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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신상호의 컬렉션 아름다움만이 '진짜'라는 걸 증명한다
빅토르 위고, 렘브란트, 모네, 앤디 워홀, 데이미언 허스트는 모두 예술가이자 수집광이다. 예술가의 수집욕은 자신의 작품 세계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팝아트의 거장 피터 블레이크는 비틀스 앨범 커버 이미지에 그가 모은 인형과 민속 오브제 같은 소장품을 활용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여기, 오롯이 작업의 영감을 얻기 위해 ‘수집’에 천착한 이가 있다. 수집이라는 행위를 넘어 수집품과 작품을 일원화하고 또 삶에 기꺼이 편입시킨 작가 신상호의 세계.

평생 끊임없이 생각을 뒤집어엎기 위해 노력한다는 신상호 작가. 작가의 40년 작품 활동과 수집품을 한곳에서 만날 수 있는 전시 가 10월 1일부터 31일까지 경기도 장흥 신상호 작가의 스튜디오에서 오픈 스튜디오 형태로 열린다.
아름다운 물건을 찾아 세계를 쏘다닌 지도 수십 년째, 어느새 나는 골동품 시장에서 유명 인사가 되어 있었다. 물건의 크기, 연대, 투자가치 따위는 상관없었다. 집채만 한 폐탱크를 사들이고,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낡은 부표를 수집했다. 일단 물건이 마음에 들면 손에 넣고야 마는 나는 딜러들 사이에서 독특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물건을 되팔아서 수익을 낼 계획도, 컬렉션을 전시할 마음도 없는 데다 어떤 물건을 마음에 들어 하는지, 왜 수집을 하는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새로운 종자였던 것이다. _(chaeg)

색이 바래거나 벗겨지면서 속살을 드러낸 고철 통. 사람의 손길이 닿으며 표면이 자연스럽게 연마된 사물은 결코 인위적으로 만들어낼 수 없는 멋을 전한다. 
수집 좀 한다는 이들은, 무리를 해서라도 사고 싶을 정도로 뜨거운 마음이 일어나지 않으면 그 수집은 쓸 만한 것이 못된다고 말한다. 신상호 작가는 돈이 조금이라도 생기면 청계천, 인사동에 가서 그 돈에 맞는 걸 사기 시작했다. 결혼 초 넉넉지 않은 살림에 하루 걸러 한 번씩 묵은 물건을 사 와 종일 끼고 어루만지며 하나하나 번호를 붙였으니 그걸 다 참아준 아내에게 고마울 따름이다(전 세계 골동품 시장을 뒤져 외상으로 물건을 가져오면 그저 묵묵히 송금하며 뒷바라지한 아내다!). 청계천부터 유럽, 아프리카 작은 마을까지 마음이 동하는 순간을 위해 평생 쏘다녔다는 작가는 궁극의 ‘아름다움’을 얻기 위해 때로는 싸움까지 불사했다며 호기로운 무용담을 전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렇게 모은 수집품은 어느덧 수만 가지에 이르러 자연스럽게 삶의 일부가 되었다. 어떤 것은 변형하고 어떤 것은 있는 그대로 다른 물건과 조합해 그 자체로 생활용품이, 또 창작품이 된 수집품은 그가 빚은 도자 조각이나 아트 퍼니처와 마치 이란성쌍둥이처럼 다른 듯 닮아 있다.

도자 옷을 입은 빈티지 스피커. 작가는 오래된 물건을 단순히 소장하는 것을 넘어 작가의 시각으로 변형하고 다른 물건과 조합해 완전히 새로운 작품을 완성한다. 
변형과 조합도 또 다른 창조다
전은 작가 신상호의 40년 작품 세계와 수집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오픈 스튜디오 형태의 전시다. 작가의 신작과 함께 생활 곳곳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는 아트 퍼니처와 평생 열정적으로 수집해온 희귀한 오브제들이 그간 일반인에게 한 번도 공개하지 않은 집과 작업실, 너른 마당에서 펼쳐질 예정. 먼저, 작가로서 40년 활동을 기념하는 전시를 ‘회고’나 ‘신작 발표’가 아닌 수집, ‘컬렉션’으로 정한 이유가 궁금했다.

