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건물과 도시 풍경이 오버랩되며 회화적 오라를 뿜어내는 고명근 작가의 사진 조각. 1980년대 후반부터 모은 낡은 건물 이미지를 OHP 필름에 출력한 뒤 인쇄된 이미지를 여러 장 겹쳐 플렉시글라스plexiglass에 압착시킨 작업이다. 사진으로 구성한 이 구조물은 입체와 평면을 넘나들며 사진 혹은 조각 이상의 색다른 감동을 선사한다. ‘Building with Trees-5’, 59×40×21cm, 디지털 필름 3D-Collage, 2012
재생, 진화의 몸부림 건축에는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라는 오랜 화두가 있다. 루이스 설리반Louis Sullivan이라는 근대건축의 첫 장을 장식한 건축가의 말이다. 이 말은 모든 형태는 특정한 기능에 근거해 이유 있게 만들었다는 의미다. 우리가 자연을 관찰하면 이 말이 얼마나 맞는지 알 수 있다. 기린의 목이 긴 이유는 높은 나뭇가지의 잎을 따 먹기 위함이고, 가자미의 눈이 한쪽 면에 두 개가 붙어 있는 것도 포식자로부터 살아남기 위한 필연적 이유에서 발생한 디자인인 것이다. 이는 새로운 디자인을 만들 때 아주 유용한 철학이다. 자동차를 처음 디자인한 사람은 기능적 이유에서 엔진과 네 개의 바퀴를 생각해냈을 것이다. 비행기도 기능적 이유에서 날개와 프로펠러를 디자인했다. 항상 새로운 디자인은 이처럼 ‘기능’에 근거해서 만들어진다.
하지만 건축물에 ‘시간’이라는 요소가 첨가되면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라는 명제가 늘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화력발전소로 사용하다 더 이상 쓸모 없게 되어 문을 닫은 건물은 시간이 지나서 테이트 모던이라는 미술관이 되었다. 최초의 테이트 모던은 화력발전소의 형태에 맞게 디자인했지만 증기터빈이 있던 자리가 미술관의 전시 공간으로 바뀌었다.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도 좋은 예다. 기차의 엔진이 강력해지면서 객차가 길어지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기존 플랫폼이 짧아 더 이상 기차역으로 기능을 못 하게 되자 애물단지로 전락한 이곳은 수십 년 후 미술관으로 다시 태어났다. 두 공간 모두 주어진 건물 형태에 맞추어 새로운 기능을 적용한 경우다.
물리적으로 보면 건축물은 돌, 벽돌, 유리 같은 재료로 만든 무생물이다. 자동차와 같이 기본적으로 무기물로 만든 물건은 맞지만 우리가 사용하는 것은 그 무기질 재료로 만든 나머지 부분인 ‘빈 공간’이다. 빈 공간을 싸고 있는 재료들은 약간씩 변형되어도 사용하는 데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건축물은 다른 물건과는 다르게 사람보다 오랫동안 살아남고 시대에 따라 다른 용도로 변형되면서 다시 사용된다. 재생 건축은 이처럼 시대의 변화에도 살아남는 ‘빈 공간’의 이야기다.
또한 건축물은 그 시대 사람들의 사회, 경제, 문화, 정치, 기술 등 모든 것이 하나로 결집된 결정체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사람이 살고 있는 아파트는 동시대의 대중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기술적으로 선택한 삶의 방식이다. 5백 년 전의 사람들에게는 단층짜리 기와집과 초가집이 그러했다. 마치 바뀐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자신의 형태를 진화시키는 가자미처럼 재생 건축 건축 입장에서 보면 바뀐 환경에서 철거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한 진화의 몸부림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몸부림의 시간과 사람의 노력은 건축물에 오롯이 남는다. 그래서 재생 건축은 보는 이로 하여금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깊은 시간의 감동이 배어 있다.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을 방문하는 사람은 1백 년 전 기차역을 만든 이와 건축물을 통해 교감하고, 경제 논리로 따질 수 없는 묘한 울림을 경험한다.
불과 50년 전만 하더라도 사람들은 지구가 무한하게 제공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두 차례의 오일쇼크를 겪고 나서야 사람들은 지구가 유한하다는 것을 깨달은 듯하다. 시간이 지나 세계 인구가 두 배 이상 늘어나고 더 이상 지구는 이 많은 사람이 다 누리면서 살기에는 면적이나 지원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달아가고 있다. 극단적 영화나 소설은 전염병으로 인류의 수를 줄여야 한다고까지 말하는 지경이다. 그러니 이 시대에 ‘재사용’은 선택 아닌 필연이요, 지속 가능한 세상을 만들기 위한 일종의 의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건축이 갖고 있는 고유한 스토리는 새 건물은 결코 빚어낼 수 없는 멋진 디자인 언어가 된다는 21세기의 또 다른 명제를 제시한 재생 건축. 최근 3~4년간 전 세계적으로 이슈를 만들며 그 지역의 랜드마크가 되고 있는 재생 건축의 훌륭한 예를 살펴보면서 시간의 켜가 쌓인 건축이 어떻게 아름답게 재활용되었는지 지혜를 배워보길 바란다.
