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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인 예술가, 임선옥 낭비없는 디자인을 실천하다
쓰레기를 최소화하며 자원을 순환시키는 ‘제로 웨이스트’ 철학은 현재 전 세계적으로 여러 산업에서 확산되는 추세다. 그런데 이러한 의식이 꽃피우기 전, 이를 의상 제작에 도입한 패션 디자이너 임선옥. 그녀에게 지난 5년간의 세월은, 모두가 불가능하다 여기던 것을 가능하다고 증명해내는 도전의 시간이었다.

그래픽적 아이라인이 시그너처 룩인 임선옥은 1996년 EGO DESIGN STUDIO를 설립, 일본과 홍콩 등 국제 컬렉션에 참여하고 2003년 IMSEONOC을 론칭해 문화예술계 프로젝트 디렉터를 맡는 등 전방위로 활동해온 저력의 소유자다. 2011년 PartspARTs IMSEONOC으로 브랜드를 재정비, 제로 웨이스트 철학을 널리 알리고 있다.
옷을 만들어본 적은 없지만, 짐작은 간다. 패션 기업에서 하나의 상품을 만들어내기까지 많은 자투리 천이 버려지고, 그 전에 원단을 가공하는 과정에서 화학적 폐수가 발생하며, 다 팔지 못한 어마어마한 양의 재고가 소각될 거라는 사실을. 더욱이 최신 유행을 즉각 반영하는 빠른 호흡으로 대량생산과 유통 그리고 폐기를 반복하는 패스트 패션fast fashion, 대표적으로 SPA 브랜드가 각광받는 시대가 되면서 패션 산업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시선은 더 까칠해진 게 사실이다. 이러한 시점에 패션 디자이너 임선옥이 2011년 설립한 파츠파츠PartspARTs의 존재는 얼마나 보석과도 같은지!

파츠파츠는 ‘제로 웨이스트’를 추구하는 패션 브랜드다. 우선 하나의 원단을 사용해 재료를 최소화한다. 잠수복 소재인 ‘네오프렌’처럼 보이기에 그렇게 통용하지만, 실제는 디자이너가 개발한 새로운 소재다. 겉감과 안감으로 구성하는 일반 의상의 형식도 과감히 깼다. 오직 하나의 원단을 접착 방식으로 이어 붙이기에 또 한 번 원료의 낭비는 줄어든다. 원단에 앞판, 뒤판, 칼라(옷깃), 소매 등 각 부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그리는 것은 물론이고, 패턴을 넣는 과정에서 남은 여백은 다음 시즌에사용한다. “2015년 컬렉션에서 여러 개의 선을 패턴으로 사용 한 후, 이를 잘라낸 나머지 부분은 2016년 컬렉션의 원피스 드레스에 활용했지요.” 쓰고 남은 원단을 폐기물로 버리지 않고, 다음 컬렉션에 반영해야 할 과제물로 여기는 식.


시그너처 문양인 달항아리 패턴을 사용한 가방과 의상으로 원단을 낭비 없이 활용한 사례를 보여준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기획 단계부터 전 과정을 꿰뚫어야 하기에 디자인이 고도로 전략적이고 체계적이어야 한다. 이처럼 옷에 대한 개념을 새롭게 정립한 파츠파츠의 생산과정은 논문 주제로 패션 디자인 학회에서 발표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쾌거는 지난 7~8월 소다미술관에서 개최한 <디자인 스펙트럼 : 패션디자인 by 파츠파츠 임선옥> 전시가 2016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에서 커뮤니케이션 디자인 부문 본상을 수상한 것이다.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는 해마다 세 개 부문, 즉 제품 디자인, 커뮤니케이션 디자인, 콘셉트 디자인에서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창작 활동을 선정하는 세계 3대 디자인상. 디자이너 임선옥을 고즈넉한 부암동에 자리한 작업실 겸 쇼룸에서 만났다.

Q 지금의 파츠파츠가 있기까지 시행착오도 많았을 것 같다.
100%에 가깝게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하기까지,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그래도 일을 하면서 최소한만 소비하고, 그 방법을 발전시키는 과정은 큰 희열을 준다. 매 시즌 숙제가 남고, 그 숙제를 풀어가면서 점점 프로젝트를 완성해가는 식이라 일에 대한 만족도가 높다.