“간단합니다. 나에겐 ‘변형’과 ‘조합’도 곧 ‘생산’이지요. 무엇을 만드느냐만큼 무엇을 가감하고 무엇을 함께 또는 따로 둘지 결정하는 일도 중요합니다. 정보와 재료가 흘러넘치는 요즘은 취사와 배열에 따라 고유한 감각이 결정되는 시대니까요.” 그리고 이런 이야기도 덧붙였다. “영국에서는 일곱 살부터 수집을 가르칩니다. 스티커, 스탬프를 모으면서 아이는 분수에 맞게 돈 쓰는 요령도 배우고 성취감을 느끼죠. 나는 수집한 물건 속에서 내가 존재하지 않았던 시대를 읽고, 그 안에 담긴 역사와 문화, 상처를 통해 작품의 영감을 얻어요. 작품의 모티프가 된 각각의 오브제를 감상하며 그것을 선택한 맥락과 특별한 지점에 놓인 이유를 살펴보세요. 수집이라는 행위는 자신을 스스로 돌아보고, 몰랐던 취향을 알아보는 시간입니다.”

장흥 부곡리 신상호 작가의 자택. 그가 손수 만든 업사이클링 가구와 도자 마감, 조각 작품이 일상생활 곳곳에서 조화를 이루며 어우러진다. 
오랜 시간 사용되면서 사람의 손을 타는 동안 표면에 입혀진 세월의 더께는 그것이 만들어진 시대, 목적, 사용자에 대한 힌트를 건네기 마련. 그런 것들이 한데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은 공장에서 생산된 공산품에서는 결코 찾을 수 없다. 작가는 바로 오래된 사물이 전하는 미감과 그 속에 녹아 있을 무수한 이야기를 통해 자신만의 고유한 작업을 펼친다. 칠이 벗겨지고 나무가 갈라지면서 아름다운 파티나patina가 완성된 ‘모자 조각상’ 컬렉션처럼 자신의 도자 조각도 일부러 닦거나 칠하지 않고 그대로 두면서 변화하는 모습을 구현하는 식이다. 컬렉션 중 흠집이 난 곳을 직접 도자로 깁거나 또 컬렉션끼리 매치해서 완전히 새로운 오브제를 만들기도 하니 ‘시간-인연-시선-변화-융합’이라는 수집의 역사와 창작의 과정이 결코 다르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들어서는 순간 압도적 공간감을 느낄 수 있는 신상호 작가의 작업 공간. 낯선 곳에서 이제껏 본 적 없는 형태의 오브제를 만나면 그것을 어떻게든 자신의 삶에, 작품에 ‘소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작가로서의 열정과 작품 철학을 읽을 수 있다. 
모든 것은 섞인다, 삶이 그렇다
하지만 물건을 모아놓는다고 해서 모두 가치 있는 컬렉션이 되는 건 아닐 터. 바야흐로 ‘편집’의 시대, 그러니 더더욱 작가만의 수집 기준이 궁금하다. 오로지 느낌, 마음이 동하면 되는 걸까? 아니면 “아픈 만큼 성숙한다”는 말처럼 수많은 시행착오를 경험해야 하는 걸까? 작가는 무엇보다 눈 훈련이 중요하다 말한다. 기록하거나 공부하지 않아도 필요하면 언젠가 불쑥 튀어나오는 게 바로 ‘안목’ 이고, 안목은 어쩔 수 없이 경험과 양에 비례한다는 것. 그는 1990년대 중반, 런던에서 안식년을 보내며 제대로 눈 훈련을 했다. 우연히 로열 아카데미에서 열린 아프리카 대륙의 미술전을 보고 아프리카 원시미술에 매료된 이후 포토벨로 마켓에 발이 닳도록 드나든 것.

초록 식물의 싱그러움이 가득한 거실 한편 응접 공간. 
꼬박 2년을 다니다 보니 상인들이 슬슬 ‘미스터 신’을 알아보기 시작했고, 각별한 친구가 된 딜러들은 은밀히 귀한 물건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가 어떤 물건을 마음에 들어 할지 예상하지는 못했다. “보통 생각하는 수집의 개념과 나의 수집은 출발선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나는 물건을 되팔아서 수익을 내거나, 맹목적인 소장을 목적으로 컬렉션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어떤 논리나 규칙이 존재하지 않지요. 그저 낯선 곳에서 이제껏 본 적 없는 형태를 만나고 그 안에서 역사와 변화를 감지하는 순간,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 동물적 욕망이 작용할 뿐입니다.”

