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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운서 정세진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아나운서이고 싶다
생각 밖이었다. 평일 저녁 9시만 되면 파란 사인펜을 들고 9번 채널에서 시청자를 기다리던 정세진 아나운서의 <KBS 뉴스 9>의 갑작스러운 사퇴 소식은. 지난 2001년 황현정 아나운서의 뒤를 이어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앵커석에 앉았던 그는 차분하고 편안한 뉴스 진행을 보여줌으로써 무색무취함의 진수를 조용하게 각인시켜주었다. 5년여의 앵커 생활을 정리하고 새로운 10년을 준비하기 위해 지난 1월 20일 미국 뉴욕행 비행기에 오른 정세진 씨. 정상의 자리에서 스스로 물러나 해외 연수를 떠난 앵커는 몇 손가락 되지 않는다. 인생 이모작을 준비하기 위해 용기 있는 선택을 한 그를 출국 며칠 전 만났다.

남을 서포트하는 일이 재밌다
휴대폰으로 들려오는 목소리가 쾌활하다. 뉴스를 진행할 때의 목소리보다 약간 높은 톤. 매일 정장 입은 상반신만 보여주던 그가 상큼한 캐주얼 복장으로 들어온다. 캐주얼 차림의 그는 대학생처럼 보인다. 그러나 저 복장으로도 앵커석에 앉으면 예의 참하고 단정한 자세로 뉴스 멘트를 정갈하게 전할 것이다. 저리 쾌활한 사람이 5년여 시간 동안 자신을 낮추고 뉴스를 위해 살았으리라 생각하니 참 대단하다고 생각된다. 그가 뉴스를 진행할 때에는 뉴스에 집중할 수 있어 좋았다.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겸손함, 시청자에게 뉴스 판단을 맡기는 전달자로서의 배려심이 느껴졌다.

그의 마지막 는 지난해 12월 29일 방영되었다. 마지막 방송에서 그는 프로그램에 대한 깊은 애정을 ‘어젯밤 많이 울어두었다’는 한마디 말로 축약해 표현했다. 이로써 밤 10시에 퇴근하는 그의 올빼미 생활은 종지부를 찍었다.

“출국을 앞둔 마음은 어떤지요?”
“다시 무언가를 시작하는 마음이라서 설렘보다는 두려운 게 더 많은 것 같아요. 방송국에 입사하던 스물다섯 살 때는 설렘이 있었는데, 지금은 두려운 마음도 있어요. 스스로에게 두렵지만 걱정하지 말자,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어요. 뭐든 부딪히면 다 할 수 있고, 하고 나면 별것 아니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요.”
지난해 초부터 해외 연수를 준비해온 그는 미국 뉴욕에 있는 컬럼비아대학교 동아시아 연구원으로 선임돼 그곳에서 1년 동안 사회복지학을 공부할 계획이다. 연수기간 동안에는 KBS의 사회복지 관련 프로그램이나 전략을 시청자와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사회 사업 활성화 방안에 대해서도 살펴보려고 한다.

“사회복지학이라니, 다소 의외입니다.”
“제가 가장 재미있게 여기는 일이 남을 서포트해주는 거예요. 어렸을 때 학교에서 난로 피울 석탄이 필요하면 자청해서 가지러 가곤 했어요. 타고 남은 난로의 석탄 재도 제가 손으로 다 끄집어냈죠. 그래서 선생님들이 저희 부모님께 ‘얘는 유달리 희생하는 걸 너무 좋아한다’고 말씀하셨어요.”
“의외의 말씀이네요.”
“저는 제가 전면에 나서는 것보다 뒤에서 지원하는 역할이 더 적성에 맞아요. 대기업으로 치면 한 사람의 장점을 살려주는 비서나 비서실장 정도의 역할이겠죠.”