‘Building with Trees-10’, 55×20×20cm, 디지털 필름 3D-Collage, 2012
오래된 속살과 마주하다
워터하우스 부티크 호텔 Waterhouse Boutique Hotel
위치 중국 상하이, Maojiayuan Rd 1-3, Huangpu District
설립 연도 1930년대
기존 용도 군 사령부, 창고, 보일러실
리모델링 시기 2010년
건축과 인테리어디자인 네리&후 디자인 앤 리서치(www.neriandhu.com)
상하이 부티크 호텔 워터하우스는 일본이 중국을 점령하던 1930년대에 일본 무장군의 사령부로, 중국 공산당 정권 이후에는 부둣가의 창고로, 보일러실로 사용하던 건물을 개조했다. 워터하우스 호텔이 자리한 사우스번드 지역은 한때 아시아 최대 항구이던 셔류푸로, 올드 상하이의 교통・물류 중심 지역이었다. 싱가포르 출신 오너는 세계적 디자인 회사 네리&후 디자인 앤 리서치 오피스(NHDRO)와 함께 2010년 이 공간을 리모델링했는데, 내부와 외부를 바꾼 ‘도치’에 디자인 모토를 두었다. 이전 건물의 뼈대는 그대로 두고 외관의 파사드에 살짝 덧칠만 해 3백65일 공사 중인 듯한 느낌을 준 것. 계단이나 복도에는 옛 건물의 콘크리트 속살을 그대로 드러낸 채 네온사인을 걸어 생경한 느낌을 연출했고, 열아홉 개의 객실 내부에는 디자이너 찰스&레이 임스와 콘스탄틴 그리치치, 한스 웨그너, 장 프루베 등의 오리지널 가구를 들여 호화롭게 꾸몄다. 짐작할 수 없는 내부와 외부의 괴리감으로 사람들의 방향 감각을 혼란시키고, 일상과 현실을 벗어나 리프레시할 수 있도록 유도한 것이다.
글 손지연 기자 자료 협조 워터하우스(waterhouseshanghai.com)
모던 인더스트리얼 디자인의 정수
아날로그 포크Analog Folk
위치 영국 런던, Warner Street
설립 연도 1940년대
기존 용도 공장
리모델링 시기 2013년
건축 DH Liberty(www.dhliberty.com)
현재 모습을 통해 과거 어떤 건물이었는지 충분히 짐작케 하는 이곳은 영국의 광고 회사 아날로그 포크의 헤드 오피스다. ‘Analog Folk’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오래된 정서를 반영한 이곳은 공장을 개조해 모더니즘과 인더스트리얼 분위기로 재해석한 사무 공간. 노출된 연통과 배관, 조적이 드러난 벽체를 보면 여전히 사무실보다 공장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디자인을 맡은 런던의 건축 사무소 DH리버티DH Liberty는 가공하지 않은 OSB 패널과 빈티지 조명등, 파이프 가구, 고재 문짝 등 소품을 이용해 가공하지 않은 인더스트리얼 디자인의 묘미를 더했다. 다소 거친 분위기지만 고재 나무, 빈티지 유리병 등으로 온기를 더한 것이 특징. 회의 공간에는 커다란 고재 문짝을 상판으로 활용해 회의 테이블을 제작하고, 투명 파티션으로 구획을 나눠 실용성을 더했다. 메자닌 구조로 1.5층을 두어 꼭 다락방처럼 꾸민 사무실은 작지만 개방감이 느껴진다. 입구 로비에는 재활용 병으로 만든 조명등을 물고기 형태로 설치했는데, 회사의 상징이자 명물이 되었다.
글 이지현 기자 사진 킨틴 레이크Quintin Lake
이화동 쪽방에 꽃핀 사랑방
이화루애
위치 서울시 종로구 낙산성곽서길 107-32
설립 연도 1950년대
기존 용도 주거 공간
리모델링 시기 2015년
건축과 인테리어디자인 지랩(www.z-lab.co.kr)
1950년대 지은 조선 영단 주택 밀집 지역에 위치한 이화루애는 당시로는 가장 최신식인 일본 나가야(방과 방이 길게 붙은 다세대주택) 건축 기술로 지었다. 그래서 작은 방으로 나뉜 공간을 하나로 뚫는 작업이 우선이었고, 그 결과 1층 입구엔 이화동에 놀러 온 사람들이 부담 없이 들를 수 있는 파스텔 뮤직 숍을, 뒤뜰과 2층은 주방과 침실로 구성한 파티형 게스트 하우스로 바꾸었다. 공사를 중단한 것이 아니냐고 할 정도로 외관은 창문과 2층 테라스 외에 거의 손을 대지 않았다. 내부 역시 가능한 한 원형을 훼손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철거했는데, 철조망 기둥과 그 사이에 벽돌을 메운 1층 천장을 날 것 그대로 노출했고, 적산 가옥의 2층 골조도 남겨두었다. 철거하며 나온 고재를 욕실 문 같은 곳에 재활용하거나, 업사이클링 브랜드인 매터앤매터의 가구를 놓는 등 재생 공간으로서 의미를 더욱 강조했다.
