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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들의 이구동성] 그 사람의 주례사

살다 보면 본의 아니게, 혹은 본의에 의해 자기 배우자를 타인의 배우자와 비교한다. 요리를 잘한다는 상사의 아내와 내 아내를, 돈을 너무 잘 번다는 동창생 남편과 내 남편을 비교의 도마 위에 올린다. 당연히 세꼬시처럼 잘게 썰리고 한심함과 무능함의 양념에 버무려져 “아이고, 내 팔자야”라는 탄식의 대상이 되는 것은 내 아내, 내 남편이다. 그래 봐야 결론은 뻔하다. ‘인간이 다 거기서 거기니 미운 정 고운 정 다 든 내 사람이 최고다’라고 정리한다.

소문난 엄친아라 해도, 못난이 내 새끼랑 바꾸라고 하면 ‘목숨 걸고 노 땡큐!’를 외치는 부모 심정과 같은 이치다. 그럼에도 가끔씩은 함께한 시간의 흔적을 되돌려보는 것이 좋다. 오래된 부부에게 찾아오는 삶의 권태는, 약간의 노력으로도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먼지 쌓인 앨범을 꺼내 연애 시절의 사진을 들여다봐도 좋고, 결혼식 VTR를 돌리며 그날의 감동을 다시 느껴보는 것도 좋다. 필자의 경우, 예정에도 없던 이런 의식을 최근에 치렀으니 아직 지천명도 되지 않은 청춘에게 느닷없이 주례를 부탁한 후배 때문이다. 말도 안 된다며 한사코 고사했으나, 예비 신부까지 와서는 “한 번 주례를 서주시고 끝날 분이 아니라 오래도록 옆에서 멘토가 되실 분을 찾는 것”이라는 말에 혹해서 수락하고 말았다. 그런데 주례사를 쓰면서 수락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주례사는 당연히 후배 부부를 대상으로 했지만, 동시에 곧 결혼 20주년을 맞이하는 우리 부부에게도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주례사에서 나는 젊은 부부에게 세 가지를 기억하라고 했다. 그것이 무엇인지 궁금하신가? 이 자리에서 원문의 일부를 공개한다. 공개하는 이유는, 웨딩홀 직원이 “여태까지 이렇게 주례사에 집중한 결혼식은 처음이에요”라고 했다거나, 신부의 아버지가 “주례사를 들으며 눈물을 흘렸다”라고 했다거나, 신랑이 주례사를 인터넷에 올린 후 반응이 폭발적이었다는, 내 입으로 말하기 쑥스러운 이유 때문은 물론 아니다(그러면서 이미 다 했다). 주례사를 다 써놓고 아내에게 검토를 부탁했더니 벽에 척 붙이면서 했던 “우리한테 하는 말이네 뭐”라는 경쾌한 결론 때문이다. 오래 살고 있으며 앞으로도 오래 살 부부들이여, 햇고추처럼 풋풋하고 햇밤처럼 뽀얀 젊은 부부를 향한 주례사가 당신들에게도 신선한 단맛으로 읽힐 수 있기를, 그리하여 더 많이 행복하고 더 많이 사랑하기를. “(전략)세 가지 당부입니다.

첫 번째 당부는 이제 부부의 연을 맺은 두 사람은 당당히 자긍심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독신 생활을 두고 ‘화려한 싱글’이라고 말합니다. 주변에 구속받지 않고, 자유를 즐기는 독신 생활은 말 그대로 화려합니다. 그에 반해 결혼을 하고, 부부간에 갈등이 생기고, 시댁이나 처가 때문에 속을 끓이고, 육아 전쟁을 벌이는 결혼 생활은 싱글의 화려함에 대비되는, 치열한 모습입니다.그러나 이것은 겉모습만 봤을 때의 일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청춘은 곧 주름살을 얻고, 세상을 다 지배할 것 같은 패기는 어느 순간 노년의 무력함으로 변하고 맙니다. 돈, 명예, 권력도 일장춘몽인 것이 인생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관계와 그 관계를 통해 얻는 가족이라는 선물은 대를 이어 영원하게 이어집니다.
희로애락을 함께 겪으며, 그 시간의 흔적을 두 사람의 얼굴에 같은 문양으로 새기는 것이 부부입니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일가를 이뤄나가는 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업적입니다.
바로 그 업적을 이제부터 두 사람이 함께 만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베란다에서 정성스럽게 키우는 난초가 꽃을 피우면, 그것으로도 스스로에게 상을 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데, 부부가 서로 의지하며 일가를 이룬다는 것은 얼마나 장한 일이겠습니까. 그러므로 신랑 신부는 이제 가슴속에 커다란 자긍심을 가지고 첫출발을 하라는 것이며, 이후 어려운 일이 생기더라도 이 자긍심을 잊지 말라는 당부를 꼭 하고 싶습니다.

두 번째 당부는, 결혼은 두 사람이 네 개의 다리를 하나로 묶고 달리는 경주가 아니라, 각자의 다리로 같은 방향을 보고 달리는 경주라는 것입니다. 모든 관계는 너무 밀착됐을 때 집착이 생기고 금이 갑니다. ‘부부는 일심동체’라는 말은 그만큼 각별한 관계라는 은유입니다. 사실 ‘부부는 이심이체 二心異體’입니다. 서로 다른 몸과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존중해야 합니다.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에 종속되거나, 한쪽의 삶을 희생할 것을 강요하는 결혼은 절대 건강하지 않습니다. 결혼이라는 안정된 보금자리 속에서 서로의 다름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각자가 하고 싶은 일이 있을 때 다른 한쪽이 지상 최고의 응원자가 되어서 조력할 수 있는 관계가 진정한 결혼의 미덕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안도현 시인은 ‘너와 나’라는 짧은 시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밤하늘에 별이 있다면 방바닥에 걸레가 있다.” 때때로 부부 중 한 사람이 밤하늘의 별을 보면서 낭만에 젖어 있을 때, 나머지 하나는 걸레를 손에 쥔 채 현실의 주위를 정돈하고 자기 자리를 잘 지키라는 의미로 이 시를 읽는다면 그 울림이 더 클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것은 싸움의 기술입니다. 앞으로 두 분은 부단히 많이 다툴 것입니다. 서로 다른 환경과 성격의 두 사람이 만났는데 다투지 않는다면 그것이 비정상입니다. 피를 나눈 부모와 자식 사이에도 살다 보면 서운함이 있고 다툼이 있는데, 젊은 두 남녀의 결혼 생활이 어떻게 언제나 평화롭겠습니까? 그러므로 이후 살아가면서 싸울 일이 생긴다면 지금부터 말씀드리는 싸움의 기술을 기억하십시오.

저는 저의 책 <어른의 발견>에서 싸움의 기술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박 터지게 싸우고 머리 나쁜 새처럼 화해해라.” 이 이야기는 서로 싸워야 할 때는 화끈하게 싸우되, 싸움이 끝나면 바로 그 싸움을 잊어버리라는 것입니다. 싸움의 과정에서 서로의 가족 흉을 본다거나, 싸웠다고 며칠 말도 안 한다거나 하는 것은 하수의 싸움입니다. 시원하게 싸웠다면 머리 나쁜새처럼 싸운 것을 잊어버리고 다시 깨를 볶아줘야 합니다. 그것이 고수의 부부 생활입니다. 제 당부는 여기까지입니다.”

 

윤용인(노매드 미디어&트래블 대표, ww.nomad21.com, 트위터 @ddubuk)

담당 최혜경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1년 6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