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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전래된 조선의 카펫 조선철
혹시 ‘조선철’이란 용어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우리에게는 알려지지 않았고 존재도 몰랐지만 일본에서는 유형문화재로 지정하고 보호할 만큼 빼어난 조선의 카펫이다. 경기여고 내 경운박물관에서 진행 중인 <조선철을 아시나요>전에서 그 아름다움을 만날 수 있다.

옥취사자도 조선철에 많이 사용한 문양은 사자다. 사자 모습은 용맹스럽기보다는 귀엽고 해학적으로 표현했다. 구슬을 가지고 노는 사자는 중국이나 일본, 동남아 등지에서 널리 사용해온 문양. 재미있는 해석으로는 사자들이 장난치고 놀다가 털 뭉치가 생기고, 그 안에서 귀여운 아기 사자가 태어난다는 이야기가 있다. 

전통 가옥이라 하면 우리에게는 한옥의 ‘온돌’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아주 먼 옛날 우리나라에서도 입식 생활을 하던 시기가 있었다. 기원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면 삼국시대에서 기록을 찾을 수 있다. 따라서 입식 생활에 필요한 용품 중 하나인 카펫이 우리나라에도 존재했는데, 이름하여 ‘조선철’. 조선에서 온 철직이라는 뜻으로, 일본의 교토 기온 지역에서 전해온 구승 명칭이다. 거친 짐승의 털을 씨실로 하여 문양을 철직(태피스트리) 기법으로 제직하고, 그 위에 먹 또는 안료로 선이나 그림을 그린 깔개 혹은 벽걸이로 전해 내려온 것을 총칭한다. <삼국유사>에는 신라의 구유, 백제의 탑등을 깔개로 썼다는 기록이 있어 조선철의 뿌리를 찾을 수 있다.

한편 국내에는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조선철을 일본에서는 유형문화재로 지정해 완벽히 보존해왔다. 조선철은 16세기 조선 통신사를 통해 일본에 전래되었는데, 일본의 귀족들은 이 아름다운 카펫을 집에서 사용하거나 해마다 열리는 교토의 기온 마쓰리에서 수레의 외관을 장식하는 용도로 사용했다. 3년 전, 조선철을 처음 접한 장경수 경운박물관장은 국내에 이를 알리기 위해 오랜 시간 조선철을 연구해온 故 민길자 교수의 도움을 받아 일본 기온재단의 요시다 고지로 고문을 만났다. 교토 기온 마쓰리를 주관해온 기온재단의 요시다 고지로 고문은 수십 년에 걸쳐 모아온 컬렉션 중 18~19세기에 제작한 서른여섯 점을 이번 전시를 위해 내줬다. 전시된 컬렉션은 양 끝에 기하학 패턴이 그려져 있고 중앙에 학과 봉황, 모란, 까치, 사자, 호랑이 등 복을 불러오는 길 상문이 그려져 있다. 양 끝의 패턴은 시기에 따라 조금씩 다른데 18세기에는 마름모꼴, 19세기 이후에는 줄무늬를 주로 그렸다.전시를 준비할 때만 해도 학계 일부에서는 ‘조선철이 우리의 것이 맞느냐’는 우려의 시선을 보내기도 했지만 이 점도 완벽히 해소됐다.

故 민길자 교수의 제자인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전통미술공예학과 심연옥 교수가 한국자수박물관 허동화 관장이 소장한 조선시대의 모담 방장 두 점을 연구한 결과, 일본에 남아 있는 조선철의 소재와 기법이 정확히 일치했기 때문. 그는 “이번에 공개된 조선철은 한국자수박물관 소장품인 ‘모담 방장(짐승의 털로 만든 휘장)’ 두 점과 제직 기법이 매우 유사하고, 섬유 분석 결과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던 양털과 염소 털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일본의 조선철이 우리 것이라는 실증적 증거가 마련됐다”고 말했다. 단순히 카펫 한 점이 아니라 우리의 옛 직조물 역사를 새롭게 그려갈 첫걸음이 될 조선철은 2017년 2월 28일까지 공개된다.


Interview 장경수 경운박물관장
“깊이 알수록 멋이 스며 있는 우리의 유산”



처음 조선철의 존재를 접한 뒤 국내에 알리겠다는 일념으로 전시를 기획, 준비해온 장경수 경운박물관장에게 비하인드 스토리와 관람 포인트를 물었다.