글 김민서 기자 사진 이우경 기자 문의 02-732-0102
Back to the 1920’s
몰리터 엠갤러리 호텔Molitor MGallery Hotel
위치 프랑스 파리, 13 Rue Nungesser et Coli
설립 연도 1929년
기존 용도 스포츠 클럽
리모델링 시기 2014년
인테리어디자인 장 필리프 뉘엘Jean-Philippe Nuel
1929년 몰리터 수영장은 실외 수영장과 실내 수영장을 갖춘 스포츠센터로 성대하게 문을 열었다. 수십 년간 파리에서 가장 유명한 수영장이자 사교 클럽으로 시대를 풍미한 이곳은 1989년 폐장 위기를 맞았다. 다행히 역사적 장소를 허물어버리는 것에 대한 반대 여론이 들끓었고, 폐장은 했지만 철거는 막을 수 있었다. 그 후 25년간 방치된 수영장에 생명을 불어넣은 것은 바로 엠갤러리 호텔. 스위트룸 스무 개를 포함한 1백24개의 룸과 스파, 레스토랑, 바 등을 갖춘 부티크 호텔로 탄생했다. 레노베이션을 맡은 장 필리프 뉘엘은 1920년대 유행한 아르데코 양식을 유지하면서 1930년대부터 현재까지 시대상을 반영하는 가구, 소품 등으로 개성을 더했다. 수영장 폐장 후 곳곳에 그려진 그라피티 중 일부를 살려 복도 카펫과 벽면 인테리어에 반영했고, 기억할 만한 흑백사진(다이빙하는 모습 등)을 거대하게 프린트해 실내 장식으로 활용했다. 뭐니 뭐니 해도 이 호텔의 백미는 과거의 영광을 담고 있는 야외 수영장이다(모든 방에서 둥근 창 너머 수영장을 바라볼 수 있다). 비현실적으로 파란 물빛, 페르몹과 모르소의 아웃도어 체어와 데이베드가 형형색색 펼쳐진 모습이 인상적인 수영장의 풀사이드는 보는 순간 가슴이 확 트이는 시원한 비주얼을 자랑한다.
글 이지현 기자 자료 협조 www.mgallery.com
배려의 미학
에이 스페이스A space 쇼룸
위치 독일 베를린, Kremmener Straße 9, 10435
설립 연도 1920년대
기존 용도 극장
리모델링 시기 2014년
건축 조피 카츠케Sophie Gatzke, 플라여&프란츠 스튜디오 Plajer&Franz Studio
낡고 볼품없는 도심 속 영화관이 부동산 중개소의 전시 공간으로 탈바꿈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아주 흥미로운 발상이다. 베를린 도심의 400㎡ 면적에 걸쳐 리모델링한 에이 스페이스 쇼룸은 오래된 재료의 물성과 축적된 시간의 흔적을 고스란히 엿볼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이다. 영화관으로 활용하던 기존의 낡은 시설을 뜯어내고 건축가는 벽과 천장을 그대로 노출시켰다. 예산의 한계와 짧은 공사 기간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함이었다. 이를 통해 앙상하게 드러난 8m의 높은 천장을 얻었고 특별한 영역 구분 없이 회의실과 상담실이 마련되었다. 상부의 무덤덤함을 가득 채운 실 커튼은 말없이 공간을 나누고, 1920년대 영화관 전광판을 연상시키는 A 모양의 설치물이 부동산 회사의 브랜드를 설명해준다. 전시 공간은 노출된 벽돌 조적조와 한껏 어우러져 홀과 벽면에 정리된 모형과 홍보용 패널, 제작한 가구 등이 이색적 운치를 자아낸다. 과거의 흔적을 무조건 없애기보다는 필요한 부분을 살려내고 그 속에서 시간과 물성적 효과를 현대 공간에 맞게 재구성하는 시도는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와 환경에 대한 배려의 의미를 담고 있다. 글 김용삼(에이앤뉴스 편집국장) 사진 히리스티안 루다트Christian Rudat
창조된 보존
젠틀 몬스터 배쓰하우스
위치 서울시 종로구 계동길 92
설립 연도 1960년대
기존 용도 목욕탕
리모델링 시기 2015년 시공 패브리커, 젠틀 몬스터
서울에서도 고즈넉한 골목길 풍경을 유지하는 종로구 계동. 계동의 오래된 명물이자 주민들의 사랑방이던 중앙탕이 하우스 안경 브랜드 젠틀 몬스터의 네 번째 쇼룸으로 거듭났다. 중앙탕은 1968년까지 중앙고등학교 운동부 샤워실로 사용하던 공간을 개조해 1969년 다시 문을 연 대중목욕탕이다. 젠틀 몬스터는 중앙탕이 지닌 정서와 세월의 흔적을 유지한 채 쇼룸의 기능을 더하는 재생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6개월의 인고 끝에 ‘배쓰하우스Bathouse’ 쇼룸이 탄생했다. 50년 이상 타일을 덧붙이는 개・보수를 했기 때문에 켜켜이 쌓인 마감재를 정리하는 데만 두 달 이상이 걸렸다. 쇼룸은 보일러실, 사우나실, 욕탕 등 목욕탕 구조를 그대로 유지한 것이 특징으로 목욕탕 특유의 청색 타일과 콘크리트가 노출된 벽면에 선반을 설치해 안경을 전시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1층 욕조 가운데에 있는 육중한 기계. 목욕탕 물을 데우기 위한 실린더에서 영감을 얻은 ‘타임 트랜스포메이션Time Transformation’이라는 대형 설치 작품으로 1층 욕조 안 물의 움직임으로 생성된 운동에너지가 전기에너지로 전환돼 2층에 설치한 1백62개 전구의 빛을 밝힌다. 최초의 대중목욕탕으로 사랑받은 옛 모습이 담긴 영상을 지나 옥상으로 나가면 하얀 연기를 뿜으며 위용을 과시하던 빨간 굴뚝을 만날 수 있다.