동명의 단행본 에 실린 작가의 컬렉션. 수집가로서 열정, 수집품에 얽힌 이야기, 그것이 삶과 작품에 미친 영감 등을 소개한다.
작가는 수집품을 작품으로, 경험을 통한 영감을 삶에 온전히 소화하기 위해서는 늘 주변에 늘어놓아야 한다고 귀띔한다. 수집품을 늘 곁에 두고 보면 어느 날 갑자기 스파크가 일어나듯 새로운 용도와 기능과 디자인 아이디어가 떠오르는데, 원주민의 스툴에 도자를 더해 업사이클링한 작품이 그 예다. 꼭 악기처럼 생긴 낮은 나무 스툴에 도자 받침을 더하니 조형미가 살아나는 것은 물론, 앉았을 때 꽤 편하다. 물론 작가의 이런 과감한 ‘협업’ 작품을 두고 ‘정통’을 보존하는 게 중요하다며 곱지 않게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오래된 물건이라는 건 반대로 지금은 쓰임이 없다는 뜻 아닌가. 정통이든 국적이든 이데올로기든, 고정된 무엇에 자신을 가두는 건 재미없는 일이다. 자유롭게 생각해야 지금을 뛰어넘는 무엇이 탄생하는 법.

1 청나라 초, 유럽에 수출한 청화백자.
2 청계천에서 산 양철 모이통에 원색의 도자를 붙였다.
3 벨기에 딜러의 집에 놀러 갔다 발견한 목조각에 청계천에서 구한 조선시대 중인의 갓을 씌웠다. 대륙, 인종, 문화가 다른 두 물건의 조합이 위트를 전한다.
4 아프리카의 쪽빛 하늘을 담은 ‘Blue Horse’. 

한 가지 스타일에 머무는 걸 병적으로 싫어하는 그가 최근 ‘꽂힌’ 소재는 ‘밀리터리’다. 쓰임을 다해 폐기 처분하는 군수물자들이 만들어내는 색다른 미감과 하모니. 기능과 내구성에 총력을 기울인 산물이 결국 고철이 되었다는 풍자와 작가의 새로운 시각이 더해져 탄생한 작업은 장흥 작업실의 야외 공간 곳곳에 마치 조각품처럼 펼쳐진다. 공간 곳곳에서는 도자로 마감한 가구도 만날 수 있다. 낡은 테이블, 철제 캐비닛, 오디오, 벤치 등 가구의 일부, 즉 문짝, 다리, 테두리 등을 구운 도자로 정교하게 마감한 아트 퍼니처다. 우리 집에서 쓴다는 마음으로 하나씩 만들고, 팔아야겠다는 강박을 버리니 오히려 자유롭게 구상할 수 있어 요즘 참 기분이 좋다.

“마르셀 뒤샹이 변기로 세상을 바꾼 것처럼, 모든 것이 오픈된 현대 사회에서는 무엇보다 상상력이 중요합니다. 모든 것에 복잡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보다 ‘느낌 있네’ ‘좋네’ 등 직관적 메시지를 담을 수 있는 상상력요.” 원하는 물건을 우연히 발견했을 때의 쾌감은 물론 어떻게 사용할까 구상하는 상상력, 물건이 하나 둘 모이면서 비로소 완성되는 고유한 취향까지… 수집만큼 자신에 집중할 수 있는 취미가 또 있을까? 낯선 물건이 주는 혼돈과 긴장, 그 속에서 새로운 조화를 찾는 작가 신상호의 작품을 통해 ‘수집’의 고유한 가치와 매력을 느껴보자. 전시는 사전 예약 후 관람할 수 있다.

주소 경기도 양주시 호국로 311번길 20-39 문의 031-826-4549



자료 제공 <The Collector>(chaeg)

#신상호 #수집품 #업사이클링가구 #아트퍼니처
글 이지현 기자 |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5년 10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