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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세시 절기]입하와 소만, 사월 초파일 양기 가득한 계절의 여왕이여


시인 노천명은 ‘푸른 오월’이란 시에서 “오월은 계절의 여왕”이라 했다. 막 돋아난 아기 잎은 온 산을 엷은 푸름으로 물들인다. 눈이 닿는 곳마다 나무도 풀도 싱그럽다. 사람들은 활력이 넘쳐난다. 오월은 봄이 막 끝나고 여름으로 접어드는 시기로 음력 4월에 해당한다. 여름이 시작된다 하여 초하 初夏 또는 앵하 鶯夏라 하고, 만 물에 가지와 잎이 생긴다 하여 여월 余月이라 한다. 꾀꼬리가 찾아오는 여름이란 뜻으로 명조 鳴鳥라고도 하고, 홰나무 꽃이 피기 시작하고 향내를 내뿜는다 하여 괴훈 槐薰, 괴하 槐夏라고도 한다.
또 양기만 가득하고 아직 음기가 싹트지 않은 달이라 하여 정양 正陽이라 한다. 아직 초여름이란 뜻으로 맹하 孟夏라 부르기도 하고, 아직까지는 찬 기운이 남아 있어 “보리가 익을 무렵의 서늘한 날씨”라는 뜻으로 맥량 麥凉, 맥추 麥秋라고도 한다. 우리의 전통적인 역법은 음력에 양력인 24절기를 절충하여 쓴다. 음력 4월에는 절기상 입하 立夏와 소만 小滿이 들어 있다.

여름이 시작됨을 알리는 입하 24절기 중 일곱 번째 절기로, 양력으로는 5월 6일 무렵이다. 태양의 기울기가 45도에 이르렀을 때다. 입하는 여름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신호로 곡우와 소만 사이에 든다. 입하가 되면 봄은 완전히 물러가고 산과 들에는 신록이 일기 시작하며, 개구리 우는 소리가 들린다. 마당에는 지렁이가 꿈틀거리고, 묘판의 볍씨는 싹을 틔워 자라기 시작한다. 들판은 보리 이삭이 패 누렇게 물들고, 아낙들은 누에를 치느라 분주하다. 또한 입하 무렵에는 모심기가 시작되어 농가에서는 써레를 싣고 나온다는 뜻으로 “입하 물에 써레 싣고 나온다”고 한다.

햇볕이 풍부하고 만물이 가득 찬 소만 소만은 24절기 중 여덟 번째 절기다. 양력으로는 5월 21일 무렵이고, 태양이 황경 60도를 지날 때다. 소만은 입하와 망종 사이에 들어 햇볕이 풍부하고 만물이 점차 자라 가득 찬다는 의미다. <농가월령가>에서는 “4월이라 초여름(맹하) 되니 입하, 소만 절기로다”라고 했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여름 느낌이 들고 식물이 무럭무럭 자란다. 소만이 되면 산에서는 부엉이가 울어대고, 보리는 익어가고, 들판의 꽃들은 열매를 맺는다. 농가는 1년 중 가장 바쁜 시기로 모내기 준비로 분주하다. 특히 이 무렵에는 양식이 떨어져 배가 고파 힘겹게 살아간다 하여 ‘보릿고개’란 말이 나오기도 했다.
중국에서는 소만부터 망종까지의 시기를 다시 5일씩 삼후 三候로 나누어 초후에는 씀바귀가 뻗어 오르고, 중후에는 냉이가 누렇게 죽어가며, 말후에는 보리가 익는다고 했다.
초후를 전후해 죽순을 따다 고추장에 찍어 먹는 맛이 별미다. 산야가 파란 옷을 입었는데, 대나무만 죽순에 영양분을 주어 푸른빛을 잃고 누렇게 변한다. 마치 자기 몸을 희생해 어린 자식을 돌보는 어미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한편 속담에 소만에 부는 바람이 쌀쌀하다고 해 “소만 바람에 설늙은이 얼어 죽는다”라고 했다.

