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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찾은 행복] 그대를 사랑 합니다

아니라고 애를 써봐도 자꾸만 마음이 가는 남자가 있다. 그가 무슨 말을 하면 심장이 간지럽고 귀를 쫑긋거리고 얼굴에는 웃음이 번진다. 맞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 나타나는 증상이다. 아, 어쩌란 말인가 설레는 이 가슴을. 그는 눈 밑에 그늘이 있는 남자다. 늘 우수에 차 있고 전설의 로커처럼 긴 생머리를 찰랑댄다. 얼마 전엔 그가 노래하는 모습을 먼발치에서 봤는데, 허스키한 보이스가 어찌나 매력적이던지 눈에서 하트가 마구마구 쏟아졌다. 용기 내어 고백도 해보고 싶었지만 그건 안 되는 일이었다. 사실 그는 유부남이다. 아내는 상당한 미인인 데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이 둘이나 있다. 어쩌다 그런 사람을 사랑하게 됐느냐고 묻는다면, 지난여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겠다.

내게 그를 소개해준 사람은 연예인 L씨였다. 그와 오랜 인연을 맺고 있던 L씨는 그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 “그 친구 기러기 아빠예요. 아내랑 자식은 필리핀에 살아요. 혼자서 밥도 제대로 못 챙겨 먹고 방구석에 들어앉아 우울하게 지내는데, 구구절절 사연도 많고 여기저기 상처도 많은 사람이에요.” 알고 보니 그 남자는 술과 마약에 찌들어 병원과 감옥 신세를 진 경험도 있고, 우울증에 시달리다 자살을 시도한 적도 있다. 우수에 찬 눈 밑 그늘은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었다.

20여 년의 세월 동안 어둠의 터널에서 허우적대던 그는 우연한 기회에 L씨를 만났고, 그의 도움으로 몇 년 전 세상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그의 인생은 180도 달라졌다. 그는 이제 이름 석 자를 대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해졌다. 그가 세상에 널리 이름을 알릴 수 있었던 건 아이러니하게도 침묵과 시련으로 점철된 과거사 때문이었다.

지난여름, 인터뷰 때문에 만난 예능인 이경규 씨는 ‘아이 둘 달린 유부남’ 김태원 씨를 자신의 유일한 천적이라고 내게 소개했다. 록 그룹 부활의 리더이자 ‘국민 할매’ 그리고 지금은 ‘위대한 멘토’인 김태원 씨 말이다. 예능의 정글에서 무려 30년이나 장수한 호랑이 이경규 씨가 실오라기처럼 가는 몸씨의 김태원 씨를 가장 강력한 적수로 꼽은 이유가 뭘까. 그는 그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연예인 중에 글씨가 보이지 않는다고 안경을 들치고 대본을 보는 사람이 있을까요. 전설의 로커가 할머니 분장을 하고 화면에 얼굴을 내보이는 게 과연 쉬운 일일까요. 하지만 태원이는 스스럼없이 그런 행동을 해요.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면서 상대방을 보듬는 거죠. 그 친구가 그럴 수 있는 이유가 뭔지 아세요? 아주 오랜 시간 고독하게 살면서 삶의 지혜와 내공을 쌓았기 때문이에요.” 이경규 씨의 말이 공명처럼 가슴에 와 닿은 순간부터 지금까지 나는 그를 마음속에 두고 있다. 가끔 그의 공연장을 찾아가 먼발치에서나마 그의 노래를 듣고, 그의 매니저에게 문자를 보내 인터뷰를 허락해달라고 졸라대면서(가슴 아프게도 최근 위암 수술을 한 그는 잡지 인터뷰를 소화할 여력이 없다).

요즘 내 유일한 낙은 그가 멘토로 출연하는 가수 오디션 프로그램 <위대한 탄생>을 보는 것이다. 금요일 밤 10시, 그와 얼굴을 마주하고 그의 주옥같은 인생 경험을 들으며 나는 용기와 지혜를 얻는다(어제 일자 신문에 보니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한 설문 조사에서 ‘인생이 우울하고 답답할 때 기대고 싶은 내 인생의 멘토’를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44%가 김태원 같은 멘토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그런 의미에서 ‘명언 종결자’ 김태원 씨의 주옥같은 조언 하나를 끝으로 소개한다. 이 말은 <위대한 탄생>에 참가한 어느 우울증 환자에게 김태원 씨가 ‘탈락’ 대신 ‘왕관’을 주면서 건넨 위로다. “우울증은 기다림을 잊는 병입니다. 인간은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슬픈 영화를 보면서 울지 말고, 승리하거나 비상할 때 나오는 희열의 눈물을 흘리세요.”
아, 나는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글 정세영 기자 사진 연합뉴스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1년 5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