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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핑시대]안충웅, 최숙희 부부의 캠핑카 낚시 여행 바람처럼 달려 자유롭게 머문다
보이스카우트 운동을 시작한 영국의 베던 포웰 경의 신혼여행은 ‘캠핑’이었다고 한다. 새로운 인생 출발점에서 물소리, 새소리 들으며 밤을 지새우는 캠핑이라니 생각해보면 사뭇 낭만적이다. 여기 고희를 넘은 나이에 캠핑의 진면목을 깨닫고 누구보다 뜨겁게 즐기는 부부가 있다. 캠핑카를 타고 산속부터 외딴섬까지 전국 방방곡곡을 여행하는 안충웅, 최숙희 씨 부부를 보고 있자니 인생은 예순 살부터라는 말도 옛말이지 싶다.


소남이섬은 캠핑 마니아들이 즐겨찾는 명소. 금요일 저녁 일찍 도착해야 목 좋은 곳에 자리잡을 수 있다.


캠핑의 사전적 의미는 임시로 지은 막사에서 야외 생활을 하는 것으로 보통 ‘야영’ 또는 ‘노영’이라고 부른다. 옛사람들이 소나 말을 끌고 다니며 밤에는 별을 바라보고 자연생활을 하던 것이 현대에 이르러 일상이라는 무거운 짐을 털어내기 위한 여가 활동으로 발 전한 것. 대자연의 존엄한 아름다움과 격을 갖추지 않은 의식주의 소박한 여운을 느끼는 것, 그것이 바로 캠핑의 정신이다. 그렇기 때문에 캠핑 형식은 간소한 것이 당연하다.

안충웅, 최숙희 씨 부부는 캠핑의 묘미인 ‘소박한 야영’은 건너뛰었다. 부부는 첫 캠핑부터 숙소, 전기, 냉장고, 화장실까지 모든 것을다 갖춘 ‘캠핑카’를 선택했다. 그 연유는 이러하다. 캠핑은 의식주를 통째로 들고 다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1박 2일, 2박 3일 짧은 여정이라도 그 짐은 이삿짐과 별반 다를 게 없다. 텐트, 침낭 등 장비를 옮기고 설치하고 도로 싸는 데 꽤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저 즐기기에도 모자란 시간을 좀 더 밀도 있으면서 여유롭게 누리고 싶었다는 안충웅 씨. 또한 낚시, 모터사이클 등 평생 ‘뛰쳐나가고픈’ 사내의 욕망을 묵묵히 받아준 아내의 고생을 덜어주고 싶었다. 조금은 이기적인 욕심도 보태졌다. “좋은 경치를 많은 사람이 더불어 즐기는 것은 그것대로 좋지요. 하지만 기가 막힌 명승이 때로는 너무 많은 눈길에 닳고 퇴색해 보일 때가 있어요.

30년 낚시 인생을 즐겼다는 안충웅 씨는 야트막한 강을 보자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왼쪽) 사진 찍는 취미를 가진 그는 캠핑카를 타고 여행하며 하나하나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
(오른쪽) 식사 후 아내는 티타임을 갖고 남편은 본격적인 낚시 준비를 한다. 플라잉 낚시를 위한 방수 낚시복은 필수.


사람들의 발길이 덜 닿는 유현 幽玄한 곳은 없을까. 왜, 깊은 산속 옹달샘 물에 설탕을 타서 먹으면 공짜 사이다가 되는 그런 곳 말입니다.” 그는 일상을 떠나 캠핑을 즐기기에는 ‘오지’가 최고라 설명한다. 오지 캠핑은 예정된 곳이 아닌 낯선 곳에서 야영이기에 더욱 신선하다. 그럴 때 캠핑카가 있다면 금상첨화다. 캠핑카는 여행지로 향하는 이동 수단을 넘어 나만의 별장이, 호텔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보통 캠핑이 목적지에 도착해 짐을 푸는 순간부터 그 여정이 시작된다면, 캠핑카 여행은 집에서 출발함과 동시에 시작된다. 도로에 머무는 시간도 버리는 시간이 아니라 추억이고 낭만이다. 도착하는 날과 떠나는 날만 정해두고 그 외에 스케줄이 없는 것 또한 캠핑카 여행의 묘미다. 차가 있으니 언제든 바다로, 계곡으로, 강으로 떠날 수 있다. 로드 무비의 한 장면처럼 길을 가다 쉬고 싶을 때 쉬고, 배고프면 잠시 차를 세워두고 노식을 즐기기도 한다.