글 이지현 기자 사진 이창화 기자 문의 070-4895-1287
전분 공장의 무한 변신
앤트러사이트 제주
위치 제주시 한림읍 한림로 564
설립 연도 1951년
기존 용도 고구마 전분 공장
리모델링 시기 2015년
최근 제주에서 가장 핫한 곳을 꼽으라면 단연 이 전분 공장이다. 현무암으로 단단히 올린 이 건물은 1991년까지 왕성하게 기계가 돌아가던 고구마 전분 공장으로 수입 농산물에 밀려 20년 이상 방치된 건물을 앤트러사이트 김평래 대표가 인수해 복합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김 대표는 최대한 원형을 보존해 폐허의 아름다움을 살리는 것에 집중했다. 영국산 증기터빈 원동기는 버리자고 보면 그저 고철 덩어리지만 지금 시대에는 돈 주고도 못 구하는 이곳의 상징 같은 존재. 파손된 천장 사이사이 지붕을 드러내 투명하게 마감한 덕분에 사이로 쏟아지는 햇빛이 신비로운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또 지역의 재료만을 사용한 것도 특징. 오픈 키친의 아일랜드는 주변 돌을 주워다 쌓고 삼나무 상판을 올려 손수 만든 것. 고구마를 세척할 때 사용하던 나무 체를 분리해 제작한 테이블은 오래된 건물과 집기가 전혀 이질감 없이 조화를 이룬다. 돌 건물 리모델링의 완결판이라고 할 수 있는 이곳을 통해 ‘시간’이라는 디자인 요소의 매력을 한껏 체험해보길.
글 이지현 기자 문의 064-796-7991
패션과 아트, 경계를 허물다
폰다치오네 프라다 Fondazione Prada
위치 이탈리아 밀라노, Largo Isarco 2 20139
설립 연도 1900년대
기존 용도 공업 단지
리모델링 시기 2015년
건축과 인테리어디자인 OMA(www.oma.nl)
미우치아 프라다와 그의 남편 파트리치오 베르텔리가 설립한 예술 재단 프라다 파운데이션이 자리를 옮겼다. 패션과 예술의 경계를 허문 공간답게 이곳은 1900년대 초에 설립한 밀라노 남쪽 라르고 이사르코 지역의 공업 단지를 예술 공간으로 개조했다. 약 1만 9000㎡(2천7백 평)의 예술 단지를 조성한 것은 세계적 건축가 렘 콜하스가 이끄는 OMA. 그는 기존 콘크리트 건물 일곱 채에 신축 건물 세 채를 더했는데, 전형적인 콘크리트 공장 건물과 수려한 현대적 건물이 질서 정연하게 공존해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폰다치오네는 보전 프로젝트도 아니지만 신축 건축물도 아니다”라는 렘 콜하스의 말처럼 이곳은 ‘옛것과 새것 사이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었다. 각각의 건물은 뮤지엄과 시네마, 탑 등으로 전시 성격에 따라 나뉘며 어떤 전시실도 모양이 같은 것은 없다. 한편 영화감독 웨스 앤더슨이 1950년대 이탈리아 영화를 재현한 듯 꾸민 카페 더 바 루체는
꼭 들러야 할 명소다.
글 손지연 기자 자료 협조 폰다치오네 프라다(www.fondazioneprada.org)
머물고 싶은 감옥
헷아레스트하위스 Het Arresthuis
위치 네덜란드 루르몬트, Pollartstraat 7, 6041 GC
설립 연도 17세기
기존 용도 감옥
리모델링 시기 2011년
건축 마르턴 앵앨만Maarten Engelman
인테리어디자인 팔크 디자인Valk Design
네덜란드 남동부 루르몬트에는 경비가 삼엄하기로 악명 높은 감옥이 있었다. 그런데 1863년부터 2007년까지 약 1백50년 동안 중범죄자를 수감했던 이 감옥이 몇 년 전 완전히 색다른 공간으로 변모했다. 네덜란드 호텔 체인 판테르팔크Van der Valk가 오픈한 헷아레스트하위스는 어두컴컴한 감방 1백5개를 40개의 모던한 객실로 바꾸고, 난간 아래 1층 넓은 복도를 라운지로 사용한다. 기존에 있던 2층 복도 난간과 철창문은 그대로 살리되, 각 객실은 네덜란드 디자인의 세련되고 미니멀한 인테리어를 적용해 과거 모습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다만 ‘제일러 Jailer’ ‘저지Judge’ ‘로이어Lawyer’ ‘디렉터Director’라고 이름 지은 스위트룸, 열쇠를 모티프로 한 도어 태그, 수감 번호가 붙은 목욕 가운 등 곳곳에 위트가 묻어난다. 때때로 죄수복을 입고 진행하는 파티나 이벤트를 연다니, 네덜란드를 여행한다면 한 번쯤 방문해도 좋은 호텔이다.
