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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목 스님 도심 속 고요, 사막의 오아시스
광화문에서 차로 10분 거리, 부암동 인왕산 기슭에 마음 공부를 위한 인터넷 방송국 유나방송이 자리한다. 나뭇결 무늬를 낸 회색 노출 콘크리트로 만든 현대적 디자인의 2층 건물 뒤로 도심 근처라곤 믿기지 않을 만큼 아름다운 자연이 펼쳐진다. 정각사 주지 정목 스님은 이곳에서 마음 공부와 명상을 가르치는 인터넷 방송을 통해 소란한 세상 사람의 마음에 여백을 마련한다.


“이런 것을 무엇하러 찍어요?” 돌에 움푹하게 홈을 내 물을 담아둔 물확에 떨어진 벚꽃잎에 카메라를 들이대는 사진가에게 중년의 산지기가 짐짓 퉁명스레 말을 건넨다. 그는 허허 웃는 사진가 앞에 이름 모를 풀을 뿌리째 꺾어 내민다. “냄새 좀 맡아봐요, 얼마나 향기로운지. 지금 아니면 맡을 수 없는 거야.” 알싸한풀 내음이 코끝을 기분 좋게 자극한다. 도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인왕산 기슭에 자리한 ‘유나방송’의 뒤뜰엔 간밤에 내린 비로 벚꽃이 절반쯤 떨어졌지만, 대신 색색의 야생화가 탐스러운 봉오리를 싱그럽게 피워내고 있었다.

유나방송은 정각사 주지이자 불교방송 라디오와 TV 진행자로 잘 알려진 정목 스님이 설립한 마음 공부를 위한 인터넷 방송국이다. 지난 2006년부터 방송국 PD 출신인 김재진 시인의 제안으로 전 세계 누구나 언제든지 들을 수 있도록 인터넷 방송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부암동 주민센터를 지나 주택가 골목길을 10분쯤 걸어 오르면 회색 콘크리트로 지은 현대적 2층 건물이 나온다. 유나방송 바로 앞에서도 뒤뜰의 풍경을 짐작하기는 쉽지 않다. 건물을 돌아 뒤뜰로 나가면 별천지가 따로 없는 장관이 펼쳐진다. 멀리 보이는 인왕산의 웅장한 산세와 흐드러진 벚꽃, 처음 보는 나무와 꽃의 조화에 홀린 듯 숲길을 거닐다 무심코 발밑을 보니 하얀 들꽃이 드문드문 피어 있다. 혹시 밟을까 발걸음을 가다듬어 조심조심 걷다 보니 어느새 마음이 고요해진다.

매년 4월 유나방송 뒤뜰에선 벚꽃 음악회가 열린다. 뒤뜰 산 중턱 평평한 곳에 작은 무대를 마련하고, 음악가가 리허설을 마치자 사람들이 돌계단을 올라 하나 둘 모여든다. 구성이 단출한 밴드가 조동진과 김광석 등의 노래를 연주하고, 무용가 조용민 씨가 김재진 대표의 하모니카 연주에 맞춰 춤을 추는 소박한 음악회 사이사이 온갖 새소리가 운치를 더했다. 공연을 바라보던 정목 스님은 문득 바람에 벚나무가 흔들리자 환한 얼굴로 뒤돌아보더니 이렇게 말한다. “저기 좀 봐요. 꽃이 우리에게 손 흔드는 것 같죠?” 흐드러진 봄날, 자연 속에서 사람들은 정목 스님과 함께 동요를 불렀고, ‘벚꽃 엔딩’에 맞춰 앞사람 어깨에 손을 얹고 기차놀이를 했다. 간혹 눈물을 보이는 이도 있었지만 얼굴은 모두 웃고 있었다.

유나방송 1층 강당에서 바라본 뒤뜰 풍경. ‘마음을 씻는 연못’이라는 의미의 세심지洗心池 너머로 석탑과 광배光背가 보인다.

