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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 기울여 들어보니]웰컴투 붕어빵월드 웰컴투 붕어빵월드
요즘 ‘예능의 대세’는 <붕어빵>이라는 거 아십니까? 7세 미만 아동부터 30대 커리어 우먼까지 토요일 오후만 되면 TV 앞에 모여 앉아 스타 주니어의 ‘인생살이’에 귀를 기울입니다. 아이들이 주는 깨알 같은 웃음에는 재미와 감동, 유머와 해학, 사랑과 가족애 등 인생의 모든 진리가 담겨 있습니다. 이 마법 같은 쇼를 만들어내는 주인공, 방송작가 곽상원 씨는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면 세상이 아름다워진다고 말합니다.


예의 바르고 똑똑한 민진, 민서, 민하 자매와 천재 지웅이, 그리고 <붕어빵>의 대통령 동현이. 아이들과 떠는 수다는 그 자체로 대본이 된다.


토요일 오후 5시. 자장면을 먹을까 짬뽕을 먹을까, <붕어빵>을 볼까 <우리 결혼했어요>를 볼까, 갈등한다. 언제나 결론은 ‘짬뽕’과 <붕어빵>이다. 유치해도 어쩔 수 없다. 나는 바나나킥만큼 <붕어빵>이 좋다. 부모님은 그러신다. “네가 애냐!” 그럼 난 속으로 그런다. ‘저도 제가 애였으면 좋겠네요. 아무 눈치도 안 보고, 있는 대로 속 썩이고,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애였으면 좋겠네요.’ 나이 서른넷을 먹고도 가당찮게 애이고싶은 나는, 애일 수 없어서 <붕어빵>을 본다. 무공해 방울토마토처럼 탱글탱글한 아이들을 보면 깨물어주고 싶고, 녀석들이 조 몰락거리며 노는 모습을 보면 눈치 없이 끼어들고 싶으며, 꼭 저런 딸 하나 낳았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순수한 동심의 세계가 일과 스트레스에 찌든 어른에게 산소 마스크가 되어주는 것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붕어빵> 주요 시청자는 7세 미만의 어린이와 40~50대 주부였다. 그런데 올해 들어 눈에 띄게 30대 여성 시청자가 늘었다. 현재 <붕어빵>의 메인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곽상원 씨는 요즘 담당 프로그램의 인기를 실감한다. 예전에는 어머님 친구분들이 “프로그램 잘 본다”며 안부 인사를 건네셨지만, 요즘은 카페나 공공 장소에서 젊은 여성이 <붕어빵>에 관해 이야기하는 장면을 심심찮게 본다. 사실, 작년 봄부터 <붕어빵>은 정체기에 놓여 있었다. 일종의 슬럼프가 온 거다. 어린이 프로그램이라고는 하지만 예능이다 보니 부모 자식 간에 사생활을 폭로하거나 험담하는 등 시청자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상황이 종종 연출됐다. 물론 까다로운 시청자는 이를 참아주지 않았다.

곽상원 작가가 <붕어빵>에 투입된 건 그즈음이었다. 서울예대 방송연예과 출신인 그는 1998년부터 방송 작가로 활동하면서 대한민국 예능 역사를 다시 ‘쓴’ 인물이다. ‘SBS <좋은 친구들>’ ‘MBC <전파견문록>’ ‘SBS <기쁜 우리 토요일>’ ‘KBS <슈퍼TV 일요일은 즐거워>’ ‘SBS <콜럼버스 대발견>’ ‘KBS <스펀지>’ ‘SBS <특명 아빠의 도전>’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 ‘KBS <천하무적 토요일>’ ‘SBS <붕어빵>’ ‘KBS <명 받았습니다>’ 등 지금 들어도 퍼뜩 생각이 날 정도로 재미있고 유익했던 예능 프로그램은 모두 그의 손을 거쳐 탄생했다. 정체에 빠진 <붕어빵>의 구원투수로 그가 뽑힌 데에는 또 다른 이유도 있다.