Q 현재 일본에서 보유 중인 조선철의 규모는 어느 정도입니까?
조선철과 깔개류는 16세기부터 조선 통신사를 통해 일본에 전해졌습니다. 공식적인 파견 기록은 열두 번이고 그때마다 스무 점씩 가져갔으니 총 2백40점이 건너간 셈이지요. 하지만 조선철의 아름다움에 매료된 일본인이 다량 구매했기 때문에 부산에서 기술자들이 제작한 분량까지 고려하면 상당히 많은 수의 조선철을 보유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Q 교토 기온 마쓰리에서 장식품으로 조선철을 활용하는 데는 외적 아름다움 때문만은 아니었을 듯합니다.
기온 마쓰리는 축제로 알려져 있지만 본래 제사입니다. 과거 일본에서 역병이 퍼져 사람이 많이 죽으니까 수레를 만들어 제사를 지냈지요. 세도가들은 재력을 과시하기 위해 집채만 한 수레를 만들고 화려하게 치장했는데, 수레 옆면을 꾸미는데 조선철을 이용했습니다. 조선철에 부귀영화를 빌어주는 길상문이 그려져 있고 색감도 뛰어났기 때문이죠. 이들 길상문이 자신과 가문을 보호해준다고 여겼기에 귀족들은 갑옷 위에 걸쳐 입는 옷으로 만든 뒤 자기네 문장을 새겨 넣기도 했습니다.

Q 고려 귀족의 집을 묘사한 <삼부도>에 “높은 누각의 기둥은 전부 비단으로 감싸 있고, 바닥에는 채담이라는 화려한 깔개가 깔려 있다”는 기록이 있다던데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춘 배경은 무엇일까요?
조선을 개국하면서 사치와 향락을 금하고 청빈한 삶을 지향했기 때문에 카펫을 국가적 용도 외에는 사용하는 것을 엄격히 규제했습니다. 다만 왕실이나 일부 재력가 집에서는 조금씩 사용했는데, 피혁이나 전氈을 만들기 위해 공조에 영조사를 두었던 점에서 이를 알 수 있지요. 그러다16세기에 온돌 문화가 시작되면서부터 더더욱 쓸모가 없어졌습니다. 쉽게 짜서 사용하고 해지면 곧장 내다 버렸기에 남아 있는 게 없는 거예요.

Q 전시된 조선철을 보니 16~17세기에 제작한 조선철의 모습도 궁금합니다. 기온재단을 견학했을 때 직접 보고 오셨죠?
요시다 고지로 고문이 전시를 준비하기에 앞서 이들을 보여주시겠다고 하기에 다녀왔어요. 그때 본 조선철은 지금 전시한 후기 작품보다도 더 전통적인 색깔을 담고 있습니다. 로비에 전시한 조선철 모사품은 외부에 공개하지않던 16세기의 조선철을 故 민길자 교수가 요시다 고문을 통해 접한 뒤 모사한 것입니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우리의 멋을 담은 고귀한 작업이니 꼭 둘러보시길 바랍니다.


조선철을 오랜 시간 연구해온 요시다 고지로 고문의 컬렉션을 참고하면 조 선 철 은 문양에 따라 사자도와 호접도, 오학도와 기물ㆍ보문도, 풍 속ㆍ산수도, 줄문도까지 여섯 가지 문양으로 분류한다.

(왼쪽부터) 시사단사접대병도 오학병화도 
(왼쪽부터) 팔보봉황도 대나무까치태호석도 가로줄무늬깔개도

호접도
호접을 단독으로 사용하거나 호접과 함께 18세기 특징인 창에 그려진 풍경이 초화와 함께 표현되기도 한다. 나비 형상은 16~17세기에 비해 정형화되었다. 나비는 항상 거침없이 이동하므로 자유분방함과 고운 자태를 의미하기도 한다. 일본에서는 털투성이 애벌레가 아름다운 나비로 변하는 옛이야기에서 유래해 길상문으로 자주 쓰였다.

오학도
18세기 조선철에서 가장 많이 나타나는 다섯 마리의 학 문양이다. 학은 장수와 선비의 기상을 상징하는 동물. 오학도는 중앙에 날개를 활짝 편 학을 중심으로 네 마리 학이 쌍을 이루어 마주 보는 형상이다. 하늘을 나는 듯한 역동적 모습으로 주변에는 기물, 꽃, 까치를 배치한다.

기물ㆍ보문도
기물은 사대부가 갖추어야 할 덕목으로 금기서화(음악, 바둑, 글과 그림)에 필요한 물건이나 분재 화분, 소반 등 일상에 필요한 물건을 주제로 만든다. 보문은 길상스러운 기물을 형상화한 것으로 불교의 팔기상문과 도교의 암팔선문이 있으며 이를 혼합한 잡보 등이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 일본, 동남아에서 많이 쓰인다. 보문과 함께 연꽃, 모란, 초화문을 함께 표현하기도 한다.

풍속ㆍ산수도
산과 누각, 꽃과 나무 등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풍경을 바탕으로 한다. 조선철 중에서 괴석과 대나무를 과감하게 표현한 한국적 문양이 있고, 장난스러운 몸짓을 하는 쌍계 머리 동자들과 여인들의 모습에서 중국 풍속화의 맛이 느껴지는 작품도 있다.

줄문도
줄문은 직조나 그림 문양을 넣지 않고 씨실의 색을 바꿔가며 제직해 가로 줄무늬를 표현한 것이다. 줄문도는 간결하지만 현대적 멋이 느껴지는 조선철이라 할 수 있다.



자료 제공 경운박물관(02-3463-1336, kwmuseum.org)

글 이새미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7년 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