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해주세요.
본문 바로가기
[캠핑시대]캠핑 폐인 김산환 씨가 말하는 ‘진짜 캠핑’ 가족과 함께 떠나는 당신이 캠핑 대통령입니다


날씨가 삼복더위로 치닫던 지난여름 어느 날. 내 블로그에 들어갔다가 깜짝 놀랐다. 평소 30명 안짝이던 하루 방문자 수가 무려 3천 명을 넘긴 것이다.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처음에는 숫자를 잘못 읽은 줄 알았다. 그러나 아무리 눈을 부릅뜨고 봐도 숫자는 정확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짧은 시간이었지만 해킹을 의심했다. 그러나 그것도 아닌 듯했다. 여행과 캠핑을 테마로 ‘블로그질’을 하는 개인의 블로그를 해킹할 리가 만무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이렇게 많은 방문자가 내 블로그에 몰렸단 말인가.
1백 배쯤 뻥튀기된 블로그 방문자 수의 비밀은 인터넷 검색에서 풀렸다. 오토캠핑 정보를 찾기 위해 검색어에 ‘캠핑’을 쳤는데, ‘캠핑 대통령’이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캠핑 대통령이라, 참 어처구니없는 표현도 다 있다고 생각했다. 오버를 해도 한참 오버했다는 느낌이었다. 캠핑 전문가나 열혈 캠퍼, 조금 더 써서 캠핑의 달인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캠핑 대통령이라니. 자기 좋아서 다니는 캠핑에 감투를 씌워도 유분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도대체 누가 이런 표현을 쓰나 싶어 관련 사이트를 클릭해봤다. 그런데 아뿔싸! 모니터에 떡하니 등장한 사람은 다름 아닌 나였다. 캠핑장에서 앞치마를 두른 채 환하게 웃는 내 얼굴 위에 ‘캠핑 대통령’이라는 제목이 큼지막하게 붙어 있었다. 나는 부리나케 관련 텍스트를 읽어 내려갔다. 사정은 이랬다. 여름휴가를 앞두고 백화점에서 오토캠핑을 주제로 강연을 하기로 했는데, 백화점에서 그 강연회를 알리는 광고 이메일에 나를 소개하면서 아주 자극적인 표현을 쓴 것이다. 나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어떻게 캠핑 대통령이라는 표현을 쓸 수 있을까? 이 이메일을 받아본 이들도 도대체 어떤 놈이 캠핑 대통령으로 불리나 싶어 내 블로그를 방문했을 것이다. 도대체 그깟 캠핑이 뭐라고 대통령이라는 직함까지 갖다 붙이며 호들갑을 떨까 싶었을 것이다.
나에게 캠핑은 일상이었다. 중학교 2학년 때 장대비가 쏟아지는 화양동 계곡(충북 괴산)에서 군인들이 사용하는 2인용 삼각 텐트를 치고 네 놈이 기어들어가 하룻밤을 보낸 것이 첫 캠핑의 추억이다. 고교 시절에는 청주에서 대천해수욕장까지 3박 4일 자전거 투어에 나서면서 길 위에 텐트를 치고 자는 야생 캠핑에 눈떴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는 48일간 백두대간을 종주하며 산정에서 홀로 잠들기도 했다. 사회에 나와서도 캠핑은 멈추지 않았다. 등산 잡지의 기자로 일하며 한 달에 일주일은 산에서 텐트를 치고 지냈다. 영하 30℃가 넘는 눈밭에서 침낭 하나로 버틴 밤도 많다. 서른 반을 넘어서도 텐트는 늘 여행의 동반자였다. 캐나다에서 알래스카를 일주하는 두 달간의 여정에서도 텐트는 나의 안식처였다. 미국 옐로스톤국립공원에서도, 뉴멕시코의 사막 한가운데서도 텐트는 고단한 내 몸을 따뜻하게 받아줬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캠핑이 허전했다. 지금껏 내가 해온 캠핑에서 무엇인가가 빠져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건 다름 아닌 가족이었다. 스무 해 가까이 캠핑을 하면서 텐트 속에는 늘 혼자였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캠핑은 누군가와 함께할 때 가장 행복하다는 사실을 서른 중반을 넘겨서야, 호기심으로 눈망울이 초롱초롱한 아들이 생긴 후에야 안 것이다. 또 스스로 캠핑 마니아라고 여겼던 나보다 아내가, 아들이 캠핑을 더 좋아한다는 것도 가족과 함께 다니면서 깨달은 사실이다.