그의 화려한 이력 사이엔 어린이 프로그램을 맡았던 경험도 꽤 있다. 강호동 씨와 송은이 씨가 진행했던 KBS <슈퍼TV 일요일은 즐거워>의 ‘병아리 퀴즈왕’, ‘바람둥이’ 삼촌 이휘재 씨와 국민 꼬마 왕석현 군이 함께했던 <천하무적 토요일>의 ‘삼촌이 생겼어요’, MBC 스포츠 플러스 채널 <날려라 홈런왕>. 곽상원 작가는 아이 딸린 유부남은 아니지 만 철저한 현장 경험으로 아이들을 잘 이끌 수 있는 전문가였다. “프로그램을 분석해보니 아이들의 토크 분량이 꽤 많더라고요. 어린이 프로그램은 아이들 입에서 나온 말이 그대로 대본이 되거든요. 작가들이 아무리 써줘 봤자 말이 자연스럽게 안 나와요. 기존에는 아이들이 에피소드를 이끌어내야 하니 부담이 컸죠. 저는 아이들의 토크 분량을 줄이는 대신 부모와 같이 할 수 있는 게임 코너를 늘렸어요.” 연기자 정은표 씨의 딸 하은이가 진행하는 ‘속담 퀴즈’, 부모와 아이들이 몸동작으로 단어를 설명하는 ‘몸으로 말해요’가 그 대표적 코너다.

<붕어빵> 작가는 빨간펜 선생님!
<붕어빵>에 소속된 작가는 곽상원 씨를 포함해 총 7명이다. 작가들은 각각 한 명씩 아이들을 전담하고 있는데, 여기서 ‘전담’이란 ‘빨간펜 선생님’처럼 일주일에 한두 차례 아이들의 집으로 찾아가 숙제를 도와주고 밥도 같이 먹으면서 시간을 보내는 걸 의미한다. 때로는 선생님처럼, 때로는 친구처럼 아이들과 지내다 보면 머리 싸매고 앉아 대본을 쓸 때보다 훨씬 생생한 이야기를 끄집어낼 수 있다.

동현이(방송인 김구라 씨의 아들) 성적이 지난달에 비해 몇 등이나 올랐는지, 재민이(아나운서 왕종근 씨의 아들)가 왜 스트레스성 고혈압에 시달리는지, 민진이(아나운서 박찬민 씨의 첫째 딸)네 저녁 식사 예절이 얼마나 엄격한지, 가윤이(연기자 이세창 씨의 딸)가 얼마나 ‘공주과’인지, 지웅이(연기자 정은표 씨의 아들)가 즐겨 읽는 과학 도서 목록은 무엇인지, 아이들과 같이 지내다 보면 사생활을 ‘빠삭’하게 꿰뚫을 수 있다(이제는 아이들도 신변에 무슨 일이 생기면 제일 먼저 작가 누나, 작가 형한테 문자 메시지를 보낸다). 얼굴도 시커멓고 곰살맞은 성격도 아니어서 아이들에게 인기가 없다는 곽상원 작가는 촬영장에선 동네 아저씨 취급을 당한다. ‘예쁜’ 언니들만 좋아하는 하은이는 특히 곽 작가와 상극인데, 언젠가 한 번은 친한 척을 했다가 머쓱해진 적도 있다.

부모도 작가도 통제 불능일 때가 많은 은율이(개그맨 염경환 씨의 아들)가 녹화 도중 엉엉 우는 바람에 촬영이 중단된 적이 있었는데, 곽 작가가 하은이한테 “은율이는 왜 울까?”라고 물었더니 “아저씨, 저한테 자꾸 질문하지 마세요”라고 딱 잘라 말한 것이다. 판단력이 빠르고 관찰력이 뛰어난 하은이는 녹화장에서 일명 ‘정작가’로 불린다. 곽 작가 또한 하은이의 솔직 담백한 조언에 도움을 얻은 적이 많아 난감한 일이 생길 때면 하은이에게 은근슬쩍 도움을 요청하곤 했다. 아이가 그걸 참지 못하고 직언을 한 것이다.

“하은이는 굉장히 똑똑하고 표현력과 분석력이 뛰어나요. 하은이가 속담 퀴즈를 내잖아요. 어느 날 장난기 많은 우주(개그우먼 조혜련 씨의 아들)가 연습하는 하은이를 자꾸 엿보기에 제가 막아줬거든요. 그랬더니 하은이가 그러더라고요.” “아저씨, 우주 오빠가 왜 자꾸 저를 훔쳐보는지 아세요?” “글쎄, 우주가 속담을 잘 모르니까 훔쳐보고 맞추려는 것 아닐까?” “그랬더니 아니래요. 우주 오빠가 속담을 맞추면 조혜련 아줌마가 좋아하니까 엄마한테 기쁨을 주려고 자꾸 보는 거래요. 제가 왜 하은이한테 자꾸 질문하는지 아시겠죠? 아이들이 아무 생각 없이 뛰노는 것 같지만 다 보고, 다 듣고, 다 생각하고 있더라고요.”