글 김민서 기자 자료 협조 헷아레스트하위스(www.hetarresthuis.nl)
역사 위에 세운 디자인 스폿
디자인 코뮌Design Commune
위치 중국 상하이, No.511, Jinan Ning road
설립 연도 1920년대
기존 용도 경찰서
리모델링 시기 2012년
건축과 인테리어디자인 네리&후 디자인 앤 리서치(www.neriandhu.com)
상하이 징안에 오픈한 디자인 코뮌에는 디자인 숍과 갤러리, 레스토랑이 입점해 있다. 1910년 즈음에 지은 이 건물은 영국 식민지이던 당시엔 경찰서로 사용했는데, 최근 디자인과 예술의 도시로 가장 조명받는 상하이답게 식민 시대의 잔재인 이곳은 디자인 스폿으로 탈바꿈했다. 디자인 코뮌은 역사 경관 가이드라인(historic preservation guidelines)에 따라 건물 외벽의 붉은 벽돌 구조를 유리로 감싸 건물이 지닌 역사적 의미를 보존했다. 이렇게 거의 손대지 않은 외관과 대조적으로 실내는 비교적 많이 바뀌었는데, 벽과 바닥 그리고 지붕을 과감히 없애거나 썩은 나무와 석고를 제거하고 벽돌을 쌓았다. 또 유리 같은 가벼운 재료를 사용해 식민 시대 공공 기관의 무겁고 경직된 분위기를 중화했다. 타파스 요리를 맛볼 수 있는 레스토랑&카페 코뮌 소셜은 아늑한 분위기와 뛰어난 맛으로 상하이의 핫 플레이스로 손꼽힌다.
글 김민서 기자 사진 페드로 페헤나우테Pedro Pegenaute
별 헤는 밤
윤동주 문학관
위치 서울시 종로구 창의문로 119
설립 연도 1960년대
기존 용도 수도가압장, 물탱크
리모델링 시기 2012년
건축 아뜰리에 리옹(www.lionseoul.com)
서울시 건축상 대상을 수상하는 등 도시 재생의 모범 사례로 꼽히는 윤동주 문학관이 과거 수도 가압장과 물탱크였다면 믿을까? 쉽게 매치가 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모던한 하얀 큐브 안으로 들어서면 만나는 어두컴컴한 침묵의 방. 이곳이 의미 있는 것은 생가 건물을 복원하는 식이 아니라, 수명을 다한 수도 가압장에 문학관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이 공간의 핵심은 물탱크다. 물탱크 하나는 윗부분을 개방해 하늘을 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고(열린 우물), 다른 하나는 어두컴컴한 영상 전시실로 바꿔 윤동주 시인의 감옥 생활을 상징한다(닫힌 우물). 설계를 맡은 아뜰리에 리옹의 이소진 소장은 벽면의 물때 자국까지 건축 요소로 활용했다. 전시실 두 개를 잇는 야외 통로의 벽면은 이곳이 수십 년간 수돗물이 저장된 곳임을 증명하듯 물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처럼 용도를 다해 버려진 공간은 그 힘을 다한 듯하지만 건축가의 창의적 시도로 다른 용도로 생명력을 얻게 된다. 천장을 뚫어 하늘을 향해 열린 이곳에서, 그의 시처럼 밤하늘의 별을 헤아려봐도 좋겠다.
글 이지현 기자 사진 김재경
한옥의 현대적 실험
카페 식물
위치 서울시 종로구 돈화문로11다길 46-1
설립 연도 미상
기존 용도 주거 공간
리모델링 시기 2014년
건축과 인테리어디자인 데시_아키텍츠 Desi_Architects(www.desiarchitects.com)
익선동은 1920년대 말 건양사라는 주택 개발 회사가 매입해 도시형 한옥 단지를 지어 분양한 동네다. 이곳 한옥은 가회동에 비해 크기가 작고, 마당과 대청, 기와지붕 등 한옥의 건축양식을 지키면서 부분적으로 유리나 타일 같은 재료를 활용했다. 그래서 익선동은 암울한 일제강점기에 전통문화를 계승하려고 한 동네로서 역사적 가치가 있다. 패션 사진작가 루이스 박이 운영하는 카페 식물은 이런 장소적・역사적 특성을 살려 개조했다. 한옥 네 채 중 한 채는 작업실로 남겨두고 나머지 세 채를 하나로 연결해 카페 겸 바로 만들었다. 한옥의 형태는 최대한 보존한 채 외관을 폴리카보네이 트로 덮고, 툇마루 같은 테라스와 기와를 쌓아 만든 벽 등 기존 한옥에 현대적 요소를 가미했다. 또 어머니가 사용한 자개 상처럼 빈티지한 소품과 가구가 공간에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글 김민서 기자 문의 02-747-4854
버스 차고지에 번지는 커피 향
브라운핸즈 마산점
위치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가포순환로 109
설립 연도 미상
기존 용도 버스 차고지
리모델링 시기 2015년
인테리어디자인 브라운핸즈(www.brownhands.co.kr)
서울 도곡동의 자동차 정비소를 개조한 쇼룸으로 이목을 끈 브라운핸즈가 이번에는 마산 해안가에 있는 버스 차고지를 쇼룸으로 만들었다. 일대에 리조트를 건설하기 위해 철거될 뻔한 버스 차고지가 브라운핸즈 덕에 생명을 얻은 것. 전시 공간이자 카페로 사용하는 도곡동 쇼룸처럼 이곳에서도 다양한 문화 활동이 펼쳐진다. 버스를 여러 대 주차해놓은 만큼 공간이 넓고 천고도 높아 공간이 시원하게 뚫린 느낌이다. 연장을 보관하던 드럼통, 오래된 정비 시설, 외관에 쓰여 있는 ‘안전제일’과 내부의 ‘닦고 조이고 기름치자’라는 글자 등 버스 차고지던 과거의 잔상이 남아 있다. 무엇보다 마산 앞바다가 한 눈에 들어올 정도로 위치가 좋다. 현재 브라운핸즈는 1922년에 지은 부산 백제병원을 작업하고 있는데, 그 결과물을 더욱 기대하게 만든다.