“누구에게나 주목받고 싶어 하는 심리가 있는데 정말인가요?”
“앞으로 나서려고 하는 의식이 너무 없어서 죄송하죠. 저 같은 사람이 앞에 나서서 주도하는 역할을 해야 되는데 그렇지 못하니까요. 저는 방송에 들어가기 전 단계에서는 굉장히 쾌활하지만 막상 무대에서는 그렇지를 못해요.”
그래서인지, 그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으로 꼽는 이는 오랫동안 시민운동에 이바지해온 박원순 변호사(희망제작소 상임이사). 본인이 생각한 것을 그대로 실천하면서 사회의 변화와 발전을 이끌어내는 박원순 변호사에게 관심이 많다. 자신을 위해 즐겁게 하는 일이 남에게 도움도 되니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없다면서 말이다

자신을 알면 자신감이 생긴다
재미있을 것 같아 어린 시절부터 아나운서를 꿈꿨던 그는 두 번째 도전한 공채 시험에 합격했지만 초년 시절은 고단했다. 새 프로그램을 맡을 때마다 6개월에 한 번씩 잘리는 경험을 했다. 집에 가서 이불 뒤집어쓰고 울고, 다음 날 방송국에 가서 씩씩하게 생활하는 ‘이중생활’은 3년 동안 이어졌다. 기막힌 악순환의 반전은 뉴스 진행과 함께 찾아왔다.
“그 3년 동안 참 괴로웠겠어요.”

“이 일을 잘 못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죠. 겉으로는 아닌 척하지만. 처음에는 멋모르고 좋아서 하다가 3년쯤 되었을 때부터 ‘이 일이 내게 정말 맞는 일인가’를 생각했죠. 제가 잘 못하는 것 같으니까요. 적성이 아닌데 내 욕심 때문에 아나운서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제가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생각 외로 외향적이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어요. 오히려 반대로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이더라고요. 워낙 실수를 많이 하고, 말을 잘하지 못하는 점, 그것이 너무 힘들었어요.”

“그때 ‘내가 누구인지’ 살펴보기 시작하셨군요?”
“저는 아나운서가 되고 나서 저에 대해 참 많이 깨달았어요. 저는 대학생들에게 특강을 할 때, 자기가 어떤 사람인 줄 알면 훨씬 편할 거라고 이야기를 해요. 어떤 표정을 가진 사람인가부터 시작해서, 말이 빠른지 느린지, 손은 얼마나 흔드는지, 어떤 걸 좋아하는지를 정확히 알면 직업 구하기가 훨씬 좋을 거라고 말예요. 그렇게 하면 자신이 좋아하는 직업을 선호도에 상관없이 찾을 수 있고, 자신감 있게 시작할 수 있어요. 저는 타고난 게 부족한 사람이라 굉장히 노력을 많이 하게 되었지요.”

“초기 생활은 거의 초보 며느리 시집살이와 맞먹었을 것 같은데,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4년 차 즈음 의 주말 뉴스를 맡게 되었어요. 제가 원했던 뉴스를 진행하니 힘들어도 견디게 되고, 기분도 다시 좋아지더라고요. 이전과 똑같이 힘들고 어렵고 감당하기 힘들다고 생각하면서도 좋아하는 일이니까 잘해보려고 노력했어요. 그때 라디오에서 클래식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그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생각 정리를 잘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복잡하고 어렵게 여기던 것들도 ‘아, 이게 이래서 이런 거였지’ 하며 정리가 되더라고요.”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은요?”
“10년 동안 세 번 정도 그만두고 싶었던 적이 있었는데 고비를 잘 넘긴 거지요. 제 자신을 알아가면서 방송이 더 맛있고 재밌고 즐겁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 그만두지 않기를 잘했죠.”
앵커 생활을 시작하던 즈음 그는 FM 라디오의 클래식 음악 프로그램 <노래의 날개 위에>를 진행하고 있었다. 클래식 음악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 미숙한 점이 많았던 그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클래식 음악에 입문하게 되었다. 무엇에 빠질 줄 모르는 그가 인생을 통틀어 유일하게 빠져든 분야가 클래식 음악.

“뉴스와 클래식 음악 프로그램을 함께 진행할 때 어려움은 없었나요?”
“뉴스는 아주 객관적인 성격이고, 음악은 아주 감성적인 예술이잖아요. 매일 매일 그 두 가지를 조화롭게 하면 인간다워질 것 같았어요.(웃음) 아무래도 뉴스를 진행하면 사람이 비판적으로 될 수밖에 없는데 저는 상대를 공격해서 답변 듣기보다는 편안하게 해주면서 대답을 끌어내고 싶어 하는 성향이 강해요. 이 성향은 클래식 음악을 들으면서 많이 발달했죠.”

