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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자녀 가족]카툰 작가 김효니 씨, 일러스트레이터 조재철 씨 부부 아이 대신 꿈을 선택한 부부의 행복 비결
김효니 씨와 조재철 씨 가족은 단 두 사람뿐이다. 아직까지도 자녀가 있어야 비로소 온전한 가정을 이루었다고 여기는 한국에서 결혼 11년 차 무자녀 가족을 바라보는 주위의 시선이 그리 달갑지만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세상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고 부부 중심의 가정을 꾸리며 견고한 부부 관계를 만들어가는 이들의 소박한 삶의 풍경, 그 속에서 부부만의 특별한 교집합을 찾아가는 비결이 궁금해진다.


김효니, 조재철 씨 부부가 <행복> 촬영을 위해 직접 그린 그림 앞에서 미소 만발이다.

연상연하 커플의 만남부터 결혼까지의 이야기를 담은 카툰집 <누나야, 여보 할래?>의 작가이자 실제 주인공인 김효니 씨(44세)와 조재철 씨(38세). 같은 회사에서 애니메이터로 만나 처음엔 잘 통하는 누나 동생에서, 사랑과 우정 사이를 묘하게 오가는가 싶더니 이내 비밀스러운 사내 커플로, 또 대부분의 연상연하 커플이 그렇듯 이별의 고비를 거쳐 결혼에 골인했다.
‘아내 효니가 쓰는 여섯 살 어린 남편과 사는 이야기’라는 부제를 단 이들의 이야기는 책으로 출간되기 전부터 블로그에 연재되어 인기를 모은 화제작이다. 새로운 에피소드를 연재할 때마다 대한민국 연상연하 커플의 속내를 훤히 꿰뚫고 있는 듯한 촌철살인의 글과 그림으로 네티즌을 웃기고 울리며 공감을 얻었다. 이들은 결혼 11년 차로, 아이 없이 두 사람만의 견고한 행복을 찾아가는 무자녀 부부다. “여자 나이가 많으니 빨리 아이부터 낳아야지”라는 주위의 걱정과 압박 아닌 압박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꿈을 잊지 않고 유쾌하게 살아가는 두 사람이 생각하는 가족 그리고 행복은 어떤 모습일까.

(왼쪽) <누나야, 여보 할래?> 김효니 씨가 여섯 살 어린 남편 조재철 씨와 알콩달콩 사는 이야기를 담은 카툰 에세이. <오마이뉴스>와 <조인스 블로그>에 연재하며 인기를 끈 카툰을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연상연하 커플로 여러 가지 장애와 장벽을 넘은 경험담을 유쾌하게 그림과 글로 담았다.

365일 함께하는 부부가 또 하나의 ‘선택’을 한 이유
각자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김효니 씨와 조재철 씨는 집과 작업실을 합친 공간에서 먹고, 자고, 그림을 그린다. 거실을 작업실 삼아 커다란 책상을 마주 놓고 앉아 작업하는 부부에게는 한 가지 불문율이 있다. 일어나면 반드시 옷을 갈아입고 작업을 시작한다는 것. 그래야 휴식과 작업의 경계가 모호해지지 않고 일에 대한 집중력도 높기 때문이다.

일단 옷을 갈아입고 나와 각자의 책상에 앉아 작업에 돌입하면 남편과 아내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진다. 그러다가도 힘겨운 마감 고비를 넘기고 시간 여유가 생길 때, 작업에 관한 조언이 필요할 때면 다정하게 어깨를 기대고 앉는 두 사람. 이때부터 부부의 그림 이야기가 술술 펼쳐진다. 잘 풀리지 않는 아이디어를 머리 맞대고 의논하는가 하면, 스케치북을 넘기며 요즘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왜 이렇게 그렸는지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고 경청한다. 대화가 오가는 내내 연신 입꼬리가 올라가는 아내와 그런 아내를 흐뭇하게 바라보는 남편의 미소가 한없이 따뜻해 보인다. 10년 넘은 부부맞나 싶을 정도로 서로에게 귀 기울이고 집중하는 평화로운 일상이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특히 요즘은 얼마 전부터 키우기 시작한 고양이 ‘쏠’과 ‘키라키라’까지 합세해 웃을 일이 더 많아졌다.