생명의 힘 
정목 스님을 인터뷰하기 위해 지난 5월 초, 유나방송을 다시 찾았다. 이미 벚꽃이 진 뒤뜰엔 전에 보지 못한 또 다른 야생화가 피어 새로운 색을 더 했다. 열흘 뒤 부처님 오신 날까지 잠시 시간을 내기도 어려울 만큼 빡빡한 일정이라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지만, 스님의 얼굴은 여전히 맑았다. 정목 스님은 긴 인터뷰 중에도 질문 하나하나에 새로이 눈을 반짝이며 나직하면서 힘있는 목소리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바쁜 일정을 어떻게 소화해내시는지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금전이나 성공을 따르는 속세의 우리와는 조금 다른 동기가 있겠지요? 

‘일이다’ 생각하면 짐이 되지요. 그저 ‘나를 찾아온 것이다’ 생각합니다. 크든 작든 주어진 일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충실하게 해내야 나 자신이 성장할 수 있습니다. 20대 후반 젊은 시절에 5년 정도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법사 일을 했습니다. 눈앞에서 생로병사의 과정을 바라보는 건 무척 힘든 일이었습니다. 병상에서 함께 이야기 나누고, 그를 위해 마음을 다해 기도한 이가 세상을 떠나면, 특히 어린아이가 그럴 때는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아팠습니다. 경전이 아니라 현실 속에서 스스로 해답을 찾아야 했지요. 그런 날엔 아무 일 없이 저녁에 기차를 타고 부산까지 갔다가 새벽에 다시 올라오곤 했습니다. 한참을 길 위에서고민하다 죽음은 항상 내 이마 앞에 있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서른 여섯 즈음부터 아침마다 문을 나설 때 습관처럼 ‘다시는 이 문 안으로 돌아오지 못할 수 있다’고 되새깁니다. 그러면 오늘 내가 할 일과 만나는 사람이 내 인생의 전부가 되지요. 그런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고 있습니다.

자연이 가득한 뒤뜰이 참 아름답습니다. 도심 근처에 이런 곳이 있으리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였어요. 이곳엔 어떻게 터를 잡으셨습니까? 

20여 년 전에 인왕산을 등반하다가 내려다보면서 무심코 “저곳에 절을 지으면 참 좋겠다” 하던 곳이었습니다. 그 말이 씨가 되었는지, 정말 내게로 올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지요. 이 일대는 과거 무장 공비가 북에서 내려온 지역이라 모두 그린벨트로 묶여 있었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관청에서 대장을 살펴보니 다행히 그전에 택지로 등록되었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비어 있던 땅이었습니다. 인연이었겠지요.

소나무가 울창한 주변과 유나방송 뒤뜰의 자연은 사뭇 달라보입니다.

부지를 마련하고 2년에 걸쳐 흙을 일구었습니다. 쓰레기 더미만 몇 트럭 분량이 나왔는지 몰라요. 서안의 대표인 정영선 교수에게 뒤뜰 조경을 부탁하며 자작나무를 심으면 좋겠다고 말했어요. 하루는 정 교수가 운동화를 신고 한참 산을 둘러보고 와서는 자작나무가 살 만한 곳이 아니라고 하더군요. “스님, 내가 더 예쁜 나무 심어줄게”라며 추천한 것이 나무껍질이 비단처럼 아름다워 비단나무라고도 불리는 노각나무였지요. 나무와 꽃을 심고, 돌로 계단을 놓아 명상길을 만들었습니다. 날 좋을 때 작은 음악회나 모임을 열 수 있도록 뒤뜰을 꾸미고 산 일대를 손보는 데만 5년이 걸렸습니다.

색색으로 핀 야생화 역시 인상 깊습니다. 4월에 왔을 때는 보지 못한 꽃들이 저마다의 색으로 활짝 피었더군요. 

