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섶에 붙은 도둑가시풀을 떼어내며 그리워 눈물지었다. 아버지 산소에서 당신 그리워하다 내려오는데 그의 옷섶에 도둑가시풀이 따라왔다. 그게 왠지 아버지의 손길 같아, 아버지와 자신의 연결고리 같아 목울대가 울컥거렸다. 그때부터 그는 옷과 죽음을 생각했다. 옷 한 벌 없이 세상에 왔다 겨우 옷 한 벌 입고 가는 게 생 아니던가. 누군가 벗어버린 옷, 사람의 몸을 떠나면 죽은 존재가 되는 옷에 생명을 주고 싶었다. 그래서 그린 그림이 ‘아버지와 나’다. 시간의 주름이 만져지는 회색 양복 재킷 하나, 그 옆에 크게 확대된 도둑가시풀 하나를 그렸다. 어느 날엔가는 벗어놓은 옷에서 새 모양을 보았고, 또 어느 날엔 아내가 개켜놓은 빨래를 잘못 건드리자 집 모양이 되는 걸 보았다. “난 아직 살아 있어”라고 옷이 제 존재를 발설하는 것만 같았다. 그때부터 그는 옷을 만지작거리고 접고 포개보기 시작했다. 그러자 권총도, 강아지도, 아이스크림도, 화분도 만들어졌다. “전 옷을 가지고 조물조물 즐거운 유희를 즐겼을 뿐인데, 무언가 스멀스멀 기어나와 말을 걸더라고요. ‘내가 숨기고 있는 게 있거든. 한번 맞혀봐!” 이러는 것 같았어요.”
그는 옷이 감춰둔 이야기를 찾아나가듯 옷을 접고 그 형태를 그림으로 그렸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FC바르셀로나의 유니폼을 개 모양으로 만들어 마주보게 하고는 ‘라이벌’ 연작이라 이름 붙였다. 군복이나 교련복으로는 권총 모양을 만들었는데, 설명하지 않아도 그 유니폼이 가진 권력과 폭력이 연상된다. 화려한 꽃무늬 옷으로 개나 사자, 돼지나 양의 대가리를 만들어내는데, 사람들이 옷 속에 숨긴 ‘짐승 같은 욕망’이 그대로 드러난다. 슈퍼맨, 스파이더맨의 옷으로 별을 접고는 ‘꿈이 현실을 산다’라고 눙치기도 한다.
그리고 8월호 <행복> 표지 작품인 ‘빠삐용’. “이상하게도 저는 <빠삐용>이라는 영화를 잊을 수 없어요. 더스틴 호프먼이 줄무늬 옷을 입은 죄수로 나오잖아요. 원래 줄무늬 옷의 시작점이 중세인데, 줄무늬가 시선을 흩뜨리고 악마를 상징한다고 여겼대요. 교황이 나서서 성직자들의 줄무늬 옷 착용을 금지하기도 했으니까요. 창녀, 어릿 광대, 곡예사, 망나니처럼 사회적으로 배척받는 사람에게 줄무늬 옷을 입히기도 했대요. 현대에 와서는 죄수복, 정신병원 환자복으로 쓰이기도, 정반대로 잠옷, 아이들의 깜찍한 세일러복으로 활용되기도 하잖아요. 양극단의 상징인 거죠. 그 줄무늬 옷으로 나비 형태를 만들고 그려봤어요. 빠삐용 Papillon이 프랑스어로는 ‘나비’라는 뜻이기도 하잖아요.” 우리 모두는 삶에 포박당한 종신수이니, 언젠가 나비처럼 자유를 찾아 날아보려는 바람을 그림에 담은 걸까. 과한 비유임에 틀림없지만, 그렇게 믿고 싶은 건 왜일까.