Q 5년이 지났다. 어떤 성과가 있었고, 소감이 어떤가?
내 컬렉션에 영감을 얻은 신진 디자이너가 생기고, 그들이 조언을 구하며, 패션 학회, 교수, 현업 디자이너들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치는 일은 크리에이터로서 기쁜 일이다.

Q 지금은 ‘제로 웨이스트’란 용어를 다방면으로 사용하고 있다. 파츠파츠 설립 당시의 상황은 어땠나?
아주 생소한 개념은 아니었지만, 그 의식을 실천하면서 버티기가 어렵다는 인식이 강하던 때라 매우 어려운 도전이었다. 대부분 디자인하고 생산하기에 바쁜 시기였고. 하지만 나만큼은 너무나 빠르게 소모되는 패션 사이클의 고리를 끊어야겠다고 생각했다.

Q 디자이너로서 각성인 셈인가?
디자이너로서 성숙한 레벨에서 일할 때, 단순히 컬렉션과 판매뿐이라면 보람이 없다고 생각했다. 공급 과잉 시대지 않나. 단지 예쁜 것을 만든다는 건 합리성이 떨어진다. SPA 브랜드가 많은 독립 브랜드를 점령하는 가운데, 디자이너가 콘텐츠 없이 존재한다면 오래 유지할 수 없다. 경제적 가격, 빠른 생산 등에 대응하기에 경쟁력이 떨어지는 가운데, 강한 DNA와 콘텐츠를 갖춘 브랜드로 태어나야겠다고 생각했다. 또 내공 있는 디자이너라면 내가 일을 하면서 사회적으로 순기능을 해야 한다는 철학을 지니고, 그에 도전하는 게 마땅한 일일 테고.

Q 파츠파츠의 DNA가 ‘제로 웨이스트’가 된 과정이 궁금하다.
생산자는 늘 무언가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 결과에 낭비가 최소한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트렌드에 민감한 패션 산업은 특성상 낭비를 조장할 수밖에 없다. 옷깃이 넓어졌다 줄었다 하는 식의 유행을 따르더라도, 옷의 원형이 되는 기본 틀에서 그때그때 조금 더 유연하게 대입할 수 있는 생산방식을 찾게 된 거다.


 지난 8월, 소다 미술관에서 <디자인 스펙트럼 : 패션 디자인 by 파츠파츠 임선옥> 전시가 열렸으며, 최근 그 내용이 레드닷 어워드를 수상했다. 
Q 개인적 삶에서도 ‘제로 웨이스트’를 추구하나?
폐기된 사물을 리메이크해서 다른 가치를 창조하는 작업은 익숙하다. 누군가가 쓸모없어 버린 의자가 나에게는 새로운 가치가 생길 수 있다고 믿고, 실제로 다리를 떼어내거나 판을 덧대어 색다른 오브제로 만들곤 했다. 그런 작업은 늘 해오던 것이다.

Q 예전에 ‘임선옥’으로 활동하던 때와 지금의 파츠파츠를 만들때, 디자인 관점은 어떻게 달라졌나?
전에는 자유로운 사고로, 즉흥적으로 하는 일이 많았다. 지금은 기획 단계에서 과학적 사고가 필요하고, 의류의 생산 체계에 대해 집중해서 생각해야 한다. 과거엔 생각나는 대로 자유롭게 시도할 수 있기에 재미는 있었지. 하하. 그렇게 유니크한 작업으로 임선옥을 알리곤 했다면, 지금은 ‘이게 꼭 필요한 것인 경영과 환경, 나아가 사회적 기능에 미치는 영향, 콘텐츠가 명료한가’ 등 더 따지고 고려하는 과정이 많아졌다. 기존 생산의 패러다임을 비뚤게 보고 그 안에서 창조적 아이디어를 내는 건 재미를 넘어 보람이 있다.