이곳의 토양이 물을 품지 못하는 마사토라 땅을 살리는 데 아주 애먹었습니다. 용인에 있는 한택식물원 이택주 원장에게 부탁했더니 땅을 둘러보고는 사람을 보내 1백40여 종의 야생화를 심어주었습니다. 대부분 잘 살아남았지요. 이른 봄부터 복수초, 작약, 백합이 순서대로 계절마다 꽃을 피우고 지며 토양을 윤택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런 게 생명의 힘 아닐까요? 뒤뜰 곳곳엔 돌로 만든 물확을 두었습니다. 좀처럼 물이 고이지 않는 이 근방엔 산짐승과 날짐승이 목을 축일 곳이 없습니다. 삶이 각박하면 갈증을 느끼지요. 말 못하는 짐승도 이곳에서 희망과 기쁨을 느낄 수 있도록 물 마실 곳을 마련해주고 싶었습니다. 언젠가 풍수를 본다는 사람이 와서는 물이 너무 많아 터에 좋지 않으니 물확을 치우는 게 좋겠다고 조언하더군요. 만약에 그렇다면 나는 안 좋은 쪽을 택하겠다고 말하고 그냥 두었습니다. 설령 내게 좋지 않더라도 산짐승 날짐승에게는 좋을 테니까요.

계절이 변화하는 모습이 건물 안에서도 크고 작은 창을 통해 보일 것 같습니다. 스님께선 어느 계절의 풍경을 가장 좋아하시는지요? 

계절마다 달리 아름답지만, 저는 겨울 풍경이 가장 좋습니다. 가지만 앙상한 나무가 쩡하니 푸른 하늘에 자신의 몸을 공양하는 것을 보고 있으면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주변에서 얻을 게 아무것도 없지만 안달하지 않고 자신 안에 있는 생명을 다시 피워내기 위해 가만히 기다리는 그 모습을 보면 하염없이 겸손해집니다. 그럴 땐 나무 한 그루 한 그루가 모두 성자 같습니다.


“방송국이자 명상 센터인 이 건물의 복도를 지나고 계단을 오르면서 빛의 변화를 통해 평소 잠들어 있던 마음을 깨울 수 있도록 했습니다. 현대적이라거나 세련된 것에 마음을 두지는 않았어요. 다만 아름다워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화려하게 꾸미거나 장식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공경하는 마음이 있을 때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지요. 유나방송이 영혼의 울림이 커지는 공간, 잠들어 있는 마음을 깨우는 공간, 공경하고 존중하는 마음을 열어주는 공간이 되었으면 했습니다.”


1 다양한 모양과 크기의 직사각형으로 창을 낸 유나방송 2층 테라스. 정목 스님은 공간 내부에 액자로 작품을 거는 대신, 건물 안팎의 창문을 액자처럼 활용해 자연을 공간 안으로 들였다. 노출 콘크리트 벽에 길게 낸 나뭇결 무늬와 바닥의 나무 덱이 마치 줄을 맞춘 듯 나란하다. 2 1층 강당 벽엔 크고 작은 부조 불상이 진열되어 있는데, 각각의 배치와 벽에 고정한 방법이 예사롭지 않다. 모두 티베트 박물관 신영수 관장이 기증한 것. 유물의 이름과 제작 시대를 꼼꼼히 기록해두었다. 3 좁은 복도를 지나면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나온다. 세로로 긴 창문 밖으로 키 큰 대나무가 병풍처럼 서 있다.

마음에 여백을 만드는 공간
비가 오는 족족 땅속으로 스며들어 변변한 물줄기 하나 없는 이곳에 물확을 두어 산짐승의 갈증을 덜어주려는 정목 스님의 마음 씀이 향기롭다. 유나방송은 제 안과 밖의 소리로 늘 시끄러운 세상 사람들에게 귀한 고요와 평안을 제공하는 곳이기도 하다. 메마른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말이다. 정목 스님은 각자 있는 곳에서 사람들이 마음 공부에 대한 갈증을 해소할 수 있도록 애초엔 명상 센터로 지은 이곳에 김재진 시인과 함께 인터넷 방송국을 세웠다. 유나방송은 ‘너와 나’를 뜻하며, 화합하는 세상을 꿈꾸는 이름.

