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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탄신일을 맞이하여]송광사 스님들의 청정한 독경 소리 담은<echoes of the great pines> 부처님께 바치는 노래
스님들이 부처님께 드리는 예불은 불자가 아니어도 그 감동을 깊이 느낄 수 있다. 특히 송광사 예불은 1천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어 그 예를 다하는 스님들의 소리가 완전한 하나의 음악 세계를 구축한다. 문제는 이 감동적인 소리를 현장에 가지 않으면 들을 수 없다는 데 있다. 불자들이 구입할 수 있는 예불 음반이 널렸지만 그 녹음 상태가 그리 좋지 않다. 아날로그 녹음 방식인 PCM을 탈피해 DSD 녹음 방식으로 녹음한 송광사 새벽예불 음반 <echoes of the great pines>는 소리의 해상도는 20배, 현장 분위기는 40배 이상 그대로 전달한다. 몇몇 문화인이 제안하고, 송광사 주지 영조 스님의 허락아래 만든 이 앨범은 귀가 좋은 사람에게는 독특한 장르의 음악 그 이상이며, 참선과 명상을 즐기는 이에게는 매일 들어도 좋을 만하다.


그래미 어워드 녹음상을 여러 차례 수상한 엔지니어 존 뉴턴 John Newton은 이 앨범을 듣는 순간 “ Sounds Fantastic! (환상적인 소리다!)”라고 외쳤다.

“저는 불상 뒤에서 헤드폰을 쓰고 모니터링을 하고 있었어요. 제일 좋은 소리를 찾기 위해 엔지니어에게 마이크 위치를 바꿔보라고 했죠. 현장 녹음은 마이크 위치나 높이에 따라 소리가 많이 변하거든요. ‘이거다’ 싶은 순간 마이크를 고정해달라고 했는데, 그 위치가 바로 부처님 귀 옆인 거예요. 정말 희한하죠. 음악이 단지 인간을 위한 소리가 아니고 초월적인 영들을 위한 소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부처님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매일 스님들의 염불을 잘 듣고 계셨던 거죠.” 송광사 스님들의 새벽예불 소리를 녹음한 사운드미러 코리아 황병준 대표의 말이다. 그는 그래미 어워드 녹음기술상을 수상한 합창 앨범 <수난 주간>의 스태프로 국내에 몇 안 되는 실력파 엔지니어다. 풀벌레가 울지 않고 바람 소리가 없는 11월 초, 송광사로 내려간 황 대표는 사흘 밤낮 하루 세 차례씩 반복되는 스님들의 예불을 DSD방식으로 녹음했다. 국내에서는 아직 활성화되지 않은 이 녹음 방식은 해외에서 클래식 음반을 고품질로 제작할 때 주로 사용하는 것으로 마치 극장에서 영화를 볼 때처럼 현장에서 들리는 작은 종소리, 목탁의 미세한 떨림, 문 여닫는 소리, 스님들의 발소리까지 전해준다. 이 음반을 틀어놓고 가부좌를 하면 송광사 대웅보전에 앉아서 참선과 명상을 즐기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뜻이다.

실제로 이 음반은 어느 날 저녁, 좋은 음반을 들으며 와인을 즐기던 한 모임에서 비롯되었다. 문화 애호가들이 모여 담소를 나누던 이 자리에는 유럽 가톨릭의 그레고리오 성가가 흐르고 있었다. 이 음악을 듣고 있던 사람들은 ‘왜 우리에겐 이런 음악이 없을까’라는 화두로 이야기를 시작했고, 사찰의 새벽예불을 떠올리게 됐다. 두 음악은 어떤 연주자도 없이 오로지 인간의 소리로 깊은 감동을 준다는 점에서 꼭 닮아 있었다. 그 자리에 있던 리코딩 엔지니어 황병준 씨는 우리도 새벽예불 현장을 녹음해서 음반을 만들어보면 어떨까라는 제안을 했다. 그러자 나머지 사람들은 예상 비용이 얼마나 드는지 물었고, 그 정도라면 십시일반으로 음반을 제작할 수도 있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뜻을 모은 사람들은 새벽예불이 좋기로 유명한 송광사를 점찍었다. 하지만 송광사가 어디 그리 만만한 절인가? 처음 제안을 했을 때 송광사 측은 수행에 방해가 된다고 거절하였다. 그러나 이 팀들은 송광사를 찾아가 그 참뜻을 전했다. 이 팀의 설득 내용 중 한 대목을 간추려 본다. “1991년도였어요. 법정 스님이 살아 계실 때죠. 핀란드에서 도자기 작가들이 방문했는데, 한국 문화를 체험하고 싶다는
거예요. 송광사 새벽예불이 좋다는 얘길 많이 들은 터라 그 친구들을 데리고 갔죠. 새벽 3시에 일어나 참선도 하고 108배도 올리면서 새벽예불을 체험했어요. 사실 그 친구들이 독경 소리를 이해하겠어요? 그런데도 너무 좋아하는 거예요. 스님들의 육성 자체만으로 감동이 엄청나다는 거죠. 10년이 지난 후에 그들을 만났음에도 합장으로 인사를 할 정도였어요.”