글 김민서 기자 문의 055-243-0050
양조장의 운치에 취하다
옥타파마 오피스&레스토랑 Octapharma Brewery
위치 스웨덴 스톡홀름, Hornsbergsvägen, 112 51
설립 연도 1890년대
기존 용도 양조장(맥주 공장)
리모델링 시기 2015년 건축 욜리아르크Joliark
인테리어디자인 화이트White
스웨덴 스톡홀름의 구시가지에 재생 건축의 모범 사례로 꼽을 수 있는 건물이 들어섰다. 스위스의 다국적 의료 서비스 회사인 옥타파마사가 방치되어 파손되어가던 1890년대의 낡은 맥주 공장을 사들여 오피스와 레스토랑으로 탈바꿈한 것. 당초 옥타파마사는 회사의 확장세와 더불어 공장과 생산 시설뿐 아니라 사무 공간과 실험실을 위한 공간을 계획했지만 기존 목조 시스템이 생산 시설과 실험실로 적합하지 않았기에 기존 건물을 가급적 그대로 유지한채 용도에 맞게 변경했다. 외벽은 유리 파사드로 바꾸었으며, 내부는 목구조를 그대로 살리고 기존 아치형 창을 보존함으로써 고풍스러우면서도 밝고 활력 넘치는 공간을 탄생시켰다. 내부 공간은 맥주가 큰 구리 용기 안에서 양조되는 시간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반영했고, 노출된 목재 기둥과 어우러져 시간의 흔적으로 유지한 채 우아하면서도 세련된 공간을 구현한다. 건물의 문화적 가치를 중시한 기업, 이를 효용성 높은 공간으로 재구성하기 위해 스톡홀름 시 당국과 박물관, 건축 회사와 인테리어 회사의 협력이 만들어낸 결과물인 이 건물은 그 문화와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블루 플라크 헤리티지 리스팅blue plaque heritage listing’ 에 등재되기도 했다. 1백25년 된 유럽 양조장의 변화된 운치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을 듯.
글 김용삼(에이앤뉴스 편집국장) 사진 토리우스 다히Torjus Dahl, 브렌단 아우스틴Brendan Austin
귀족 별장과 와이너리의 만남
식스 센스 도루 밸리 Six Senses Douro Valley
위치 포르투갈 라메고, Quinta vale de Abraão, Sanodães, 5100-758
설립 연도 1980년대
기존 용도 귀족 별장
리모델링 시기 2015년
인테리어디자인 식스 센스 아키텍처&디자인, 클로다 디자인Clodagh Design
럭셔리 호텔 체인 식스 센스의 호텔 식스 센스 도루 밸리는 포르투갈 라메고의 전통 와인 경작지에 자리한 귀족의 가족 별장을 개조해 만들었다. 근처에 작은 댐과 에너지 발전소가 있어 수자원이 풍부한 데다, 정원과 호수가 예쁘게 정리되어 있고 이국적 나무와 숲길이 조성되어 도루 계곡에서 가장 패셔너블하고 아름다운 별장으로 소문난 곳이었다. 시간이 흘러 별장으로서의 역할이 사라지자, 식스 센스 호텔로 탈바꿈한 것. 이때 전통적 와인 양조 지역이라는 지역 특색을 반영해 와인과 미식에 초점을 맞췄다. 객실 57개는 원목 가구를 더해 내추럴 무드로 꾸미고, 포도밭이 있는 호텔 중심부에는 카페와 함께 시음 공간을 마련했는데, 호텔 투숙객이라면 누구나 산지의 신선한 와인을 맛볼 수 있다. 또 약 7백여 가지 와인 리스트가 저장된 와인 라이브러리를 살려, 도루와 포르투갈을 대표하는 와인을 만날 수 있다. 와인 제조업자나 포도주 양조학자들과 함께 포르투갈만의 기술을 나누거나 시음 팁을 공유할 수도 있으니 와인 마니아를 위한 더할 나위 없는 공간이다.
