 비하에 휩싸여 살 수만은 없지 않나, 마음을 추슬렀다. “그 동네에 헌책방이 있었어요. 1달러만 주면 스웨덴 여배우 자서전도 살 수 있었죠. 그때 거기서 라는 책을 만났어요. 작가 이름도 기억 안 나지만 참 좋았어요. 또 지하철 계단을 보면 ‘watch your step(발 조심)’이라고 쓰여 있잖아요. 그 말이 당신 지금 어디 서 있어? 네 발걸음을 한번 봐. 그렇게 읽혔어요. 지나가는 모든 말이 와닿았고, 그럴 때마다 하늘 아래 유일한 존재로서 내가 있다는 걸 생각했어요.” 당시 뉴욕은 월남전 이후 반전 민권운동 히피즘이 가라앉고 앨런 긴즈버그나 밥 딜런으로 대표되는 자유로운 분위기가 충만했다. 그 시절 자유의 공기를 마시며 폭식하듯 책을 읽고 영화를 봤다.그때의 독서로 페미니즘에 눈을 떴고 이론 체계를 다질 수 있었다. 세상 모든 활자를 부여잡고 안간힘을 써가며 ‘존재의 증명’이자 ‘고통의 자산화’를 이뤄낸 그는 이렇게 말한다. “삶의 현장에서 부대끼고 피 흘리고 아픈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에요. 물론 싫긴 하지만.”

시인의 손을 장식한 반지와 시계에는 하나하나 사연이 담겨 있다. 왼손 검지에 낀 큼지막한 반지는 이탈리아에서 만난 영국 시인이 선물한 것으로 검은 보석을 기어오르는 거북 형상이 ‘자신을 극복한 존재’를 상징한다. 마치 속에서 알을 깨고 나오는 새끼 거북처럼.
지구 위 시인임을 즐기다
문정희의 시는 국경을 넘은 지 오래다.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스웨덴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일본어, 인도네시아어 등 아홉 개 국어로 출판된 열두 권의 번역 시집. 마케도니아 세계 시인 포럼에서 수여하는 ‘올해의 시인상’(2004)과 스웨덴 노벨상 수상 시인 하리 마르틴손 재단이 수여하는 ‘시카다상’ (2010) 등 권위 있는 문학상을 받기도 했다. 이 밖에도 국제 창작 프로그램이나 문학 행사에 한국 대표로 자주 초청되었다. 그러나 외국에서 이룬 일이 지나치게 과장되는 것을 그는 늘 경계한다. “한번은 낭트 시인의 집에서 저를 초청했어요. 유료 관객석이 꽉차고 성황리에 행사를 치렀죠. 그날 밤 한국의 모 신문사에서 인터뷰를 청하는 전화가 왔기에 프랑스 독자들이 한국 시에 관심을 보이고 열광하는 게 참 기쁘다고 했더니, 신문에 이렇게 기사가 났어요. ‘케이팝에 이어 한국 시도 인기’. 한국 매체는 해외 문학상을 올림픽 경기나 축구 시합같이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저번에 다른 신문사와 인터뷰할 때 말했어요. ‘나는 기본적으로 한국 시의 세계화에는 관심이 없다. 세계 속의 한국 시라면 모르지만. 예술가는 철 저히 자기 이름을 걸고 활동한다. 국가의 이름을 걸고 활동하지 않는다’ 라고요. 쌀쌀맞게 들릴지 몰라도 시인이 국가나 민족에 사로잡혀 있으면 고립과 토속화에서 벗어나지 못해요. 한국적인 것, 케이팝을 내세우기보다 유일한 존재로서 자신을 봐야 해요.” 문정희는 노매드다. “이 시대 지구 위의 시인임을 즐긴다.” 순전히 만남 때문이다. 해외 교류를 통해 만나는 작가들은 그에게 신선한 자극과 영감을 제공한다. 작가가 시시한 존재가 아님을 확인하는 것은 언제나 설레고 고맙다. 효율성의 척도로 문학을 대하지 않는 태도를 지닌 시인들, 시를 실용으로 뚝딱 바꿔먹을 생각보다는 좀 더 원대한 가치를 꿈꾸고 구상하는 자존심 강한 그들 모습에 전염돼 그 역시 창작욕에 불타곤 한다. 아울러 “난 충분히 가능하구나. 내가 생각하는 나보다 훨씬 더 괜찮구나” 하는 긍정적인 힘도 얻는다. 그리고 중요한 또 하나. 집 밖을 떠도는 동안은 밥 먹고 설거지하는 일상을 제거해버리니까 오롯이 자기에게, 자기 안에서도 예술가로서 자아를 꺼내놓고 즐길 수 있어서 좋다. 1995년 미국 아이오와 대학 국제 창작 프로그램에 참석했을 때다. 외국 작가 서른다섯 명과 석 달간 살았는데 그중 여섯 명이 여자였다. 어느 날 밤 여자끼리 한방에 모여서 첫사랑 얘기를 나눈 일화는 시집 <작가의 사랑> 표제작의 모티프가 되기도 했다.