“두 분야에서 조화롭게 일한 것이 정세진 씨 색깔을 만들어줬나 봅니다.”
“저는 클래식 음악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도 TV 뉴스를 틀어놨었어요. TV를 보며 오늘 저녁 뉴스로는 뭐가 있는지 살피고 구상하는 거죠. 제 속에는 뉴스와 클래식이 같이 녹아 있어요. 저는 혼자 있을 때, 얼굴에는 뉴스 표정이 나타나고, 말투는 클래식 음악을 진행할 때처럼 됩니다. 지금 후회하는 것이 있다면 ‘좀 더 정감 있게 뉴스를 진행했으면 더 좋았을걸’ 하는 거예요.”

어느 사람이 그를 두고 ‘밀랍 인형’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자신을 죽이고 뉴스를 살리는 그의 뉴스 진행 방식을 빗댄 표현이었다. 요즘 같은 자기 PR 시대에, 튀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고 믿는 때에, 그는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자세로 뉴스를 보도하겠다는 정공법을 택했다. 튀지 않는 것이 그를 돋보이게 해주었고, 그런 자세는 시청자들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다른 사람이나 조직이 만들어놓은 것을 무조건 답습하지 않으려는 그의 청개구리 기질이 빛을 발한 셈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는 대학 졸업 논문을 쓸 때에도 기성의 다른 논문을 참고하지 않고 완성했다. 앵커를 시작할 때에도 ‘누구처럼 되겠다’가 아니라 ‘내 색깔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다. 무색무취한 그의 색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자기를 알면 마음이 편해진다고 말씀하시는데, 어떻게 시작하셨는지요?”
“아나운서 훈련 과정 중에 거울에 비친 자기 자신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3분간 이야기하는 게 있는데, 굉장히 어려워요. 저는 이 방법을 이용했어요. 그렇게 하면 저를 안 보고 있어도 제가 말하는 표정이 어떤지, 눈은 뭘 하고 있는지가 그려져요. 아마 TV에 얼굴이 나오는 사람들은 저뿐 아니라 모두들 연구를 많이 할 거예요.”
“거울을 보며 연구하셨군요.”

“방송에 나오면 예뻐진다는 말은 갈수록 카메라와 친숙해진다는 것과 같은 말인 것 같아요. 유재석 씨나 신동엽 씨도 마찬가지 아닐까요?(웃음) 아마 그분들도 자신이 어떤 제스처를 하고 어떤 말을 하는지, 그리고 ‘이런 표정과 언행에는 이런 반응이 나오니까 어떻게 반응해야겠다’는 것을 매일 분석하고 훈련할 거예요. 반응을 예상하니까 프로그램을 이끌어갈 수 있는 것이고요. 저도 한 10년쯤 하니까 그 메커니즘이 좀 보이더라고요.”
10년 사이 괄목할 만한 발전을 이룬 그를 보면 그릇은 키우는 것이 아니라 키워지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릇을 키우는 것은 그릇이 아니라 도공이다. 자신이 처한 환경에 적응하면 그릇은 당연히 커지게 된다. 그가 자신의 부족한 점을 발견하고 하나씩 채우지 않았다면 그는 훌륭한 원석에 그치고 말았을 것이다. 세공사에게 몸을 맡기지 않으면 원석은 다이아몬드로 만들어질 수 없는 법이니까.

세상이 편안하다, 세진世眞
매일 매일 해도 질리지 않는 <천일야화>처럼 뉴스 진행을 기다렸던 그가 앵커석을 떠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인력이 순환되어야 조직이 활성화될 수 있다는 대의적인 생각과 후배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다는 인간적인 바람이 첫 번째 이유. 두 번째는 자신을 업그레이드해야 하는 시기임을 느껴서였다. 그리고 40대의 자신을 준비하기 위한 예비 학습의 일환이기도 했다.

“40대를 대비해 연수를 떠나는 것이라고요?”
“스물다섯 살 때부터 서른다섯 살까지는 ‘KBS’ ‘아나운서’ ‘9시 뉴스’라는 이 세 가지 틀이 저를 만들어줬잖아요. 저를 키워준 것이니, 완전히 제가 만든 일이라고 할 수 없지요. 저는 그저 열심히 했던 것이죠. 인물 기사를 소개하다 보면 40~50대 분들이 진짜 프로답게 일하시고 의식도 있더라고요. 지금부터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따라 40대의 제가 일을 더 능동적으로 할 수 있을지 여부가 결정된다고 생각해요.”