글 손지연 기자 자료 협조 식스 센스(www.sixsenses.com)
21세기에 재탄생한 제주 가옥
눈먼고래
위치 제주시 조천읍 조천7길 19-12
설립 연도 미상
기존 용도 주거 공간
리모델링 시기 2014년
건축과 인테리어디자인 지랩(www.z-lab.co.kr)
제주에서도 비교적 개발이 덜 된 조천읍에는 검은 고래 등처럼 매끈한 지붕을 얹은 집 두 채가 자리한다. 마치 눈이 먼 고래가 길을 잘못 들어 육지에 다다른 것 같다고 해 이름 지은 ‘눈 먼고래’는 지은 지 1백 년은 족히 됐을 것으로 추정하는 옛 가옥을 개조한 독채형 게스트 하우스다. 제주 가옥은 태풍과 거친 바닷바람으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 새(억새)를 엮고 검은 그물을 씌운 이엉지붕과 집 전체를 둘러싼 돌담이 특징인데, 눈먼고래는 이 형태를 최대한 살리되 구조와 재료를 현대식으로 보완했다. 그래서 새와 검은 그물 대신 방수 시트와 알루미늄 징크로 지붕을 만들어 씌우고, 내부의 썩은 서까래와 기둥은 제주에서 자란 삼나무로 대체했다. 또 철거하면서 뜯어낸 대문과 마룻바닥의 나무로 테이블과 침대를 만들었고, 본래 마당에 있던 대나무를 훼손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를 기울이며 공사했다. 돌집의 원형을 최대한 보존하려 노력한 눈먼고래는 아름다운 제주 자연에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글 김민서 기자 사진 김재경 문의 02-732-0102
현재와 과거의 지역적 특색을 녹여내다
호텔 사이클Hotel Cycle
위치 일본 히로시마, 5-11 Nishigosho-cho, Onomichi
설립 연도 1943년
기존 용도 조선업 창고
리모델링 시기 2014년
건축과 인테리어디자인 서포즈 디자인 오피스 Suppose Design Office(www.suppose.jp)
시마나 미카이도는 일본 시코쿠 지역의 에히메 현과 히로시마 현을 잇는 74km의 도로로, 크고 작은 섬 아홉 개가 다리 열 개로 연결되어 있다. 과거에는 각 섬의 시민을 위한 생활 도로였는데, 대만의 자전거 회사인 자이언트 Giant와 협업해 전용 도로를 조성한 뒤부터는 사이클링 명소로 유명해졌다. 호텔 사이클은 오노미치 해변가의 빈 창고를 개조한 호텔로, 사이클링 명소인 지역 특색을 잘 녹여낸 공간이다. 호텔 외부 시설은 모두 자전거가 접근 가능하며, 모든 객실에는 자전거를 걸어둘 수 있는 훅을 설치하는 등 사이클 여행자를 위한 배려가 곳곳에 눈에 띈다. 한편 과거의 흔적 또한 잘 녹아 있다. 이곳을 디자인하고 시공한 일본 건축 사무소 서포즈 디자인 오피스는 “오노미치의 지역적 정체성을 살리고자 해변가의 창고이던 옛 건물을 연상시키도록 디자인했다”며 원래 건물의 껍데기와 벽돌·콘크리트 마감은 그대로 노출시키고, 오노미치 지역의 고가옥에 사용하는 전통 소재인 나무・스틸・모르타르를 사용했다. 이 지역의 조선업 역사를 기록이라도 하듯 호텔 내부의 레스토랑에도 메탈 프레임과 계단을 살려 디자인했다.
글 손지연 기자 사진 도시유키 야노 Toshiyuki Yano 자료 협조 www.onomichi-u2.com
마을 경관을 닮은 증축 건물
안티구오 마타데로Antiguo Matadero
위치 스페인 카디스, C/ Rubiales S/N, Medina Sidonia
설립 연도 19세기 기존 용도 도축장
리모델링 시기 2011년
건축과 인테리어디자인 솔Sol89(www.sol89.sol89.com)
스페인 서남부 카디스의 역사 깊은 마을 메디나시도니아는 빽빽이 들어선 하얀 벽과 세라믹 타일 지붕의 집이 매우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멀리서 보면 붉은 지붕이 마을 지형에 따라 굴곡을 형성하고 있다. 얼핏 여느 집과 다를 것 없어 보이는 이 건물은 19세기에 지은 도축장으로, 현재는 요리 전문 학교로 용도가 바뀌었다. 스페인 건축 스튜디오 솔89는 도축장을 학교로 개조하면서 건물을 증축해 공간을 넓혔다. 가축을 방목하던 야외 뜰을 주방과 강의실로 사용할 실내 공간으로 만들었는데, 경사진 붉은 지붕이 들쑥날쑥한 마을 모습에서 아이디어를 얻어와 좌우가 비대칭인 붉은 박공지붕을 씌웠다. 그래서 새롭게 지어 올린 부분이지만 기존 건물과 잘 어우러질뿐더러 마을 경관을 해치지 않는다. 천장을 받치는 실내 기둥과 천장에 노출된 통나무 골조를 간접 조명등으로 활용하는 등 오래된 도축장이 세련된 공간으로 변모했다.