손톱에 봉숭아물 들이기 홍석모의 <동국세시기>에 따르면 “계집애들과 어린애들이 봉숭아를 따다가 짓찧어서 백반을 섞어 손톱에 물을 들인다”고 했다. 옛사람들은 5월이 되면 봉숭아물을 들이는데, 사내인 나도 어릴 때 봉숭아 꽃잎을 호박잎이나 피마자 잎으로 싸 손톱에 봉숭아물을 들이곤 했다. 할머니들은 저승길이 밝아진다면서 봉숭아물을 들였다. 봉숭아물을 들이는 것은 손톱을 예쁘게 보이려는 뜻도 있지만, 잡귀와 병마를 막아 건강해지기 위한 것이었다. 이는 붉은색은 잡귀를 물리친다는 믿음에서 나온 것이다. 봉선화를 울 밑이나 장독대 옆에 심으면 뱀이 들어오지 않고 나쁜 일이 생기지 않는다고 했다. 또 첫눈이 내릴 때까지 손톱에 봉숭아물이 남아 있으면 첫사랑을 만난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온 가족이 즐긴 사월 초파일 지금도 사월 초파일이 되면 절에가 등을 밝히며 가족의 안녕과 복을 기원한다. 시내의 거리도 길게 늘어뜨린 연등으로 장관을 이룬다. 사월 초파일은 부처님이 탄생한 날이다. 천상의 아홉 마리 용이 내려와 아기 부처를 목욕시키며 탄생을 찬탄했다 해 욕불일 浴佛日이라고도 한다. 사월 초파일이라 이름 붙인 것은 말 그대로 음력 4월 8일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후 우리처럼 음력이 아닌 양력 4월 8일을 기념한다. 사월 초팔일은 불교의 4대 명절 중 가장 큰 명절이다. 초파일은 불자든 아니든 오래전부터 우리 민족이 함께 즐긴 민속 명절이다. 따라서 이날은 부처님 탄신을 축하하며 갖가지 놀이를 했다. 그중 대표적인 놀이가 연등 행사와 관등놀이다. 불을 밝히는 것이 연등 燃燈이고, 연등을 보면서 마음을 밝히는 것이 관등觀燈이다. 고려시대에는 연등 행사가 성대하게 이루어졌다. 공민왕은 사월 초파일에 직접 연등 행사를 열기도 했다.

등불을 밝히는 연등 행사는 고려시대에 본격화되어 어린아이들까지 참여했다. 어린아이들은 연등 만드는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한달 전부터 종이를 오려서 대나무에 기를 달고 성안을 다니며 쌀과 베를 구했다. 이를 호기풍속 呼旗風俗이라 하며, 공민왕도 두 차례나 어린아이들에게 쌀을 하사하기도 했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지만 연등은 거북등, 용등, 학등, 일월등, 방울등, 수박등, 만세등, 가마등, 누각 등 형형색색이다. 등을 다는데에도 등대를 세워서 각종 깃발로 장식을 하고 휘황찬란하게 연등을 꾸몄다. 호화찬란하게 장식한 등대에는 적게는 3개, 많게는 10여 개의 등을 달기도 했다. 강에는 연등을 실은 배를 띄워 온 누리를 연등 일색으로 물들였다. 자연히 사람들은 이런 구경거리를 보려고 몰려들었고, 각종 민속놀이가 펼쳐졌다. 고려시대에는 궁궐을 비롯해 관청, 사찰, 민가에 이르기까지 연등을 달고 남녀노소가 참가했다. 하지만 조선시대에 와서는 사찰과 민가로 국한되었다. 요즈음은 불자들만 참여하고, 등도 가족 수대로 다는 것이 아니라 한 등에 식구 이름을 모두 써서 붙인다.

옛날에는 초파일이 어린이날 사월 초파일은 단순히 불교 신도만 축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온 장안 사람이 절을 찾아 연등을 달고, 구경하고, 곳곳에서 풍악을 울려 축제 분위기를 자아냈다. 한마디로 장안은 인산인해를 이루어 밤새 불이 꺼지지 않았다. 또 대부분의 우리 세시 풍속이 조상과 노인 섬기기에 국한되어 어린이를 위한 것이 거의 없는 데 반해, 사월 초파일은 어린이를 위한 잔칫날 같았다. 이날의 거의 모든 행사에는 어린이도 참여했다. 아이들은 연등을 단 등대 밑에 자리를 깔고 석남 잎을 붙인 송편과 검은콩, 미나리, 나물 등을 늘어놓고, 느티떡과 소금에 볶은 콩을 먹으며 동이에 물을 담아 바가지를 엎어놓은 채 돌아가면서 두드리며 놀았다. 이 놀이를 수부 놀이 즉 물장구 놀이라 했다.
초파일이 되면 절 앞에는 큰 장이 섰는데, 대부분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어린이용품이 주를 이루었다. 부모는 아이를 데리고 절에 갔다가 장에 펼쳐진 진기한 장난감을 사주기도 했다. 사내아이에게는 범, 피리, 오뚝이를, 여자아이에게는 각시, 가마, 꽃, 소꿉 그릇 따위를 팔곤 했다. 오늘날처럼 따로 어린이날이 없던 때에는 사월 초파일이 어린이날을 대신했다. 그야말로 초파일은 아이들의 잔칫날이었다.

글 정종수(국립고궁박물관 관장)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1년 5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