현재 47개국에서 7만 명의 회원이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 유나방송을 듣는다. “목사와 신부, 수녀, 원불교 교무도 이 방송을 듣습니다. 종교와 상관없이 언제 어디서나 무상으로 들을 수 있는 방송을 만들었지요.” 방송으로 마음 공부를 시작한 회원들은 “남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을 가장 많이 한다.

뒤뜰에 이어 유나방송 내부 공간을 함께 둘러보던 사진가가 연신 감탄을 멈추지 않는다. 가로와 세로로 길게 난 직각 창이 실내와 건물 외벽에 뚫려 있어, 그 사이로 교차하는 자연 풍경이 공간에 독특한 리듬을 자아낸다. 2층 야외 테라스는 나무판자로 바닥을 만들었는데, 흰 양말을 신고 걸어도 발바닥에 별로 묻어나는 것이 없었다. 간밤 내내 비가 내렸는데도 말이다. 얼마나 정성 들여 이 공간을 유지하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일부러 훼손된 불상을 모은 건 아니지만, 여기 모신 불상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 부서져 나간 모습이 우리 인간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물건이든 사람이든 부족한게 있어야 이곳에 옵니다. 보듬고 치료해야 하는 것들이지요. 불상도 아팠기에 여기 오신 게 아닐까요? 얼굴이 깨진 것과 상관없이 공경의 대상인 석불을 보며 결점 많은 평범한 우리에게도 신성이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생각합니다.”


1 4월 17일 오후 유나방송 뒤뜰에서 열린 벚꽃 음악회 풍경. 밴드 서율의 연주와 노래, 자연의 소리가 아름답게 어울렸다. 2 벚꽃 음악회 도중 무용가 조용민 씨의 손을 잡고 가볍게 춤추는 정목 스님. 3 흐드러지게 핀 야생화 사이로 관세음보살 입상이 보인다. 이곳의 불상은 모두 티베트 박물관 신영수 관장이 기증했다.
이곳을 둘러보며 ‘생활을 디자인하면 행복이 더 커집니다’라는 <행복>의 슬로건처럼 종교 생활 역시 디자인을 통해 더욱 풍요로워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유나방송 건물을 지을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무엇입니까?

건축가 김영준 소장에게 설계를 의뢰할 때 빛과 창을 가장 강조했습니다. 건물안에 액자 그림을 걸지 않는 대신 창을 통해 건물 안에서도 사계절의 변화를 볼 수 있도록 했습니다. 창문을 디자인하면 그게 곧 액자가 되는 거지요. 종교 공간은 영혼의 울림을 담아내는 곳입니다. 그런 공간이 꼭 사찰일 필요는 없지요. 종교는 사찰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방송국이자 명상 센터인 이 건물의 복도를 지나고 계단을 오르면서 빛의 변화를 통해 평소 잠들어 있던 마음을 깨울 수 있도록 했습니다. 현대적이라거나 세련된 것에 마음을 두지는 않았어요. 다만 아름다워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화려하게 꾸미거나 장식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공경하는 마음이 있을 때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지요. 이곳이 영혼의 울림이 커지는 공간, 잠들어 있는 마음을 깨우는 공간, 공경하고 존중하는 마음을 열어주는 공간이 되었으면 했습니다.

건물과 뒤뜰 곳곳에 오래된 부조 석불이 세심하게 배치되어 있습니다. 한데 대부분 얼굴이 깨지거나 파여 있더군요. 왜 그런 불상을 수집하신 겁니까? 