(오른쪽) 건축가 안도 다다오와 이름이 같은 안충웅 安忠雄 씨. 권투 선수 출신의 안도 다다오가 최고의 건축가로 성공한 것처럼 평생 치열한 삶을 살았던 그는 은퇴 후 다양한 여가 생활을 즐기고 있다.

낚시를 좋아하는 그는 섬으로 떠나는 여정이 많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 바닷가 앞에 어닝을 펼치고 낚시 의자 하나 꺼내 앉으면 강태공도 부러워할 정도로 제법 폼이 난다. 하루 저녁 자고 나면 또 지역을 바꿔 다른 강가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의 한 장면처럼 플라잉 낚시를 즐길 수도 있다. 이처럼 캠핑카는 부부에게 ‘자연’ 그 자체이자 ‘자유’이다.

“결혼 초부터 아이들과 함께 덜덜거리는 시골길을 따라 경치 좋기 로 소문난 곳을 찾아다녔어요. 다만 며칠이라도 진한 푸름 속에서 심신을 ‘세탁’하고 돌아오겠다는 마음으로 떠났지만 도착하자마자 돌아갈 일을 걱정할 때가 많았죠. 은퇴하고 아내와 함께 떠나는 이 캠핑카 여행에서는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요. 그저 자유롭게 즐길 뿐이죠.”

(왼쪽) 고요한 강변에 기타 연주곡이 울려 퍼지고 아내는 조용히 노랫말을 따라 읊는다.
(오른쪽) 땔감을 주워 따뜻한 물을 데우는 중.

(왼쪽) 야외에 나오면 의식주에 관한 모든 것을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 요리하고픈 부엌을 갖춘 캠핑카 내부.
(오른쪽) 엔진이 달려 있는 RV 캠핑카는 장기 캠핑에 편리하다. 스타렉스 차종으로 국내에서 자체 제작한 캠핑카는 에드윈알브이(1566-1772)에서 구입했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그의 오지 캠핑기는 10년 전 캐나다 여행으로 거슬러 오른다. “여름휴가로 아내와 함께 캐나다로 캠핑 여행을 떠났지요. 로키 산맥에 들어서니 바비큐를 하라고 장작을 쌓아두었더군요. 아름드리 나무가 가득한 숲에 불이라도 나면 어쩌나 싶었지요. 그때 깨달았어요. 이 자유로움은 결국 보이지 않는 질서에서 비롯된다는 것을요.” 부부가 김치와 베이컨, 술까지 한짐 싸가지고 간 캠핑. 첫날 저녁을 짓기 위해 한창 분주하게 움직이니 세계에서 모인 파란 눈의 캠핑족이 ‘누구 생일이냐’고 묻더란다. 샌드위치에 커피 한잔이면 끝나는 그들의 간단한 식사와 달리 한 상 떡 벌어지게 차려 먹는 모습을 신기해하며 구경하더라는 것. 그리고 기나긴 여정에서 릴랙스 체어에 가만히 앉아 조용히 풍광을 응시하는 그들의 모습 또한 인상적이었다.