글 김민서 기자
재사용, 재가공, 재생
오키도키! 아르키텍테르 Okidoki! Arkitekter
위치 스웨덴 고텐부리, Kastellgatan 1
설립 연도 1898년
기존 용도 코르셋 공장
리모델링 시기 2013년
건축과 인테리어디자인 오키도키! 아르키 텍테르(www.okidokiarkitekter.se)
스웨덴 고텐부리의 중심에 자리한 오래된 코르셋 공장은 도시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로 손꼽히는 곳이었
다. 1989년 구스타프 위크만이 디자인한 이 건물은 아름다운 창문과 바닥, 오픈형 구조로 공장에 적합한 구조였지만, 1950년 공장을 폐업한 후 다양한 사무실로 사용하다 지난 2013년 건축 사무소 오키도키 아르키텍테르가 자신의 오피스로 개조했다. 아름다운 건물 외부는 그대로 두고, 색색의 장식 벽에 창문을 내는 등 깔끔하게 마감해 전통과 현대의 조합을 꾀했다. 또 직원들이 계급을 나누지 않고 평등하게 일하는 건축 사무소의 분위기를 공간에 십분 반영했다. 직원들은 길게 이어진 테이블에 앉아 함께 일하며, 쇼룸 한편에 커다란 계단형 벤치를 만들어 쉴 수 있도록 한 것. 한편 모든 사무 가구는 이들이 직접 제작한 것. 재미있는 것은 건물을 재생했듯 가구 역시 낡은 가구를 재가공하거나 재사용했다는 점이다. 건축물과 가구 모두에서 ‘높은 지속 가능성’을 노린 셈이다.
글 손지연 기자 사진 베르트 레안데르손Bert Leandersson
거리의 역사를 담아내다
자그마치
위치 서울시 성동구 성수동 성수이로 88
설립 연도 1960~1970년대
기존 용도 인쇄소
리모델링 시기 2014년
인테리어디자인 디자인 기획회사 식물예원, 쿼츠랩
경제 붐이 일던 1960~1970년대에 성수동은 준공업지구로 지정되면서 다양한 물건을 만드는 일명 ‘장인’의 거리였다. 목공소, 인쇄소, 가죽 공장 등이 들어섰고 이후 수천 개의 부자재 상점이 거리를 메우며 성수동의 상징 아닌 상징이 되었다. 그중 인쇄소로 사용하던 건물을 개조해 성수동 거리와 시대적 상황의 의미를 되새기고자 탄생한 복합 문화 공간 자그마치다. 변화라는 관점에서 빛과 음악, 식물이 어우러지는 ‘늘 변화하는 공간’을 꾀한 것. 카페와 공방, 갤러리로 운영하는데, 방화 셔터에 칠한 페인트와 낡은 벽돌 외관이 빈티지한 느낌을 준다. 내부에는 콘크리트 기둥과 메탈 프레임, 낡은 집기, 지함과 거래처 라벨 등은 그대로 두고 여기에 어울리는 손때 묻은 빈티지 가구와 의자, 말린 꽃 등을 더했다. 인쇄소의 거친 하드웨어에 빈티지한 느낌의 소프트웨어가 만나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역사를 담은 채 새로운 쓰임새로 거듭나 감회가 새롭다. 글 손지연 기자 문의 070-4409-7700
글을 쓴 유현준은 홍익대학교 건축대학 교수 및 (주)유현준건축사사무소 대표 건축사다. 하버드 대학교, MIT, 연세대학교에서 건축 공부를 했으며 졸업 후 세계적 건축가 리처드 마이어 사무소에서 실무를 익혔다. 2013 올해의 건축 Best 7, 2013 김수근건축상 프리뷰상, CNN이 선정한 15 Seoul’s Architectural Wonders, 2010 건축문화공간대상 대통령상, 2009 젊은 건축가상 등을 수상했으며 주요 작품으로는 ‘청운대학교 도서관’ ‘테마동물원 ZooZoo’ ‘고리원자력 발전소 신사옥’ ‘헤이리 촬영박물관’ ‘여수엑스포 L기업관’ ‘함께 일하는 재단 소셜인큐베이트센터’ 등이 있다. 재생 건축이야말로 우리 삶과 가장 가까운 건축이요, 도시와 사회에 긍정적 메시지를 전한다고 믿는다.
디자인 김홍숙
- 주거 문화 특집 오래된 창조, 재생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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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건축물의 주요 아이덴티티를 해치지 않고 원형, 또는 그 일부를 디자인 요소로 살려 새로운 기능과 용도의 공간으로 활용하는 ‘재생 건축’이 요즘 최고 화두입니다. 런던의 테이트 모던, 뉴욕의 하이라인, 독일 에센의 옛 탄광 졸펠라인, 상하이의 워터하우스 호텔 등 전 세계가 이렇게 낡은 건물에 숨결을 불어넣는 것은 그 안에 담긴 시간의 가치를 존중하기 때문이겠지요. 재생 건축이 품은 고유한 스토리는 신축 건물은 빚어낼 수 없는 멋진 디자인 언어가 되는가 하면, 이를 도시 문화로 확장하면 한 도시의 집합적 기억과 문화가 농축된 결과물이 됩니다. <행복>은 창간 28주년 특집으로 국내뿐 아니라 국외에서 최고 화제를 모은 재생 건축을 소개합니다. 저마다의 스토리와 시간이 담긴 공간들이 잔잔한 감동을 선사할 것입니다.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5년 9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