일부러 훼손된 불상을 모은 건 아닙니다. 모두 북촌에 있는 티베트 박물관의 신영수 관장이 기증한 것들이지요. 대부분 중국과 티베트 지역의 불상입니다. 문화혁명 시절 농민들이 불상을 깨고 박살낸 것이 많아요. 돌이 잘 깨지지 않으니 얼굴만 갈거나 파냈지요. 여기 모신 불상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 부서져 나간 모습이 우리 인간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물건이든 사람이든 부족한 게 있어야 이곳에 옵니다. 보듬고 치료해야 하는 것들이지요. 불상도 아팠기에 여기 오신 게 아닐까요? 얼굴이 깨진 것과 상관없이 공경의 대상인 석불을 보며 결점 많은 평범한 우리에게도 신성이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생각합니다.

건물 어디나 말끔히 정돈되어 있습니다. 쓰신 책에도 청소 이야기가 심심찮게 등장하더라고요. 청소와 정리 정돈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모두 제자리에 있어야 고요해질 수 있습니다. 시간을 단축할 수 있고,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도 막을 수 있지요. 그리고 정리를 해야 필요한 것과 필요하지 않은 것을 구별할 수가 있습니다. 생활에 꼭 필요한 물건에 대한 예의일뿐더러 불필요한 물욕을 줄이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정리를 하면 생활에도 마음에도 여유와 여백이 생깁니다. 기도와 명상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지요. 여유가 있어야 타인을 이해할 수 있어요. 오랫동안 저를 도와온 보살님이 계십니다. 바쁘더라도 그분을 위해 설거지와 청소를 직접 하는 편입니다. 어느 날은 제가 지내는 방 청소를 하려고 하시길래 그날도 내가 하겠다 말씀드리니 “스님은 내가 하는 일은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아 하신다”며 서운해하시더군요. 깜짝 놀랐습니다. 그분의 짐을 덜어드리기위해 그런 것인데 말이지요. 제 불찰이었습니다. 행동의 의미를 충분히 전달하지 못했으니까요. 내 쪽에서 먼저 사과하니까 한순간에 다 풀리더군요. 나를 돌아보면 그곳에 답이 있게 마련입니다. 