‘붕어빵 식구들’
방송 작가로서 가장 힘든 순간은 출연자들끼리 삐걱거리거나 화합이 잘 안 될 때다. 사람이 하는 일이라서 아무리 포장을 해도 현장 분위기는 그대로 방송에 드러난다. 그 점에서 곽상원 작가는 요즘 근심 걱정이 없다. “김구라 씨가 굉장히 솔직하시잖아요. 가끔 저한테 귓속말로 그러세요. 요즘 가족들끼리 친해져서 아주 죽겠다고. 스케줄도 바쁜데 주말만 되면 다같이 어디 놀러 가자고 난리라고요.” 일주일에 한 번, 여섯 시간씩 녹화를 같이 하다 보니 <붕어빵> 출연자들은 웬만한 친척보다 가까운 것이 사실이다.

(왼쪽) 촬영장에서 제일 분주한 건 작가다. 프로그램 전체 흐름을 파악하고, 출연자를 보듬고, 아이들이 예쁘게 잘 보이도록 코치하고. 따라서 모든 이가 제일 의지하는 사람도 역시 작가다.

외롭게 혼자 자란 동현이, 재민이, 규원이(연기자 유혜정 씨의 딸)는 부모님 추진 하에 의남매를 맺었고, 술 좋아하는 김구라 씨의 아내 이신정 씨와 염경환 씨의 아내 서현정 씨는 ‘의자매’처럼 지낸다. <붕어빵> 출연자 대기실에 가보면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엄마들은 엄마들대로 삼삼 오오 모여 수다를 떨기에 바쁘다. “언니, 이 옷 어디서 샀어? 아주 예쁘다.” “동현이 이번에 처음으로 등수 앞에 1자 붙었다며? 축하해!” “가윤아, 화장실 가고 싶으면 민진이 언니 손잡고 다녀와. 엄마는 아줌마들이랑 얘기 좀 하게.” 방송 녹화장이라기보다 학부모들 모임 같다. 고정 출연자 가족은 물론, 처음 출연하는 가족들까지, 마치 한 식구처럼 화합이 잘되는 이유는 부모 아이 할 것 없이 얽히고설켜 함께하는 코너가 많이 생긴 덕분이다. 아이들의 토크가 주류를 이루던 때는 피곤에 찌든 ‘연예인 엄마 아빠’가 반대편 의자에 앉아 시큰둥한 얼굴을 하거나 의무적으로 애드리브를 ‘쳤다’. 하지만 요즘은 “내 부모가 달라졌어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어른들의 참여도가 높아졌다.

“부모와 아이가 하나 되어 몸동작으로 단어를 맞추는 ‘몸으로 말해요’ 코너를 신설하면서 촬영장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어요. 말을 하면 안 되니까 서로 등을 두드려서 부르고, 몸으로 단어를 표현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스킨십도 하게 되고, 감정의 교류도 생기게 되거든요. 특히 김구라 씨가 발군의 연기력을 선보이면서 이 코너를 ‘살리고’ 있어요.” 피붙이보다 더 가까운 이웃이 있다는 건 살면서 큰 축복이다. <붕어빵> 식구들 사이에선 이제 남의 집 일이 내 집 일이 되는 경우가 많다. 평소 엄마랑 안 친하기로 유명한 우주가 얼마 전 방송 녹화장에서 기특한 발언을 했는데, 촬영장에 있던 부모들 모두 마치 내 일처럼 공감했다. 엄마보다 경비 아저씨가 더 소중하다고 공공연하게 ‘애정 순위’를 밝혔던 우주는 ‘부모님이 나에 대해 착각하고 있는 것’이라는 주제로 말할 때 이렇게 이야기했다. “사실 그동안 엄마를 싫어한다고 말했던 건 거짓말이에요. 엄마가 공부 잘하는 누나만 예뻐하는 것 같아 일부러 ‘나쁜 남자’ 콘셉트로 나갔거든요. 그러면 엄마가 저한테 관심을 가져줄지 몰라서요. 엄마, 저 사실은 엄마를 매우 좋아하고 사랑해요. 저한테는 엄마가 1등이에요.” 우주의 말을 듣고 조혜련 씨는 물론 동료들도 한마음으로 기뻐해주었다.