그 후 우리나라의 몇몇 캠핑장을 찾았는데, 사실 적잖은 문화 충격을 받았다. 도착해서부터 자정까지 먹고 떠드는 젊은이들, 서로의 장비를 의식하는 캠핑족들을 보면서 자신 또한 다른 이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과시하려는 마음이 없었나 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은퇴 후 외롭지만 자유롭게 떠나기로 결심했다. 자유로운 여정에 날개를 달아준 캠핑카는 에드윈 RV에서 2년 전 구입한 것. 부부는 처음 6개월 동안 차의 장단점을 빼곡히 메모지에 적었다. “처음에는 실내에 가스통을 2개씩 싣고 다녔지요. 게이지가 없어서 가스가 떨어지면 바꿔 끼워야 하니 여분까지 싣고 다녔어요. 게이지를 추가하고, 가스통을 밖에다 달아달라고 했어요. 또 여정이 기니 냉장보다 냉동고의 용량이 커야겠더라고요.” 시행착오를 거쳐 특별 주문한 그의 차는 다른 차보다 10cm 길다. 아주 소소한 차이지만 화장실에 앉았을 때 무릎이 벽에 닿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그 의미는 천지차이. 이제 곧 태양열을 모으는 장치도 장착할 예정.

(오른쪽) 모닥불을 피우고 앉아 기타 연주 소리를 들으면 마치 학창 시절 수학여행 때로 시간을 되돌린 것 같아 가슴이 따뜻해진다.

촬영을 위해 찾은 곳은 서울에서 한 시간 남짓 근교의 소남이섬. 남이섬 지형과 닮았다 하여 소남이섬이라 불리는 이곳은 길다랗게 펼쳐진 자갈밭 가운데 우뚝 솟은 바위섬이 그림 같은 풍광을 자랑 한다. 인적이 드물지만 그래도 강가의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면 금요일 오후부터 제법 서둘러야 한다. “사실 캠핑 문화를 제대로 즐기려면 시간 여유가 바탕이 되어야 해요. 거기에 하나 더 필요한 게 있다면 바로 ‘용기’지요.” 가난한 기타리스트에서 우리나라에 만두피를 처음 도입하고 만두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며 치열한 삶을 살았던 그이지만, 낯선 여행길에 오를 때는 두려운 마음 또한 자리 잡는다. 처음에는 낯선 땅에서 야영하고 자는 것이 걱정스러워 갖은 안전 장비를 챙겼다고. 하지만 곧 우리나라는 참 여행하기 좋은 안전한 나라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도 그럴 것이 요즘 시골에 가면 노인이 대부분이다. “쇠고기, 닭날개, 양고기까지 고기류를 많이 챙겨 가요. 캠핑카 앞에 어닝을 펴고 바비큐 파티를 여는 거죠. 마치 새참을 나눠 먹듯 동네 노인들을 초대해 작은 잔치를 엽니다. 이것 또한 우리만의 캠핑 문화가 아닐까요.”

최숙희 씨는 이렇게 잔치를 치르는 일이 조금도 고생스럽지 않다고 말한다. 지금도 가끔 가난한 예술가로 밥 못 먹는 꿈을 꾼다는 안충웅 씨. 젊은 시절 치열하게 살았기 때문에 그간 쌓아온 커리어를 더 쉽게 내려놓을 수 있었다고 말하는 그는 아내에게 기타 연주를 들려주며 젊었을 때 못 이룬 기타리스트의 꿈을 이룬다. 그리고 캠핑 이 소탈한 여행이라고 하지만, 그 또한 사치일 수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따끔한 한마디를 덧붙인다. “이제 캠핑카도 국내에서 제작한 트레일러가 많이 나와 제법 대중화가 되었습니다. 잘사는 사람만이 캠핑카를 타는 것은 아니지요. 하지만 ‘성공’해야만 탈 수 있어요. 젊은 시절 성실하게 밑바탕을 만들고, 예순 살 넘어 정말 삶에 충실했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때 타셔도 늦지 않습니다.”

(왼쪽) 강물이 붉은 빛으로 물드는 오후, 석양의 여운을 즐겨본다.

글 이지현 기자 사진 민희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1년 6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