“지금은 귀 기울여 듣는 기능을 상실한 시대입니다. 갈등이 생기면 누구도 상대의 말을 온전히 듣지 않습니다. 듣지 못하면 보지 못하고, 말하지도 못합니다. 그래서 분노하게 되지요. 제대로 듣기 위해선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야 합니다. 몸에서 가장 먼저 생기고 마지막까지 살아 있는 것이 청각 기능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언젠가부터 듣는 법을 잊고 살아요. 부부 사이에도, 부모 자녀 간에도 상대의 눈높이로 바라보고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공경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부처를 만난 예술 
지난 4월 한 일간지에 흥미로운 기사가 실렸다. 4년간 밤낮없이 돌판을 깎아 5백 11장의 <법화경>을 완성한 서예가 김정호 씨의 석경을 코디네이터를 자청한 정목 스님이 무형문화재 입사장 이경자 씨를 소개해 석판 테두리를 홍송으로 싸고, 연꽃과 구름, 물고기 등의 문양을 입사해 장식 한 것. 어디에 전시하고 소장할지조차 계산하지 않았던 서예가의 노작이 정목 스님에 의해 세상에 빛을 보게 되었다. 스님은 늘 당대의 예술가와 어울리고,그들을 돕는다. 작년 초파일엔 주지로 있는 정각사에 건축가 윤경식 씨와 함께 유리로 높이 5m의 미래탑을 만들었고, 그 안에 이경자 작가의 금속 불상 4백55개를 안치했다. 친분이 있는 작가의 전시장에서 공개방송을 하기도 한다. 어려운 때일수록 예술과 문화에 투자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벚꽃 음악회에서 무용가 조용민 씨의 손을 잡고 가벼운 몸짓으로 춤추시는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건물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앞에는 관음상을 찍은 준초이 작가의 사진이, 1층 강당 제단엔 현대적 금속공예로 만든 촛대가 놓여 있습니다. 당대의 예술가, 장인과 긴밀하게 교류하시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작품이 좋으면 직접 수소문해 작가를 만납니다. 티베트와 방글라데시에서 만난 아이의 얼굴을 커다란 화폭에 그리는 임영선이라는 화가가 있지요. 어느 날, 강남대로에서 택시를 타고 가다 갤러리 창가로 보인 그림에 사로잡혀 차를 세우고 화랑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갤러리에 연락처를 남겼더니 얼마 후에 연락이 왔지요. 불자였습니다. 세련의 극치를 달리는 그림과 달리 사람은 순박하기 그지없더군요. 마치 시골에서 금방 올라온 듯한 이 사람에게서 어떻게 이런 그림이 나왔을까? 알고 보니 어머니가 20년간 식물인간으로 투병을 했다는군요. 오랜 병에 효자 없다지만 그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병과 관련한 모든 걸 공부하고, 챙기고, 수발하다 그림 그리고 다시 어머니를 돌보곤 했지요. 얼마 전에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는데, 그렇게 애달파할 수 가 없었습니다. 그 모습에 핀잔하듯 “당신 이거 병이야”라고 말하긴 했지만, 이런 영혼이기에 그런 작품이 가능했구나 깨달았지요. 작품이 좋아서 만난 작가는 대부분 그 인생 역정을 통해 배울 것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움직이는 작품을 보면 작가가 궁금해집니다. 예술은 자유 세계를 추구하는 것이고, 자유란 경계를 넘어서는 것입니다. 불교의 선사상과 맞닿아 있지요. 그래서 예술가와 마음이 통하는 게 아닐까요? 예술가도 구도자처럼 고통의 길을 걷습니다. 서예가 김정호 씨가 제작한 석경은 관절의 고통을 통해서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낸 것입니다. 석경에 입사로 장식한 이경자 작가는 금속을 정으로 1천 번도 넘게 쪼아만든 머리카락 굵기의 3분의 1도 안 되는 두께의 칼집에 금과 은을 집어넣습니다. 그래야 1천 년을 간다면서요. 이런 혹독한 시련을 통해 탄생한 작품을 보면 아름답다거나 좋다거나 하는 말조차 쉽게 나오지 않습니다. 인생의 산과 계곡,모래바람을 거친 작가의 영혼이 느껴져서 눈물이 나지요.

미래탑과 석경에 이어 예술가와 함께 진행 중인 프로젝트를 소개해주세요.

정각사 붓다홀에 놓을 불상 1천 불을 만들고 있습니다. 흙으로 빚은 토불 5백 불은 이미 완성했고, 이경자 작가에게 의뢰한 5백 금속불을 내년 초파일 전에 완성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금속공예가 이경자 선생 역시 작품을 보고 연락해서 만났지요. 일본도에 문양을 주로 새겼는데, 정교하기가 이를 데 없었습니다. 백두산을 함께 오가며 가까워진 후 그는 불상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스스로 농을 섞어 “칼 버리고 부처 만났다”고 이야기하더군요.(웃음)

건축가 윤경식 씨와 함께 만든 정각사 미래탑. 5m 높이 유리탑에 입사장 이경자 씨가 만든 금속 불상 4백55개를 모셨다


공경하는 마음으로 귀 기울여 
정목 스님은 젊은 시절 버릇처럼 “나는 절을 짓지 않을 거야. 주지도 하지 않을 거야”라고 말하곤 했다. 정각사 주지는 건강이 나빠진 은사 스님의 은혜에 보답하고 예의를 다하기 위해 맡은 것. 세상 사람들이 각자 사는 공간에서 스스로 마음을 치유하도록 돕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난 27년간 라디오와 TV, 인터넷 방송 등을 통해 명상과 마음 공부를 제안하고, 아픈 어린이 돕기 운동 ‘작은 사랑’과 이웃의 어려운 문제를 함께 나누는 ‘자비의 전화’를 만든 것도 모두 그런 이유에서였다.

