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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 황중환 씨 가족의 20박 21일 프랑스 여행_얘들아, 프랑스자동차 여행떠나볼까? 얘들아, 프랑스 자동차 여행 떠나볼까?
10년간 동아일보에 연재한 만화 ‘386c’의 작가이자 10만 독자의 마음을 울린 <당신이 희망입니다>의 만화가 황중환 씨. 두 아이를 위해 그림과 이야기를 만드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는 그는 프랑스를 시계방향으로 일주하는 가족 여행을 다녀왔다. 사진과 만화로 유쾌하게 써내려간 ‘낭만 카투니스트 가족’의 프랑스 여행기.


작가이면서 동아일보의 만화 기자인 나는 연재 만화의 2천 회를 맞아 특별한 계획을 세웠다. 만화에서 우스꽝스러운 소재와 주인공이 되어준 가족을 데리고 20박 21일의 프랑스 일주 여행을 계획한 것이다. 여행 떠난다는 말에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놀아야 한다고 유럽에 가기 싫다는 일곱 살 막내를 제외하고 아내와 큰아들 헌이는 무척 기뻐했다.

새로운 시도는 늘 피곤한 법이다. 같은 값이면 남들처럼 편하게 패키지여행을 떠나도 ‘울 아빠 최고’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생에 정답이 없듯 여행에도 정답이 없다. 자신이 가고 싶은 길에서 만나는 풍경과 사람들이야말로 여행의 참맛 아닌가. ‘우리가족만이’ 함께하는 추억을 만드는 일은 따로 있는 것 아닌가. 자유 여행은 준비 기간도 여행의 일부라 생각해야 한다. 우선 구체적인 동선을 짜고 항공편과 숙소, 이동 수단을 예약해야 한다. 일정을 짜는 동안 한국에 사는 프랑스인, 프랑스 특파원을 지낸 선배, 프랑스에 사는 친구의 조언도 큰 도움이 되었다. 호텔은 인터넷으로 예약했고, 프랑스어에 능통한 친지의 도움을 받아 가장 오래 머물 예정인 프로방스의 전원주택도 예약했다. 비용을 줄이기 위해 저렴한 항공편을 예약했고, 한 달 전에 미리 자동차를 렌트했다. 숙소는 아침 식사가 제공되는 도심의 중급 호텔로 예약했다. 프랑스에는 노보텔, 이비스, 키리아드 등 저렴하고 믿을 만한 중급 호텔이 많다.

여행 일정 총 20박 21일
항공사 왕복 요금 성인 93만 원, 어린이 71만 5천 원(세금 포함 총액 3백95만 원)
푸조 407 렌털 비용 약 3백 25만 원(17일 이용, 보험 포함)
호텔 하루 10만~20만 원
식비 하루 5만~10만 원.

일회용 밥과 컵라면 등 먹을거리를 포함해 네 식구의 커다란 짐과 함께 출발!
파리에서의 첫날은 지하철을 이용해 몽마르트르, 노트르담 등 이곳 저곳을 둘러보았다. 이틀 뒤 예약한 자동차를 찾아 파리를 벗어나 프랑스 고속도로로 접어들었다. 긴장한 탓인지 처음엔 익숙지 않았지만 이내 편안하게 적응할 수 있었다. 운전이야 날마다 하는 일 아닌가. 화가들의 마을 바르비종을 지나 디종으로 가던중 쏟아지는 폭우 뒤에 커다란 쌍무지개를 발견하고는 차를 몰아 무지개 끝까지 따라가보기도 했다.

나는 외국에서도 길을 잘 찾는 편이어서 일부러 내비게이션을 달지 않았다. 아이들과 함께 지도를 펼쳐보고, 길을 모르면 현지인에게 묻기도 하고, 말 그대로 사람과 사람이 부딪치는 아날로그 여행을 경험하고 싶었다. 대신 어디에서든지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스케치북과 노트북을 지참했다. 서울에서 준비해간 유키 구라모토와 CCR의 음악이 이 여행의 배경음악이 되어주었다. 한 번은 캄캄한 알프스 산속에서 숙소를 찾지 못해 애를 먹은 적도 있었지만, 술술 해결되는 여행보다 어려웠던 기억이 더 큰 추억으로 남는 법이다.

산세가 험한 세르동을 지나 스위스를 닮은 안시를 가는 길에는 고속도로가 아닌 국도를 택했다. 빠르게 달리는 고속도로에서는 경치를 제대로 감상할 수 없어서다. 간혹 만나는 샛노란 해바라기 밭이나 멋진 들판의 풍광도 그저 휙휙 지나가는 잔상으로밖에 남지 않는다. 예정된 시간보다 훨씬 오래 걸리긴 해도 느릿하게 가는 국도변 풍경은 고속도로에서 보는 것과는 확실히 차이가 있다. 속도를 포기했더니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할 여유가 생긴 것이다. 아마 우리 인생도 그렇지 않을까. 남보다 빨리 목적지에 도착하겠다는 속도에 대한 강박증 때문에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놓치는 것은 아닌지.