“어떤 면을 업그레이드하고 싶은가요?”
“뉴스를 진행하면서 부족하다고 느꼈던 것이 사람과 직접 접촉하는 일이 없다는 점이었어요. 기자들이 취재해 온 기사를 시청자에게 전달하는 역할만 하니까 처음에는 특히 부족함을 많이 느꼈죠. 그래서 각계각층 사람들과 교류하려고 점심 약속을 많이 하고 그분들께 모르는 걸 물어보았어요. 그래서인지, 요새는 글 쓰는 분들이 부러워요. 저희는 씌어 있는 글을 추리고 축약해서 알짜를 뽑아내는 역할을 한다면, 글을 쓰는 사람은 자기가 직접 느낀 것을 담아내잖아요. 아나운서 정용실 선배님의 말씀처럼 말과 글이 같이 가는 게 중요해요.”

“말과 글이 같이 가는 것이 뭔가요?”
“저희는 원고를 속독으로 읽고 판단하는 능력을 먼저 키워요. 그리고 말로 씹어서 시청자가 잘 알아듣게 전달하는 게 첫 임무예요. 그러니까 다른 사람이 차려놓은 밥상의 밥은 잘 먹는데 정작 밥상 차리는 것을 잘 모르는 셈이에요.(웃음) 매일 차려놓은 밥을 먹다 보니 밥을 차리고 싶은 욕구가 생기게 된 것이고요. 말을 잘하려면 자기 지식도 있어야 되는데, 사실 제 말의 지식은 남이 준 것들이거든요. 남이 써준 글은 저장이 안 돼요. 그 순간에는 입력되지만 지나고 나면 어떤 내용이었는지 하나도 기억나지 않아요. 확실히 글을 쓰는 아나운서 선배님들은 똑같은 말을 사용해도 표현력과 생각의 깊이가 다르게 느껴져요.”

세상 일을 많이 겪을 수 있다고 하여 작명소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는 한자 ‘세世’자가 들어 있는 정세진이라는 이름은 그의 어머니가 지었다. 미루어 이름의 뜻을 짐작하면 ‘편안한 세상’ 또는 ‘참세상’ ‘세상을 편하게 하는 참사람’ 등이 될 듯하다. 그의 뉴스를 전 국민이 편안하게 들을 수 있었던 것은 이름 덕이 아닐는지.

“해외 연수를 부모님께서 반대하지는 않으셨나요?”
“저를 여자로 생각하지 않으시고, 막내로 생각하지 않으시고, ‘제 앞가림은 제가 알아서 하겠지’ 하시며 제가 정하는 것을 그대로 믿어주셨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아버님께서 ‘결혼하고 가면 안 되겠니?’(웃음)라고 말씀하셔서 ‘아버님, 지조를 지키셔야죠. 지금까지 잘 버티셨는데 갑자기 보내버리면 이상하잖아요’라고 말씀드렸어요.(웃음) 아버님이 제가 시집을 안 가서 걱정이 많으세요.”

“부모님과 함께 살고 계신가요?”
“아직 얹혀살고 있어요.(웃음) 두 분께서 워낙 잘 지내시지만 가끔 두 분 사이에 서운한 일이 생기면 제게 말씀하시죠. 그러면 저는 말씀을 듣고 ‘이건 엄마 잘못이고, 저건 아빠 잘못’이라고 말씀드려요.”
“집에서도 객관성과 중립을 유지하나 봐요?”
“안 그러면 삐치시니까요.(웃음)”
“부모님을 굉장히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예, 너무 좋아해요. 저는 저희 엄마 같은 엄마가 되고 싶어요. 저희 어머니는 제가 어렸을 때 일을 하셨는데요, 같이 있지 못해도 항상 같이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해주셨어요. 저희 집에서 가장 애교가 많으시고 분위기를 굉장히 밝게 만드는 기운이 있으시죠. 어머니는 소녀 같으시고 아버지는 굉장히 순수하세요. 우리 나이로 일흔한 살이신데, 굉장히 신세대적인 사고를 하세요. 고집을 부리시거나 어른이니까 이렇게 해야 한다는 게 없으시죠.”