과거 어느 때보다 풍요롭지만 그 어느 때보다 사람들은 힘들어합니다. 모든것이 마음먹기 나름이라지만, 그러기조차 쉽지가 않습니다.

젊은 시절 티베트로 여행을 간 적이 있습니다. 한 사찰을 찾아갔는데, 그곳에 아티샤라는 큰스님의 영정이 모셔져 있었습니다. 그림 속에서 스님은 손을 대고 귀를 기울이고 계셨습니다. 모두의 이야기를 귀담아듣는 것이 그 스님을 상징하는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귀 기울여 듣는 기능을 상실한 시대입니다. 갈등이 생기면 누구도 상대의 말을 온전히 듣지 않습니다. 듣지 못하면 보지못하고, 말하지도 못합니다. 그래서 분노하게 되지요. 몸에서 가장 먼저 생기고 마지막까지 살아 있는 것이 청각 기능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언젠가부터 듣는 법을 잊고 살아요. 제대로 듣기 위해선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야 합니다. 타인은 물론 부부 사이에도, 부모 자녀 간에도 상대의 눈높이로 바라보고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생텍쥐페리가 쓴 <인간의 대지>엔 “사랑한다는 것은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방향을 함께 바라보는 것”이라는 문장이 있습니다. 마주 보면 서로 반대편을 바라봅니다. 같은 풍경을 보며 소통하려 노력해야 공경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귀 기울여 듣기, 공경하는 마음. 요즘 세상에 참으로 실천하기 어려운 가치들입니다.

부탄에 갔을 땐 아란이라는 가이드의 행동이 기억에 남습니다. 오래된 절을 찾아가 질문을 드리니 그가 큰스님께 전달하고, 답변을 다시 우리에게 전했습니다. 아란은 목에 흰 천을 두른 차림이었는데, 큰 스님이 말씀하는 동안 그 천을 풀어서 마치 말씀을 담는 것처럼 공손히 손으로 받쳐들고 있다가 다시 천을 정성스럽게 우리 쪽으로 받쳐들고 큰스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던지요.그런 문화가 아직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반면 SNS 등 새로운 매체에서 우리나라 젊은 세대가 소통하는 모습은 어떤가요? 누구의 말이라도 위아래 없이 막무가내로 분노하고 욕할 뿐입니다. 상대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고, 제대로 듣지도 보지도 않아서 그런 겁니다.

이런 세상에서 행복해지려면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귀담아듣는 마음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청각 기능을 회복하기 위해 마음을 다해야 합니다. 발밑에 있는 야생화를 제대로 바라보려면 무릎을 꿇고 모로 눕듯 눈높이를 맞춰야 합니다. 들꽃의 꽃잎이 떨리는 걸 보면 그 아름다움에 눈물이 납니다. 귀 기울여 듣는 일은 그런 겁니다. 맞고 싶지 않다면 남을 때리지 말아야 하는 것처럼, 내가 행복해지려면 남도 행복하게 해야지요. 남을 불행하게 만들 면서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을까요? 내가 원치 않는 행위를 남에게 하지 않는 절제력이 행복의 출발입니다. 행복은 나 자신의 선택과 의지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사막에 오아시스를 만드는 것은 결국 우리 자신입니다.

궁색할 이유가 없는 것처럼 필요 이상으로 풍요로울 것도 없지요.” 정목 스님은 유나방송을 자발적 회비로 운영한다. 기업과 정부의 후원 제의도 있었지만 처음의 순수함을 잃지 않기 위해 대부분 사양했다.


#유나방송 #정목스님 #정각사
글 정규영 기자 | 사진 박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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