이따금 멋진 풍경 앞에서는 서울에서 준비해간 즉석 밥과 밑반찬, 과일을 꺼내 식사를 간단히 해결했다. 멋진 풍경 앞에서의 피크닉. 공기가 꽤 맑다. 안시에 도착하니 지나가던 프랑스 아가씨들이 우리를 보며 기분 좋은 목소리로 소리친다. “웰컴 투 프랑스!” 밝은 목소리로 인사하는 그들을 보니 우리 가족 마음도 환해진다. 아름다운 수로와 친절한 사람들 그리고 구수한 론알프의 음식까지 안시의 따뜻한 야경처럼 기분 좋은 저녁을 보냈다.

이번 여행에서 두 가지 하이라이트를 꼽으라면 첫 번째가 프로방스에서 보낸 일주일이다. 올리브밭 한가운데 있는 숙소는 멀리 엑상 프로방스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있었다. 우리는 숙소 아래층에 묵었다. 위층엔 집주인 크리스티앙 씨 가족이 살고 있었는데, 이들과 친해져서 저녁 식사 초대를 받는 등 융숭한 대접을 받기도 했다.

야외 식탁에 촛불을 켜놓고 프로방스 하늘을 관찰하면 수없이 많은 별이 반짝이곤 했다. 알퐁스 도데가 쓴 소설 속에 나오는 알필 산맥을 포함해 프로방스 이곳저곳을 느긋하게 다니고, 연극 축제가 열리는 아비뇽도 다녀오고, 칸과 니스 해변에서 해수욕을 즐기기도 했다. 친절한 크리스티앙 씨 가족은 프로방스 생활을 보여주겠다며 벌꿀 따는 시늉을 하다가 아이들이 벌에 쏘이기도 했지만 유쾌한 추억이었다. 이들 가족은 헤어지기 아쉽다며 우리에게 벌꿀과 지도책을 선물했다. 우린 서울에서 준비한 기념품과 내가 그들 가족의 캐리커처를 그려주었다.

두 번째 하이라이트는 프랑스인이 꼭(!) 가보라 권한 사를라 라카네다였다. 중세 프랑스의 성곽을 그대로 간직한 사를라 라카네다는 아직 외국인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곳이어서인지 프랑스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곳이다. 특히 새벽 1시에 도착해 숙소가 닫힌줄 알고 당황하다가 우연히 숙소 주인을 만났을 때 큰아들 헌이와 나는 덩실덩실 춤을 추기까지 했다. 마침 축제 기간이어서 낮에는 주변 관광지를 구경하고 밤에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축제를 즐길 수 있어 더 좋았다. 마을 사람들과 관광객이 뒤섞여 춤판이 벌어졌다. 어린이도, 어른도, 할머니도, 아가씨도, 심지어 따라온 개도 같이 춤추고 있다. 이렇게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함께 어우러지는 축제는 얼마나 멋진가. 누군가 우리 가족처럼 프랑스 자동차 여행을 생각하고 있다면 꼭 추천하고 싶은 도시다. 하루 말고 적어도 이틀 이상은 머물러보길. 라스코 동굴벽화를 보러 갔을 때는 공교 롭게도 한국 관광객을 여럿 만날 수 있었다. 전 세계 어디나 학구적인 관광지에는 우리나라 사람이 많다!

직접 운전하며 찾아다니는 여행은 긴장과 피로감이 훨씬 크다. 파리에 도착해 자동차에 찍힌 거리계를 보니 2500km를 살짝 넘게 달렸다. 단 한순간도 떨어지지 않고 함께 보낸 우리 가족의 추억도 그만큼 쌓였을 것이다. 여행은 마음의 영토를 넓히는 일이라던가.


우리 가족의 좌충우돌 프랑스 자동차 여행기는 책 <낭만 카투니스트, 유쾌한 프랑스를 선물하다>로 엮어 나와 있다. 다른 가족도 용기를 내 여행을 떠나보기를 권하고 싶어서다. 우리처럼 많은 가족이 직접 계획하고 떠나는 특별한 여행을 통해 자신들만의 추억을 만들었으면 좋겠다. 진정한 행복은 가족과 함께 있는 그 순간에 있기 때문이다.

글과 만화와 사진 황중환(만화가) 

 

담당 최혜경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1년 7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