이렇게 하루 24시간 1년 365일 얼굴 맞대고 사는 부부를 두고, 남들은 그렇게 붙어 있으면 지겹지 않느냐고, 함께 있는 시간이 많을수록 자주 싸우지 않느냐고들 하지만 정작 자신들은 눈만 마주쳐도 좋은 모양이다. ‘매일매일 어제보다 오늘 더 사랑한다’는 어느 연예인 부부처럼 이들도 나날이 견고해지는 부부 관계를 실감한다고. 인터뷰 내내 서로 챙기는 금실 좋은 부부에게 아이 이야기를 꺼냈다.

“처음부터 작정하고 낳지 말자고 했던 건 아니에요. 우리 일이라는 것이 마감에 따라 밤낮이 수시로 바뀌는 불규칙한 생활의 연속이고 경제적으로도 들쭉날쭉해요. 그래서 막연하게나마 어느 정도 생활이 안정을 찾으면 낳아야 하지 않을까 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이를 낳으면 나보다는 아이의 행복이 먼저여야 할 것 같은데, 과연 우리에게 그런 마음의 준비가 됐나 싶은 거예요.”

부부는 부모가 되는 것에 대한 자신감 부족을 절감했다. 아니, 더 솔직한 속내를 드러내자면 지금 하는 일이 주는 기쁨과 그것을 통해 이루고 싶은 꿈을 미루거나 접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는 편이 맞을 것이다.

 
각각 카툰 작가와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는 두 사람은 집 겸 작업실에서 하루 24시간을 함께 일하고 함께 산다.

“그 과정에서 과연 우리 삶의 우선순위는 무엇일까 신중하게 고민했는데, 적어도 우리에겐 아이가 1번은 아니라는 결론을 얻었어요. 살면서 가장 중요한 건 삶의 즐거움이라고 생각해요. 사람마다 추구하는 가치가 다르기 때문에 딱히 뭐가 정답이다 할 수는 없지만, 저희는 삶의 포인트를 우리 ‘꿈’과 ‘그림’에 두었어요. 그래서 아이 문제보다 우선순위가 된 것뿐이지, 결코 우리 꿈이 다른 사람들의 그것보다 크거나 특별해서는 아니에요.”

실현 여부는 차치하고라도 좀 더 촘촘히 꿈을 설계하고 집중할 수 있는 것 자체가 큰 기쁨이라는 부부. 결혼한 사람의 당연한 책임을 얄팍한 이기심 때문에 회피하는 건 아닌지 스스로에게 몇 번이고 질문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선뜻 마음먹어지지 않는 것을 남들 다하니까 분위기에 휩쓸려 결정할 수 없었고, 그 선택에 후회는 없다.

두 사람이야 ‘쿨하게’ 의견이 맞았다 해도 주변의 관심까지 막을 수는 없는 노릇. 더구나 남편은 1년에도 몇 번씩 제사를 모셔야 하는 집안 종손인 데다, 여섯 살이나 많은 아내 김효니 씨의 친구 중에는 군대 간 아들을 둔 이도 있으니 주변에서 염려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지금 준비 중인 <누나야, 여보 할래?> 2편에도 그런 에피소드가 간간이 등장한다.

“장손인데 부모님이 재촉하지 않아도 당연히 낳아야지, 아내가 나이가 많아 문제 있는 거 아니냐, 더 늦기 전에 병원에 가봐라, 애는 제 먹을 거 갖고 태어나니 일단 낳아봐라, 불임 부부의 임신을 도와주는 TV 프로그램에 신청해보라, 심지어 불규칙한 생활 때문이라면 안정적인 월급쟁이 하라는 말도 들었어요. 그런데 그림 그리는 일은 우리에겐 천직이고 살아가는 이유인데, 다른 일을 해서 좋은 걸 먹고 편안한 집에서 산다 한들 행복할 수 있을까요?” 꽃노래도 한두 번인데, 이 부분에서 여자가 받는 스트레스는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그럼에도 아이 문제로 인한 다툼은 물론 부모님과의 마찰이 없었던 건 부모님의 속 깊은 배려 때문이었다. 결혼해서 지금까지 시부모님은 손자 안겨달라 채근하는 법이 없었다.

“주변 분들이 왜 애 안 낳느냐고 하면 인천 엄마(김효니 씨는 시부모님을 인천 아빠, 인천 엄마라 부른다)는 ‘둘이 잘 사는 게 최고야’라며 무조건 우리 편을 들어주세요. 제가 인천 아빠께 우리 꿈은 사람들 마음을 위로하는 멋진 애니메이션으로 오스카상을 받는 거라고 하면, 그것조차 허투루 듣지 않으시고 꼭 세계 최고의 만화가가 될 거라며 응원해주세요. 덕분에 우리가 꿈을 키우며 살아요. 한번이라도 돈도 안 되는 일 왜 하느냐, 빨리 애나 낳으라고 하셨다면 지금 같은 행복은 없었겠죠.”