“불교에서는 윤회 輪廻라는 말을 많이 씁니다. 중생이 번뇌와 업에 의해 생사 세계를 그치지 아니하고 돌고 도는 일을 뜻하죠. 한 불자가 아주 오래전에 송광사에 와서 그런 감동을 받고 그걸 가슴에 품었다가 뜻을 이루고자 하는 데 제게도 소임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도시의 소음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잃어버린 자아를 찾았으면 합니다.” 주지 영조 스님이 이들의 진정성을 감지하고 하신 허락의 말씀이다.
문화계 최전방에서 활동하고 있는 아티스트들 또한 그 취지를 듣고 단번에 음반 제작에 힘을 보탤 것을 약속했다. 소나무 사진작가로 유명한 배병우 씨는 앨범 커버와 속지 사진을 맡아주었고, 글씨로 진심을 전하는 캘리그래퍼 강병인 씨는 송광사 松廣寺(송광사는 소나무 숲이 넓게 펼쳐진 절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라는 손 글씨를 써주었다. 또 <행복>의 자매지인 <럭셔리>의 아트 디렉터 손익원 씨는 앨범 디자인을 맡았다. 영문 감수는 한국에 오래 살고 있는 개럿 마샬Garett Marshall이 도왔다. 뜻이 있는 사람들이 의기 투합해 만들어낸 송광사 새벽예불 현장 녹음 음반은 국내 시장뿐만 아니라 세계 시장에까지 널리 유통할 예정이다.

[echoes of the great pines]는 부처의 가르침을 실천하기 위해 행하는 가장 기본 의식인 조석예불 현장을 녹음한 음반으로 도량석, 종송, 사물 의례, 예불, 독송 순으로 이어진다. 도량석은 기상 시간을 알리고 도량을 정화하는 의식으로, 잠자리에서 일어난 스님들은 도량을 도는 의식을 치른 뒤 법당 안으로 들어간다. 종송은 부전 스님이 종을 치며 중생의 구제와 수행자의 성불 成佛(부처가 되는 일)을 비는 절차다. 사물 의례는 불전사물 佛殿四物이라고 부르는 네 개의 거대한 악기를 두드리며 모든 중생의 해탈을 기원하는 의식인데, 이번 앨범의 세 번째 트랙 ‘범고’에 해당하는 부분이 특히 감동적이다. 심장을 울리는 웅혼한 북소리에 잡념이 사라지고 영혼이 맑아진다. 송광사의 역사가 시작된 1천 년 전부터 오늘까지 단 하루도 빠짐없이 반복되는 일상의 소리이자, 한 치의 흐트러짐 없는 불법 수행 과정인 새벽예불. 그 지극한 정성으로 빚어낸 천년의 소리는 국적과 인종을 초월해 세상 모든 이들에게 빛과 소금이 될 것이다.

음반이 출시된 날 송광사 스님들이 사운드미러 코리아를 방문했다. 왼쪽부터 송광사 총무 진경 스님, 사운드미러 코리아 황병준 대표, 주지 영조 스님, 교무 연광 스님, 학감 능인 스님. 사진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우리 문화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문화의 3ㆍ1운동’을 기원하는 멤버들도 이 자리를 빛냈다. 북촌 31번지에서 첫 모임을 가져 문화의 삼일운동이라 부르고, 이 프로젝트 명을 따서 ‘31st 프로덕션’이라는 이름도 지었다. 그 멤버는 디자인하우스 이영혜 대표, 까사미아 디자인연구소 최순희 사장, 한국화가 허달재, 설치예술가 박실, 요리연구가 최미경, 송광사와 오랜 인연을 맺고 있는 정숙영, 인테리어 디자이너 심정주,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장을 지낸 윤난지 교수가 그들이다.

글 정세영 기자 사진 김용일(인물)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1년 5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