Q 그렇게 창의성이 한계에 다다를 때, 이상과 현실 사이의 균형을 맞춰야 할 때 괴롭지 않은가?
형식을 지키기 위해 포기해야 하는 제한적 상황이 분명히 있지만, 그런 순간을 한계라고 보기보다는 새로운 도전과 창조의 영역으로 여긴다. 소재 선택부터 제작 과정 등 수많은 한계 속에서 다른 방식으로 더 독창적 방법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창조적이다.

Q 파츠파츠 의상은 착용감이 매우 편한 것으로 유명하다. 고객이 느낄 수 있는 또 다른 매력은 무엇인가?
캐주얼과 포멀 룩을 동시에 활용할 수 있는 라이프스타일 웨어라는 것! 소재가 원래 등산복 바지를 만들던 스트레치 저지인데, 이걸로 드레스나 재킷을 만들었더니 다들 “처음 보는 소재다, 실크냐?”라는 반응이더라. 소재가 지닌 본래의 기능을 비틀고 확장한 셈인데, 가령 후드가 달린 셔츠를 입고 낮에는 조깅을 했다가도 밤에는 후드를 떼어내면 드레시한 느낌을 연출할 수 있는 식이다.

Q 소재가 네오프렌으로 알려져 있는데, 네오프렌 자체는 친환경적 소재는 아니지 않나?
네오프렌의 학명은 합성고무로 주로 잠수복 소재로 쓰는데, 옷의 소재가 되기엔 너무 무겁다. 우리가 일상복에서 말하는 네오프렌은 그런 느낌이 들어서 그렇게 부르는 것일 뿐 사실은 다른 소재다. 내가 사용하는 원단은 폴리에스테르 안에 스펀지를 넣어 두께를 조절한 신소재인데, 화학적 글루로 붙이지 않고 불에 태워 접착하는 본딩 방식을 적용해 환경오염을 최소화했다.

부암동 쇼룸 벽면에 붙어 있는 파츠파츠의 철학을 담은 문구와 장식 요소를 통해 브랜드의 정체성을 한눈에 느낄 수 있다. 
Q 자주 쓰는 문양인 달항아리는 어떻게 탄생했나?
문화체육관광부랑 작업했을 때, 한국의 헤리티지를 해외에 알릴 수 있는 모티프를 사용해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게 달항아리였다. 대놓고 ‘한국적이야!’라고 전달하기보다는 누구나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디자인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얼핏 보면 폴카 도트처럼 느껴지지만, 자세히 보면 주둥이와 받침이 있는 달항아리를 표현했더니 반응이 좋더라. 이제는 파츠파츠의 시그너처가 됐다.

Q 패션 산업이 위축되는 가운데, 슬로 패션이나 제로 웨이스트 프로젝트를 반기는 분위기다. 이러한 사회적 변화를 피부로 느끼나?
흔히 “경기가 안 좋다”고 말하는데, 이를 다르게 해석하자면 ‘과소비의 시대가 끝났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한 개를 사더라도 더 신중하게 지갑을 여는 시대인 거다. 사회적 변화도 분명히 있다. 제로 웨이스트 같은 프로젝트 사례가 점점 늘고 있는데, 여전히 비즈니스를 5년 이상 지속하는 게 쉽지 않다는 게 문제다. 상황이 나아지려면 무엇보다 현명한 소비가 따라와야 할 것이다. 한 시즌이 지나면 쉽게 버려지는 옷 대신 덜 소유하고 덜 버리는 소비 철학이 자리 잡길 바란다. 공급자 입장에서는 과소비를 안 하려는 현명한 소비자에게 무엇을 제공해야 할까? 고민을 많이 해야 할 테고, 결국 나는 매력적인 의상을 만들어야겠지.

Q 앞으로의 꿈은?
“한 소재만 가지고 여성복 전체를 풀 수 있겠어?”부터 시작해서 우려와 걱정의 시선을 많이 받았다. 실제로 모든 게 다 도전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럼 우리 같은 브랜드 있어?” 하는 독창성에 대한 자신감을 얻었다. 이제 파츠파츠를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더 대중적으로 확산할 수 있는 교두보를 마련하고 싶다. 더 파워 있는 세계적 브랜드로 성장하는 게 꿈이다.


글 강옥진 기자 사진 이기태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6년 1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