이른 봄날 경남 고성의 바닷가로 첫 가족 캠핑을 갔던 때를 기억한다. 어둠이 찾아온 캠핑장에서 우리가 한 일은 딱 하나, 화로에 모닥불을 피운 것뿐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와인이 없어도 낭만적이었고, 아들은 TV가 없어도, 닌텐도가 없어도 심심해하지 않았다. 딱히 다른 무엇을 할 것도 없이 그저 하염없이 모닥불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그날 밤, 아이는 참 많은 이야기를 쏟아냈다. 밤하늘의 별과 꿈속에서 만난 공룡, 다음 날 가게 될 몽돌해변까지, 아내와 아들의 대화는 끝이 없었다. 아이가 무릎 담요를 덮고 안락의자에 앉아 곤히 잠에 빠진 뒤에도 아내와 나는 밤늦도록 모닥불을 지폈다.
캠핑은 그런 것이다. 꼭 무엇을 해야 한다는 당위에 갇힐 이유가 없는, 어른과 아이 모두가 즐거운 놀이다. 그저 자연의 어떤 곳에 우리가 있는 것만으로 행복해지는 게 캠핑이다. 캠핑장에 가면 알게 된다. 캠퍼들이 가장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는 순간이 다름 아닌, 안락의자에 몸을 묻고 숲이나 강 어딘가에 시선을 둘 때란 것을. 그 순간만큼은 세상이 얹어준 모든 짐을 내려놓은 것처럼 편안해 보인다. 가정을 짊어진 가장으로서의 책무와 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를 강요하는 비정한 사회에서 단 한 번도 제대로 휴식을 취해본 적 없는 사내에게 찾아온 지상 최대의 평화가 그곳에 있다.

요즘 우리나라의 캠핑이 수상하다. 캠핑의 본질에서 벗어나 조금은 엉뚱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 중심에 장비가 있다. 오토캠핑은 모든 아웃도어를 통틀어 가장 많은 장비를 필요로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캠핑은 먹고 자고 생활하는 모든 도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오토캠핑 장비는 자동차가 운반의 수고를 대신해주면서 눈부신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크기와 무게는 이제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캠퍼들은 집에서 누리는 것과 같은 편리함을 캠핑장에서도 누리고 싶어 한다. 이런 장비 지상주의에 빠진 캠퍼들은 캠핑장에서 이웃의 장비를 눈여겨보거나 탐하는 데 시간을 허비한다. 캠핑 관련 카페에도 새로운 장비에 대한 정보만이 넘쳐나고 있다.
캠핑의 본질은 자연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지는 것이다. 장비는 캠핑을 할 수 있게 보조하는 수단일 뿐, 캠핑의 목적이 아니다. 오히려 모든 것이 조금씩 부족하고, 약간 불편함이 따르는 것, 그것이 진짜 캠핑이다. 장비의 허상에서 벗어나면 캠퍼들은 아주 많은 자유를 누리게 된다. 대형 텐트-진짜 집채만 하다-를 설치할 사이트를 찾아 헤맬 필요가 없고, 전기가 들어오는 캠핑장만 골라 다니지 않아도 된다. 텐트 문을 활짝 열어놓고 여행을 다녀도 불안할 이유가 없다. 또 택배 아저씨가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어 아내에게 핀잔을 들을 일도 없다.

나에게는 15년이 넘게 써온 낡은 텐트가 있다. 플라이가 찢어져 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텐트다. 또 20년 넘게 써온, 연료통이 찌그러진 작은 휘발유 스토브가 있고, 불빛이 반딧불보다도 못한 헤드 랜턴이 있다. 이 장비들은 요즘 나온 ‘신상’ 오토캠핑 장비와는 비교할 수도 없이 초라하다. 하지만 캠핑 장비는 성능으로만 말하는 게 아니다. 이 장비는 지난 생애의 추억이자 함께 나이를 먹어가는 벗이다. 이를테면 먼 훗날 당신의 자녀가 낡은 텐트를 칠 때마다 아빠와의 추억을 되새기는 것처럼 말이다.
가족과 함께 자연 속에 작은 집을 짓고 추억을 만들고 싶다면 캠핑을 떠나라. 마음만 있으면 충분하다. 그 마음만 있으면 당신이 캠핑 대통령이다.

“지리산을 넘어온 하현달이 강물의 야윈 몸통을 비췄다. 강물이 몸을 뒤집을 때마다 허연 비늘이 번쩍거렸다.” 캠핑에 대한 글이 이렇게 감성적일 수도 있다는 걸 김산환 씨의 책을 보며 알았다. “남자는 캠핑장에 도착한 순간 깨어난다. 자신의 DNA에 숨어 있던 야생의 본능이 살아난다. 그는 더 이상 돈 벌어오는 기계가 아니다.”
이 글을 읽는 대한민국 가장이라면 당장 캠핑 장비를 꾸리고 가족을 채근할 것이다. ‘캠핑 대통령’ ‘캠핑 폐인’ ‘여행 생활자’ 등 여러 별명으로 불리며 여행과 캠핑에 관한 주옥같은 글을 써온 김산환 씨는 중앙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월간 <사람과 산>을 시작으로 신문사와 잡지사에서 15년간 여행 레저 전문 기자로 일하면서 ‘잘 노는 방법’을 연구해왔다. 도서출판 ‘꿈의지도’ 대표를 맡고 있으며, 지은 책으로 <캠핑 여행의 첫걸음, Canadian Rocky> <오토캠핑 바이블> <캠핑 폐인> <걷는 것이 쉬는 것이다> <나는 알래스카를 여행한다> 등이 있다.

 


김산환(여행 칼럼니스트) 사진 이창주

담당 최혜경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1년 6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