(아래) <붕어빵> MC 3인방 중 ‘아내’ 역할을 맡는 건 김국진 씨다. 그는 아이와 부모 그리고 나머지 두 명의 MC가 모두 보이는 위치에 서서 이들을 보듬고 감싸 안는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면
세상이 아름다워진다
수년간 어린이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곽상원 씨는 아이들과 호흡하는 몇 가지 노하우, 아니 깨달음을 얻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듯하지만 한참 성장기에 놓여 있는 아이들은 감수성이 예민하고, 비도덕적 일에 민감하다. 어리다고 사랑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사랑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 어른보다 순도 높게 보여준다. 세파에 찌들고 이해관계에 얽혀 사리 분별력이 약해진 어른들보다 정의롭고 실천력이 높은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곽상원 작가는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서 부모가 지켜야 할 다섯 가지 소양을 <행복>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다고 했다.

“첫째는 아이의 수준에 맞춰 교육하고 놀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장안의 화제가 된 <붕어빵> 스피드 퀴즈는 ‘고도의 전략’을 세우고 문제를 내는 거예요. 또래보다 눈에 띄게 똑똑하고 과학을 좋아하는 지웅이에게 문제를 내기 위해 작가들은 지웅이 책장에 꽂혀 있는 책을 같이 읽습니다. ‘멘델의 법칙’을 아는 아이에겐 멘델의 법칙에 대해 토론하며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눠줄 누군가가 필요하거든요.

둘째는 약속을 어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옳고 그름에 대한 가정교육을 받다 보니 비도덕적 일을 그냥 지나치지 못합니다. 부모 자식 간에도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이경규 씨가 용돈을 주겠다고 약속했다가 어기면 아이들은 정색을 해요. 스피드 퀴즈에서 1등이 몇 명 나오든 모두에게 상품권을 주겠다고 했다가 가위 바위 보를 해서 한 명에게만 준다고 하면 항의가 빗발치고요. 그때마다 아이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약속은 지키라고 있는 거라고요!”

셋째는 아이들의 사랑도 존중해주라는 것입니다. 이미 방송에서도 봤듯이 <붕어빵> 아 이들 사이에는 ‘러브 라인’이 존재합니다. 동현이는 모든 꼬마 숙녀들의 대통령이고, 지웅이의 ‘민서 사랑’에는 조건이 없지요. 아이들이 뿔나면 누구 말도 안 듣지만 좋아하는 사람 말은 들어요. 고집 세고, 한 번 울음을 터뜨리면 녹화장을 전쟁터로 만드는 하은이는 동현이의 한마디면 잠잠해지죠. 아이들에게 사랑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를 보여주죠.

넷째는 아이들 앞에서 말조심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주위가 산만하고 까불대는 은율이는 실제로 속이 아주 깊어요. 아이가 아무것도 모르는 줄 알고 그 앞에서 부부 싸움을 자주 했던 염경환 씨 부부는 어느 날 은율이가 한 말에 깊이 반성했다고 합니다. “엄마 아빠, 그러다 사랑이 깨지면 어떻게?”

마지막으로 아이들 앞에서 그 부모를 험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직 어려운 단어를 잘 모르는 아이들이지만, 말의 억양이나 분위기만으로도 제 부모를 공격하는 것인지, 흉보는 것인지 다 알거든요. 언젠가 이경규 씨가 이세창 씨에게 ‘한량’이라고 놀리니까 가윤이가 녹화 중간에 울음을 터뜨렸어요. 개그맨 후배라고 이경규 씨가 이정용 씨에게 말을 좀 편하게 했더니 믿음이와 마음이(이정용 씨 첫째 아들과 둘째 아들) 얼굴에 화가 가득 고이더라고요. 어른들이 아무 생각 없이 하는 행동에 아이들은 상처를 받습니다. 중요한 건, 아이들의 생각에 틀린 점이 없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면 세상이 아름다워집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듯하지만 한참 성장기에 놓여 있는 아이들은 감수성이 예민하고, 비도덕적 일에 민감하다. 어리다고 사랑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사랑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 어른보다 순도 높게 보여준다. 세파에 찌들고 이해관계에 얽혀 사리 분별력이 약해진 어른보다 정의롭고 순수한 아이들. 부모가 그 눈높이에 맞춰 아이들을 대하면 세상은 분명 아름다워질 것이다.”

글 정세영 기자 사진 박우진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1년 8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