“소녀 같은 어머니와 순수한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
“머리가 좀 복잡하고 어머니께서 지어주신 ‘세진’이라는 이름을 참 좋아하는 사람이죠. 그래서 결혼한 뒤에 남편이 동의해준다면 아이에게 제 이름을 지어주고 싶은 마음이에요. 아이에게 ‘세진아’ 하고 부르면 기분이 참 좋을 것 같아요. 지금은 남편도, 아이도 없지만요.(웃음)”
“머리가 좀 복잡하고 어머니께서 지어주신 ‘세진’이라는 이름을 참 좋아하는 사람이죠. 그래서 결혼한 뒤에 남편이 동의해준다면 아이에게 제 이름을 지어주고 싶은 마음이에요. 아이에게 ‘세진아’ 하고 부르면 기분이 참 좋을 것 같아요. 지금은 남편도, 아이도 없지만요.(웃음)”

“자신에 대한 신뢰와 자신감이 크다는 것이겠지요?”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서 그런 듯해요. 제가 굉장히 밝은 기운의 아이였는데 대학교 2학년 때부터 굉장히 부정적으로 되었어요. 뭘 해도 실수를 하고, 실수한 다음에는 ‘난 왜 이렇게 안 되지, 뭘 잘못했지?’ 하고 자책하는 성격이었는데, 방송할 때에도 그렇게 저를 자책하니까 너무 힘겹더라고요. 그래서 하나님을 믿기 시작했고 기도를 했어요. ‘하나님, 제가 이러이러해서 속상해요. 든든히 지켜주십시오. 담대하게 해주십시오.’ 이렇게 기도를 하니 마인드 컨트롤이 되고 어느 순간에는 제가 담대해진 것 같더라고요.”
“뉴욕에 도착해서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제일 먼저 하고 싶은 것은 영화 <러브 스토리>에 나오는 센트럴파크 아이스링크에서 가는 거예요. 제가 하얀 스케이트장에 앉아 있는 모습이 상상되는데, 그 느낌대로 해보고 싶어요. 스케이트를 타면 어렸을 때의 순수함으로 다시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들 것 같아요. 그리고 뉴욕의 오래된 건물의 내부, 클래식 연주회 등을 보고 싶어요.”

“언제 행복감을 느끼세요?”
“지금이요. 이 순간 저의 느낌이나 몸짓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몸짓과 느낌을 제가 자각하고 있으니까요. 지금 이 순간이 지나면 어떤 걱정들이 찾아오고 쌓이면서 이 행복감이 묻혀지겠지요? 그러면 근심을 다시 걷어내야죠.”
<행복> 2월호가 발행될 즈음이면 그는 국제적인 그릇으로 만들어지기 위한 뉴욕 생활을 시작했을 것. 한 줄의 뉴스 멘트를 작성하기 위해 매일 매일 머리를 비우고 새로운 정보를 입력하는 생활을 천 일 이상 지속했던 것처럼, 그곳에서도 매일 매일 비우고 채우는 성공적인 연수 생활을 해나가리라 믿는다.

친구 홍소연 아나운서가 이야기하는 정세진
홍소연 아나운서는 정세진 아나운서와 입사 동기. 최종 면접 때 옆자리에 앉은 것이 인연이 되어 7년 동안 여름 휴가를 함께 떠나는 친구 사이로 발전했다.

정세진 씨의 실제 모습은? 보이는 이미지보다 훨씬 괜찮은 친구다. 진실하고 깊이 있다. 소탈하고 덜렁대는 ‘머슴아’ 같은 면도 있다.

친구로서 좋은 점은? 진실하다. 내가 필요할 때 옆에서 말없이 있어주는 친구다. 남들이 해주지 못하는 중요한 부분을 채워준다.

그의 단점은? 사실, 진실하다는 말을 바꾸어 말하면 입에 발린 소리를 못한다는 얘기다.(웃음) B형 특유의 욱하는 면도 없잖아 있다.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있을 때에는 표정이 바뀐다.

뉴스 앵커로서 장수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무지하게 성실하고 자기 관리가 철저하다. 일이라는 게 처음 주어질 때는 행운일 수 있지만 그 행운을 끌고 가는 것은 당사자의 힘이 아닐까? 클래식 프로그램도 시작할 때에는 클래식의 ‘ㅋ’자도 몰랐는데, 이제는 전문가가 되었다.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데 이 친구는 천자문을 읊게 되었다. 기특하고, 정말 프로다운 모습이고, 참 멋진 일이다.

그에 관해 기억나는 일화가 있다면? 이 친구가 일 중심으로 생활하는 사람이라 집에 들어가면 잘 안 나온다. 그런데 한번은 내가 울고 있으니까 새벽에 내가 있는 곳으로 와주었다. 그리고 30분 동안 내가 우는 걸 지켜봐주더니 “다 울었어?” 하면서 커피를 뽑아주었다.

김선래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7년 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