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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닝 인터뷰]음식평론가 추아란 씨 한식 세계화 하지 마십시오
그간 한식 세계화는 전통 음식 자체보다는 외국인의 입맛에 따른 한식의 현지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던 게 사실. 이에 중화권에서 ‘식신 食神’이라 불리는 추아란 씨는 “한식의 세계화는 필요 없다”고 일침을 가한다. 가장 한국적인 게 세계적인 것이라는 한식 애호가 추아란 씨의 따끔한 충언.

홍콩의 유명 음식 평론가 추아란 씨가 지난 6월 20일 한국을 찾았다. 4박 5일 동안 한국의 유명 한식당에서 다양한 한식 체험을 했는데, 임지호 셰프의 ‘자연요리연구소 산당’을 필두로 약선한정식으로 유명한 ‘한가람’, 간장게장으로 이름난 ‘큰기와집, 인사동의 맛집인 ‘황후삼계탕’, 궁중한정식집인 ‘한미리’, 전통 불고기와 평양 냉면을 잘하기로 소문난 ‘우래옥’ 등이 바로 그곳. ‘식신’으로 불리며 중국의 미식가 군단을 몰고 다닌다는 그의 이번 방한은 문화체육관광부 초청으로 이뤄졌다. 음식을 통해 한국을 알리는 데 그가 조언자 역할로 나선 것. 그렇다 보니 이번 일정 동안 그가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바로 “한식을 어떻게 세계화해야 할 것인가”였다. 이에 대한 그의 대답은 한결같았는데, 기준을 외국인의 입맛과 취향에 둘 것이 아니라 한식의 오랜 전통과 맛과 향을 찾아 한국에서만 느낄 수 있도록 고유한 맛을 지키라는 것.

“음식은 그 나라가 견뎌낸 세월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문화 유산입니다. 고유의 음식을 바꾸는 것은 문화를 포기하는 일입니다. 손맛을 지닌 어머니를 바꾸는 것과 다를 바가 없지요. 한식이 어디서든 맛볼 수 있는 ‘맥도날드’가 되기를 원하시나요? 외국인들이 한국 고유의 음식을 좋아하게 만드는 게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음식을 즐긴다는 것은 그 나라의 문화를 즐긴다는 뜻. 50년 전부터 수십여 차례 한국을 찾았을 정도로 한식 애호가인 그는 불고기와 김치가 한식의 전부인 줄 아는 여느 외국인과는 차원이 다르다. 구석구석 지방의 숨은 맛집까지 찾아다닐 정도로 한식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고, 삭힌 홍어를 좋아하고 홍어삼합을 제대로 먹을 줄 아는 보기 드문 미식가다. 특히 삼계탕과 너비아니 등 한국만의 독특한 문화를 담은 음식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큰기와집’에서 짭조름한 간장이 담긴 게딱지에 밥을 슥슥 비벼 먹던 추아란 씨는 간장게장, 양념게장을 중국인의 입맛에도 잘 맞는 메뉴로 추천한다.

(왼쪽) 김치와 돼지고기, 해산물이 조화를 이룬 삼합은 중국인들이 매우 신기하다고 여길 만한 음식이라고.
(오른쪽) 갈비찜은 육질이 부드럽고 소스가 달콤해 그가 가장 좋아하는 한식 중 하나다.

(왼쪽) 약선 요리 전문점 ‘한가람’의 홍삼죽을 먹고는 먹는 이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한식만의 매력이라고 감탄했다.
(오른쪽) 트위터 팔로어가 2백25만 명에 이를 정도로 영향력이 큰 중국권의 ‘식신’으로, 그는 맛있거나 독특한 음식을 만나면 스마트폰으로 기록을 남겼다.


“작년에도 전남의 음식을 맛보러 한국을 방문했지요. 굴비며 민물장어를 먹고, 바다와 강에서 나는 것을 먹었으니 이번에는 산에서 나는 것을 먹기 위해 죽통밥 하는 곳에 갔습니다. 현미, 대추, 밤 등을 큰 대나무통에 넣고 찌 는 것이지만 죽통밥 하나만 먹으려니 서운한 생각이 들어 쇠갈비 한 접시를 주문했는데, 예전에 먹었던 것과 모양이 달랐습니다. 요리 이름이 ‘효심늑골 孝心肋骨’이라더군요. 갈빗살을 발라낸 다음 잔 칼질을 해 치아가 약한 노인이 먹기에 좋도록 부드럽게 한 것이지요. 음식 하나에도 ‘효심’을 생각하는 마음에 감동받았습니다.”

하지만 정작 외국인들은 한국인의 세심한 마음이 담긴 음식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단다. 일례로 음식 평론가로 활발하게 활동하기 전에 영화제작자로 일한 그는 홍콩의 영화배우인 성룡과도 친분이 깊어 가끔 식사를 함께하는데, 한국 요리를 가장 좋아한다고 자처하는 성룡마저도 불고기가 최고의 한국 음식인 줄 알고 제대로 먹을 줄도 몰라 안타까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이웃에 있는 중국인들도 한국 음식을 접할 공간이나 기회가 많지 않아요. 외국인들이 제 나라에서도 한식의 제맛을 맛볼 수 있도록 한국음식센터 같은 곳이 생기면 더없이 좋을 듯합니다. 제 나라에서 한식을 맛있게 먹었다면 한국 본토에서 그 맛을 보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니까요. 그것이 제가 생각하는 한식의 세계화입니다.”

(왼쪽) 맛있는 음식에 감사의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
(오른쪽) 푸드앤컬처코리아 김수진 원장과 함께 동행 취재한 중국 방송국과 취재진에게 포즈를 취하고 있다.


결국 한국 고유의 맛을 변화하기보다 한식을 맛볼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관건이다. 외국 실정에 맞게 식재료와 맛을 바꾼 한식은 근본이 애매한 퓨전식으로 콘퓨전 confusion, 즉 맛에도 혼란을 가져올 뿐이란다.
“맛있는 음식은 통하는 법입니다. 좋은 재료를 쓰고, 정성 들여 음식을 만들면 누가 먹어도 맛있는 요리가 나옵니다. 풍성한 상차림 으로 다양한 음식을 골고루 먹을 수 있고, 특히 지역마다 특색 있는 먹을거리가 있는 것이 한식의 매력이니, 한국의 전통을 자랑스럽게 보여주세요. 선택은 한식을 찾는 이들의 몫입니다.”


촬영 협조 및 자료 제공 푸드앤컬처코리아(www.fnckorea.com), 한국관광공사

글 신민주 기자 사진 김용일, 김동오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1년 8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