“남미와 아프리카와 유럽과 동아시아 작가가/ 한방에 모여 사랑을 이야기하자고 한 밤// 내가 불쑥 말했어/ 애국심은 팬티와 같아 누구나 입고 있지만/나 팬티 입었다고 소리치지 않아/ 먼저 팬티를 벗어야 해.” (‘작가의 사랑’ 중)
‘떠돌이별’ 문정희에 대해 일본 시인 다카하시 무쓰오는 이렇게 말했다. “문정희는 우연히 한국 땅에서 태어난 것뿐. 그녀의 진정한 생국은 시의 나라이다.”

끊임없이 읽고 쓰는 것, 문정희 시인이 ‘정신의 잉크’를 마르지 않도록 하기 위해 지금껏 해온 일이다. 그는 결혼과 출산, 사회 생활을 병행하며 예술가로서의 혼까지 잡아먹히지 않도록 부단히 노력했다. 그는 그 혹독한 일상을 이렇게 시로 썼다. “결혼은 전쟁보다 정교하게 여성을 파괴시킨다.”(‘내가 가장 예뻤을 때’ 중)
문학과 치명적 사랑을 하지 못한 열등감
‘치명적 사랑을 못한 열등감’은 그가 2016년 가을에 펴낸 산문집 제목이다. 사랑이란 말도, 열등감이란 말도, 치명적이란 말도 탁탁 요철처럼 걸리는 단어다. 치명적 사랑이란 대체 무엇일까? 말을 꺼내자마자 그는 “문학이에요, 문학”이라고 말한다. “더 좋은 문학, 더 큰 문학을 했으면 어떨까? 재능을 너무 노예화하며 살아온 것 같아요. ‘재능의 노예화’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한 말이에요. 저는 어린 시절부터 문학상을 받았고 대학에는 특례입학했어요. 굶어 죽을 뻔한 위기도, 바닥에 굴러떨어질 기회도 없었어요. 적당히 구제되고 적당히 이름 걸고 살 수 있는 정도의 문학 때문에 끝까지 몰락하지 못한 슬픔이 있지요.” 잠시 허공을 응시하던 그가 서둘러 말을 잇는다. “하지만 저는 문학 하는 사람한테 섣불리 상처나 비극을 요구하지 말라고 해요. 특히 한국문학에서 비극을 요구하는 건 아비투스 habitus(습관)예요. 진정한 비극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도 안 하면서 조금 가난하고 조금 병을 앓는 게 비극이라고 생각한다면 난 거절하고 싶어요. 괴테 문학이 저렇게 위대해지기까지는 괴테의 장수가 한몫했다는 걸 알아야 해요. 살아온 날 중 제일 나이가 많지만 최근 삶이 싫지는 않아요. 책도 작가도 예술도 최고급을 볼 수 있는 눈이 생긴 것 같아요.” 자책과 달리 그의 문학에 대한 사랑은 극진하다. 대학교수로 재직하면서 남성 위주의 문학사에서 방치된 여류 시가 시조와 조선시대 기생 시집 편저 작업을 수년간 해냈다. 일본군 ‘위안부’에 관한 시 ‘딸아 미안하다’, 유관순을 소재로 애국이 아닌 자유혼에 초점을 맞춘 ‘아우내의 새’라는 장시를 발표했다. 가부장제 사회 여성의 처지를 이야기한 시 ‘유령’ ‘그 많던 여학생은 다 어디로 갔는가’ 등 사라진 인류 절반의 서사를 문학적 기록으로 복원했다. 2017년 문단 내 성폭력 사건을 다룬 여성 문인들의 글 모음집 <참고문헌 없음>에도 그의 작품 ‘곡시’가 실렸다. 현역 여성 문인 가운데 최연장자 중 한 명인 문정희는 어린 후배들과 나란히 손잡고 그들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문정희는 평생 권력 편에 서지 않고 시의 편에 섰다. 치명적 사랑을 하지 못했다고 말할 때는 아련한 눈동자가 되고, 오래 살아서 대가가 되고 싶다고 말할 때는 금세 활달한 눈동자가 된다. 몸에서 슬픔과 기쁨의 다양한 감정이 폭주 하고, 관능과 성찰의 언어가 팽팽하게 길항하는 시인. 그의 시가 늙지 않는 것은 필연이다.

문정희 시인이 말하는 문학을 가까이하는 법


1 시는 감동이 아니라 매혹이다. 시에서 감동만 구하면 유행가 가락 같은 위로에 치우친 대중 시를 고르게 된다. 설명이 없어도 딱 거기 있음으로써 매혹되는 시가 좋은 시다.
2 쉽고 재미있는 것부터 시작하라. 패스트푸드도 먹고 길거리 음식도 먹어봐야 미식가가 된다. 제아무리 대단한 고전문학 작품도 재미없으면 던져버려도 된다. 읽다 보면 ‘재미’가 바뀔 것이다.
3 시는 언어의 실패에서 시작한다. 말로 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하려고 노력해보라. 언젠가 언어로 존재를 투시하는 시인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글 은유 | 사진 안지섭 | 담당 정규영 기자 | 장소 제공 최인아책방(02-2088-7330)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8년 6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