나는 하루 종일 점을 찍는다,
진실을 찍는다
그는 1주일에 한 번씩 벼룩시장에 가서, 세상을 떠돌다 돌아온 헌 옷을 ‘만난다’. 누군가의 살내, 땀내, 기억, 감정이 묻은 헌 옷에는 새 옷의 오만과 편견이 없어서 좋다. 황학동 벼룩시장에서, 벽제 중고 옷 창고에서, 대전 중앙시장에서 그는 헌 옷을 데려온다. “이 옷은 어떤 사람이 입었을까? 상상해보죠. 보통 반대더라고요. 호피 무늬를 좋아하는 사람은 여린 이가 많고, 심플한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은 내면이 강한 경우가 많아요. 스스로 상처를 입지 않기 위해 방어하는 심리인 거죠. 저도 호피 무늬 옷으로는 식물같이 약한 존재를, 꽃무늬 옷으로는 표범 같은 육식 동물을 그려요.” 헐렁한 옷 속에 감춰둔 내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세상에 내 마음의 오목과 볼록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옷 안에 날 감춰두는 건 아닐까.
(오른쪽) ‘가슴에 별을 달다 -france’, 캔버스에 아크릴 채색, 200X100cm, 2009
그는 벼룩시장에서 가져온 옷을 원하는 모양으로 접고, 사진으로 찍고, 포토샵으로 강약을 주고, 프린트한 다음 그걸 보고 그림을 그린다. 한데 붓이 아니라 주사기로 그린다. 아크릴 물감을 5cc 주 사기에 넣고 캔버스에 ‘주사를 놓듯’ 점을 찍는다.
“화장기 없는, 진솔하고 담백한 그림을 그리고 싶었어요. 군더더기 하나 없는 최소한의 몸뚱이가 ‘점’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런데 일정한 크기의 점을 붓 대신 주사기로 찍어보니 훨씬 담백한 그림이 나왔어요. “종일 캔버스에 주사를 놓다 보면 어쩔 땐 내가 뭐하고 있나 싶기도 하죠.” 그는 이렇게 멋진 작가 노트를 썼다. ‘나는 하루 종일 점을 찍는다. 나는 예술 활동을 한다기보다는 노동의 가치를 배우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진실을 배우고 있는 중이다.” 그가 ‘점 찍은’ 그림은 보는 거리에 따라 구상이 되기도(멀리서 보면), 추상이 되기도(캔버스 위에 오돌토돌하게 융기한 점을 가까이 들여다보면) 한다. 특히 점 하나하나를 보고 있으면 좀 전까지 본 권총, 강아지 따위는 간데없고 고요의 기운으로 가득 찬 우주를 보는 듯하다.
그는 지금 국내 무대에서 가장 주목받는 화가 중 한 사람이고, 아시아권에서 주가를 높이며 세계 미술 시장을 넘보는 작가다. 여러분이 지금 꼭 알아두어야 할 작가라는 말이다. 그의 그림을 보고 눈 밝은 시인 이원 씨는 이런 글을 썼다(촉망받는 젊은 글쟁이 다섯이 화단의 블루칩인 그림쟁이 다섯의 그림을 읽은 책 <그림에도 불구하고>에 담겨 있다). “윤종석의 옷은 말한다. 침묵으로 말한다. 소리 없이 말한다. 소리 없는 말로 말한다. 그러므로 옷은 입이다. 소리로 말하지 않고 입으로 말한다.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입 모양으로 말한다.” 지금까지 윤종석 작가의 옷이 ‘말하는’ 바를 들어봤으니, 당신의 몸이 빠져나온 그 옷의 말을 오늘밤 들어보는건 어떨지. “당신은 지금 스키니 진으로 당신의 어쭙잖음을 꽁꽁 감춰놓고 있다!”라고 옷이 말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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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윤종석 씨는 1970년 충남 서천에서 태어났다. 한남대학교 미술교육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숨겨진 이면 속에 드리워진 그물> <삶을 담은 드로잉> <꽃ㆍ일상> <순수한 모순> <몽환적 시간의 발화> 등의 개인전을 가졌다. 2009년 런던 사치갤러리에서 열린 <코리안 아이> 등을 비롯한 국제전과 다수의 기획전에 참여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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