흔쾌히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을 장남 부부의 결정을 가슴으로 보듬어주고, 세상 사람들이 무심코 던지는 크고 작은 화살을 당신들이 기꺼이 나서 막아주시니 한없이 감사할 따름이다. 호칭에서 짐작할 수 있듯 김효니 씨와 시어머니 사이에는 고부 관계를 넘어 여자로서 의리와 믿음이 도타워졌고, 이런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특별한 이야기는 일찌감치 TV 프로그램에도 소개된 바 있다.

친구, 멘토
그리고 기분 좋은 긴장감을 주는 라이벌

사람들은 말한다. 결혼해서 살다 보면 연애 시절 열정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현실적 문제와 부딪히다 보면 권태기도 오기 마련이라고. 그럴 때 부부 사이의 미세하게 벌어진 틈을 채워주고 연결해주는 것이 자식이라고. 그런데 두 사람은 그 연결 고리를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에게서 찾아 작가로서의 성취감이라는 부부의 교집합을 더 크고 의미 있게 만들어간다. 그런 면에서 평소엔 한없이 너그럽다가도 작품 앞에서만은 날선 비판과 진심 어린 조언을 주저하지 않는 부부는 마음의 빗장이 없는 속 깊은 친구이자, 세상에서 가장 믿음직한 멘토이고, 기분 좋은 긴장감을 주는 라이벌이다. 촬영하기 위해 급히 그림이 필요했을 때 아내가 스케치를, 남편이 채색을 맡아 뚝딱 완성하며 환상의 호흡을 자랑하기도 했다.

(왼쪽) 이들은 삶의 우선순위가 무엇일까 고민했고, 그 결과 아이가 최우선은 아니라는 것에 합의했다. 대신 ‘그림’과 ‘꿈’이 이들의 행복 원천이다.

“애니메이터이던 제게 그림일기 형식의 카툰을 그려보라고 아이디어를 주고, 그것을 웹사이트에 연재해보라고 권유한 사람도 남편이에요. 덕분에 저희에게는 자식과도 같은 책이 출간되었고, 지금도 계속 진행하고 있지요. 당장 돈이 안 되더라도 멀리 보고 창작 활동에 매진하라며 물심양면 밀어주고, 자신보다 제 작업에 필요한 컴퓨터와 각종 장비를 먼저 구비하는 사람도 남편이고요. 그 넉넉한 마음 씀씀이를 알기에 남편을 생각하면 가슴이 찡해요.”

그뿐 아니라 원래 커피를 좋아하지 않던 남편은 커피 좋아하는 아내에게 더 맛있는 커피를 먹이고 싶어 직접 원두를 볶는 커피 마니아가 된 지 오래다. “결혼할 때 특별히 약속한 건 아니지만 저 스스로 효니 씨를 자기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알리고 싶다는 결심을 했어요. 충분히 그럴 만한 사람이니까요. 효니 씨를 만나 제게도 또 하나의 꿈이 생겼으니 얼마나 고마워요. 우리가 하고 싶은 일 접지 않고 할 수 있어서,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설계하고 실천할 수 있는 여지가 조금 더 있어서 행복합니다.”

곧 출간될 <누나야, 여보 할래?> 2편 중 무자녀 부부로 사는 에피소드.

자녀가 없는 부부일수록 윤택한 정서적 교감을 나누어야 한다고 당부하는 김효니, 조재철 씨 부부. 블로그 기자로 활동하는 아내가 지방 취재 가는 하루 이틀을 빼고는 담배 가게도 함께 간다는 이들은 취미까지 닮았다. 함께 거리에 나가 사진 찍고 드로잉을 즐기는 것은 두 사람에게 빼놓을 수 없는 일상이다.

수많은 사람과 풍경 속에서 찾아낸 사진과 스케치는 작품의 좋은 소재가 된다. <누나야, 여보 할래?> 1편이 연상 연하 커플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었다면, 지금 준비 중인 2편은 두 사람의 본격적인 결혼 이야기를 통해 따뜻함을 전달할 예정이란다. 부부만으로도 충만하게 빛나고 성장하는 가족! 이로써 왜, 하필 아이 없는 가족을 선택했느냐는 질문에 대한 구구절절한 설명은 생략해도 될 것 같다.

글 유은혜(프리랜서) 사진 하성욱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1년 5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